〈 46화 〉 천계??
* * *
“언니, 이건 이상한 맛이나. 뭔가 입안이 시원해지는 맛이야!”
“윽, 내 입에는 별로야.”
“은근히 중독성 있는 게 맛있는데?”
“은각, 저리 치워!”
과자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내 정체를 듣고 나선 그렇게 돌변하다니.
오늘도 스승의 악명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맛있냐?”
“흥, 뭐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엄청 맛있어!”
“언니분은 입 안에 있는 과자나 다 삼키고 얘기하시지.”
퉁명스럽게 말하는 금각과 솔직하게 말하는 은각.
솔직하지 못하긴.
“다 먹었으면 태상노군 어르신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려줘.”
“주인님은 태산에 올라가 계셔.”
“잘 찾아가 봐.”
“왜 남의 일처럼 애기 하실까? 너희도 같이 가야지.”
“뭐? 우리가 왜!”
“같이 가주면 과자 또 줄 거야?”
퉁명스러운 언니 쪽보다는 나름 순진한 동생 쪽이 말이 통하겠다.
이 넓은 무릉도원에서 나 홀로 태산을 찾는 것도 무리이고
태산에 도착해도 혼자 태상노군 어르신을 어떻게 찾겠는가.
“그럼, 너희 언니는 과자가 먹기 싫은가 본데 우리 둘이 갈까?”
“언니 정말 안 갈 거야?”
자기 혼자 따라가기엔 불안한지 쌍둥이 언니를 불러보는 은각.
“흥!”
“아쉽다, 이 동그란 과자 말고도 준비한 것들이 참 많은데 동생이 다 먹게 생겼네.”
“이 과자 말고도 다른 걸 준다고?”
“응. 어서 가자.”
“안 간다고는 안 했어!”
아이를 설득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질투심 유발이지.
한 번 하계의 과자 맛을 본 상계의 아이들은 이 유혹을 버티지 못했다.
태상노군의 어린 시종들을 데리고 가장 커다란 산을 오른다.
과거 토지신에게 이 산을 들고 오게 만들어 우리 스승을 깔고 뭉갠 적이 있다던데
괜히 태산?山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거들떠보지도 못할 만큼 커다란 산.
금각 은각 자매는 어린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힘은 유지하고 있는지
힘든 기색 없이 산을 오르고 있다.
하긴 모시는 주인이 자주 산을 오르면 시종은 따라가야 하니
일과가 된 등산이 힘들지도 않겠지.
태상노군께서는 대체 왜 이런 산에 올라와 계시는 걸까.
“어르신은 이런 곳에서 뭘 하시길래 올라와 계신 거야?”
“주인님은 낚시를 좋아하시거든.”
“낚시? 이런 산에서?”
“이래서 하계인이란…”
“아니 상식적으로 누가 산으로 낚시를 가냐고.”
“그것 역시 하계의 상식이겠지, 이…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네?”
빨리도 물어본다.
“손우진이야. 너희는 뭐라고 불러 줄까? 언제까지 언니 동생 할 수는 없잖아.”
“원래는 금로동녀, 은로동녀라는 이명이 있지만… 편하게 금각 은각으로 불러.”
“그 모습도 우리의 정체성이니.”
조금은 친해진 듯한 금각 은각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며 산을 오른다.
과거의 악연을 내가 끊어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어째 스승의 이름값을 빌려 썼던 것보다 악명에 휩쓸리는 일이 더 많은 듯하다.
. . . . .
쌍둥이와 한참을 등산한 후에 정상에 도착했다.
절경의 무릉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르신은 어디 계시나 주위를 둘러보는데 절벽 끝에 한 노인이 앉아서
낚싯대를 기울이고 있다.
연못조차 없는 곳에서 대체 무엇을 낚으려는 걸까.
그러는 사이 쌍둥이 자매가 노인에게 다가간다.
“주인님,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주인님,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나와 얘기하던 때와는 달리
공손한 태도로 노인에게 나의 방문을 알리는 자매.
“어서 오시게나, 투전승불의 제자여.”
여전히 전방을 주시한 채로 인사를 건네는 노인
천계의 최고위 천신 태상노군이다.
“제 정체를 이미 알고 계셨군요.”
“허허, 이 늙은이도 알아챌 만큼 기운을 그리 풍기고 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나.”
천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 정도인가.
“어르신을 찾아가면 현재 제 몸 상태를 고칠 수 있다 해서 이렇게 천계를 찾아왔습니다.”
“젊은이는 등선할 생각은 없는가?”
“등선하기엔 아직 미련이 많아서요.”
“끌끌, 기운은 충분히 넘쳐나는데 말이지. 버리지 못한 게 많은가 보구만.”
기울였던 낚싯대를 당기는 태상노군 어르신.
팽팽하게 당겨졌던 낚싯줄은 주인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낚으십니까? 세월이라도 낚으시는 겁니까?”
“쯧쯧, 노인네가 세월을 낚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구름 낚시라네.”
“크흠!”
괜히 뻘쭘해진다.
아니 신선은 세월을 낚고 그런 강태공들이 아니었나?
구름 낚시는 또 뭔가.
“말 그대로 구름을 낚는 것이지, 손맛이 참 좋다네.”
“그렇군요.”
산으로 낚시를 오는 신선답게 참 괴팍하군.
이제야 뒤를 돌아보는 태상노군.
전형적인 신선의 모습이다.
길게 기른 수염에 인자해 보이는 눈빛.
이런 어르신에게도 인성질을 한 스승은 역시 비범하다.
“우리 아해들은 투전승불이라면 기겁을 하는데… 어떻게 회유했는가?”
“안 그래도 오기 전에 한바탕 싸우고 왔습니다.”
“허허! 금동이와 은동이의 수준은 상당한데 젊은이도 힘 좀깨나 쓰나 보구만.”
“금동이 은동이?”
“주인님!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언니…”
태상노군께 항의하는 금각과 그런 언니를 말리는 은각.
“뭐 어때, 귀엽기만 한데.”
“넌 빠져!”
“자, 어른들끼리 얘기할 것이 있으니 이거나 먹고 있어.”
“읍읍!”
금각의 입에 초콜릿을 물려준다.
정체도 모를 시꺼먼 물체를 입에 물리자 잠시 반항하지만
달콤한 맛을 맛본 금각은 금세 조용해진다.
“아.”
“아는 무슨, 참나.”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는 은각에게도 초콜릿 한 덩어리를 물려준다.
“허허, 과연 그런 거였나. 비결은 당과였군.”
“천계 하계 막론하고 아이들의 취향은 뻔하지 않습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내가 천계로 찾아온 이유.
“그래서 어르신, 제 몸을 원래 상태로 되돌릴 방법은 있습니까?”
“있다네.”
예스!
믿고 있었다고, 최고 천신!
“그 방법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흠…”
한참을 날 바라보더니 갑자기 네 왼쪽 가슴을 손으로 집어 버리는 어르신.
“참으로 모순되는 힘이로다. 생명을 갉아 먹고 생명을 지킨다라… 이래서 서역 것들은 에잉 쯧쯧.”
기아스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천신.
시전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파멸로 몰아넣는다.
참으로 역설적인 힘이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기아스 덕분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죽기 직전까지 몰려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자네 스승에게 한 소리 들었겠군.”
“죽는 것보다 낫죠.”
곰곰이 생각하는 중인 태상노군 어르신.
“현재 자네 스승의 기운이 자네를 집어먹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방법은 한 가지뿐, 자네의 본연지기에 투전승불의 기운을 녹여 내야 한다네.”
“그게 가능하려면 제가 뭘 해야 합니까?”
“팔괘로???에 들어가게.”
“잘못 들었습니다?”
“팔괘로에 들어가게.”
시발.
지금 말하는 팔괘로가 그 팔괘로 맞는 거겠지?
태상노군 최고의 보패, 선단을 구워내거나 죄인을 불태우는 데 사용되는 천계의 화로.
우리 성좌의 붉은 눈 화안금정 역시 팔괘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들어간 원숭이가 워낙 강해서 만들어진 사기 눈깔이지만 말이다.
“왜 팔괘로에 들어가야 합니까? 저도 하계인이지만 팔괘로가 어떤 물건인지는 압니다.”
“자네 몸을 잠식하는 기운을 불태운 뒤 선단으로 만들 것이라네. 지금 방법으로 기운을 흡수했다간 그 기운에 자네가 먹히고 말 거야.”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군요.”
“물론 자네가 팔괘로 안에서 버텼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일세 허허!”
“이런 미친!”
최고 천신 앞이지만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결국 본인도 살 확률은 장담할 수 없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할 텐가?”
“후우… 달리 방법도 없는데 제게 선택지가 있겠습니까.”
“허허, 그럼 이건 어떤가? 내 밑에서 수행을 한 뒤 팔괘로에 들어가는 걸세.”
“어르신 밑에서요?”
“자랑은 아니지만 천신 자리는 노름으로 딴 게 아니라네.”
흠.
나에겐 굉장히 좋은 기회다.
어르신은 팔괘로의 설계자인 만큼 팔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밑에서 수련한다면 나만의 오리지널 팔괘권을 더 완벽하게 익힐 수 있고
스승의 신성을 선단으로 만들어 흡수한다.
성공만 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겠지.
하계로 내려가면 칠대성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하하하! 고놈의 원숭이가 알게 된다면 경을 치겠군!!!”
…그런 의도셨습니까.
제천대성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나를 제자로 받아 들인다라.
너희 제자 쩔더라? 이런 느낌인가.
마냥 인자하신 할아버지는 아니였구만, 취향 참 고약하시네.
“손우진, 어서 사저라고 불러.”
“사저라고 해봐.”
입에 물고 있던 초콜릿은 모두 먹어 치우고선 자신들을 사저라고 주장하는 쌍둥이 자매.
이것들이 미쳤나.
“사저는 무슨, 너희는 그냥 시종이잖아.”
“아닌데? 우리도 주인님께 사사 중이야.”
“맞아 맞아.”
“요괴가 돼서 뛰쳐나간 것들이 무슨…”
“그건 관세음보살께서 우릴 꼬드긴 거라고!!!”
“못된 사제에겐 벌을 줘야지!”
금발의 아이는 내 다리를 퍽퍽 차는 중이고
은발의 아이는 목에 매달려 목덜미를 깨문다.
“허허, 자네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애정 행위도 이리 거리낌 없다니.”
“어르신 눈에는 이게 애정 행위로 보이십니까.”
천계에서 만난 새로운 사부님과 함께 하산한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려 나에게 매달려 있는 쌍둥이를 매단 채로 말이다.
“미안하다니깐.”
“전혀 미안한 태도가 아니잖아! 그리고 사저에겐 존댓말 해야지!”
“사저 할래? 아니면 이거 먹고 금각이로 지낼래?”
하계에선 내 지시에 따라 과자를 준비하는 분신이 있기에
나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퍼올릴 수 있다.
이번에 꺼내 든 것은 아이스크림이다.
“그, 그건 뭐야?”
“시원한 빙과라고 보면 되지.”
“너무 우진이한테 그러지 마 언니.”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받아 가는 동생 은각.
사저 타령을 해봤지만 결국엔 아이스크림이 더 실속있다 이거지.
“나, 나도 줘…”
“사형이라고 말해 봐.”
“그건 말도 안 되지!”
큭큭.
지루하지는 않겠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