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과외 시작
* * *
“어르신,믿어도 되는 거죠?”
“날 믿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지.”
모든 볼일을 마친 뒤 무릉도원으로 돌아와 태상노군 어르신과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팔괘에 담긴 오행을 직접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르신.
최고 천신의 손에서 들려 있는 파초선???을 보고 있자니
이 수련법이 정말 맞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은각, 사제의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 잘 봐둬.”
“우진아, 복숭아는 주고 가!”
버르장머리 없는 쌍둥이가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친다.
너희를 봐서라도 절대 죽지 못한다.
내가 반드시 오행의 이치를 완벽히 터득해 사제관계를 역전해주겠다.
“자 그럼,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아라.”
“후우… 살살 부탁드립니다.”
신성을 최대한 끌어 올려 호신강기를 온몸에 둘러싼다.
어르신의 단 한 번의 부채질.
그 부채질 한 번에 내 몸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한다.
화르륵!
신성으로 만든 호신강기를 모두 집어삼키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온몸을 두른 보호막을 먹어 치우는 천신의 불꽃.
쌍둥이가 사용했을 때와는 출력이 상당히 차이가 난다!
몸 안의 신성은 빠르게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끄으으윽…”
“불은 빨리 타기에 성미가 급하고 자제력이 없지.”
“힘들어 죽겠는데 이론 수업도 함께 들어야 합니까!!!”
“빛과 열기를 담고 있기에 퍼지는 것 또한 좋아한단다, 그걸 다스려야 해.”
이대로 의미 없이 불꽃에 신성을 헌납했다간 결국 타 죽을 것이다!
어르신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본다.
주변으로 확산하는 불의 기운을 다스려야 한다고? 어떻게?
불을 끄기 위해 급한 대로 물을 소환해봤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의 기운에 이기지 못하고 꺼져버린다.
“어허, 불도 모르는 놈이 어찌 물로 불을 다스리려 하느냐?”
“크으… 시발!!!”
“불을 꺼야 하는데 마음에도 불이 번졌구나!”
신성을 바닥까지 긁어먹은 불은 곧이어 내 살까지 파먹기 시작한다.
작열하는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불의 기운을 응축시켜 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거라, 항상본질을 봐야 한다.”
불火의 본질을 보라.
따뜻하게 생명을 감싸는 에너지, 하지만 때로는 성미가 급해 모든 것을 불태우는 기운.
주변에 퍼져있는 따뜻한 기운을 손아귀 안으로 끌어당긴다.
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뛰쳐나가려는 불을 어르고 달래 손안에 담아둔다.
몸을 감싸고 있던 불도 내 부름에 응답해 손안으로 모여든다.
“그렇지! 불이라는 놈은 응축하고 결속하려는 성질에 약한 법이지!”
“…”
내 몸을 불태우고 있던 불은 이내 손안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검게 타버린 손안에서 밝게 빛나는 불꽃.
어르신, 미안하지만 온몸이 불에 타 성대 또한 녹아내린 모양입니다.
태상노군의 칭찬에 대답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손안에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짜악!
“사저를 부려 먹다니, 빨리 일어나!”
“우진이 일어난 거 같은데 언니?”
“…곱게 좀 깨우면 안 되냐.”
뺨을 때려서 깨운 건지 볼이 얼얼하네.
쌍둥이의 떠드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본다.
불을 다스리는 데 성공한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뒤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성대도 불에 타 녹아내렸는데 목소리가 잘만 나온다.
몸을 살펴보니 화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된 거야?”
“자, 이거야.”
“주인님의 특제 선단.”
영롱하게 빛나는 작은 구슬을 내미는 금각.
이것이 최고 천신이 빚어낸 천계의 선단인 모양이다.
“주인님께서 제대로 가르치실 모양이야. 감사히 생각하라고.”
“감사히 생각해 손우진.”
“어르신께서 주신 건데 왜 생색은 너희들이 내냐.”
“이 못된 손우진이!”
“하늘 같은 사저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쌍둥이와 다투면 끝은 항상 이런 식이다.
쌍둥이를 매달고 집 밖으로 나오자 태상노군께선 하늘을 향해 낚싯대를 기울이고 있다.
만약 천신이 아니었다면 태상노군 어르신은 일 년의 반은 바다에 계셨을 것 같다.
“젊은 놈이라 회복은 빠르구먼.”
“감사합니다 어르신.그 귀한 선단을 주실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허허! 됐다. 금동이 은동이 녀석도 어려워하던 결속력을 벌써 터득하다니. 원숭이 놈이 괜히 데리고 있었던 게 아니군.”
“…그렇다는데? 금동아, 은동아.”
“하나 익힌 것 가지고 우쭐해 하긴!”
“주인님,아니죠? 저희가 더 잘했죠?”
“그래그래, 금동이 은동이도 뛰어나지 허허.”
말괄량이 손녀를 달래듯 은각을 달래는 어르신.
언제 또 탈선할지 모르는 시종들을 달래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그래서 다음 수련은 뭡니까? 물의 기운? 땅의 기운?”
“예끼 이놈!”
딱!
들고 있던 낚싯대로 머리를 내리치는 태상노군 어르신.
뭔 놈의 모시는 스승마다 손이 먼저 나가는 스승들 뿐이다.
“아흑! 어르신, 말로 합시다!”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 놈이 성미만 급하구나.”
“건방진 손우진.”
“건방져!”
어르신의 꾸짖음에 쌍둥이의 추임새까지.
내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구만.
“오늘 수련은 끝이다. 몹시 시장하니 식사를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금각과 은각은 시종 모드로 변해 공손히 대답한다.
어리광을 피워도 일할 때는 진지한 쌍둥이.
“어디가? 너는 우릴 따라와야지.”
“이리 와.”
쌍둥이는 주방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어르신을 따라가던 나를 부른다.
“나도? 나도 식사 준비를 해야 해?”
“그럼 어디 사저들이 일하는데 혼자 빠지려고 그래!”
“빨리 와!”
“허…”
같은 스승을 모시게 된 이후로 예정된 일이었나.
나는 쌍둥이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간다.
“신선은 이슬만 먹고 사는 거 아니었어? 식사를 준비할 것이 있나.”
“사람이 어떻게 이슬만 먹고 살아?”
“흐흥, 아무것도 모르네.”
하긴, 하계의 과자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 아이들을 보면
신선이라고 다를 바 있나 싶다.
“그냥 내가 하계의 음식을 가져오면 안 돼?”
“주인님이 드실 음식인데 그럴 순 없어.”
“정성이 담겨 있지 않잖아.”
시종 역할에는 한없이 진심인 쌍둥이 덕에 꼼수조차 통하지 않는다.
“뭐, 식사 후에 먹는 후식 정도는 괜찮겠지.”
“맞아! 후식은 상관없지.”
“속 보인다, 속 보여.”
쌍둥이가 요리하는 동안 나는 자잘한 허드렛일 정도를 대신해 주었다.
불을 피우거나 식기를 보기 좋게 플레이팅을 하는 정도의 잡일을 말이다.
화로에서 활활 타고 있는 숯에 손을 가져다 대보니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배운 불을 다스리는 법을 복습해 보자.
열기를 손안에 담는 이미지를 떠올리자 불길이 손 중앙으로 모여든다.
불꽃과 열기를 빼앗긴 숯은 차갑게 식고 내 손안에는 불꽃이 춤을 추고 있다.
손을 털어내자 추위에 떨고 있는 숯으로 돌아가는 불꽃.
오행을 완벽히 익힌다면 우선 홍수아 년에게 휘둘리지는 않겠네.
그저 불 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쌍년.
불 만큼은 꼭 완벽히 습득해서 내려가겠다.
“언니! 우진이가 일 안 하고 손장난하고 있어!”
“아니, 겸사겸사 그냥 오늘 배웠던 것 좀 복습하고 있었지.”
“그렇다고 불을 거두면 어떻게 해.”
우여곡절 끝에 음식을 모두 준비하고 넷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였다.
쌍둥이와 함께 식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태상노군께서는 최고 천신답지 않게권위를 부리지 않는 분이시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칭얼대는 쌍둥이의 입을 과자로 봉인한 뒤
어르신은 하계의 물건이 필요 없는지 의중을 물어보았다.
“어르신은 필요하신 것이 없으십니까?”
“하계의 물건이라…”
고민에 빠지신 태상노군.
건강에 관련된 영약도 어르신이 더 잘 만들고, 무엇을 선물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생각해 둔 물건을 지상의 분신에게 준비하라고 시킨 뒤
입을 털 준비를 한다.
스승을 기쁘게 하는 것이 제자의 도리지.
“어르신, 불로초 전설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선단을 찾아 헤매던 하계의 왕 이야기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그 불로초 결국 제가 찾아냈습니다.”
“뭐라? 하계에는 선단이 존재하지 않을 텐데!”
“없긴요, 화과산 근처 가게에서 잘만 팔고 있던데요.”
분신에게 심부름시킨 물건이 곧이어 손 위에 소환된다.
화과산 근처의 편의점에서 사 온 하계의 선단.
담배 한 갑이다.
“요놈이 왕이 그렇게 찾아다니던 불로초입니다. 한 대 피우시지요.”
담배 한 개비를 무는 태상노군 어르신.
재빨리 손가락으로 불을 피워 불을 붙여드린다.
어르신은 자연스레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다.
“후우… 이건 그냥 연초잖나.”
“한번 피우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데 이게 불로초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하하하하! 네 말이 맞구나!”
담배 한 갑으로 최고 천신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굉장한 가성비지.
. . . . .
“따라오거라.”
아침이 되자 태상노군께서는 나와 쌍둥이를 데리고 처음 만났던 그 장소, 산 위의 절벽으로 향한다.
설마…
“자, 받게나.”
내게 낚싯대를 휙 던지는 어르신.
정말로 낚시를 하러 오셨다.
“이것도 수련의 일종입니까?”
“네 나름대로 얻어갈 것이 있다면 수련이겠지, 시작하거라.”
쌍둥이 시종이 준비한 의자에 앉아 세월아 네월아 구름을 낚기 시작하는 최고 선신.
대체 이걸로 구름을 어떻게 낚으라는 건가?
휘익!
하늘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을 향해 낚싯대를 휘둘러 봤지만 손에 걸리는 것이 없다.
어르신의 줄과는 달리 축 늘어지는 내 낚싯줄.
낚싯대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는 줄 알았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낚싯대 그 자체.
“푸흡!”
“히히!”
“조용히 좀 해 줄래? 집중하고 있거든?”
뒤에서 나를 비웃는 쌍둥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겠어.
이 낚시에도 얻어갈 것이 있다면 수련이라니, 나는 어제 배운 것을 생각해본다.
어제 배운 것이라곤 불의 기운을 결속하는 법 말곤 없다.
이것을 구름 낚시에도 적용하라는 건가?
다시 한번 구름 속으로 낚싯바늘을 던진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에 집중하며 결속력을 바늘에 담아보려 노력한다.
“호오!”
어르신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 방식이 맞는 모양이다.
한참을 집중하니 구름 속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촤악!
손맛이 전해져서 낚싯대를 건져 올렸더니 그 끝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다.
“끝까지 집중해야지 이놈아!”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요령을 알았으니 다음번엔 반드시 구름을 낚아 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