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52화 (52/106)

〈 52화 〉 팔괘로 밖으로

* * *

쾅! 쾅! 쾅! 쾅! 쾅!

거대한 팔괘로의 문 밑단에는 인간의 주먹 형상이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콰앙!

곧이어 찌그러진 화로의 문이 박살 나고 그 안에서 손우진이 문을 박차고 나온다.

온몸에 검댕을 묻히고 나온 손우진은 오래간만에 맛보는 신선한 공기에 숨을 한껏 들이쉰다.

팔괘로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바깥세상을 즐기는 손우진.

하지만 그가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마주한 광경은 심히도 어지럽다.

쌍둥이 시종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스승의 멱살을 잡고 있지 않나, 또 스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쌍둥이의 목덜미를 붙들고 있지 않나.

1타 강사 선인들은 언성을 높여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그러다 밖으로 나온 손우진을 돌아보는 이들.

그들의 시선은 손우진에게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그…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거나 마저 하세요. 옷 좀 갈아입고 있을 테니.”

“손우진!”

“우진아!”

“내가 살아있다고 하지 않았소! 대체 나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심한 건지!”

“허허 오공 자네가 참게.”

“다행이군, 다행이야!”

“어서 오게나. 끌끌.”

쌍둥이는 살아 돌아온 손우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고

이제야 자신의 말을 증명한 손오공이 화를 내기 시작하자 태백금성이 이를 달랜다.

팔괘로 속에서 손우진이 살아 돌아왔다.

. . . . .

“진짜 며칠을 뛰어다녔는지 몰라요. 제 인생에서 아마 가장 많이 뛰지 않았나 싶어요.”

“손? 방위는 잘 찾았더냐?”

“뭐 스승님과 선인 분들에게 배웠으니 팔괘를 찾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죠.”

기운은 넘쳐났기에 휴식을 취할 필요는 없었다.

태상노군 어르신의 거처로 모인 이들은 내 생존썰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재투성이인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온 뒤 썰을 풀기 시작한다.

“문제는 저 지랄 맞은 팔괘로가 변덕이 엄청 심하다는 거예요.”

“큼큼!”

“푸하하하하! 공교롭게도 지랄 맞게 만든 장본인이 여기 있구나!”

이런, 말실수했다.

저 팔괘로를 만드신 분이 태상노군 어르신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어.

내 말실수를 듣고서 대놓고 웃는 이는 스승님뿐이다.

다른 선인분들도 내 표현이 웃기긴 했는지 웃음을 참는 모양새다.

“그만큼! 정말 잘 만들었다는 거죠. 요즘 하계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욕설이 곧 칭찬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라고요.”

“애쓰네.”

“수습하기 힘들지?”

“시끄러워.”

내 위에 걸터앉아 있는 쌍둥이가 딴지를 걸어온다.

자리도 많은데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봤기에 봐주는 거다, 안 그랬으면 어림도 없었을 텐데.

“아무튼 계속해서 변화하는 팔괘로 구조가 가장 문제였어요. 쉴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뛰어다녀 체력의 한계가 왔거든요.”

“너무 내 위주로 생각하긴 했군. 순발력만 필요할 줄 알았건만.”

“아무리 그래도 40일가량을 쉬지 않고 뛰는 건 인간에겐 무리죠.”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나?”

“어서 얘기해보게 우진 군.”

최고 선인들이 인간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보채댄다.

하긴 신분을 막론하고 무용담을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지.

“시간 개념도 사라지고 얼마나 뛰었는지 짐작도 안 가니 이제 막 헛것도 보이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막 소리치며 뛰어다녔죠.”

혼자서 방송도 하고 말이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에 한 것이 방송이라니, 정말 미친놈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기가 막혀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손 방위에 도착했을 때 긴장이 쫙 풀리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 여기까지구나 싶더라구요.”

“그런데 이리 멀쩡히 나온 것을 보니 비장의 수를 숨겨두고 있었나 보구먼?”

“뭐 숨기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더 빠르겠다.

나는 몸속에 잠들어 있는 신성을 끌어 올린다.

“호오!”

“하하하! 이 몸의 밑천을 다 털어갔군.”

“엄청나게 강해졌네! 그런데 왜 저 원숭이 놈 눈이랑 비슷해진 거야.”

“우리랑 격차가 더 벌어졌잖아!”

“인간의 몸으로 이 정도 경지에 오르다니, 굉장히 놀랍군.”

“가르친 보람이 있구먼.”

온몸에서 힘이 넘쳐흐른다.

전투 태세에 들어서자마자 발동한 화안금정.

이제는 감정 상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경지를 보여드린 이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솔직히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왕 죽을 바엔 한번 부딪혀 보자 생각하고 정화의 불에 맞섰거든요?”

“그때 숙주의 죽음을 감지한 몸 안의 오공 녀석 기운이 튀어나왔을 테지.”

“뭐야! 어르신이 어떻게 아셨어요?”

“끌끌, 내 선단을 만든 경력이 몇 년인 줄 아느냐?”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태상노군 어르신께서 그때 당시의 상황을 맞춰버렸다.

정화의 불에 타죽을 뻔한 나를 지켜준 건 다름 아닌 기아스로 땡겨 온 제천대성의 기운이었다.

내가 죽으면 자신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르지도 않은 제천대성의 기운은 나를 끝까지 지키다 정화의 불과 함께 자멸하였다.

빛나는 선단 한 개만을 남기고선 말이다.

“잠시 진맥 좀 짚어 보마.”

처음의 만남과 같이 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시는 어르신.

한참을 살피시다 답을 내리신다.

“뜨듯한 곳에 있어 그런지 혈액 순환이 빨라졌을 테고, 기운도 완벽하게 흡수했구나.”

“정작 선단을 흡수할 때는 엄청나게 고생했거든요.”

선단을 홀랑 삼켰다가 주체못할 기운을 다스리느라 혼났다.

스승처럼 몸에 털이 났다가 손발도 요괴의 모습으로 변했다 말았다, 아마 주도권 싸움에서

졌다면 제2의 손오공이 탄생했겠지.

“하지만 선단을 먹는 선택은 너무 섣불렀어. 잘못했으면 고생한 보람도 없이 손오공과 손우진 그 사이에 있는 괴상한 요괴로 변했을 테야.”

미친! 스승님처럼 변하는 게 아니라 어중간한 요괴로 변했을 거라고?

진실을 알게 되니 등골이 싸해진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먹지 않았다면 움직이지 못했을 테니깐요.”

“막무가내인 점은 정말 스승을 빼다 박았군!”

사건의 개요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나타께서 소리치신다.

듣기로는 나를 구조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셨다고 하던데 정말 고맙다.

어찌 됐든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러신 거 아닌가.

“나타님. 어째 저를 믿지 않으시고 구하러 들어가겠다고 하셨다면서요?”

“그게 아니고 참! 다 자네를 걱정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흐흐, 농담입니다.”

“그래서 지상으로 내려가면 칠대성 놈들을 처리할 자신은 있고?”

스승께서는 내가 천계로 올라온 본질적인 질문을 건넨다.

칠대성을 처리할 자신이 있냐고?

“자신이 없어요.”

“뭐라?”

“우진이 이놈아, 자고로 사내란 말이다…”

“그놈들에게 질 자신이 없어요.”

“크하하하하! 오늘 네가 날 몇 번을 웃기는지 모르겠군!”

“그 스승에 그 제자가 맞구만…”

“자네는 최대한 늦게 상계로 올라오길 바라네. 똑같은 놈이 두 명이면 골치 아프니 말일세.”

나는 밤 늦게까지 스승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사부들의 수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 내게 힘을 컨트롤 하는 법과

각종 천계의 지식을 쑤셔 넣기 위해 나를 붙들고 열렬하게 강의를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이래서 1타 강사, 1타 강사 타령을 하나 보다.

. .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태상노군 어르신의 진단 하에 지상으로 내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내 몸에 흡수당한 기운도 완전히 내 신성 속에 융합되었고

성좌의 신성과는 전혀 다른 나만의 기운으로 변모했기에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이제는 지상으로 내려가 내게 주어진 할 일을 할 차례다.

“그냥 인간들에게 맡기고 여기서 같이 살면 안 돼?”

“굳이 우진이 네가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관련도 없는 사람들에게 맡길 순 없지.”

“쓸모없는 인간들!”

“그치만…”

한국 지부의 히어로 만으로는 칠대성에 속한 녀석들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배틀 토너먼트에서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한 상황인데

나 때문에 발생한 사고이니 내가 책임지는 것이 맞겠지.

이렇게 개고생을 시켜준 답례도 직접 전해줘야 하고.

“내려갈 준비는 다 했느냐?”

“예. 그전에 들릴 곳이 한군데 있습니다.”

“우진이 네가 천계에 어딜 갈 곳이 있다고 그러느냐?”

지상으로 내려가기 전 천계의 끝판왕을 만나고 와야 한다.

누구 덕분에 말이지.

“그… 스승님 부탁으로 서왕모 님을 뵙고 와야 하는데 말이죠…”

“허허, 어서 갔다 오거라. 나는 기다리고 있으마.”

“저기 어르신, 왜 황급히 말을 돌리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요?”

“금동아, 은동아, 우진이가 길을 모를 테니 함께 다녀오거라.”

“네에.”

“네엥.”

“어르신!”

어르신은 내 부름에도 응하지도 않고 안뜰로 들어가 버리셨다.

최고 천신 태상노군도 만나길 꺼리는 것이 서왕모 님이시군.

참 좋은 정보다.

참 좋은 정보야.

나는 금각과 은각을 옆에 끼고선

서왕모께서 머물고 계시는 곤륜산 꼭대기의 궁전으로 향했다.

혼날 때는 혼자보단 세 명이 낫겠지.

그것도 남정네보단 귀엽고 어린 쌍둥이가 더 나을 테고.

“그런데 서왕모께는 왜 찾아가는 거야? 복숭아 더 받아 오려고?”

“그 귀한 복숭아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아니, 사과드리러 가는 길이야.”

“설마…”

“왜? 우진이 너가 뭘 잘못한 점이 있어?”

언니 금각은 지금쯤 눈치를 챈 것 같고 순진한 은각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복숭아 참 맛있었지?”

“응! 또 먹고 싶어!”

“그거 우리 스승님이 훔쳐 온 복숭아라 대신 사과드리러 가야 해.”

“도망가자 은각!”

금각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동생 은각의 팔을 붙들고선 도망치기 시작한다.

“어허, 복숭아를 먹어 놓고 입 싹 닫으면 안 되지.”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땅이 접혀 순식간에 도망치는 자매의 앞에 도달한다.

축지법의 경지도 굉장히 성장했군.

“자 착한 아이는 얌전히 있어야지.”

“이거 놔!”

“이 도둑놈!”

“도둑놈은 스승님이고, 나는 피해자라고.”

도망가려는 쌍둥이 자매를 양쪽 허리에 끼고선 곤륜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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