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53화 (53/106)

〈 53화 〉 하계下?

* * *

곤륜산 정상에 위치한 최고 여신의 궁전.

그곳으로 향하는 계단조차 모두 황금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주인의 신분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양손에 들려 있는 쌍둥이는 여전히 걱정되는 건지 손우진을 닦달한다.

“혼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서왕모 님은 복숭아 관련해선 엄격하시단 말이야.”

“그럼 줄 때 먹지 말았어야지.”

“그건 우진이 네가 아무 문제 없다길래!”

“그래놓곤 우리한테 준 거잖아!”

복숭아를 먹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 깐프 마을 주민들, 예은이, 금태양 안드리안, 그리고 쌍둥이.

하지만 서왕모께 꾸중을 들을 인원은 천계에 있는 나와 쌍둥이 단 세 명뿐이다.

여신께선 불로장생을 가져다준다는 반도원의 복숭아를 관리하는 직책이라

생명의 여신이라 여겨지지만 모든 불사는 죽음을 이해하고 초월했을 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죽음을 이해했기에 불로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이 여신은

본래 인식 속에선 죽음의 신으로서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나는 죽음의 여신 앞으로 사죄하러 가는 길이다.

“설마 죽이기야 하시겠어, 스승님이나 어르신과 잘 아는 사이인데.”

“야!!!”

“언니 나 무서워!”

선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평범한 이들에게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는 곤륜산.

그 정상에 도달하자 황금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궁전이 우릴 맞이한다.

궁전 왼편에 보이는 아름다운 연못과 산 정상을 휘감고 있는 강물.

용의 길이라 불리는 약수??다.

“용들만 건널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건너도 빠질까?”

“남자들은 왜 꼭 무모한 짓을 확인하고 싶어 해?”

“바보 같아.”

“너희에게 물어본 내 잘못이지.”

다들 그런 생각은 한 번쯤은 하지 않나?

이거 내가 이상한 거야?

나는 쌍둥이를 내려준 뒤 옷맵시를 단정히 해주고선 최고 여신을 알현할 준비를 한다.

­멈춰라.

­어린아이들이 왜 이곳까지 찾아왔을까?

궁전으로 입장하려 하자 입구 양쪽의 거대한 석상인 줄 알았던 것들이 갑자기 우릴 막아선다.

몸을 일으키는 동물들.

청동색 빛을 띠는 거대하고 사나운 맹금과 아홉 개의 꼬리를 지닌 여우.

서왕모의 충실한 시종인 신성한 짐승 청조와 구미호다.

그들은 곧 인간 여성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꿔 우리 앞에 등장한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아홉 개의 꼬리를 흔들고 있는 구미호와

푸른빛이 담긴 검은색 머리와 붉은 눈, 이쪽이 청조인가 보다.

“아가들, 이곳은 함부로 오면 안 되는 곳이야.”

“잠시만 미호, 너희는 태상노군 님의 시종들이 아닌가.”

청조로 보이는 여성이 다행히도 금각과 은각을 알아본다.

문제는 내 신분인데 말이야.

“저희는 서왕모 님을 뵈러 왔어요.”

“그… 복숭아와 관련된 일로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반도?? 말이더냐? 반도는 이미 지상으로 보내 하나도 없을 텐데…”

“아하핫! 저 잘생긴 오빠를 보니 왜 찾아온 건지 알 것 같네.”

거, 몇천 년은 나보다 연상일 텐데 오빠 소리는 양심에 찔리지도 않나.

구미호가 내 정체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저 남성이… 그렇군.”

구미호의 얘기를 듣고서는 나를 바라보는 청조.

내 신성이 풍기는 기운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미리 말하겠지만 저도 피해자입니다.”

“피해자?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 판단은 모두 서왕모께서 할 일.”

의외로 쿨하게 넘어가는 청조.

쌍둥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스승과의 악연 덕에 또 쌈박질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주인이 판단할 일이라며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른의 일처리 인가?

“당신 말이야, 상당히 맛있어 보이는 냄새가 나는데 나랑 잠깐 놀지 않을래? 앗!”

내 팔을 휘감아 오는 구미호.

그 모습을 보자마자 쌍둥이가 이를 떼어내어 내 양쪽 팔을 하나씩 차지한다.

“보모 역할을 하는 중이라 무리겠네요.”

“우리 아가들이 질투가 많네, 귀여워! 언니랑 놀러 갈까?”

“흥!”

“싫어요.”

“미호, 품위를 지켜. 너희는 날 따라오거라.”

“아앙, 청은 너무 지루해서 우리 아가들이랑 놀고 싶단 말이야!”

구미호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가는 청조.

여신의 시종이 안내해 주는 것에 따라 서왕모 님을 만나러 간다.

청조와 구미호의 뒤를 따라 걸으니 곧이어 궁전의 주인이 있는 방문 앞에 도달한다.

내심 찔리는 것이 있어 막상 만나 뵈려고 하니 괜히 긴장된다.

“주인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제천대성의 제자와 태상노군 님의 시종들이 찾아왔어요!”

­들어오세요.

여신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린다.

그 안에는 선녀의 정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서왕모 님을 뵙습니다.”

“서왕모 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금동 은동 아가들은 지난 천상의 연회 이후 처음이죠?”

“네. 그게 말이죠, 오랜만에 찾아온 이유는…”

“잠깐만, 그 얘기는 내가 꺼내야지.”

나는 반도 얘기를 꺼내려는 금각을 저지한다.

쌍둥이를 끌고는 왔지만, 대타를 세울 치졸한 생각은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상에서 올라온 제천대성의 제자 손우진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우진 군. 복숭아는 맛있었나요?”

“제가 오늘… 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한 여신의 태도에 의아해진다.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혹시 천리안이라도 지니고 계십니까?”

“후후, 오공 그 아이가 또 중간에서 장난을 친 모양이군요.”

“아니 이게 무슨…”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물어도 될까요?”

“…제 스승께서 서왕모 님의 반도를 훔친 뒤 저에게 건네준 바람에 대신 사죄하러 온 것입니다.”

“훔치다뇨? 반도는 제 친우 관세음보살의 부탁으로 내려준 것일 텐데요?”

하아…

완벽한 삼자사기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스승의 농단에 제대로 놀아났다.

나는 천계로 올라오게 된 배경과 사과를 드리러 오게 된 경위까지 모두 여신께 설명하였다.

이를 듣고선 한참을 웃으신다.

눈물까지 흘리셨는지 눈가를 훔치고선 다시 정숙한 여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서왕모.

“미안해요, 가슴 졸이게 한 것은 사과할게요.”

“여신께서 사과하실 일인가요, 에휴.”

“다행이다…”

“다행이야!”

쌍둥이도 한시름 놓은 것인지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몇 명을 들었다 놨다 한 거야, 이 망할 스승이.

“제 친우가 말하길 하계에 곧 어지러운 일이 벌어질 것이고 이를 해결할 우진 군에게 도움이 되고자 반도를 부탁받았어요.”

“반도를 받은 관세음보살 님은 제 스승님에게 대신 전해 주라고 부탁한 것이고요.”

“그 과정에서 오공이 장난을 쳤나 봐요.”

“제대로 당했네.”

“후후, 그래서 천계 최고의 복숭아는 맛이 어땠나요?”

“저 혼자 먹기엔 부담되어서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아주 맛있더라구요.”

“이런 점은 참 오공과 많이 닮았네요.”

그건 칭찬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 친우의 시름을 덜어주시길 바라요.”

“저도 받은 것이 있으니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금동이 은동이는 이리 오세요.”

우리는 이 수다스러운 최고 여신께 붙들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수다를 떨다 풀려났다.

“좋으신 분이시긴 한데 너무 부담스러워…”

“저번 연회 때도 이랬단 말이야.”

“고생 많았어.”

나야 적당히 듣고 적당히 대답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금각과 은각은 여신의 품에 안겨

한동안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붙들려 있어야 했다.

곤륜산에서 내려와 보니 천계의 하루도 벌써 어둑어둑해진 상황.

이제는 정말 집에 갈 시간이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쌍둥이도 급격히 조용해진다.

금각과 은각을 데리고 천하궁 입구로 가니 스승님과 어르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왔냐?”

“제자를 속여먹으니 좋으십니까? 하계로 내려와 연기자 하셔도 되겠던데요”

“큭큭, 순진한 것. 내가 할 일이 없어 그깟 복숭아를 또 훔치겠느냐?”

“스승님은 전과범이잖아요!”

“태곳적 일을 들먹이지 말 거라.”

가짜는 원조를 이겨 먹을 수 없다고 하는데

어디 가서 뻔뻔함으로는 꿀리지 않는 나도 스승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저 철판보다 두꺼운 면상에 질려버렸다.

우웅­!

스승께 맡겨두었던 여의가 내게 아는 체를 한다.

원래 주인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는지 히스테릭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그래, 이제 집에 가야지.”

“빼 먹은 것은 없느냐?”

어르신이 짐을 다 챙겼는지 물어보신다.

“들고 온 것도 별로 없어서요.”

“그렇다면 다행이고만. 금동이 은동이도 우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거라.”

“…잘 가.”

“…또 언제 올 거야?”

“아마 하계의 일이 모두 끝나야 다시 올 수 있을 거 같은데.”

“혹여나 싸우다가 잘못되면 어떡해?”

“그러면 영영 못 만나는 거잖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니.

팔괘로에서 달궈진 칠대성을 향한 뜨거운 마음은 아직 식지 않았다.

그 새끼들 모두 손봐주기 전까지는 죽을 예정은 없다.

나는 풀죽은 쌍둥이의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이렇게 쓰다듬는 거라던데 내 알 바인가.

“아 하지 마!”

“우리가 어린앤 줄 알아!”

“너희들이 어린애지 그러면 뭐냐? 난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

나는 인사를 한 뒤 천계의 끝자락으로 뛰어갔다.

구름 끝에서 뛰어내린 뒤 간만에 나의 파트너를 불러본다.

“늘어났다 줄어들어라 여의! 그럼 갈게요!”

주인의 명령에 따라 길게 늘어난 뒤에 줄어드는 여의.

스승님과 어르신, 쌍둥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선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간다.

. . . . .

“갔군.”

“끌끌, 자기 스승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야.”

“말도 지지리 안 듣는 못난 놈을 무슨.”

제천대성은 손우진이 떠나간 곳을 한참을 바라본다.

수련이 힘들다며 징징대던 꼬마는 어느새 청년이 되었다.

품을 훌쩍 떠난 제자 놈은 이제 스승의 악연과 마주할 것이다.

자신도 그랬듯이 제자 놈 주위에는 그를 도와줄 인연이 있다.

아마 잘 해내겠지.

품을 떠난 제자를 믿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 스승인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다.

“부성애라도 생긴 것이더냐? 눈에 우수가 가득 차 있군.”

“천하의 제천대성을 뭐로 보시고, 영감이야말로 저것들이나 돌보시오.”

태상노군은 제천대성의 말에 자신의 시종을 돌아본다.

정이 든 손우진이 떠나간 것이 그리 아쉬웠던 건지 아직까지 풀이 죽어 있다.

“우진이 놈이 스승보다 나은 점은 있구나, 여심을 홀리는 법은 비교할 수가 없군.”

“흥! 보내실 거요? 그놈에게 관심 있는 여인만 벌써 3명째요.”

“본인들 의지에 달린 게지. 금동아, 은동아, 우진이를 따라 하계로 따라가고 싶느냐?”

자신들의 주인 어르신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쌍둥이.

“끌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우리 아해들이 홀려도 단단히 홀렸군.”

“거잘난 제자 덕에 미안하게 됐소이다.”

“지금 내려가 봐야 따라잡을 수 있을 텐데?”

태상노군의 허락이 떨어진다.

사실상 손우진을 따라가도 좋다는 주인 어르신의 허락에 쌍둥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감사합니다. 주인 어르신,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녀올게요!”

태상노군의 은밀한 허락을 알아들은 쌍둥이는 주인어른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구름 끝자락으로 달려 나간다.

“지독한 영감 같으니, 수라장이 펼쳐질 것을 알고도 보내시오?”

“그야 고생은 우진 군 몫이니, 주인 된 노릇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

“그건 그렇군, 지켜볼 재미는 있겠어. 하하하!”

책임감이라는 것은 하나도 살펴볼 수 없는 투신과 천신이 마주 보며 웃는다.

“뭐야! 너희가 왜 여기 있어!”

“하계로 따라가도 된다고 허락받았어!”

“잘 부탁해!”

“어르신!!! 이러기 있습니까!!!”

손우진을 뒤따라온 쌍둥이가 환하게 웃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챈 손우진만이 웃지 못하고 절규를 내지를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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