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57화 (57/106)

〈 57화 〉 미끼

* * *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물밖에서 포식자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바늘에 매달려 깔짝깔짝 움직이는 먹잇감이

탐스러워 미끼를 물어버린 물고기.

미끼를 물어버려 물 밖으로 끌려온 놈의 끝은 포식자의 한 끼 식사다.

그저 물고기가 멍청해서 무는 걸까?

아니, 그것은 아닐 것이다.

구석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이 유구한 사냥법은

자연에서의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물은 물고기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함정은 피난처를 흉내 낸다.

아무런 냄새도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 어떤 수중의 포식자도 이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서로 사는 세계가 다르다.

물고기가 축적해온 지식, 경험, 그리고 끝없는 진화.

그것은 모두 수중 세계에서나 적용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물속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위협을 회피하고 먹잇감을 노리는

능숙한 물고기는 물 밖에 존재하는 숨어있는 포식자를 알 리가 없다.

분수를 모르고 해안에서 날뛰기 시작한 놈을 끄집어내기 위해선

역시 낚시만 한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어떻게 낚느냐가 문제인데…”

사람이다 보니 보통의 물고기에게 바라는 상식을 기대해선 안 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어떻게 성립될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이미 나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알면서도 물 수밖에 없는 미끼가 필요하단 말이야.”

낚시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갖춘 이의 조언이 필요하다.

시청자들을 낚는 것에만 소질이 있는 사람 낚는 어부에겐

너무나도 생각할 것이 많다.

주변 이들에게 한번 조언을 구해보자.

「물고기를 낚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냐? 물론. 누이와 함께 살던 옛 생각이 기억나는군.」

백 개의 머리를 지닌 용이 대답한다.

경험담을 물어보니 흥미가 일었나 보다, 흔쾌하게 대답해주는 라돈.

“너한테도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

「어미의 배에서 태어난 생명에게 어린 시절이 없을 리가, 그땐 정말 즐거웠지.」

라돈의 가계도는 꽤 화려하다.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티폰.

그리고 그런 티폰의 아내 에키드나.

라돈에겐 누이와 매형 관계이다.

덩치는 빌딩만한 용이 어린 시절엔 물고기나 먹고 살았다는 게 쉽사리 상상이 안 된다.

“어떻게 낚았는데?”

「자세히 설명할 만한 것도 없군. 그저 물속으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었을 뿐이다.」

“너 어렸을 때도 머리가 백 개였냐?”

「그렇다만.」

글러 먹었다.

새끼야 나도 팔이 백 개면 낚시 같은 고민은 하지도 않겠다.

투신 나타 님도 삼두육비,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로 우리 성좌와 비등하게 싸웠는데

팔이 백 개? 칠대성이고 나발이고 혼자서 상대할 수 있겠다.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낚시에 조예가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낚시? 우리는 숲에서만 살기에 연못에 있는 조그만 물고기 말고는 한 적이 없다.”

일레인도.

“투창 낚시는 리차드가 즐겨하는데 배워보실래요?”

아일랜드 챔피언 루카스와 리차드도.

“먹는 건 좋아하지만 낚시는 기다려야 하잖소, 해본 적도 없소.”

대혁이 놈도.

어떻게 도움이 되는 사내놈들이 한 명도 없다.

용을 낚아야 하는 나에게 조언을 줄 만한 이들이 이렇게도 없을까.

남은 한 사람,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 목적지, 그리스로 향한다.

“야쑤 Γεια σου! 오랜만이군 손우진!”

“그래, 야스다 자식아.”

“어째 발음이 다른 것 같다만 형제여?”

“내가 현지인도 아닌데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흐음 그런가…”

그리스 금태양을 만나러 그리스까지 날아왔다.

“호오.”

“왜?”

“형제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나 보군.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군.”

“고생이야 존나게 했지.”

글로 적는다면 책 한 권의 분량은 나올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모든 일을 친우 안드리안에게 털어놓는다.

배틀 토너먼트를 참가했던 일과 그 때문에 칠대성과 부딪히게 된 것까지.

“흐흐, 형제도 상대해야 할 적이 상당히 많구만.”

“네가 할 소리냐.”

서로 성좌를 잘못 둔 덕에 잠재적인 적이 많다.

우리 성좌도 혈기 넘치는 시절에 저지른 일을 나열하면 경악 그 자체이지만

안드리안의 성좌, 그리스의 최고 주신 또한 만만치 않다.

아마 티폰이 눈을 뜨는 순간 이 새끼도 여자나 꼬시고 다니는 행복한 시절은 다 지나갈 거다.

행복 끝 고생 시작이겠지.

“그래서 좋은 방법 좀 없냐?”

“하하! 내가 또 크레타 출신 아니겠는가, 낚시라면 이 안드리안이지.”

“오, 섬 출신이었냐. 그래서 이 내륙 촌놈에게 조언 좀 해 주시죠?”

“간단하네.”

파지직.

주먹을 쥔 손에 전격을 피워내는 금태양 놈.

미친 건가?

“형제도 번개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야.”

“그냥 바다 위에 내리 꽂아버리게나!”

“미친 새끼야 그건 그냥 유해 어법이잖아!”

배터리 낚시보다 더 악질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금태양.

장담컨대 이 새끼 낚시를 해본 적도 없다.

“어허, 생각해보게나. 형제가 잡으려는 놈이 보통 평범한 놈인가?”

“…그건 그렇지.”

“낚싯대는 여의봉으로 대체한다 치더라도 줄과 바늘, 미끼는 또 어떻게 구하려고 하는가?”

이렇게 들어보면 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형제 자신을 미끼로 삼고 나서, 물만 믿고 덤벼온 놈을 번개로 콱! 지지는 것이네.”

“다른 물고기들은 어쩌고?”

“놈과 그의 수하들이 몰려올 테니 진작에 다 도망가겠지.”

“일리가 있네.”

금태양의 설득에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흐음… 배터리 낚시라.

내 고정관념 때문에 저항감이 좀 있었지만 안드리안의 말처럼 가장 효율적으로

어그로를 끌어 교마왕 놈의 화신을 불러낼 수 있겠다.

“그럼 가자.”

“어딜 가자는 건가?”

“어디긴 어디야, 네가 알려준 대로 낚시하러 가야지.”

“아니, 형제도 전격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 않나! 좀 봐주게!”

자신의 입이 불러온 재앙에 스스로 짓눌린 금태양.

본인 입으로 아이디어 제공을 했을 때부터 데려갈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도 너만 하겠냐. 자, 빨리 따라 와.”

“이번 주엔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데이트 약속이 잡혀있는데!”

“주마다 갈아치우는 놈이 무슨, 가자.”

. . . . .

“몰아치는 파도, 쌀쌀한 바람, 그리고 남정네 둘. 정말 최악의 조합이군.”

“크립티드가 출몰했는데 바다에 오는 정신 나간 놈들이 있겠냐.”

“시스터도 오지 않고 사내 둘이서 낚시라니.”

“물어는 봤는데 모두 질색 하더라.”

금각과 은각은 자신들의 주인 어르신을 따라 구름낚시를 하도 다녀 질렸다고 했고

예은이와 유정이는 짜릿한 전격 낚시가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결국 안드리안과 단둘이서 동해안으로 낚시를 온 상황.

바다 한가운데서 구름을 타고 대기 중이다.

아직 까지는 입질이 오지 않고 있다.

놈이 소란을 피운 것을 보면 자신이 포식자 입장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홈그라운드 바다에서 상대한다면 나 정도는 잡아먹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겠지.

“엄청 신중하게 행동하네. 자극 좀 해볼까?”

“내가 먼저 하겠네.”

“그러든가.”

“그럼 구름을 조금만 내려주게나.”

“어떻게 하려고?”

금태양 녀석의 지시에 타고 있던 구름을 수면 가까이 내린다.

“아스트라페!”

바다에 가까워지자 번개신의 지팡이를 소환하는 안드리안.

그 기세가 심히 사납다.

“이 녀석을 잠시 담갔다 뺄 생각인데 어떤가?”

“야, 10억 볼트짜리 벼락을 담갔다 빼겠다고? 피아식별 없이 그냥 다 죽을 거 같은데?”

“큰일엔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진짜 개미친놈…”

펑! 펑! 펑!

그때 바닷속에서 분수를 뿜어대며 줄줄이 올라오는 거대한 기둥들.

그러나 그건 기둥이 아니라 생물의 다리였다.

“성능 확실하고만.”

“허허, 생명의 위협을 느끼셨나?”

솟아 오르는 문어 다리를 바라보니 그 위에 폼을 잡으며 서 있는 오늘의 주인공이 보인다.

드디어 귀하신 몸이 등장하셨군.

칠대성은 다국적 모임을 추구하는 건지 놈의 검은 피부색이 심상치 않다.

아무리 성좌들이 국적 상관없이 자신들의 화신을 고르긴 하지만…

“이곳은 복해대성 교마왕께서 다스리실 해양, 쓰레기 놈들이 더럽히는 꼴을 볼 순 없지.”

유창한 영어를 선보이는 놈.

대체 교마왕은 어떻게 흑인을 꼬셔서 수하로 삼은 건데?

“야 너는 뭘 했길래 흑인인데 저 동방의 요괴를 섬기냐?”

“Shut the Fuck up!!!”

갑자기 소리치는 교마왕의 화신.

“깜짝아!”

“이 인종차별주의자 놈! 홍수아의 말대로 갱생이 불가능한 쓰레기 같은 자식이었군!”

“아니 뭔 개지랄이야, 대체 어느 부분이인종차별인데?”

“Shit! 자기가 내뱉은 말이 차별적인 말인지 인지조차도 못 하는 것이냐!!!”

“…골 때리네.”

그리고 말이야, 화를 낼 거였으면 자신이 섬기는 성좌를 동방의 요괴로 격하시킨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게 맞지 않나?

저 흑인 놈은 그것을 쏙 빼놓고선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내가 놈을 보고선 ‘우리 친구는 이미 벼락 맞아서 시꺼멓네?’ 정도의 표현을 한 것도 아니고.

“야 안드리안, 문어인지 오징어인지 모를 놈을 네가 상대할래?”

“혼자서 싸워도 되겠나 형제?”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혼자서 싸워도 될 것 같아.”

“물에 들어간다면 내 벼락을 조심하게나. 피아식별을 할 수 없거든.”

“살살 싸워. 먼저 간다.”

첨벙!

금태양에게 거대한 문어를 맡기고선 나는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 위에 있는 이상 절대 저놈이 먼저 덤벼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역시나 내가 바닷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놈도 따라서 들어왔다.

­멍청한 놈! 내 힘의 근원을 잊은 거냐?

음파 비스무리한 것으로 내게 말을 거는 블랙 아쿠아.

아, 화신 화신 거리기도 뭐해 내가 명칭을 지어 주었다.

본인이 알게 되면 또 날뛰겠지.

­크르르륵! 단숨에 끝장내주마!

놈의 생김새가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솟아나는 비늘과 뒤에 자라난 꼬리.

세로로 뾰족해진 동공은 흡사 파충류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

도 마 뱀?

­이이익! 교마왕께서 내려주신 힘마저 깔보다니! 캬아아악!

내 입 모양을 보고 뉘앙스를 알아차렸나 보다.

화가 난 블랙 아쿠아가 자신의 작살을 들고 빠르게 헤엄쳐 오기 시작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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