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용오름
* * *
화가 잔뜩 난 용이 눈에 뵈는 게 없는지 사방팔방으로 화염을 뿜어댄다.
이번에는 역린도 건드리지 않고선 여의봉으로 깔고 뭉갰을 뿐인데 저 지랄이다.
용이 싫어하는 것에는 철, 골풀, 지네, 전단나무의 잎사귀, 다섯 가지 색깔로 염색한 명주실이 있는데 아마 흑철로 만든 여의에 깔려서 성질이 난 것이 분명하다.
새삼스레 라돈이 그나마 성격이 좋은 드래곤이었구나 하고 재평가하게 된다.
“안드리안, 난 이만 내려가 볼 테니깐 아까 말한 대로 멀리 떨어져 있어. 용은 날씨도 다루기에 네 번개는 크게 타격을 못 줄 거야.”
“라돈과 비교할 수 없는 체급인데 가능하겠는가?”
“나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으니 마취를 넘어 용 사냥도 가능하겠지.”
안드리안과 아퀼라를 멀찍이 보낸 뒤 먹구름을 끌어당겨 올라탄다.
서양의 드래곤 라돈보다 한 수 우위에 있는 놈과 싸우고 있지만
내 전투력과 신성 또한 그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기에 해볼 만하다.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어색할 수도 있는데…”
여의금고봉은 단순한 봉이 아니다.
13,500근의 거대한 철봉을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것이 첫 번째 해방.
지금 시도하려는 것은 바로 여의금고봉의 두 번째 해방이다.
기아스의 힘으로 첫 번째 해방을 이루어 냈고
이제는 여의에 담긴 또 다른 힘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으니 시도해볼 만하다.
“네가 생각하기에 지금 어떤 무기가 필요할 것 같냐?”
우우웅!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해 오는 녀석.
이제야 자신을 찾는 거냐며 항의하는 것이 분명하다.
워낙 바빴어야 말이지, 그리고 교마왕 정도의 강적도 만날 일이 없었는데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해서야 되겠나.
“미안하다니깐, 용 잡는 데 힘 좀 써야 하니 부탁 좀 하자.”
우우웅
그래도 천계에 갔다 온 뒤로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여의.
내가 자신을 사용해도 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다.
스승이 굳이 저 용궁에 찾아가 바다의 추를 자신의 무기로 골라온 이유.
여의의 변신 능력은 ‘마음대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갖 것으로 변신할 수 있다.
조그만 바늘부터 시작해서 전설 속 무구들까지.
괜히 스승께서 여의봉의 천변만화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 만물에 통달한 여의금고봉이여, 주인에 뜻에 따라 변해라.”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용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전설 속 무기.
용 살해자 Dragon Slayer.
우우웅!!!
막대한 신성이 여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신성을 이만큼 처먹었으면 제발 도움이 될 만한 모습으로 변해라!
곧이어 여의에서 빛이 나더니 그 형태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용 살해자의 이명에 걸맞게 검의 형태로 변해가는 여의.
“이건…”
황금색 손잡이.
거기엔 커다란 파란 눈을 지닌 뱀이 꼬여있고 칼집은 금색 끈으로 말아 올려져 있다.
용의 피를 머금은 검 발뭉이다.
“서양의 드래곤과 용의 개념은 조금 다르긴 한데… 이거 맞아?”
웅웅!!!
자신만 믿어보라는 듯 큰소리치는 여의, 아니 발뭉으로 변한 여의.
카피 버전이라고는 하나 여의의 등급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원본인 발뭉에 크게 꿀리지는 않을 것이다.
쥐새끼 같은 놈! 그곳에 숨었군!
여의가 모습을 바꾸면서 빛을 냈던 덕에 교마왕에게 위치를 들켰다.
화룡염탄火???!!!
용의 입에서 화염 기둥이 뿜어져 나온다.
“너만 믿고 휘두른다! 아니면 같이 뒤지는 거야!!!”
웅웅!!!
여의의 응답과 함께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전설 속 악룡의 피를 잔뜩 머금었던 발뭉의 칼날이 붉게 물들고 있다.
철?의 기운 장악력까지 함께 담아내 휘두를 준비를 한다.
불은 쇠를 녹인다고 하여 화극금이라고는 하지만 용살자의 기운이 이를 상쇄해 줄 것이다.
발뭉의 원래 주인 지크프리트가 악룡 파프니르를 잡았을 때를 떠올리며 힘을 담아낸다.
사악한 용을 박멸하는 검, 발뭉.
힘이 최고조에 올랐다고 느껴졌을 때 검을 내리친다!
“악귀박멸!!!”
후웅
단 한 번의 칼질.
공기조차 베어내는 것처럼 손에 감기는 감각이 남다르다.
공간을 가른 용 살해자 앞에는 곧이어 거대한 참격 하나가 용을 향해 날아간다.
용이 내뱉은 화염의 숨결조차 반으로 갈라버리고 용을 향해 비행한다.
콰과과광!!
반으로 쪼개진 화염이 공중에서 폭발하고 곧이어 교마왕과 검기가 맞부딪친다.
대체 그 불길한 무기는 뭐냐! 크아아아악!!!
두려울 거 하나 없어 보이던 용이 당황한 채로 참격을 두 손으로 막아낸다.
용의 발톱으로 붉은 참격을 막아서고 있는 교마왕.
“허억 허억, 신성 먹는 하마 자식 같으니.”
여의의 모습을 발뭉으로 변화시키느라 힘을 소모했고 이어서 참격까지
날린 상황이라 신성의 소모가 막대하다.
“흐읍!”
척! 척! 척!
천계에서 받아 온 스승의 갑옷과 긴고아까지 착용한다.
긴고아 놈은 꼴도 보기 싫지만 여의와 동기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착용한다.
전성기 스승의 모습과 비슷해진 나.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 해진 느낌이다.
진작에 입고 휘둘렀어야 했는데.
갑옷을 입는 사이에 참격을 막아낸 교마왕.
화가 머리끝까지 난 덕분에 대기는 번개로 요동을 치고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아마 이번 일 합이 서로에게 마지막 일 합이 되겠지.
“자, 마무리를 짓자.”
바다의 주인 앞에서 건방 떠는 것이냐!!!
차게 식었던 발뭉 버전 여의에 다시 힘을 불어넣는다.
붉은색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발뭉.
“당신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어. 지상의 용은 한 마리로 충분해.”
인간 주제에!!!
분신 놈이 개발한 기술이지만 내 것도 내 거, 니 것도 내 것 아닌가.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마왕을 향해 투척할 준비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모든 신성을 여의에 털어 넣는다.
손우진 오리지널.
고룡에게 바치는 등용문?門.
화룡멸탄火???!!!
교마왕은 숨을 있는 힘껏 들이마시곤 엄청난 크기의 화염구를 내게 내뱉는다.
그 열기 때문에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버린다.
슈욱!
용 살해자는 투검술과 함께 용이 내뱉은 화염구를 향해서 쏘아진다.
곧이어 붉은색 빛줄기가 되어 화염구와 힘겨루기에 들어간 용 살해자 여의.
거대한 힘의 충돌이 발생한다.
안돼!! 이럴 순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승자가 가려진다.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용 살해자는 붉은 빛줄기가 되어 화염구를 뚫고 용을 지나친다.
“후우…”
콰직!
여기까지 소리가 들릴 만큼 용의 심장을 정확히 뚫고 지나간 용 살해자.
거대한 교마왕의 기운이 점점 희미해진다.
바닷물이 모두 증발한 덕분에 비는 더 거세게 떨어지기 시작하고
내 눈앞에는 죽어가는 용 한 마리만 남아있다.
“마지막 가는 길, 할 말이 있으면 들어주지.”
크크큭… 아우 놈의 붉은 눈 이야기는 사실이었나…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과연 네놈이 평천대성 우마왕 형님과 대적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네놈들을 모두 처리하기 전엔 은퇴할 생각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
크흐흐흐흐… 내가 없는 빈 둥지에 어느새 용이 들어섰군…
철썩!
용이 바다로 떨어진다.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간 용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그 자리엔 무언가 반짝거리고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신비롭게 생긴 구술 하나가 바다에 둥둥 떠 있다.
“상도를 아는 양반이군.”
떠나는 길에도 이렇게 귀한 것을 남기다니.
용 한번 잡아볼 만하다.
용이 사라진 곳에는 구름이 물러가고 비가 그친다.
검게 가린 먹구름이 물러가고 곧이어 태양이 다시 비추기 시작한다.
밝게 갠 하늘.
용?이 올라갔다.
. . . . .
<교마왕은 죽지="" 않았다.=""/>
“네? 제 눈으로 심장이 박살 나는 걸 봤는데도요?”
<그건 참="" 기특하다만="" 칠대성은="" 죽지="" 못하는="" 존재다.=""/>
“아니 왜요?”
<내 소싯적에="" 저승으로="" 내려가="" 생사부에="" 적힌="" 모든="" 대성들의="" 수명을="" 지웠기="" 때문이지.=""/>
교마왕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른 자랑하고 싶어 스승의 영역으로 재빨리 향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교마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게… 이게 뭔 개소리야!
“이 원숭이 자식아! 그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한 거냐고! 내 노력 돌려줘!”
<네놈은 분노="" 조절을="" 못="" 하는="" 병이라도="" 걸린="" 게="" 확실해.=""/>
스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에 채워지는 그 새끼.
“저도 이제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은 놈이거든요!”
<그러냐?/>
꽈직!
바싹 조여오는 그 새끼.
버틸만 해! 버틸만 하다고!
“끄으으읍!!!”
<참고로 아직="" 1단계밖에="" 안="" 됐어.=""/>
“항복!!! 무조건 항복입니다, 스승님!!!”
이런 미친 강도의 머리끈이 1단계라는 소리에 빠른 태세 전환에 들어간다.
2단계는 도저히 겪어보고 싶지도, 상상조차 하기도 싫다.
“후우, 이게 뭐야… 좋다 말았네.”
<그래도 심한="" 타격을="" 입어="" 더는="" 지상에="" 내려오지="" 못할="" 테니,="" 그거면="" 됐다.=""/>
“알겠어요. 그리고 스승님, 이건 대체 뭡니까?”
나는 교마왕이 남기고 간 구슬을 스승님께 보여 드렸다.
<호오… 이건="" 여의주로군.=""/>
용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흘리고 간 교마왕.
줍는 놈이 임자이니 이건 이제 내 것이다.
“먹어도 됩니까?”
<무식하게 직접="" 먹지는="" 말고,="" 선단처럼="" 기운을="" 흡수하거라.=""/>
“알겠어요.”
<그래도 이제="" 제자="" 구실은="" 하니…="" 뭐="" 수고했다.=""/>
“괜히 부끄러워서 그러시는 거죠?”
<볼일 봤으면="" 빨리="" 나가="" 이="" 자식아!=""/>
츤데레 스승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나를 윽박질러 쫓아낸다.
좀 솔직하게 칭찬해 주면 어디 덧나나.
스승과의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금태양 놈이 금각에게 시달리고 있다.
“레이디,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소?”
“더 해줘! 빨리 찌릿찌릿!”
“흐어…”
금각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미세한 전격을 뿜어내는 금태양.
곧이어 금각의 머리가 하늘 위로 치솟는다.
“힘이 솟아오른다!!!”
“형제여! 나 좀 구해주시게!!!”
“금각아, 은각이는 어디 갔어?”
“엄청나게 큰 새를 타고 하늘 위로 갔어!”
천둥새 아퀼라 또한 안드리안과 세트로 묶여서 고통받는 중이군.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니 밥이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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