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64화 (64/106)

〈 64화 〉 휴식

* * *

“그 말의 뜻은 알고서 하는 소리더냐?”

“제가 그 정도는 알죠, 주를 찬양하라 아닙니까?”

“그걸 아는 놈이 법제자에게 그래?”

“좋은 말씀 듣고 천국 가셔야죠.”

“고얀 놈, 끌끌.”

목탁을 내려놓고 돌아보시는 스님.

깨달은 자 부처의 챔피언, 현시대의 삼장법사이시다.

“나이를 먹어도 우진이 네놈의 장난기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젊게 산다고 칭찬하시는 걸로 알아듣겠습니다.”

“자기 듣고 싶은 대로만 들으니. 고놈 참…”

우리 스승이었으면 할렐루야를 외친 그 순간부터 긴고주를 읊어 긴고아를 바짝

조였을 텐데.

역시 스님은 훌륭한 인격자시다.

“얼마나 사고를 치고 다니면 네 소식이 여기까지 들리더구나. 그렇게 싸우지 말라 했거늘.”

“아니 법사님 억울합니다! 시비는 그 자식들이 먼저 걸었으니 전 피해자예요!”

“예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른쪽 뺨도 내주지 그랬냐?”

“하… 우리 법사님 태극권 좀 치시네. 안 그래도 가슴에 구멍 하나 내줬거든요.”

이런 식으로 받아치시다니, 언제 나 몰래 수련하셔서 태극권을 배우신 건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우진이 너 최근 천계에 다녀왔다지?”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지.”

삼장법사 님한테까지 알려지다니, 정말로 비밀이 없다 비밀이 없어.

분명 성좌 사이에서 소문이 난 것이 분명하다.

“우리 성좌님들 입이 너무 가벼우시네. 벌써 소문난 겁니까?”

“딴소리 말고, 그래서 몸은 이제 괜찮은 게냐?”

“예 뭐… 정말로 죽을 뻔한 상황은 많긴 했는데 나쁘진 않아요.”

“쯧쯧, 젊은 혈기만 믿다간 한순간에 훅 갈 수도 있어.”

아으… 다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만 몸에 좋은 약은 먹기가 싫듯이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자니 발에 쥐가 날 것 같다.

더 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끊어내야 한다.

“알았어요, 항상 조심할게요. 그래서 오늘은 왜 부르신 겁니까?”

“그래, 우진이 네게 전해줄 것이 있어서 불렀지.”

승복 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시는 스님.

그 손에는 꺼림직한 기운을 풍기는 황금색 고리 5개가 쥐어져 있다.

“그게 뭡니까?”

“관세음보살께서 전해주신 보물이란다. 집 나간 아이를 찾고 계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니 우진이 네가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

관세음보살님 댁의 집 나간 아이라 해봤자 한 명뿐.

이 불길한 고리의 원래 주인인 홍해아 놈이다.

관세음보살께서도 참 지극정성이다, 결국 홍해아 놈을 잡아오기 위해선

내가 해답인 셈이니 복숭아도 먹이고 이런 것도 내려주는 것일 테지.

“요괴의 본성을 잊지 못하고 뛰쳐나간 놈을 뭐가 예뻐서 챙기시는지 참.”

“그것이 다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결혼도 안 하신 분이 무슨 부모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흐음… 평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요=""/>

성좌의 깜짝 등장과 함께 바다의 향기가 절 안을 가득 채운다.

성좌들은 왜 이렇게 하계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단 말이야.

타이밍 한 번 참 끝내주네.

“듣고 계셨어요? 인기척 좀 내시지 그러셨어요 하하…”

<그거 알고="" 있나요,="" 손우진?=""/>

“알고 싶지 않은데요?”

<긴고아의 주문="" 긴고주를="" 만든="" 이는="" 바로="" 저랍니다=""/>

관세음보살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어미의 부름을 듣고 긴고아가 나타난다.

“법사님!!!! 제발 해제 주문을!!!”

“껄껄,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보살님을 막아서겠나. 다 사필귀정이니 받아들이거라.”

“이 펑키 파마의 더러운 하수인들아! 끼에에엑!!!”

한참을 뒹굴뒹굴 구른 다음 관세음보살의 화가 다 풀릴 때까지 긴고아로 고통을 받았다.

내가 더러워서 빨리 부처의 경지에 도달해야지 서러워서 못 살겠다.

우리 스승의 성격도 더러워진 것이 긴고아가 한몫했을 게 분명해.

“그리 성격이 더러우니…”

<또 듣고="" 싶은가요?=""/>

“…”

권력 앞에서 조용할 수밖에 없는 내가 밉다.

<손우진. 그="" 아이와="" 만나게="" 된다면="" 꼭="" 금고아를="" 채워서="" 제압해주세요=""/>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그럴 겁니다. 이렇게 좋은 물건을 저만 착용할 순 없죠.”

“장난기만 여전한 줄 알았건만 그놈의 심술보도 변한 게 없어.”

“좋은 건 나누며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삼스레 이="" 아이와="" 함께="" 고행길에="" 오른="" 삼장="" 당신이="" 존경스러워지는군요=""/>

“허허, 그 또한 모두 수행의 과정이었지요.”

“당사자를 두고선 너무들 하시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손우진="" 당신=""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며…=""/>

“저기요 어르신들…”

“다다른 곳에서 주인이 되고 그 상황에 서 있으면 비로소 모든 순간이 참되다! 그렇게…”

<항상 내면의="" 깨달음이="" 먼저입니다.=""/>

“환장하겠네…”

듣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억지로 때려 박는 설교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 . . . .

“와… 인간들은 이런 걸로 하늘을 날아다니는구나.”

“신기하네.”

“우진아, 이 비행기라는 건 대체 어떤 원리로 날아다니는 거야?”

“음… 과학자라는 사람들을 갈아 넣어서 날 수 있게 만든 거야.”

“인간을 잡아먹었다고? 완전 요물인데!”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공밀레 공밀레 하면 뚝딱 나오는 게 기계의 세계가 아닌가.

우리는 현재 미국 히어로 협회에서 보내온 협회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비행 중이다.

사고는 중앙정보국에서 치고, 뒷수습은 협회와 함께하다니.

우리야 누가 보냈든 간에 편하게 타고 가면 그만이지만 터너 국장과 맺은

계약 때문에 나에게 접근도 못 하는 협회는 속이 쓰릴 테지.

금각 은각 자매는 비행기 창문에 붙어서 구름을 구경하고 있고

대혁이 놈은 승무원이 가져다주는 호화 음식들을 흡입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이다.

엘레나와 유정이는 나란히 앉아서 아까 전부터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각양각색으로 미국행을 즐기는 중이다.

“아저씨, 뭐 하세요?”

여자들 사이에서 떠드는 게 질린 건지 예은이가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응? 아무것도. 요즘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깐 그냥 이러고 있는 것도 쉬는 거지 뭐.”

“그게 뭐예요.”

피식 웃어 버리는 하예은.

예은이와 느긋하게 얘기하는 것도 꽤 오랜만인 거 같네.

“그러고 보니 예은이 너한테는 미안하네.”

“뭐가요?”

“나한테 배우려고 우리 집에 온 건데 집주인이 밖으로만 돌아쳐서 배울 시간이 없었잖아.”

“…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그렇게 믿고 있다니?”

예은이가 어딘가 조금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모르면 됐어요. 그래서 아저씨는 도착하면 정말로 영상만 찍고 다시 돌아갈 거에요?”

“그래야지. 괜히 오래 있다간 슬금슬금 아는 히어로를 보낼 수도 있을 테니깐.”

터너 국장에게 자국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상대는 미국이 아닌가.

나와 친분이 있는 히어로를 내세워서 정에 흔들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괜히 서로 불편해지니 볼일만 후딱 보고 떠나는 것이 최선이다.

“얘네는 엄살이 심해서 문제야. 팀 그레이트 원도 있으면서 나를 왜 찾는 건지.”

“그래도 서부의 좀비 사태는 꽤 심각해 보이던데요.”

“내 생각엔 지금처럼 미적거린다면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걸.”

현재 미국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는 좀비 사태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처음에는 오클랜드의 빈민가에서 시작된 망자의 습격은 조기 진압에 실패해 결국

로스엔젤레스,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등 유명 도시까지 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아저씨라면 어떻게 해결할 건데요? 지금 상황에서 방법이 있나요?”

“그냥 쓸어버려야지.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기도 바쁜데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 좀비 인권이나 얘기하고 있으니 원.”

단일 개체 좀비는 최하급 크립티드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감염이 늘어가면서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을 때는 중상급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결국 주 하나를 삼켜버린 좀비 군단은 아마 상급 크립티드 정도는 될 것이다.

그것도 미국 내 인구수가 가장 많은 주를 꿀꺽했으니 말 다 했지.

자유 의지를 사랑하는 미국인들도 이 좀비 사태에 한몫 보탰다.

현실에 등장한 좀비를 사냥하겠다며 개인 무장을 한 채 서부로 떠나는 머저리들은

결국 군단의 배를 채워주는 일만 해주었고 지금은 주의 경계를 통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애초에 내가 끼어들기엔 복잡한 문제야. 한국 국적의 히어로가 자국민을 살해했다고 지랄할 게 뻔한데 미쳤다고 내가 나설까? 무시하고 말지.”

능력의 문제는 아니다.

아마 미국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나선다면 분신들을 대량으로 소환해서 좀비들의 대가리를 한땀 한땀 깨부수면 끝이다.

정 안된다면 미국도 켈리포니아를 포기하는 대신 미사일로 폭격하면 그만이고.

단일 개체의 좀비의 스펙으로는 인간의 악의를 버틸 수 없다.

미국도 자국의 히어로를 투입하는 대신 내 힘을 빌리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겠지.

친환경 여의봉으로 국토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으니 안달이 났겠지.

결국 현 미국 지도부는 나를 이용해서 정치적 리스크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단순하게 도와주고 그런 상황이 아니었네요.”

“그러니깐 우리는 볼일만 보고 떠나는 게 최선이라고 내가 말한 거야.”

“챔피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체 모를 크립티드가 비행기를 둘러싸고 있어요!”

예은와 얘기하던 도중 승무원이 급하게 달려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한다.

가는 길이 왜 조용하나 싶었다.

“제가 해결할 테니 기장에겐 그대로 조종하라고 전해주세요. 아, 번개가 좀 내리칠 거니깐 놀라지 마시구요.”

“알, 알겠습니다…”

창밖을 보니 몸집이 꽤 커 보이는 괴조들이 비행기를 둘러싸고 있다.

크립티드는 보통 자기들끼리 협력하는 일이 드문데 심히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배후는 한 곳뿐이지.

“어떻게 하시게요?”

“이렇게 해야지.”

오행 팔괘장 천뇌?雪.

천기를 다스리다.

결속력과 장악력을 이용해 먹구름을 불러 모은다.

번개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새까만 먹구름은 사나운 기세를 풍기며 으르렁거린다.

쿠르릉­

일이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놈들이 황급히 도망쳐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딱!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짜릿한 번개가 내리친다.

콰앙!!!

창밖을 보면서 느긋하게 손가락을 튕기고 있으면 알아서 추락하는 괴조 무리.

커다란 녀석들이 노릇하게 구워져서 추락하니 탄내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온다.

“도착하면 치킨부터 먹자.”

“저도 그 생각이 들긴 했어요.”

예은이가 뭘 좀 아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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