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67화 (67/106)

〈 67화 〉 외전 오만한 자의 시련

* * *

신성??.

고귀한 이들의 성스러운 기운.

초인과 같은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힘의 근원.

개벽 이후 인류가 크립티드의 대항 수단으로 줄기차게 사용하는 힘이지만

신의 힘은 과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으므로 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이는 없을 것이다.

두 가지 갈래로 나뉘는 강림과 무투.

해외에서도 대강 어드벤트(Advent) 히어로와 컴뱃(Combat) 히어로로 구분하곤 한다.

강림은 말 그대로 성좌의 신성을 몸에 받아들이는 유형.

힘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서 흘러나오기에

그들은 성좌와 유사한 힘을 사용하고 성좌의 관심을 갈구한다.

어렸을 적 한번은 스승께 물어본 적이 있다.

하늘에 있는 성좌들은 대체 왜 인간에게 신성을 내려주는 것이냐고.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원래 신들이란 인간들의 믿음을 양식 삼는 이들이다.

히어로가 공헌할수록 그 뒷배에 있는 성좌의 영향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성좌 자신들의 신성을 내려주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따지면 무투는 강림에 비해 성좌나 인간 둘 모두에게 좋지 않은 투자 방법이다.

인간 스스로 신성을 차곡차곡 쌓게 만드는 법은 너무나도 어렵다.

신성은 말 그대로 신?의 힘이다.

보통 쟁쟁한 성좌들은 태생부터 신으로 태어나서 신으로 활동한 이들이라 자신의 힘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리도 없고 수련을 해본 적도 없다.

성좌 중에 인간의 몸으로 성좌의 자리에 도달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험한 환경 속에서 탄생하는 난세의 영웅들이 대부분이다.

그 또한 지금에 와선 전설 속 이야기로 치부되고는 한다.

그렇기에 무투 계열은 자신의 성좌가 걸었던 길을 비슷하게라도 답습하는 것이다.

검증된 길이기 때문에, 하늘에 고귀한 이들이 한번은 걸었던 길이기 때문에.

만약에, 만약 인간이 그 낮은 확률을 뚫고 자신만의 신성을 구축한다면?

그 인간은 과연 성좌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으니 물어보지 마. 나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니까.”

카메라를 앞에 두고 혼자 중얼중얼 떠드는 것이 미친놈처럼 보일 것 같다.

나는 지금 현 상태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인간과 성좌 그 중간에 어중간히 놓인 생명체는 지구에 나 하나뿐인 것 같기에 혹시 모를 후발 주자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좌라는 존재가 신성만 마냥 모은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내 생각엔 그건 또 별개의 영역이다.

이는 타락한 성직자가 몸소 증명해 준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크립티드가 보유한 기운을 신성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라돈처럼 어마어마한 기운을 보유한 녀석들이 성좌 행세를 했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골때렸을 것 같다.

신을 섬기는 자, 악신을 섬기는 자, 크립티드를 섬기는 자.

삼파전으로 돌아갔다면 지금보다는 더 복잡한 상황에 빠졌을 텐데.

상상만 해도 피곤해지는 상황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간은 어떻게 하면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은 항상성을 지니고 있다.

신체 장기의 활동, 혈액의 흐름, 들이쉬는 호흡 등 모든 생명 현상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일어난다.

하지만 생명체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것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신체는 생체적 수명 한계가 존재하고 의식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뿌옇게 흐려지겠지.

유효기간이 끝을 맞이했을 땐 비로소 죽음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두뇌, 눈과 귀, 코와 입, 손과 발에 기운이 모이고, 기운이 가는 곳으로 피가 따라가서 심신 작용이 일어난다.

정?, 기?, 신?.

정은 육체이고 신은 마음.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은 영혼과 육체가 온전하게 됐을 때 올바른 기운이 정착한다는 걸 뜻한다.

한계가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어야 비로소 성좌의 자리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육신은 계속되는 고행 속에서 인간의 한계까지 단련되었다.

기운은 성좌와 버금가는 놈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다.

“역시 남은 것은 의지의 문제인가.”

인간으로 남겠다.

나의 의지가 성좌의 반열로 올라서는 것을 방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참 복잡한 문제다.

내게 성좌가 되기를 바라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때 가서는 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지금 고민해봤자 뭐하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어떤 분야든지 개척자는 언제나 외로운 법이지.

천천히 생각해 보자.

. . . . .

“후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미국 내 최고의 히어로인 자신이, 잭 에반스의 처지가 어쩌다가 구덩이 속에 처박힌 건가.

잭 에반스는 자신이 처리한 시체들을 바라보면서 자조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천둥과 벼락을 부리던 마법의 망치는 좀비의 골이나 깨부수는데 사용하는 쓸데없이 무거운

해머가 돼버렸고 몸 안 가득 풍족하게 채워주던 에너지는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하는 육체 활동에 놀란 신체는 이미 지친 지 오래다.

공항에서 손우진이 그레이트 원의 담당 성좌들과 거래를 끝마친 이후

힘을 빼앗긴 그레이트 원은 여러 명으로 분열된 손우진에게 미국 서부로 끌려왔다.

좀비로 가득한 도시에 던져진 이들에게 손우진이 남긴 말은 단 하나.

‘깨닫지 못한 자는 나갈 수 없다.’

그 말만 남기고선 공중에서 그들을 방관하기 시작했다.

손우진이 떠난 이후 그때부터 그레이트 원의 고난도 시작되었다.

그들에겐 숨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교육생들이 좀비 토벌을 포기하고 숨어들기 시작하자 손우진은 일부러 소음을 내

그들의 위치로 좀비들을 불러 모았다.

그레이트 원은 손우진을 향해서 쌍욕을 퍼부었지만

손우진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선 오히려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들에겐 죽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지친 팀원들 내에서 결국 좀비에게 물리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 팀원 소피아 밀러가 첫 번째로 물린 것이다.

평소라면 좀비의 이빨에 생채기도 안 났을 육체지만 힘을 회수당한 이들은

그저 이능을 조금 사용할 줄 아는 일반인일 뿐이다.

쓰러진 채 좀비로 변해가는 소피아를 두고서 언쟁이 오고 갔다.

히어로가 하급 크립티드 좀비에게 물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 누구도 소피아 밀러가 어떻게 변할 줄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변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는 의견으로 취합될 때까지 리더인 잭 에반스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며 울부짖는 소피아 밀러의 머리 위로 철근이 내리치려 할 때쯤

공중에 있어야 할 동양의 챔피언이 이를 저지하였다.

발끝으로 가볍게 철근을 받아낸 손우진은 소피아 밀러를 살펴보더니

손에 불을 피워올려 좀비에게 물린 자국에 갖다 대었다.

얼굴에까지 푸른 혈관이 비치던 소피아 밀러는 그 손길 한 번에 치유되었다.

‘큭큭, 할 얘기들이 많을 텐데 외부인은 빠져 주지.’

죽음도 허용하지 않는 그는 그 한마디만 남겨둔 채 구름을 타고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회복한 소피아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팀원들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머지 팀원들도 이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분열 끝에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팀은 붕괴하였다.

추악함.

한계에 몰린 인간의 낯짝은 굉장히 추악하고도 부끄러웠다.

그 추악함에 잭 에반스는 싸우는 팀원들을 두고서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인류와 자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함을 맹세했던 자신들이.

어떤 고난과 역경에서도 변하지 않기로 맹세했던 팀 그레이트 원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잭 에반스는 오늘도 의미 없이 좀비의 골을 부수며 생각해 보지만 결론 없는 고뇌일 뿐.

혹시나 해서 하늘 위를 바라보았지만 손우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깨닫지 못한 자는 나갈 수 없다.

이 엿같은 상황 속에서 대체 무엇을 깨우쳐야 한단 말인가?

부스럭­

상념에 빠져있어도 일상에 익숙해진 육체는 금세 반응한다.

소음이 들려오자 해머를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잭 에반스는 소음이 들려온 방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손우진 그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죽을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잭 에반스는 소음이 들려온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자신의 요술 망치를 땅에 질질 끌어서 소음으로 망자를 유도한다.

그는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빛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도심 속 골목에는 어린아이의 형체로 보이는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다.

잭 에반스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망치를 들어 올린다.

“용서하소서.”

누구를 향해 바치는 말일까.

잭 에반스 자신도 알 수 없다.

서부에 도착한 이후로 좀비가 된 자국민들을 죽이면서 습관이 되어 버린 말.

이제는 죽어버린 이들을 향해 건네는 거였나.

잭 에반스 마음 한편에 찌그러진 양심을 위해서 바치는 걸지도 모른다.

편안해지고자 하는 마음에 습관적으로 나온 말일 수도 있고.

부웅­

“살려주세요…”

우뚝!

하급 크립티드가 된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지능은 남아있지 않다.

잭 에반스가 휘두른 망치는 그 한마디를 듣고선 바로 코앞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살려주세요…”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잭 에반스는 손에 쥔 망치를 내려놓고 웅크린 아이를 뒤집어서 확인에 나선다.

꾀죄죄한 행색에 먹지를 못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홀쭉하게 들어간 볼.

그렇지만 희미하게 잭 에반스를 응시하는 눈에는 꺼질듯한 생기가 담겨있다.

“아저씨 제발…”

“아니야, 이럴 순 없어, 이러면 안돼! 이래선 안 되는 거였어! 미안하구나, 내가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애써 부정해 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잭 에반스의 표정이 흉측하게 찌그러진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품에 껴안아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외면하고 있던 놈이 고개를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서부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가 외면하고 있던 놈이 갑작스레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날 꾀죄죄한 생존자가 파렴치한 잭 에반스의 죄책감을 깨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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