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비밀
* * *
“언데드도 아닌데 죽었던 사람이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라… 그럴 수가 있나요?”
망자들은 겉으로만 보아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사기死?를 풍기는 것 하며 썩어 문드러진 육체와 살아있는 자들을 향한 강렬한 증오심.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깐 문제라는 거지.”
“레버넌트 크립티드 개체일 가능성은요?”
“그것도 아니야, 특유의 안광과 복수 대상을 찾는 행적이 관찰되지 않았어.”
죽음에서 되돌아온 자, 레버넌트도 아니라니.
죽어버린 육체에 복수심만으로 혼이 되돌아온 이 망자는 그나마 생전의 모습을 유지할 가능성은 있다.
그게 온전히 죽었을 때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틱!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가른 뒤 얘기하느라 떡이 되어버린 짜장면을 그제야 비비기 시작하는 아저씨.
그러고선 내게 서류 뭉치를 건넨다.
“이것 좀 읽어 보아라.”
“이게 뭡니까?”
“현재 감시 대상의 프로필, 한 번 읽어 봐.”
나도 퉁퉁 불은 짬뽕을 휘적거리면서 아저씨가 건네준 서류를 천천히 읽어 보기 시작한다.
후르륵!
우동사리가 되고 식긴 했지만 이 집의 주방장 솜씨는 여전하다.
“…음, 이 집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네요.”
“너무 한결같아서 회장이고 나발이고 서비스도 없어서 문제지.”
“괜히 서비스라도 챙겨주면 생색낸다고 뭐라고 하실 거면서.”
전직 블랙 요원…
이름 한승원, 나이는 26살.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요절했군.
사인은 현장 임무 중 실종, 한 달 후 변사체로 발견.
블랙 요원이 실종될 정도의 위험한 임무는 대체 뭐길래 목숨까지 잃었을까.
“젊은 친구인데 안타깝네요, 이 블랙 요원이 되살아난 친구인가 보죠?”
“그래. 네 말대로다.”
“별다른 이상 징후는요.”
“전혀 존재하지 않아. 생전의 기억도 임무 수행 전까지만 기억하고 있어.”
“블랙 요원들의 장례는 모두 화장으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고인이 멀쩡하게 돌아왔는지 의문이 드네요.”
“화장하지 않았어도 문제야. 발견 당시엔 시신 훼손이 심각하게 발생해서 인적 확인에도 꽤 애를 먹었다.”
“흐음.”
고인이 된 한승원 씨의 시신은 이미 화장으로 뼛가루만 남았는데
멀쩡하게 되살아나서 돌아왔다라.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크리스찬의 대부, 성좌 주 그리스도도 적어도 부활할 당시엔 시신이 존재했다.
모진 채찍질로 신체는 심하게 훼손되고 십자가에 못이 박힌 뒤 옆구리엔 창이 지나갔을지언정
적어도 부활에 필요한 육신은 존재했다는 소리다.
“한승원 요원이 마지막으로 조사 중이던 건은 뭔가요?”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도 집단을 추적 중이었는데 그 사달이 난 거다.”
구린내가 난다.
그것도 심한 구린내가 말이다.
“이건 제가 맡아야 하는 게 맞네요. 일단 당사자랑 접견해도 되는 거죠?”
“거기 적혀 있는 주소로 찾아가면 될 거다. 사안이 사안이니 우진이 너도 조심하거라.”
“지수가 왜 들어오나 했더니… 아저씬 볼 때마다 어려운 일만 맡기셔.”
“시끄럽고 다 됐으면 밥이나 마저 먹거라, 지수 너도 그만 해제하고.”
“후우…”
우리가 대화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고 있던
한지수가 장막을 거둔다.
고위급 성좌인 그리스도보다 고차원의 방식으로 부활한 한승원 씨를 만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오랜만에 암실을 찾아가 봐야겠다.
. . . . .
어떻게 보면 빌런들은 크립티드보다 못한 존재라 할 수 있다.
크립티드는 적어도 인류에게 적대적인 개체와 공존할 수 있는 개체로 반반 나뉘거든.
그렇지만 빌런은 아니다.
놈들은 인간이면서 순전히 자기 욕심과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녀석들이다.
성좌의 반대편에 있는 악신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영혼까지 팔아넘기고 온갖 범죄와 악행을 행하고 다니는 쓰레기들.
현대의 교도소는 과거와는 달리 더는 교화 시설이 아니다.
크립티드와 지구를 놓고 세력 다툼을 하기도 바쁜데 변절자 놈들을 교화할 시간은 없다.
그런 녀석들을 위해 협회와 정부에서 만든 합동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암실??.
빌런들을 위한 완전 격리구역.
듣기로는 붙잡힌 빌런 놈들의 미래는 눈을 감았을 때처럼 어두컴컴할 것이기 때문에 암실로 정했다나 뭐라나.
한 번 붙잡힌 빌런 놈들이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죽음뿐이다.
나는 이번 사건에 실마리를 제공할 이를 한 명 알고 있어서 암실을 방문한 것이다.
그래서 그놈을 직접 만나러 왔다.
협회장 아재가 미리 말을 해둔 덕분인지 따로 면회실로 부르지 않고 놈을 직접 찾아갈 수 있었다.
암실의 교도관들도 딱히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하긴 내가 빌런 담당 히어로는 아니긴 해도 이곳에 집어처넣은 놈만 해도 수십이 넘는데
챔피언을 걱정할 리가 없지.
환하게 빛나는 중앙 천장의 조명과는 달리 죄수들의 방은 어두컴컴한 것이
암실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찰칵!
수감실의 자물쇠를 해금하는 교도관.
“챔피언 이곳입니다. 수감실에 입장하시면 불을 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교도관의 안내와 함께 도착한 감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딱히 방의 불을 켜지 않아도 상관없긴 하지만 협조적인 면회를 위해서 틀어달라고 하였다.
“어이.”
“…”
팟!
평소라면 어두컴컴해야 할 암실에 조명이 켜진다.
“으윽!”
어두컴컴한 방안에 익숙해졌는지 방안에 불이 켜지자 상당히 괴로워한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수감자 녀석이 어느 정도 시력이 회복되자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
“…손우진.”
서류에 쓰여있는 악마 숭배 이교도를 보자마자 떠오른 인물.
전직 악마 숭배자, 현직 암실 수감자 유재혁이다.
같은 보육원 출신인 안소정을 도와주면서 잡아들인 악마 숭배자 놈.
이 녀석의 경우 재수 없게 잡힌 것이기도 하다.
결국은 유일교 실종 사건은 타락한 성직자였던 김승연의 소행이었으니 말이다.
악마를 숭배하는 놈들의 본거지를 찾기 위해서 녀석의 자발적인 협조를 구하러 왔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냐…”
“네 협조가 필요한 일이 하나 있어서.”
“협조라고? 하하! 날고 기는 챔피언께서 내 협조가 필요할 일이 뭐가 있지?”
“악마 숭배.”
말을 꺼내자마자 뚝 다물어지는 유재혁의 입.
자신이 숭배했던 악신에게 버려진 몸이긴 하지만 경배심과 두려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나 보다.
“악마 숭배자 놈들이 협회 사람을 헤쳐서 큰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우리 유재혁 씨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말할 수 없다.”
“하 이거 참, 쉽게 가나 했더니 또 이러네.”
이런 일을 대비해서 같이 동행하긴 했는데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줄이야.
오늘은 소정이와 함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의를 꺼낸 뒤 모습을 변화시킨다.
최대한 안소정의 오함마와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곤 했는데 괜찮으려나.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건데? 이미 버려진 몸인데 한 번만 더 희생하자.”
“히이익! 왜 가만히 있던 나한테 와서 지랄인데! 조용히 지내고 있었잖아!”
오 변호사를 보고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유재혁.
아직도 그날의 두려움이 각인되어 있나 보다.
“난 안소정처럼 겁만 주고 끝나지 않을 거야. 하는 것 봐선 암실에서 나갈 수도 있고.”
“암실에서 나간다는 뜻은 죽여버리겠다는 거잖아 이 미친 새끼야!!!”
“알고 있으면 우리 이러지 말고 빨리빨리 끝냅시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가 좋잖아.”
“이러고 있는 동, 동안에도 그분은 나를 지켜보고 있어… 날 끌고 가실 것이 분명해! 제발 저리 가!”
악마들의 수장 사탄이 아직도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렇게 오만할 수가 있을까.
본인의 협조로 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발악하는 놈을 붙잡은 뒤 유재혁의 이마에 술식을 그린다.
“…”
“진정 좀 됐어?”
“예…”
몽롱한 얼굴로 대답하는 유재혁.
녀석의 이마에 새겨 넣은 술식은 신선의 길을 걷는 자들을 위한 도술이다.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심신 수양이 기본이기 때문에 수련을 하는 자들은
이 도술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한다.
나도 스승님 밑에서 처음 수련하던 시절에 성미가 몹시 급하다며 당한 적이 있긴 하지만
몇 번을 당하고 나니 내성이 생겨서 더는 통하지 않았다.
유재혁에겐 이 도술을 과하게 주입했기 때문에 저렇게 정신이 몽롱하고 얼이 나간 것이다.
“혹시 몰라서 다시 한 번 말할게.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악마 숭배자 때문이야.”
“예…”
“유재혁 너는 누구지?”
“천상의 적대자, 모든 악의 수장이신 그분의 충실한 종입니다…”
“이거 봐, 교화는 지랄.”
심신미약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속마음.
아주 속내가 절로 술술 나온다.
“악마 숭배자인 너에게 묻는다. 너희들의 본거지는 어디지?”
“우리의 본거지는 악마 숭배 교단…”
“그건 나도 알아 이 새끼야, 그래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냐고.”
“악마 숭배 교단은… 교단? 누구를 숭배했다? 여긴 누구지?”
대답을 잘 이어 나가고 있다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유재혁.
“숭배한다? 누구를? 당신을 섬깁니다!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아아아악!!!”
“이런 시발! 유재혁!”
우웨에에엑!!
몸을 비틀어가면서 이상 행동을 보이던 최재혁은 갑자기 누군가와 교신을 하는 건지
필사적으로 애원한다.
그러고선 대량의 피를 토하기 시작하더니 몸이 점점 뒤틀려선 안 되는 방향으로 꺾여버리더니
유재혁의 귀와 코, 눈에선 피가 흘러나온다.
“유재혁!!!”
“꺼어억…”
손을 쓸 새도 없이 과출혈로 서서히 죽어가는 녀석.
지옥의 수장답게 지독한 악신이다.
버린 패라고 생각했던 유재혁도 지켜보고 있었나?
휙!
그 순간 죽어가던 녀석의 목이 회전하더니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나를 바라본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퍼엉!
암실의 주민인 악마 숭배자였던 자는 폭발과 함께 선혈을 내뿜으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너희는 이번엔 곱게 못 넘어간다.”
저쪽도 이 자폭으로 내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내 기분을 아주 더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다.
지옥의 수장과 악마 숭배자 놈들이 되살아난 자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행동할 차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