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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산 스트리머-82화 (82/106)

〈 82화 〉 레저렉션

* * *

“저는… 저는 한승원이 맞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이렇게 살아 있다고요!”

화안금정에는 이 세상의 부정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눈앞에서는 어떠한 속임수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술이 되었던 변신술이던 말이다.

스승님처럼 천계의 팔괘로에서 매캐한 연기를 쬔 이후로는 한층 더 진화한 건지

화안금정을 발동한 상태에선 사람들의 거짓말에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진다.

현재 내 눈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새빨갛게 물들었고 금색 눈동자만이 밝게 빛나는 상태일 것이다.

헌데 지금 내 앞에서 울부짖는 한승원의 호소를 듣고서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진실.

그의 말엔 거짓이 섞여 있지 않다.

“나는 살아있다고… 살아 숨 쉰다고…”

“하아, 환장하겠네.”

한승원 속에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순백의 영혼 또한 정상.

화안금정을 속일 만큼 엄청난 공을 들인 게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

내 앞에 있는 한승원은 한승원 본인이 맞다.

두 눈을 슬그머니 감은 뒤에 원래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온다.

화안금정을 더 사용하는 것은 신성 낭비인 것 같다.

“한승원 씨. 그만 일어나세요.”

“…”

단시간에 쏟아지는 정보를 감당하지 못하고선 정신에 심한 충격을 입은 것만 같다.

그것도 그렇고 내가 압박 면접 식으로 그를 몰아붙인 것도 부차적 요인이고.

나는 패닉에 빠진 한승원의 멱살을 쥐어 잡아서 그를 끌어 올린다.

“한승원, 정신 좀 차리라고.”

“내가 한승원이야!!! 살아있는 한승원이라고!!”

“깜짝이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운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나한테까지 지랄하면 안 되지.

달려들려고 하는 한승원의 뺨을 살짝 후려친다.

.

.

.

.

“정신이 좀 듭니까?”

“예에… 챔피언 덕분에 말이죠.”

“그러게 아무리 흥분했다 하더라도 히어로한테 달려들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어째 사과해야 하는 쪽이 뒤바뀐 것 같지만 기분 탓이다.

나는 최대한 힘 조절을 해서 그의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한승원이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고말고.

잠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내가 살포시 한 볼터치에 고개가 헤까닥 돌아가는 바람에 한승원 요원은 잠시 기절했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손우진 챔피언… 그러면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어쩌긴 뭘 어째요, 지옥 쪽 농단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본인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으니깐 열심히 살아야죠.”

“혹여나 제게 함정 같은 것이 심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땐 어떻게 하고요!”

참 내, 이젠 좀 살만한가 보다.

자신 말고도 다른 이들의 입장까지 생각하고 말이야.

어두운 음지에서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블랙 요원답다고 해야 하나.

희생정신과 배려 정신은 히어로 못지않은 사내다.

“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승원 씨, 당신도 피해자잖아요. 눈에는 눈 주먹엔 주먹.”

나는 한승원의 앞으로 주먹을 내민다.

“그러라고 있는 게 히어로 아닙니까? 일이 잘못되더라도 제가 똑같이 놈들을 개박살 내줄 테니깐 한승원 씨 당신은 복직 준비나 열심히 하세요.”

“하, 하하… 챔피언은 여전하시군요. 그런데 주먹엔 주먹이 아니라 이에는 이가 아닌 지…”

한승원이 진담 반 농담 반이 섞인 내 얘기를 듣고서 허탈하게 웃는다.

“시끄럽고!그냥 한승원 씨 당신은 열심히 살면 됩니다.”

“예?”

“죽음을 경험하고 멀쩡히 살아 돌아온 얘기, 내가 알기로는 저 위쪽 동네의 어느 성좌분 말고는 못 들어 봤거든요?”

“그건… 그렇죠…”

“그러니깐 그냥 열심히 살아요. 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다시 태어나면 열심히 사니 마니 새롭게 태어나겠다.”

“…”

“당신은 정말 다시 태어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일도 좀 적당히 하면서 다시 한번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정말로 그거면 되는 겁니까?”

“예. 어려울 것 없어요, 당신은 이미 요원으로서 열심히 살아왔지 않습니까?”

혼란스러운 청년을 위로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 것 같네.

이만 가야 할 시간이다.

“뭐 알다시피 협회에선 이미 감시 카메라로 상황을 지켜봤을 테지만 형식상 보고는 해야 하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아, 예! 알겠습니다…”

한승원과 인사를 나누고 현관문의 문고리를 집었을 때 한승원 요원이 나를 부른다.

“손우진 챔피언님!”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한승원을 쳐다본다.

“오늘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저 열심히 한번 살아볼게요!”

“사내새끼가 징그럽게… 갑니다.”

그것이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었다.

. . . . .

“왔냐?”

“예. 날씨 한번 더럽네요.”

비도 더럽게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죽은 이는 아무 말이 없고 산 자들도 말없이 죽은 이를 떠나보낸다.

오늘은 검은 양복을 갖춰 입었다.

그럴만한 예우를 지켜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도착한 현충원.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곳.

면담이 있고 나서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한 회장 아저씨에게 연락을 받았었다.

한승원 요원의 두 번째 죽음을 말이다.

“처음 발견했을 땐 토혈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응급실로 실려 가긴 했는데… 에이 씨.”

“이랑진군께서 한소리 안 해요? 이제 좀 끊으실 때도 되지 않았나.”

한 회장님의 라이터가 수명을 다했는지 불을 피우지 못한다.

나는 손가락에 작은 불꽃을 만들어서 대신 불을 붙여 드린다.

“후우… 시끄러워 임마, 이게 다 약초고 보약인데 참견은. 아무튼 손 쓸 새도 없이 컨디션이 나빠지고 나선 그렇게 떠났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사인은 알아냈대요?”

“몸속의 장기가 전부 녹아내렸어, 흔적 없이 말이다.”

한승원의 두 번째 죽음은 여전히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떠났을 것이다.

“대체 이 새끼들 의도는 뭘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살아보겠다던 청년은 관에 들어간 채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밖에는 비가 와서 그런 걸까.

블랙 요원의 장례 절차대로 화장은 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똑같은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기에 내가 매장 방식을 주장하였다.

나는 쓰고 있던 우산을 곧 있으면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관 위에 덮어 씌워준다.

“청승맞게 비는 왜 쓸데없이 맞고 그래?”

“비 조금 맞는다고 죽은 사람보다 억울하겠습니까.”

어느새 발동한 화안금정을 통해서 관을 쳐다보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흰색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한승원 요원, 약속은 잊지 않고 지킬 테니깐 미련 갖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먼 길 떠나십시오.”

당분간은 바빠질 것 같다.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숨어서 공작을 벌이니 하나하나 끄집어낼 수밖에 없지 않나.

“아저씨, 저 먼저 갈게요. 당분간은 쥐새끼들 잡느라 좀 바쁠 것 같아요.”

“…”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린 뒤 먼저 자리를 떠난다.

놈들이 벌인 개지랄에 염증을 느낀다.

도대체 한승원의 두 번째 죽음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無.

아무것도.

몇 번을 생각해 봐도 그게 내 결론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걸까.

그는 협회의 중요 요직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힘을 갈취하거나 그런 대상도 아니었다.

단순히 위험한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악마나 숭배하는 또라이들에게

재수 없게 피랍된 불운한 블랙 요원.

그러다 죽음을 맞이했고 모종의 이유로 다시 살아 돌아온 자.

이런 개죽음을 당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중대한 죄를 짓게 되면 평온한 삶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면 정의?? 또한 존재해야 이치에 맞다.

“눈에는 눈, 주먹엔 주먹.”

그와 했던 한가지 약속.

당신이 당한 만큼 상대 또한 개박살을 내주겠다.

이제 그를 실천할 차례이다.

. . . . .

“위선을 집어던지고 욕망을 받아들이라! 게엑!!!”

“아주 이달의 우수 직원들이라니까, 가기 전까지 사훈을 외치고 가다니 말이야.”

또 한 명의 악마 숭배자가 자신의 사장 곁으로 떠나간다.

마지막까지 발악하는 놈들도 있고, 자해하거나 알아 듣기도 힘든 말로 중얼중얼 떠드는 놈들도 있다.

구석구석 숨어든 쥐새끼들을 족치는 중이지만 자발적으로 입을 여는 놈들이 단 한 명도 없다.

이것들의 엄청난 충성심에 감동 받은 나는 애사심 깊은 사원들을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데 협조할 뿐이다.

붉은 케첩 같은 것이 묻어 있는 여의를 닦아 주고선 나머지 놈들을 쏘아본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너희들의 본거지인 교단은 어디에 있지?”

­위선을 집어던지고 욕망을 받아들이라!!!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사훈을 크게 한 번 외친 뒤 쓰러지는 악마 숭배자들.

내게 정보를 털어놓을 바엔 스스로 떠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미친 새끼들…”

오늘도 수확이 없었다.

히어로에겐 즉결 처분권이라는 게 있는데 웬만해선 사용될 일이 없다.

사실 빌런 새끼들은 죽을 때까지 암실에 갇히는 걸 더 두려워하기도 하고 해서

그걸 알고서 일부러 처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거나 고위험군 빌런의 경우엔 사용되고는 하는데

최근 새 몇 번을 즉결 처분을 행했는지 모르겠다.

“세뇌를 한 건지 자발적인 건지 입을 여는 놈들이 어떻게 한 명도 없냐.”

하긴 제정신들이 아니니깐 이 정신 나간 것들이 인간이면서 악신을 믿는 것이다.

협회에 연락을 보냈으니 현장 수습 담당 직원들이 알아서 청소하시겠지.

오늘도 의미 없는 쥐구멍만 후벼 판 것 같다.

“오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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