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83화 (83/106)

〈 83화 〉 레저렉션

* * *

여의가 내 뒤에 서 있던 인물의 목덜미 근처에서 정확히 멈춰 선다.

“소정이?”

뒤에서 나를 부른 것은 안소정이었다.

유일교의 이단 심문관이자 같은 보육원에서 같이 지낸 여동생.

오늘은 어쩐 일로 점잔 차리지 않고 예전과 같이 불렀나 싶다.

헷갈리게 말이야.

초인 같은 감각을 지니고 있어도 뒤통수에 눈깔이 달린 것은 아니기에 반사적으로 여의부터 튀어 나갔다.

여의를 거두고 안소정의 안위를 물어본다.

“미안. 다치진 않았지?”

“이젠 동생 목소리도 까먹은 거야? 오빠 진짜 너무하다!”

“거참 나도 사람이야 사람! 그건 그렇고 여긴 혼자 왔냐?”

“응.”

“내 위치는 어떻게 알고 왔어.”

“뭐 뻔하지, 회장님한테 부탁했거든 헤헷.”

“이 아저씨가… 공무 수행 중인 히어로의 위치를 쉽게 불면 되나.”

그건 그렇고 역시 이단 심문관답게 쓰러져 있는 악마 숭배자들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안소정.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험한 꼴이지만 우리 동생에겐 아닌 모양.

오히려 한 놈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자기 손으로 끝내버렸을지도 모른다.

“요즘 심문관들 사이에서 오빠 소문이 자자해.”

“무슨 소문인지는 몰라도 대강 짐작은 간다.”

“드디어 교단으로 돌아올 마음이 생겼어? 오빠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없을 정도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약속한 게 있어서 그걸 지키는 것뿐이야.”

최근 악마 숭배자 놈들이 있을 만한 곳을 죄다 들쑤시고 다녔더니 유일교의 이단 심문관들의 일거리마저 뺏게 되었나 보다.

“어느 귀하신 분하고 무슨 약속을 했길래.”

“지금은 이 세상에 없어.”

“…미안.”

“소정이 네가 미안할 게 뭐 있냐. 정리 좀 하고 갈 테니깐 먼저 나가 있어.”

“응 알았어.”

안소정이 밖으로 나간 뒤에 뒤처리를 시작한다.

탁!

이미 지옥으로 여행을 떠난 놈들을 향해서 손가락을 튕겨 불씨를 날려보낸다.

주위의 것들을 야금야금 삼키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몸집을 불려 나가는 조그만 불씨.

새빨간 불길이 후르륵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할 때쯤 나도 이만 현장을 빠져나온다.

악마 숭배자들의 은신처가 활활 불타는 광경을 소정이와 함께 바라본다.

“이럴 때 너희는 뭐라고 했더라, 사도 박멸 완료?”

“흥, 외부인이 따라 해봤자 의미 없거든.”

“하하, 일단 어디 가서 얘기라도 하자. 소정이 네가 괜히 온 것 같지는 않으니깐 말이야.”

나는 소정이를 데리고 인근의 카페로 향했다.

안소정은 동생이기 이전에 이단 심문관이다.

유일교의 이단 심문관은 악을 박멸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안소정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패는 바로 나.

저번 실종 사건도 그렇고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말해봐. 우리 동생님께서 이번엔 또 뭔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는지.”

“어떻게 알았어?”

“소정이 네가 오빠 소리 하는 것부터가 뻔하지, 아쉬운 입장이라 그런 거 아니야.”

“헤헤…”

자기가 생각해도 머쓱한지 해맑게 웃어버린다.

그러고선 안색을 싹 바꿔 이단 심문관의 자세로 돌아가는 안소정.

“챔피언.”

“됐거든? 안 도와주기 전에 평소대로 해.”

“으휴, 우리 챔피언님 비위 맞추기 정말 힘들다. 아무튼 오빠가 지금 하는 일이 놈들하고 관련된 거 맞지?”

“어, 그 새끼들 이번에 사고 거하게 쳤거든. 그래서 무슨 속셈인지 알아내려고 찾아다니는 중이지 뭐.”

“협회에서 알 정도면 레저렉션 건은 오빠도 이미 알고 있겠구나.”

레저렉션Resurrection.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단어.

역시나 유일교도 악마 숭배자와 지옥이 연관되어서 그런지 죽은 자들의 생환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나하고 약속했던 사람이 그 사건의 당사자야.”

“아… 그래서 오빠가 이교도 녀석들을 족치고 다녔구나.”

“여자애 입에서 족치고가 뭐냐? 말 좀 예쁘게 해라.”

“우리 오라버니께서 그런 사유로 흉악한 악의 무리를 족치고 다니셨군요. 만족하시는지요?”

“예이, 어련하시겠습니까.”

내 성격도 한껏 꼬여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서 그런지

몰라도 내 트집을 거뜬하게 받아치는 것이 안소정답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온다.

나는 안소정에게 그동안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살아 돌아온 한승원 요원과의 만남과 작별까지.

“죽음이 확실시됐던 이가 멀쩡히 살아 돌아왔고… 한 달도 채 안 지나서 다시 사망했어.”

“사인은?”

“신체 내부장기 손상.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기한을 설정한 것처럼 갑자기 장기들이 녹아내려서 손쓸 새도 없었어.”

“오빠, 이것 좀 읽어 봐.”

소정이가 서류 몇 개를 내게 건넨다.

나는 그것을 받아본 뒤 차근차근 읽어 보기 시작한다.

서류에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자세히 적혀있다.

그곳엔 이름과 성별 직업이 다른 제각각의 사람들이 단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인死?.

서류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한승원 요원처럼 신체 내부장기가 녹아내려서 사망한 것이다.

“…이 사람들도 생환자야?”

“응.”

“생존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은데, 우리 측 블랙 요원보다 오래 생존한 이가 있어?”

“아니, 그분이 현재 최장 시간 생존자야.”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뒤에 모종의 행위로 다시 살려낸다.

그렇게 살아난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신체 내부가 무너져내려 사망하게 된다.

대체 이 악의 피조물 새끼들은 무엇을 실험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시꺼먼 꿍꿍이가 있어서 이 지랄을 하는 거겠지?”

“오빠 말이 맞을 거야. 교단 내에서도… 놈들이 악신의 그릇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

“하, 이젠 별짓을 다 하는구만”

성좌가 지상에 강림할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우리 스승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여의를 매개체로 강림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매개체가 인간이 된다면 경우가 다르다.

성좌가 직접 몸에 강림하는 걸 버틸만한 인간은 없을뿐더러

막대한 신성이 온몸에 주입되었다가 빠져나간다면 신체가 터져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과 동조율이 높은 인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재앙이 탄생하고 만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는걸.”

“쓰레기들의 본거지에 손쉽게 잠입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가 있어.”

“어떻게?”

“내가 미끼가 되서 놈들의…”

“안 돼.”

나는 안소정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왜!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잖아!”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단 심문관이 쉽게 잡혀주는 걸 의심을 안 할 리가 없잖아.”

“예전처럼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오빠가 빨리 구하러 오면 되지!”

소정이가 자신을 납치했던 타락한 성직자 건을 꺼내 들지만 그래도 허락할 수 없다.

“소정아, 굳이 네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오빠! 난 그 쓰레기 같은 폐기물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깝다고!”

악마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표출하는 안소정.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아이도 나와 같은 입장이니깐.

“…알았어.”

“그럼 허락해 주는 거지?”

나를 너무 쉽게 보는구나, 안소정.

“대신에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이 뭔데?”

“나랑 대련해.”

. . . . .

안소정이 제안한 미끼 작전은 조건부로 허락하였다.

일주일 동안 나와 대련해서 한 대라도 때릴 수 있다면 안소정의 승리.

그래야 내가 안심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적진의 가장 깊숙한 아가리로 동생이 들어간다는데 함부로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소정이를 화과산에 있는 내 개인 수련장으로 데려왔다.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아서 불만에 찬 표정이지만 오빠인 내 입장도 배려해 준 건지 순순히 따라왔다.

“어느 곳이든 한 대라도 맞추면 내가 이기는 거라 했지?”

“그래,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나도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거든? 그 얄미운 얼굴에 한 방 먹여 줄 거야!”

쾅!

안소정이 자신의 전투 망치를 큰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너가 아주 날 잡았구나.”

“빈틈!”

대련의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덤벼드는 안소정.

내 얼굴은 소정이의 흉악한 전투 망치를 맞고선 일그러진다.

“크아악!!!”

“하하! 내가 이겼다! 오빠 내가 이긴 거 맞지…”

짝짝짝.

“치사하다 치사해. 아주 오빠 얼굴을 박살 내놨네.”

펑!

저기서 소정이에게 한 대 맞고 드러누운 내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는 애초에 기척을 지우고선 분신을 세워놓고 소정이의 뒤에서 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안소정의 기습이 성공해서 빨리 들키긴 했지만.

“오빠!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그리고 분신은 반칙 아니야?”

“응 너도 쓰던가. 주어진 여건에서 열심히 해야지.”

“이익! 챔피언 주제에 치사하게 진짜!”

부웅!

투덜대는 입과 달리 손에 들린 전투 망치는 나를 향해서 다가온다.

공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전투 망치에 담긴 운동 에너지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렇기에 순순히 맞아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느려.”

“좀 맞아라!”

약이 오른 소정이가 계속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본다.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하고 있기에 더 독이 올라서 바짝 추격해온다.

“눈으로 쫓고 있으면 이미 늦은 거야, 생각한 뒤에 휘둘러.”

“그게! 말처럼 쉬운! 거냐고! 하아앗!”

“호흡이 빨라졌어, 움직임에 템포를 맞춰서 숨을 쉬도록 해. 그럴수록 더 빨리 지친다.”

“아으 약 올라!”

안소정의 움직임을 지적하면서 나는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몸을 놀린다.

.

.

.

하아하아…

대련을 시작하고 6시간쯤 지났을까.

수련장 바닥엔 온몸이 땀범벅이 된 안소정이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널브러져 있다.

“안소정 씨? 포기하실 건가요?”

“……”

“도전자의 응답이 없는 관계로 대련 첫째 날. 이 몸 손우진의 판정승을 선언하겠습니다.”

첫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지.

나는 널브러진 우리 동생님을 안아 들고 수렴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우 이 땀 흘린 것 좀 봐, 디러워 죽겠네.”

슈욱!

“뻔하다, 뻔해.”

“이… 나쁜 새끼야…”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서 내게 주먹질을 해봤지만 그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소정이는 그러고선 정말로 정신을 잃고 푹 늘어진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음음음.”

밀레니엄 시대가 오기 전에 유행했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면서 수렴동으로 돌아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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