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97화 (97/106)

〈 97화 〉 악인전

* * *

“나도 바라던 바야!”

홍수아는 두 손에서 자신이 자랑하던 화염을 피워 올려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토너먼트 사건 이후 홍수아와 다시 맞붙게 된 2차전.

서로가 육체적으로나 자존심으로나 사이좋게 한방씩 주고받은 상황이다.

아무래도 나나 저년이나 이번 싸움에서 이 악연에 종결부를 찍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 재수 없는 철봉 좀 치우라고 말했지!”

“네가 재주껏 치워 보던가!”

홍수아가 열기로 인해서 새빨갛게 물든 손으로 덤벼든다.

저것에 붙잡혔다간 가벼운 화상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손에 쥔 여의를 홍수아를 향해 휘둘렀다.

치이이익!

여의를 붙잡은 홍수아의 손에서 무지막지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랜 시간 동안 저 깊은 용궁에서 심해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보패가 여의금고봉이기에

불을 다루는 홍수아에겐 그야말로 상극일 수밖에 없다.

“크윽!”

홍수아가 안 되겠는지 여의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수증기가 뭉게뭉게 주위를 가득 채우면서 서로의 모습은 가려진다.

“근접전은 이제 무서운 거야? 숨지 말고 얼른 나와.”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려는 건지 수증기 너머에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홍수아도 수증기 너머에서 공격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터.

촉감을 곤두세우고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홍수아를 기다리며 반격을 준비한다.

“손우진 당신은 정말 멍청해. 왜 그런 힘을 가졌는데 아직도 인간들에게 휘둘리는 거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옳은 일이니깐.”

“옳은 일? 하! 웃기지 마. 세상은 변했어. 인간이 지상의 주인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

수증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홍수아의 궤변.

슈웅!

그때 수증기를 꿰뚫고 내게로 날아드는 불덩이 구체들.

“이런 공격을 당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양심 없지 않냐?”

사방에서 날아드는 불덩이 구체들을 여의로 쳐내 소멸시켜 주었다.

“당신 가족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외면하는 거야?”

“그 입 닥쳐.”

“불쌍해라.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내가 곧 만나게 해 줄 테니깐.”

싸우다 말고 시답지 않게 입이나 털어대고 말이야.

홍수아와 나의 싸움은 내가 원본 여의를 다룰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

성립된 것이다.

태상노군 어르신이 만든 팔괘로의 불길 육정신화(?丁?火)를 체험한 이후로는

이런 불쯤이야 가벼운 애교일 뿐이다.

적어도 내게 위협이 되려면 자신이 섬기는 화염산의 주인, 홍해아의 삼매진화 정도는 되야…

“이런 미친년이!”

홍수아는 내 시야를 가려서 기습하려던 게 아니라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녀석의 의도를 알아챈 나는 급하게 팔괘 6장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켜 주변을 감싸고 있던

수증기를 날려 버렸다.

수증기가 걷히고 그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홍수아가 드러났지만

그 주위에는 이미 붉은색 수레 다섯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보패는 당신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닌걸? 즐거웠어, 손우진.”

다섯 채의 수레에선 오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진다.

저것은 삼매진화를 불러오는 데 사용되는 수레 오행거임이 분명하다.

역시나 홍수아는 삼매진화를 사용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고 있던 것이다.

한 채라도 박살 내야지 홍수아의 삼매진화를 막을 수 있다.

나는 제일 가까운 수레를 향해서 여의를 뻗었다.

“여의!”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길. 삼매진화(三?火)!”

홍수아가 주술을 외우자 코에서 새빨간 코피를 줄줄 뿜어내기 시작하고

그 순간 내가 노리고 있던 수레의 문이 불길한 소리를 뿜어내며 천천히 아가리를 벌렸다.

“이런.”

수레의 속 안에는 업화의 불꽃이 나를 향해서 뿜어져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콰아앙!!!

뒤로 물러나 잽싸게 여의를 거둔 뒤 거대화시켜 쏟아져 나오는 삼매진화를 막아섰다.

우우웅!

삼매진화를 막아내는 여의가 비명을 질러댄다.

수레 한 채 분의 삼매진화인데도 이 정도 위력인데 나머지 네 채의 문이 열리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해 여의! 조금만 더 버텨줘!”

급한 상황이니만큼 일단 손에 잡히는 머리털을 왕창 뽑아낸 다음 허공으로 휘날린다.

퍼버벙!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분신 무리.

“한놈만 도착하면 된다! 어서 달려!”

“오랜만에 불려 나왔는데 상황 참 살벌하네!”

“제일 먼저 바싹 구워질 놈은 누구냐?”

“가자고!”

“이거 근로법 위반이야 본체 놈아!”

저 어마무시한 불꽃을 보고서도 바로 홍수아를 향해 달려가는 분신들.

자신들은 저것에 당해봤자 역소환 당하는 게 끝이라 이거겠지.

삼매진화를 중단시키기 위해선 주술을 외우고 있는 홍수아를 직접 타격하든지 아니면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수레를 박살 내야 한다.

각자도생의 시간이다.

분신들과 나는 여의가 시간을 벌어준 것을 발판삼아 산개해서 홍수아를 향해 달려 나갔다.

“끄아…”

펑!

벌써 첫 번째 희생자가 탄생했다.

삼매진화에 휩쓸린 분신은 단말마도 제대로 외치지 못하고 불길에 휩쓸려 사라졌다.

끼이익.

그 순간 저 멀리 있는 홍수아의 보패 오행거에서 불길한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두 번째 수레의 문이 열린 것이다.

곧이어 두 번째 수레에서도 삼매진화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레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들은 계속해서 여러 갈래로 뻗어져 나와 분신들을 하나둘씩 잡아먹고 있다.

“진짜 지랄맞은 기술이네! 신세 좀 지자!”

“잠깐만 본체 이 미친 새끼야! 끄아…”

나를 집어삼키려는 불꽃에 분신을 대신 희생해 위험을 회피하고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라져가는 분신들의 몫까지 복수해주마.

고지가 눈앞이다.

저기 보이는 홍수아.

눈을 감고 주술을 외우고 있는 녀석의 상태도 이미 만신창이다.

홍수아는 코피를 흘리는 것도 모자라 눈과 귀에서도 새빨간 선혈을 흘려대고 있었다.

성좌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몸에 부담이 올 수밖에 없다.

그것도 삼매진화라는 최상위 주술을 인간의 몸으로 사용했으니 엄청난 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홍수아!!!”

내 부름을 들었는지 감고 있던 홍수아의 두 눈이 떠진다.

핏발이 붉게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방긋 웃어 보이는 홍수아.

“이렇게 손수 와 줘서 고마워. 이제 그만 나대고 죽어버려.”

“하… 진짜 미친년인가.”

애초에 이걸 노린 거였냐.

닫혀 있던 나머지 수레의 문은 어느새 우리를 향해 열려 있었다.

홍수아는 죽을 각오로 자신을 미끼로 삼은 것이다.

그거에 나는 홀딱 넘어간 것이고.

이 정도로 미친년일 줄 파악했어야 했는데.

검은 아가리에서 붉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을 때

오행거의 무차별 포격이 시작되고 홍수아와 나는 그 업화의 불꽃에 휩쓸리고 말았다.

.

.

.

.

.

“…쿨럭.”

내 입에서 뱉어내는 것이 잿더미인지 불타버린 핏덩이인지 모르겠다.

나는 거무튀튀한 것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근거리에서 삼매진화를 받아낸 결과는 처참했다.

업화에 불꽃에 함께 휩쓸린 미친년의 생사는 모르겠고 나조차도 크게 피해를 입었다.

호신강기를 급하게 끌어올려서 내 몸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이번 것은 역시 타격이 컸다.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된 상태라고 해야 하나.

오븐 속 치킨이 된 기분이다.

근거리 삼매진화 포격을 막아내느라 보유하고 있던 신성까지 거덜 난 상태다.

“불은 이제 지긋지긋해…”

라돈의 브레스부터 시작해서 천계의 팔괘로 그리고 이제는 업화의 삼매진화까지.

불과의 인연은 영 아닌가 보다.

주술을 외워야 할 홍수아가 사라졌기에 오행거의 문도 불꽃을 토해내지 않고 굳게 닫힌 상태다.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했다.

만약 홍수아가 삼매진화를 완전하게 습득했거나 수레 다섯 채의 불꽃이 온전히 내게 향했다면 나도 사이좋게 홍수아와 함께 새까만 재로 변했을 것이다.

“불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자연지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성치 않을 몸을 이끌고 뒤로 물러섰다.

그곳에는 붉은 눈과 새빨간 머리카락을 지닌 어린아이가 바닥의 재를 손으로 쓸고 있었다.

후우.

아이가 손에 담긴 재를 훌훌 불어버리고선 나를 향해 돌아선다.

“……”

“아이가 너무나도 칭얼대길래 마지못해 알려주긴 했건만 역시 버거웠던 모양이로군. 하긴

본좌도 삼백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거늘.”

“…누구냐 넌.”

“흐음? 멍청한 손오공의 제자인 것을 티 내는 것이냐? 아니면 그저 본좌에게 확인받고 싶은 것이냐?”

“흐흐. 그래, 스승님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하니 잘 알겠다.”

이거 산 넘어 산이네…

신장은 내 허리춤밖에 오지 않으면서 조그만 몸집과 달리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대고 있는 이 어린아이.

이 녀석이 바로 홍수아의 성좌, 칠대성의 일원인 성영대왕(??大王) 홍해아다.

홍수아 이 비겁한 년이 교마왕 때와 마찬가지로 화신체인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성좌를 지상에 강림시킨 것이다.

이 꼬라지를 보고선 홍수아는 저승에서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와는 아직까진 대화로 해결하고 싶으니 말이다.”

“그것 참 반가운 소리네. 방금까지 댁의 아이한테 심하게 당해서 말이지!”

“후후. 완전치 못한 삼매진화이긴 했지만 그래도 칭찬해주마. 인간의 몸으로 업화의 불꽃을 버텨낼 줄이야.”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거냐?”

“잡담은 여기까지 마치도록 하고. 왜 그대는 우리의 대업에 참여하지 않는 건가?”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입에서 지워버리고 본색을 드러내는 홍해아.

근데 보자 보자 하니깐 이 시벌탱 놈들이.

자신들의 대업에 대해선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고선 대체 대업이 뭐길래 계속 나한테 강요를 하는 거야 지금?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쳐? 너희 대업이 뭐길래 왜 나한테 지랄들인데 대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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