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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산 스트리머-101화 (101/106)

〈 101화 〉 격돌

* * *

“저는 평천대성 우마왕의 적장자 홍해아입니다!”

“흐음?”

다급한 홍해아의 외침에 손우진 속 제천대성이 관심을 보였다.

그와 의형제를 맺은 우마왕의 자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홍해아는 자신의 말에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선 재빨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대성께선 저희 아버님과 형제의 연을 맺으신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렇다면 그 연을 생각해서 부디…”

“아아, 그만.”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였던 제천대성이 홍해아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린다.

“너 지금 자기가 형님의 아들이니 서로 좋게 좋게 넘어가자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그게 아니고!”

여의에 세워두고선 홍해아를 응시하는 그.

무심한 붉은 눈을 마주한 홍해아는 등골이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홍해아는 인과율이 뒤틀린 것이 하늘이 내린 두 번째 기회라고 여기었다.

그로 인해서 보살 년이 자신에게 채웠던 구속구를 벗어던질 수 있었고 요괴로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저 미친놈의 원숭이와 엮인 그 날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화운동을 지나려 하는 삼장법사 일행을 건든 것이다.

요괴들 사이에 널리 퍼진 소문.

고승의 인육을 먹게 된다면 불로장생 할 수 있다는 그 소문 하나 때문에 그런 것이었건만.

허나 삼장법사 옆에 저런 미친놈이 함께하고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포기했어야 했건만 요괴인 홍해아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다시 요괴로 돌아온 홍해아는 지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곳은 이 몸이 활개 치던 시절에서 까마득하게 시간이 지나가 버린 모양이더군.”

“……”

“네놈. 아직 나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지 않느냐?”

홍해아를 보고 씨익 웃어 보이는 제천대성.

그 웃음은 모든 걸 알고 있는 자의 웃음이다.

“…언제부터 눈치챈 것이지?”

비굴한 태도를 싹 지워버리는 홍해아.

일이 틀어진 이상 충돌을 피할 수 없다고 느낀 홍해아는 놈의 정체만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건넸다.

“그쪽에서 먼저 친절하게 자기소개를 해 주는 덕분에 그와 관련된 기억부터 정리했지.”

“그렇다면 과거 당신과 우리 일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미 알고 있겠군.”

“뭐 그럭저럭, 내가 겪은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의 어느 시절의 손오공이지?”

제천대성으로 살아 돌아온 손우진을 조우하고 나서 홍해아가 느낀 위화감.

과거 그가 상대한 손오공은 저 정도로 사납지는 않았다.

홍해아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우마왕을 들먹이며 그를 구슬려서 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손오공은 그렇지 않다.

그는 홍해아의 정체를 알고 나서도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네놈처럼 멍청한 질문만 건네는구나. 본인은 언제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거늘.”

한심하다는 눈으로 홍해아를 바라보는 붉은 눈의 손우진.

“…크크크. 당신 말대로야. 좋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멍청했군.”

홍해아는 평화로운 대화는 이만 끝이라는 듯 붉은 기운을 끌어올린다.

삼매진화를 사용한다면 자신에게도 기회는 있다.

과거에도 이를 통해 손오공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세우지 않았는가?

홍해아는 눈앞의 손오공이 손우진의 기억을 그것까지 습득하지 않았기를 바라였다.

그가 대처법을 알게 되는 순간 본인의 승산은 급격하게 기울어질 테니 말이다.

“아이야, 이제 싸울 마음이 좀 들더냐?”

손우진 속 손오공은 건들건들 여의를 흔들면서 홍해아와 마주 선다.

“당신과 대화하면서 다시 깨달았다.”

“무엇을 깨달았지?”

“네놈은 말이 통하지 않는 빌어먹을 원숭이 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크하하! 그 용기는 칭찬해 줄 만 하구나!”

.

.

.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홍해아 놈이 숨겨뒀던 비장의 수 삼매진화를 근거리에서 맞은 다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신체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고 엄청나게 무거운 물체가 내 몸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끄으으윽!”

있는 힘을 다해서 그것을 치워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꼬르륵.

이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픈 건지 위장이 눈치도 없게 배꼽시계를 울려댄다.

“이게 뭔 지랄이래…”

놈이 사용하는 삼매진화에 뒤진 다음 이세계 전생을 해버린 건가?

나이가 30줄에 가까워지는 내가 이세계 전생을 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보는데.

“하아…”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고개만 살짝 돌릴 수 있는 움직임만이 허락되었기에 내 몸 위에 올려진 것이 대체 무엇인지 확인할 수도 없고 말이다.

“신성도 완전 바닥이잖아.”

다른 세계로 넘어와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평소와 달리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을 애써보다가 그만두기로 하였다.

결국 이곳에서 탈출하려는 생각은 포기한 채 지금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곱씹어 보았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 원흉은 지옥의 악신 사탄이 벌인 짓.

그 배후에는 사탄과 계약을 맺은 칠대성이 있었고 놈들의 수하인 홍수아를 처리.

일이 끝난 줄 알았건만 홍수아가 자신의 목숨을 매개체로 홍해아를 불러왔고

놈과 싸우다가 허를 찔려 삼매진화에 당했다.

“아오! 그 영악한 놈이 그딴 거나 숨기고 말이야! 치사하게 진짜!”

홍해아 놈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스승에게 받은 가르침만 생각하고 있다가 놈의 저력을 과거로만 판단한 것이 오판이었다.

요괴에게 살해당하면 이런 곳에 도달하는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최악이 아닐 수가 없다.

“거기 누구 계시는지요?”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나는 지금 찬물 더운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재빠르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여기요! 여기 사람 깔려있어요! 도와주세요!”

배는 고프고 힘은 없지만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힘겹게 치켜들고선 내 앞에 있는 의문의 인물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새하얀 맨다리.

그런데 다리가 네 개다.

그리고 새하얀 다리에는 발굽이 달려있다.

“말? 여긴 말이 사람 말도 할 수 있는 세상인가?”

“저기… 조금만 더 고개를 올려보시지요.”

그러면 그렇지.

남성의 말을 듣고 있는 힘을 써서 고개를 치켜올렸다.

그곳에는 빛이 있었다.

밝게 빛나는 민머리.

맨들머리.

대머리.

그리고 정갈하게 차려입은 승복과 손에 쥔 석장.

“승려?”

“예에… 소승은 일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몸이긴 합니다만.”

나는 문뜩 불안감이 스쳐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거운 것에 깔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이.

그리고 마침 그 앞에 도달한 승려 한 명.

마침 알고 있던 이야기 중에서 이와 아주 흡사한 상황이 그려진 이야기를 내가 하나 알고

있는데 말이지.

“저기요, 제가 한 가지만 여쭙시다.”

“예. 말씀하시지요.”

“혹시 법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부끄럽게도 현장이라는 법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 시발! 지랄마 진짜!!!”

쾅쾅쾅!

“히이익!”

“히이잉!”

내가 분한 나머지 머리를 바닥에 쾅쾅 내려치자 겁을 먹은 스님과 백마가 화들짝 놀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였냐…”

시발 어쩐지 꼼짝도 하지 않더라.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 내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내 눈앞 스님의 정체가 현장법사, 즉 그 유명한 삼장법사가 맞다면 말이다.

“현장법사님, 제 정체는 알고 찾아온 것인지요?”

“……”

“법사님께 화를 낸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알, 알고 있지요. 당, 당연히.”

벌벌 떨면서 말을 이어 나가는 법사님.

나는 꼭 확인해야 하는 것을 다시 물어보았다.

“제가 누굽니까?”

“…500년 동안 오행산에 봉인되어 있던 대요괴 손오공이지요.”

이건 또 무슨 농간일까.

기아스의 부작용인가?

그렇다고 까마득한 과거로 보내버리는 것은 좀 아니지 않냐?

그렇게나 머리를 땅에 처박았는데도 이마에서 피 한 줌 흐르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지금 이 상황을 좀 더 실감 나게 한다.

“…돌겠네 진짜.”

“혹시 오행산에 갇힌 일 때문에 법제자인 소승을 혐오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어찌 남자가 그런 일로 꽁해 있겠습니까? 하하하!”

우리 스승이 들었다면 환장할 소리를 나는 잘도 뱉었다.

하지만 장담컨대 스승님 또한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비굴하게 굴었을 것이다.

나야 눈을 뜬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영원불멸의 삶을 살던 스승에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500년이라는 세월은 지옥 그 자체였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나를 끄집어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법사님을 향해 웃어 보였다.

스승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스승님 본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다.

“허허! 정말 소문대로 대범하시군요!”

삼장법사님은 내가 친절하게 나오자 그제야 표정을 풀고 대화에 응하였다.

“하하! 금칠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근데 법사님께선 어쩐 일로 이런 외진 곳까지 오시게 되었습니까?”

“…사실은 말입니다.”

삼장법사님은 나를 앞에 두고 구구절절 고난의 행군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관세음보살과의 만남부터 대승경전을 구하기 위한 서천행의 출발.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덮쳐오는 요괴들의 무수한 습격들로 인해서 종자들은 모조리 잡아먹히고 어찌 된 일인지 자신만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

‘다 아는 내용들이구만…’

어린 시절부터 스승님한테 귀에 딱지가 질 정도로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

나는 삼장법사님의 하소연을 한 귀로 흘리면서 앞으로 내 처지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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