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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산 스트리머-103화 (103/106)

〈 103화 〉 되풀이

* * *

“큰손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을 다시 건네는 법사님.

아직 이쪽의 생리를 파악하시지 못하셨나 보다.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한동안 잠잠했던 혀와 입을 털어보기로 작정하였다.

“사부님, 우리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보자고요.”

“무엇을 말인가?”

“고생을 하는 것은 우리인데 정작 서역에서 경전을 구해와봤자 누워서 떡이나 먹는 임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허허 오공. 이 모든 것이 다 공덕을 쌓기 위해 떠나는 길임을 잊었는가?”

“아무럼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도 우리를 위해서 조그만 짐 정도는 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흐음…”

고심하는 법사님.

나는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게 계속해서 의견을 피력하였다.

“제 말은 입으로만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게 하지 말고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겁니다.”

“그것이 오공 자네가 생각하는 불심인가?”

“예.”

“……”

삼장법사께선 내 말을 듣고선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기신다.

이거 글러 먹었나?

수십 년 짬밥의 고승 앞에선 이 정도의 입털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게 아니면 쉽게 자금을 조달할 방법도 없을 것 같은데…

“알겠네.”

“에휴. 이해합니다, 사부님. 그러면 다른 방법을 모색… 예?”

“오공 자네의 뜻대로 하겠네.”

갑작스럽게 떨어진 삼장법사님의 허락.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잠시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정말요?”

“그렇다니깐.”

“제안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의외네요.”

“배움을 구하는 자가 꽉 막혀있을 순 없는 법이지.”

나는 이 고승을 향해서 합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화가 통한다.

상식적인 대화가 통한다는 것만 해도 감사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질러본 것이긴 한데 이것이 통과될 줄이야!

이곳에서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천축행에선 돈으로 허덕이지는 않겠다.

“하하하! 제 편협한 사고를 이번에도 넓게 해주시는군요! 이 제자 정말 감동했습니다!”

“허허, 자네의 언변은 정말로 유창하군그래.”

“사내가 꺼낸 말은 빠르게 해결해야죠. 허락도 떨어졌겠다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딱 대 큰손 놈들아.

이렇게 엄청난 뺑이를 치게 만들었으면 뱉는 것도 있어야지?

빈 양손이 돌아올 때는 한가득 차 있을 것이다.

“잠깐 기다리게 오공! 이 늙고 추레한 불제자를 내버려 두고 홀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

“…사부님, 저 손오공입니다. 제 특기가 무엇인지 모르십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포용력 넓은 고승에게 감동했던 마음이 짜게 식는다.

어떻게 이런 분이 참.

삼장법사께선 엄청난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한순간이나마 까먹고 있었다.

“후우!”

머리털 하나를 뽑은 뒤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사실 분신 하나 소환한다고 이렇게까지 방정을 떨지 않아도 되지만 눈앞의 고승을 달래기 위해서 퍼포먼스를 좀 가미해보았다.

펑!

뿌연 연기를 해치고 나타난 분신.

놈은 바닥에 사뿐하게 착지했다.

“…너 살아 있었냐?”

“이 새끼가 재수 없게, 사람 얼굴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자아를 가진 분신 진우 놈은 이 시대에서도 멀쩡히 작동하였다.

나와 이 녀석이 공유하는 기억은 역시나 홍해아 놈에게 당하기 직전인가 보다.

“복장은 또 뭐야? 완전 구닥다리인데.”

“너 스승님 앞에서 그 소리 했다간 대가리 터지고 역소환 될라.”

“스승? 오공 자네에게 스승도 있었나?”

“네? 아하하! 그게 말이죠… 부끄럽지만 화과산에서 지내던 시절 모시던 스승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삼장법사께서 끼어드시는 바람에 급조된 변명을 해버렸다.

“호오. 오공 군 자네의 스승님이라… 놀랍구만.”

“신비에 감춰진 분이시기에 정체를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죄송합니다.”

“아닐세. 속세와 등을 지고 사시는 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나 손우진은 화과산에서 스승 손오공을 모셨으며 스승인 손오공은 수보리 조사를 모셨다.

스승님의 스승은 나에게도 스승일 수도 있지 암.

사실 지금 내가 그분의 존재를 입 밖으로 꺼냈다간 그분께서 내 대가리를 손수 박살 내러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자랑스러운 화과산 원숭이, 스승님은 수보리 조사께 파문을 당하는 자랑스러운 업적이 있다.

파문을 당한 뒤 수보리 조사께선 스승님께 자신을 그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말라고 하였기에 손오공이 된 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쯤 되는 인물이 입방정이라면 둘째가는 손오공을 지켜보지 않고 있다는 보장도 없는 법이고 말이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확 그냥… 아무튼! 난 다녀올 곳이 있으니깐 넌 여기서 법사님을 지키고 있어.”

“그동안 기억 좀 되살펴 봐야겠는걸… 일단 알겠다. 그래서 넌 어디 가는데?”

“수금하러 간다 왜.”

분신에게 할 일을 맡겼으니 정말로 출발할 시간이다.

나는 현대와 달리 한없이 맑은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보기만 해도 푹신해 보이는 구름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승하게 될 근두운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갔다 오게나! 빨리 돌아와야 하네 오공!”

분신으론 완전히 맘이 놓이질 않으셨는지 법사님은 마지막까지도 빠른 귀가를 종용하셨다.

휴우웅!

구름은 나를 태우고 큰손이 살고 있을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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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굴러 들어온 것이냐! 정체를 밝혀라!”

사실 나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하긴 했었는데 괜한 내 기우였나 보다.

법사님한테도 확인받긴 했었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다.

이들에겐 지금의 내 모습은 인간 손우진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맞았다.

요괴인 스승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렇게 윽박지를 순 없었겠지.

그것은 내 목 끝까지 들이 밀어진 병장기들이 몸소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놈! 빨리 입을 열지 못할까!”

기껏 구름을 타고 큰손의 거처로 몰래 떨어지려고 했건만 그런 노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 말고도 시도했던 침입자가 진작에 있었는지 하늘에는 방범용 결계가 존재했었고

나는 그런 결계를 맨몸으로 갈가리 찢고 들어와 버려서 거한 환영 인사를 맞이할 수 있었다.

역시나 귀한 분께서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그런 건지 수준 또한 상당해 보이는데…

한 명 한 명이 전장에서 구른 숙련된 히어로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 칠 수 있겠다.

이 시대는 신들과의 접점도 없을 텐데 그렇다면 순전히 개인의 무력이라는 거잖아?

고대 인류 무서워.

“저기요, 바쁜 와중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라?”

“여기가 이 나라의 황제 이세민 씨의 자택이 맞습니까?”

“이이! 무엄한 것이!!! 쳐라!”

“하아아압!!!”

“죽어라!!!”

이름 하나 부른 걸로 열들 내긴.

느그들 황제지 내 황제냐?

수많은 창과 검들이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내 목을 향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채애앵!!

“댁들 반응을 보아하니 맞게 찾아왔나 보네.”

“무… 무슨!”

“몸이 쇳덩이야!”

“이놈 인간이 아니다! 금군을 더 불러와!”

“크으윽!!!”

막혀버린 병장기들을 보고서 당황한 이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무력들이 뛰어나다고 해 봤자 내가 두른 신성의 강기를 어떻게 뚫겠나.

일이 더 귀찮아지기 전에 황제를 만나러 가야겠다.

나는 황제의 친위대 중 대장급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재빠르게 다가가 목을 움켜잡았다.

“크억!”

“야!!! 황제 어딨어? 그것보다 너 내가 누군진 알아! 내가 이 새끼야 느그 황제 의형제랑 인마! 밥도 먹고…”

친위대 장군의 멱살을 붙들고 뒤흔들며 정신을 쏙 빼놓았다.

이런 꽉 막힌 놈들은 무력으로 해결하려 해 봤자 끝까지 갈 뿐이기에 권위에 힘을 빌리는 것이 옳다.

“그…그만!!! 얘기를 들을 테니 이것 좀 놓으시오! 너희들도 물러나라!”

“하지만 장군!”

“빨리!”

““옙!””

부하들이 나를 두고 공격하건 말건 쉴새 없이 장군을 윽박지르자 항복 선언이 터져 나왔다.

상상 이상의 실력자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정말로 자신들이 결례를 저지른 건가 생각할 만도 하겠지.

“진작에 그럴 것이지, 잘하자?”

“그런데 아까부터 말을 짧게 하시는데…”

“어허!”

“예…”

실제 나이로만 따지자면 까마득한 어르신일 테지만 알 게 뭔가?

지금의 난 엄청난 꼰대 중의 꼰대, 손오공을 연기해야 한다고.

“그래서… 귀인 분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

꼰대력에 무릎을 꿇은 금군의 장군이 공손함 반, 의심 반이 섞인 어조로 내 정체를 물어보았다.

“하아. 거참, 내가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밥도 먹고 가르침도 받고 어?”

“그렇지만 그 절차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방문하시면 저희도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뭐야?”

“……”

무력과 권위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장군.

책을 잡히기 싫은 것인지 그냥 입을 다물고 만다.

내가 잘못하긴 했지.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상남자 손오공은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고증을 지켜야 했다.

“제천대성.”

“예?”

“이 몸의 별호다.”

수근수근.

“제천대성?”

“하늘과 맞먹는 성인이라고?”

“엄청나게 거창하군…”

다 들린다 새끼들아.

병사들은 내가 꺼낸 별호를 듣고선 자신들끼리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군은 내 별호를 듣고 난 다음 뻣뻣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헹, 그래도 꼴에 장군이라고 혼자서 계급값은 하는구나.”

“하지만… 그건 전설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 진짜, 하여간 이놈의 인간 놈들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질 않아요.”

내 몸에서 황금빛 굵은 털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삐죽 튀어나오는 송곳니.

붉어지는 눈.

황금색 눈동자.

이마 위에 자리 잡은 빛나는 금고아.

“헉!”

“저건!”

“손… 손!”

도술로 모습을 바꾸니 그제야 좀 믿는 눈치 구석이다.

“어이 장군, 이젠 좀 믿을 수 있겠어?”

“손오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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