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건우가 돌아가고 한강 에듀케이션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원래는 건우를 스카우트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회의였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강의를 들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더욱 명백해졌다.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열이면 열 모두 건우가 언제 정규 강의 반을 개설하는지에 대해 문의해왔다. 개중에는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역시하버드의위엄
#차원이다른하버드의대강의
#무엇을기대하던그이상의강의
#하버드#하버드의대#최건우#신세계#천재강사#한강에듀케이션#초대박
건우의 강의 관련 해시태그가 달린 각종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전화문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전화상담부서는 수강 문의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강 에듀케이션이 개업한 이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받아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들 별말씀이 없으시네요. 정 선생님?”
“네?”
“왼쪽 손모가지를 거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흠흠.”
다정이 약간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건우가 망신당하는데 자신의 손을 걸겠다던 정 선생은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만 계속했다.
“농담이에요. 사실 정 선생님이 표현을 과격하게 하셔서 그렇지 망신당할 거라는 의견에는 다들 동의하셨잖아요. 그러니 어제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모두 잊기로 하죠. 선생님들이나 학생들 반응을 보니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최건우 선생님 강의는 어땠어요?”
“보통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걸 잘 못합니다. 천재에게 당연한 이론도 평범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최건우 선생은 정말 쉽게쉽게 풀어 설명해주더군요.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저도 이번에 반성 많이 했습니다.”
“수학 파트 의견은 알겠습니다. 과학 쪽은 어땠어요?”
“그래도 수학은 기본에 충실했으니 충격이 덜하겠죠. 어쨌든 여러 가지 풀이방법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우리 쪽은 교습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 선생은 손다정과 나눴던 대화를 좀 더 정리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보여준 게 최건우 선생이 가진 패 전부랍니까? 저는 왠지 아닐 것 같아서요. 혹시 거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까?”
“최건우 선생 말로는 각 과목당 2~3개 정도 더 있다고 했습니다.”
“젠장. 미치겠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김 선생 입에서 저절로 거친 표현이 튀어나왔다.
“그 정도면 파급력이 어떻게 될까요?”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냥 지각변동이 일어난다고 보면 됩니다. 왜냐고요? 이렇게 되면 참고서뿐만 아니라 교과서까지 바뀔지도 모르거든요.”
“최건우 선생의 강의로 교과서까지 바뀐다? 엄청나네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어려워하던 굵직굵직한 주요 이론에 대한 접근 방법이 새롭게 등장했어요. 그리고 그 방법은 기존의 방식에 비해 비교도 안 되게 쉬운 방식이에요. 고지식한 선생들은 모르겠지만, 변화에 민감한 학생들을 어떤 방식을 배우고 싶어 하겠어요?”
“풀이 과정이 다르면 문제가 될 수도….”
“수능은 서술형이 아니라서 풀이과정이 어떻든 정답만 나오면 됩니다.”
“그럼 당연히 쉬운 방법을 택하겠군요.”
“그렇겠죠? 자의든 타의든 교습방법은 바뀔 수밖에 없어요. 교과서는 좀 느릴 수 있어요. 하지만 기존의 참고서는 다 폐기되고, 최건우 선생의 이론이 새로운 참고서에 실리겠죠. 그게 끝이 아닙니다. 시중에 깔린 강의 동영상도 전부 폐기될 겁니다. 폐기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결국,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까요.”
20년 동안 과학과 그것의 기초가 되는 수학이 그대로 정체되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학계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수업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건우는 변화된 교과 내용 중 문제가 없을 이론들을 미리 가져와 수업에 활용하려고 계획을 잡았다.
물론 사람들은 미래에서 온 정보라는 걸 모를 테니, 건우가 더더욱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그의 이론이 과학 교습방법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럼 영어는 어땠어요? 최건우 선생님이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영어 교습에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사실 평범했습니다.”
“그래요? 휴. 사람 같지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그런데 비범했습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평범한데, 비범하다니. 그런 모순된 표현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다정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젠 놀란 표정을 짓기도 지쳤다.
“그런데 그렇게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새로운 언어를, 그것도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는 특출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근성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죠.”
“그런데요?”
“항간에는 영어도 이해해야 쉽다고들 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암기가 중심이 되는 과목입니다. 최건우 선생도 영어에 대한 공부법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겁니다. 정석대로 공부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석대로 가르쳤습니다. 제가 아까 다른 과목 강의하는 모습을 봤는데, 영어 가르칠 때와 비교해보니 스타일이 좀 달랐습니다.”
“어떻게요?”
“아이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이 질문도 하기 전에 미리 ‘이 부분 헷갈리지? 나도 그랬어’라며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설명해주더군요. 왜 헷갈렸고, 어떻게 하면 이해가 되는지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제가 본 다른 수업은 아이들을 완벽하게 압도해서 가르쳤다면, 영어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르치는 것. 얼핏 듣기에는 오히려 영어를 가르치는 방식이 더 좋아 보이는데요?”
“꼭 그런 건 아니죠. 그냥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학과목같이 지각변동을 일으킬 일은 없겠죠. 그래도 영어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의 강사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온라인 강의까지 생각한다면 영어도 포기하기도 어렵겠네요. 그럼 이제 우리 학원도 대책을 마련해야겠군요. 최건우 선생님을 스카우트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최대한 활용할 방법도 같이 찾아봐야죠?”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여섯 과목 중 버릴 과목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천재라서 그렇다고 다들 이해해버렸다.
어쨌든 건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지금부터는 그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는 중요했다.
“벌써 10월입니다. 그러니 조금은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유명세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부터 입소문이 난다고 해도 유명세가 없다면 파급력은 기대 이하일 수도 있어요. 물론 여러 선생님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시기의 문제일 뿐 유명해지긴 하겠지만요.”
“수능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입니다. 새로운 공부법을 찾는 것보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죠.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고 해도, 지금 시점에서 괜히 새로운 이론을 가르쳐봐야 역효과만 날 수 있습니다.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래도 방법은 찾아야겠죠. 최건우 선생님의 능력이라면 1년 안에 분명히 성공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시기를 더 앞당기고 싶어요.”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장만복 회장님은 지금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길 원하십니다. 대중가요도 상위 순위에 노출된 노래의 매출이 월등한 것처럼 인터넷 강의도 순위 노출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지금 회의에 참석한 강사들은 그냥 강사들이 아니라 한강 에듀케이션을 처음 만들 때 힘을 합쳤던 사람들이다.
투자자의 의중도 중요하지만, 공동 경영자들의 동의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손 과장님도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원장님?”
“새로운 교습법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죠. 참고서는 보통 언제 만들어지는지 아시죠?”
“그럼요. 참고서는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만들어서 배포하죠. 그러니 출판사마다 지금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가고 있을 겁니다.”
“네. 지금은 준비 기간이죠.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최건우 선생의 교습법이 알려진다면 출판사마다 그 내용을 참고서에 첨부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그렇게까지. 그래도 저작권이라는 게 있는데요.”
“저작권이 교습법까지 보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 그렇죠?”
“어떤 A라는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달걀을 예로 사용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다른 출판사에서 그걸 보고 응용해서 메추리알을 예로 들어 설명해버렸습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원장의 지적은 타당했다.
건우도 법적 보호를 받으려고 저작권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 해당 교습법에 대한 최초 개발자라는 명성이 필요해서였다.
“애매하겠네요. 소송까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렇죠? 소송에서 이기기도 쉽지 않아요. 이겨도 우리나라는 징벌적 배상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배상액도 얼마 되지 않을 거고요.”
“그럼 잠깐 기다려 보는 건 어떨까요?”
“얼마나요?”
“다른 출판사들이 새로 참고서를 만들려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보안이 중요해요. 비밀을 유지하다가 다른 출판사에서 참고서를 다 만들어 배포할 때 우리도 동시에 깜짝 배포하는 겁니다. 그럼 최소 몇 개월은 독점할 수 있습니다.”
손다정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책을 제시했다.
“오! 그거 괜찮은 방법입니다. 게다가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운 참고서를 만든다고 해도, 이미 우리 참고서에 대한 명성은 올라가 버렸으니 큰 영향을 못 주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최건우 선생님은 몸이 한 개이니 오프라인 강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최 선생님이 만든 교재를 활용해서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면 됩니다. 우리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전부 최 선생님 책으로 바꾸면 최 선생님도 손해가 아니죠.”
참고서를 만들어 혼자만 사용하면 비효율적이다. 출판사들이 학교 선생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를 선택해달라고 로비하는 이유가 교재로 채택돼야 책이 팔리기 때문이다.
참고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참고서를 구매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학원에서 교재로 채택해서 책을 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학원 전체가 건우의 참고서를 사용한다면 학원은 학생이 몰려서 좋고 건우는 책을 많이 팔아서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된다.
거기에 다른 출판사가 새롭게 참고서를 만들기 전까지는 기존 학원들도 어쩔 수 없이 그의 책을 사용해야 한다.
비밀 유지도 어렵지 않다. 오늘 강의 내용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건우에겐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더 많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최건우 선생님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1년만 지나도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한강 에듀케이션입니다.”
“어떤 문제죠?”
“최건우 선생님과 학원의 수익이 별개일 수 있습니다. 최건우 선생님은 돈을 버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일단은 처음 한두 달이라도 우리 학원만 최건우 선생님 참고서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이 학생들에게 선생님들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명성을 올리면 그때부터는 선생님들을 괴롭히던 출신 학교 문제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시잖습니까.”
“그럼 최건우 선생님의 의사가 중요하군요. 설득하려면 납득할 만한 보상이 있어야 하겠죠? 무작정 우리를 위해 손해를 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괜히 그런 식으로 대했다가 사이가 틀어져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닭 쫓던 개 신세가 됩니다.”
현직 교사 출신들이라서 그런지 건우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런 모습에 손다정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학원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면 난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손 과장님 말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명성이니, 우리가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최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해 독점 기간을 얻어야 한다는 그런 뜻이니까?”
“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공격적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두 달의 유예기간을 얻는다고 해도 그동안 학생들이 몰리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두 달이 지나면 다른 학원들도 똑같은 교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건 문제가 되겠군요. 방안은 있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최건우 선생님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어떻게요?”
“하버드대 의대 재학 중인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겁니다. 강남, 서초, 잠실 전체에 전단을 뿌리고 해당 지역 케이블에 광고도 해야겠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많이 보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과도 계약해서 상영 전 광고를 틀 수 있도록 하고요.”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광고다.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은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려면 돈이 또 깨지겠군요. 결국, 장만복 회장님의 의중에 달려있네요. 저흰 이제 돈이 없으니.”
“최건우 선생님의 실력이 확실하다는 사실만 알려드리면 투자를 해주실 겁니다. 저를 이곳에 부르셔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하신 분이 장만복 회장님이시니까요.”
다정은 그렇게 건우를 활용할 수단을 찾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건우가 이미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의 폭발적인 유명세를 탈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