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세상에 학부모가 학원 강사에게 선물이라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호호호.”
“그러게. 그런데 뭘 받았기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 그렇게 비싼 건 아니에요. 사과 한 박스.”
“사과 한 박스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졌어?”
“교사 관두고 학원 강사 하니까 사람들이 은근히 만만하게 보고 그러더라고요. 돈독 올랐다는 말을 들었을 땐 교사 생활 잘하는 당신을 괜히 부추긴 건 아닌지 후회도 되고. 그런데 이렇게 선물까지 받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죠.”
“그래. 그동안 당신도 마음고생 많이 했어.”
사과 한 박스에 저렇게 좋아하는 와이프를 보니 기태의 마음이 짠했다.
“뭘요. 마음고생은 당신이 더 많이 했죠. 참! 그리고 저… 오늘 명품백도 하나 선물 받았어요.”
“뭐? 명품백? 그건 너무 과하지 않아? 어떤 학부모가 그런 걸 선물로 줘?”
“학부모는 아니고 친구가 사줬어요.”
“친구 누구?”
“왜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 남편 뒀다고 맨날 자랑하는 친구 있잖아요.”
“아! 알지. 애정인가 해정인가. 그 친구 말하는 거잖아. 그런데 그 친구가 왜 당신한테 명품백을 선물로 줘? 당신은 그걸 왜 받았고? 당신 그 친구 별로 안 좋아했잖아. 맨날 돈 자랑만 한다고.”
“그랬죠. 그런데 꼭 보고 싶다면서 나오라고 나오라고 자꾸 연락이 와서 어쩔 수 없어 나갔죠.”
“그랬더니?”
“그랬더니 갑자기 호텔로 데려가서 비싼 정식도 사고, 백화점에 가서 명품백도 사주고 그러더라고요.”
“그 참. 요상한 일일세.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그 친구라는 사람이 그냥 그렇게 당신에게 선물했을 리는 없고. 무슨 일이야? 뭐 돈이라도 빌려 달래? 아니지, 돈 빌려달라는 사람이 명품백을 선물할 리는 없지.”
“저…저기.”
기태가 자세한 상황을 묻자 와아프가 조금 주저하기 시작했다.
뭔가 할 말은 있는데 쉽게 꺼내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괜찮아. 일단 나도 알아야지. 무슨 일인데, 그래?”
“애정이 아들이 이번에 고3 올라가요.”
“그래? 벌써 고3이야? 세월 참 빠르네. 그런데?”
“그런데 지금 학원 수강신청이 너무 어렵다고 저보고 도와달라고 하네요. 사실 가방은 필요 없다고 했거든요. 일단 남편한테 물어보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그랬는데, 기어이 품에 안겨줘서 어쩔 수 없이 받아왔어요.”
“뭐야?”
“혹시 고…곤란해요?”
“하하하. 아니. 뭘 그런 걸로 내 눈치를 봐. 괜찮아 잘 받았어.”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고, 교사 박봉에 비싼 가방 하나 들고 다니지 못했던 와이프였다.
사과 한 상자 받고 그렇게 좋아하던 그녀였는데 명품가방 하나 받고 얼마나 조마조마했을지 안 봐도 훤히 보였다.
“정말 괜찮겠어요? 수강신청이 그렇게 어렵다던데. 나도 그냥 이야기만 한 번 꺼내 본다고 했어요. 기대는 말라고.”
“그렇지 않아도 수강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학원을 증축할 건가 봐. 그리고 손다정 과장이 이런 일을 예상했었는지, 강사들 몫으로 특별히 10명까지만 수강신청을 받게 해준다고 했어.”
지금 한강 에듀케이션은 수강신청을 하기 위한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분명 강사들에게도 수강신청을 도와달라는 들어오는 게 비일비재했다.
그런 압박들 때문에 신경 쓰느라 강의를 제대로 못 하면 곤란하다고 판단한 손다정은 수강 신청권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강사 1인당 10명까지 우선 신청할 자격을 주기로 했다.
음성적으로 학생들을 받으면 항의가 들어올 수 있지만, 지금처럼 차라리 제도로 만들고 오픈해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조금 불공평해 보일 순 있다. 학교도 아니고 학원이 그런 제도를 만들겠다는 어쩌겠나?
강사는 청탁 때문에 골머리 앓을 일 없어서 좋고, 학원 입장에서는 외부 압력을 강사에게로 분산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압박이 들어올 테고 누군가는 불만을 가지겠지만, 손다정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학원 컨설팅 한다는 예쁘장한 여자 과장이요?”
“예쁜가?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과장은 맞아.”
예전에 무의식중에 다른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했다가 삐치는 바람에 달래느라 고생했던 기태였다.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는 손다정이었지만, 그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과감하게 거짓말을 선택했다.
“치, 그 정도면 예쁘죠. 그런데 능력도 좋은가 봐요.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하고. 다행이다.”
“음… 혹시 모르니까 3명만 놔두고,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사 한 명당 수강 신청권을 10명에게 줄 수 있거든. 나야 크게 친분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3명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그걸 명품백으로 바꾸든, 명품지갑으로 바꾸든 당신 뜻대로 하면 돼.”
“여봉~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 당신이 전부 마음대로 결정해도 아무 말도 안 할게.”
“호호호. 고마워용~. 아참. 내 정신 좀 봐. 강의하고 와서 피곤한 사람 붙잡고 뭐하는 짓이래. 얼른 씻고 와서 누워요. 제가 안마해줄게용~”
손다정의 배려 덕분에 기태의 어깨는 평소보다 잔뜩 힘이 들어갔고, 와이프는 애교를 가득 담은 말을 하며 그의 옆에서 살랑거렸다.
***
서울중앙지검 XX호 검사실.
“어떻게 됐어? 조사는 해봤어?”
“네. 검사님. 아주 깨끗한데요.”
“수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일은 없었고?”
“네. 학원. 집. 학원. 집. 그렇게만 오갔습니다.”
“그래. 흠. 수능 문제가 유출되었다는 정황 같은 건 전혀 없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거참. 이해하기 힘드네.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수능 적중률이 50%가 넘을 수 있지? 아니 백 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 그런데 거의 똑같은 문제가 10%나 된다면서? 허 참! 항간의 말처럼 정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천재라서 그런 건가?”
검사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조사해보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그런데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뭔가 있는 게 분명한데, 도무지 그게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힘들기는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지. 그렇다고 아무 증거도 없는데, 끌고 와서 취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계속 따라다녀 볼까요?”
“아냐. 됐어. 일단은 그냥 놔두자고. 뭔가 있으면 내년에 또 움직이겠지. 수능을 3달 앞두게 되면 그때 다시 수사를 시작해보자고.”
“알겠습니다. 검사님.”
***
세상엔 많은 바람이 있다.
토네이도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바람도 있고 무더운 더위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산들바람도 있다.
그밖에 샛바람, 하늬바람, 갈바람, 마파람, 된바람, 높새바람 등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바람 중에 가장 질기고 뻔뻔한 바람이 바로 치맛바람이다.
한강 에듀케이션은 지금 엄청난 치맛바람 앞에 골치를 앓는 중이었다.
그나마 수강 신청권 제도라는 다정의 괜찮은 아이디어로 직접적인 로비나 외압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그 제도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한다. 지원자 100명 중의 10명이 빠져나간 효과밖에 되지 않았다.
돈 없고, 배경 없고, 아는 친구도 없는 학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결국 몸으로 때우는 방법뿐이었다.
12월 21일. 시간은 오후 11시.
한강 에듀케이션이 1월 수강생을 모집하기 바로 전날이다.
강한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뚝 떨어지는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멀리서 어둠을 뚫고 한강 에듀케이션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 모두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있었다. 입가로 삐져나오는 새하얀 입김은 오늘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여실히 보여줬다.
잠시 후 학원 정문으로 도착한 그들은 굳게 잠긴 현관 앞에 앉아 배낭에 넣어온 돗자리와 침낭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보온병과 휴대용 난로를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다들 이곳에서 밤을 보낼 각오처럼 보였다.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시곗바늘이 12시를 넘어서자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짧았던 줄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며 흠칫하기도 했지만,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맨 뒤에 섰다.
일행이 함께 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교대로 바꿔가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기온은 점점 떨어졌다. 바람마저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갔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없었다.
가지고 온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차를 마시며 두꺼운 점퍼 사이로 파고드는 추위를 힘겹게 몰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뒤늦게 편의점에서 핫팩을 사와 옷 안에 집어넣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밤이 깊어질수록 매서워지던 추위는 태양이 뜨면서 한풀 꺾였다.
그러나 수은주의 붉은 막대는 영상으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8시. 처음에는 그냥 조금 길기만 했던 평범한 줄이 이제는 한강 에듀케이션 건물 주위를 다섯 바퀴 이상 감은 기이한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사나운 추위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몰려든 인파들이 내뿜는 열기 덕분에 저체온증 같은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원 문을 열기 위해 출근하던 직원은 건물 근처도 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새치기 시비가 있었는지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절대 길을 열어주지 않아서였다.
아침 뉴스를 통해 이 사태를 알게 된 원장과 손다정 과장이 도착해서 겨우겨우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야 비로소 건물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가 미리 예측하고 준비를 해야 했는데.”
“아니야. 이게 무슨 손 과장 잘못이겠어. 이건 아무도 예상 못 해. 이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여기가 무슨 한국시리즈 표를 파는 야구장도 아니고, 아이돌 그룹 콘서트 티켓을 파는 곳도 아닌데 말이야. 그것참. 정말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군. 그런데 손 과장.”
“네. 원장님.”
“이제 어떻게 하지?”
언젠가부터 김상문 원장은 손다정을 굉장히 의지했다.
교사 출신의 잘 가르치는 강사일 뿐 경영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그에게 손다정은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그게, 저도 막막하네요. 우선 모든 강사 선생님들을 포함한 직원에게 비상령을 내리고 바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몇몇 직원들은 8시에 출근하지만, 강사와 상당수의 직원은 오후가 출근 시간이다. 오후부터 밤 10시까지 강의를 하는 학원의 특성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전화 돌렸어. 조금 있으면 다들 도착할 거야. 난 뉴스에 우리 학원이 나와서 깜짝 놀랐잖아. 세상에! 아침 뉴스에서 우리 학원을 보게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무슨 사고가 났거나, 학원 근처에서 시위라도 하는 줄 알았어요. 멍하니 뉴스를 보는데, 어떤 분이 학원 수강 신청 때문에 줄을 서는 거라고 인터뷰하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지금 학원을 둘러싸고 있는 줄이 다섯 바퀴야. 다섯 바퀴. 저 정도면 대체 몇 명이나 모인 거야?”
“거의 삼천 명 정도는 모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원장님.”
“무슨 좋은 수라도 생겼어?”
“우선 경비업체에 긴급 출동 요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비업체라…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전부 우리 학원 책임이 될 수도 있으니.”
“그리고 인근 병원과 소방서에 협조를 요청해서 구급차도 몇 대 지원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보니까 오랫동안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상태가 엉망으로 보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따뜻한 차나 물 같은 건 우리가 당장 지원하면 되지만, 혹시 모를 일입니다.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좋겠죠.”
“그래. 좋은 생각이야. 만에 하나라도 저체온증에 걸린 사람이 나올 수 있으니, 손 과장이 알아서 조처를 해줘.”
다정의 요청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들이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밖에서 추위에 떨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니와, 잠을 못 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들이 폭력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야겠지만, 두 사람은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직원들이 모두 출근했고, 인근 병원과 소방서에서 급한 대로 당장 보낼 수 있는 구급차를 수배해서 보내왔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큰 덩치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설 경비업체 직원들이 학원으로 도착했다.
손다정의 재빠른 판단 덕분에 불안하던 한강 에듀케이션 주변이 안정을 되찾았다.
“원장님. 일단 급하게 필요한 조치는 다 취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선생들은 다 출근했고?”
“최건우 선생 빼고는 모두 출근했습니다.”
“응? 최건우 선생은 왜? 이 사태를 만든 주범이 최 선생인데, 왜 아직 출근을 안 해?”
한강 에듀케이션 입장에선 분명 은인인데, 너무 과하게 능력이 출중해서 그런지 건우가 온 이후 학원이 평안할 날이 없을 지경이다.
“최 선생 막냇동생이 유치원생인데 방학했답니다. 그래서 자신이 출근하면 막내 혼자 있어야 한다고 오후에나 출근하겠답니다.”
“지금 여기 상황은 이야기해줬어?”
“네. 그런데 자기가 출근해봤자, 별로 도움도 안 될 거라면서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최 선생 막내가 7살이라면서? 부모님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이해해야지.”
“그리고 수강신청 시간을 앞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예정 시간이 오후 1시부터였지?”
“네. 그래서 저도 10시쯤 출근해서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몰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일어날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습니다.”
아무리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해도, 오늘 일은 자신의 실책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정의 표정은 계속 침울했다.
“어허. 그 사람 참. 이건 어디까지나. 천재지변이야. 치맛바람이 불러일으킨 천.재.지.변. 알겠어?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힘내서 마무리나 잘하자고. 그리고 수강신청은 준비되는 대로 바로 시작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럼 전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잠시 후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한동안 닫혀있던 한강 에듀케이션의 현관문이 열렸고,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12시간 가까이 기다린 사람들이 추위에 언 귀와 손을 비비며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강신청이 시작되자 차근차근 줄이 줄어들었고, 접수에 성공한 사람들은 신줏단지 모시듯 수강증을 가슴에 품고 나갔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애초에 많은 자리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준비를 했다고 해도 삼천 명이 넘는 인파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점점 더뎌졌고, 얼마 가지 못해 완전히 멈춰버렸다.
확장 공사는 계획만 잡았지, 아직 시작도 못 했다.
인테리어 공사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 봐야 2월부터 개설할 수 있었다. 그것도 빨라야 2월이다.
기존 강사들의 강의 시간은 이미 꽉 찼다. 새롭게 만들 학원 별관에서 수업하려면 새로운 강사를 모집해야 하는데, 실력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줄이 완전히 멈추자 밤새 기다리던 사람들이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줄을 섰던 사람들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경비업체 직원들이 모든 수강신청은 완전히 끝났다며 이만 해산하라고 말을 했지만, 그냥 발걸음을 돌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강하게 항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떻게든 방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수준을 넘어서서 일촉즉발의 사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