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37화 (37/256)

제37화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산장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웬 미친 경찰 하나가 나타난 거야.

목격자도 없고,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서 문제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젠장! 빌어먹을! 염병!

크흑! 대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거야!

“개놈의 새끼들 드디어 찾았네.”

“너…넌 뭐냐?”

“뭐긴 뭐야. 경찰이지.”

“경찰? 경찰이 왜 여기에 왔어.”

“왜긴 왜야! 사기꾼이자 살인범이니 잡으러 왔지. 숨어 지내면 평생 안 들킬 줄 알았어?”

“뭐? 그건 어떻게…. 그런데 넌 처음 보는 놈이네. 관할 경찰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긴 알았어?”

“관할 경찰? 역시나 뒷배가 있었나 보네. 그런데 난 그런 거 필요 없는 사람이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지청 광역수사대 팀장이거든.”

“뭐? 광역수사대 팀장? 얘들아. 광역수사대 팀장이래. 크크크.”

생각지도 못한 경찰이 나타나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병자였어.

광역수사대 팀장이라니. 네가 광역수사대 팀장이면, 나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다.

병신. 감히 누구 앞에서 사기를 쳐!

“이거 완전 미친놈이구먼. 광역수사대 팀장? 그것도 서울지청의? 아이구 그러셨어요? 그런데 팀장이라는 분이 왜 혼자 오셨어요? 간이 부어서 배 밖으로 나오셨어요? 생긴 건 경찰이 아니라 꼭 어디 나이트 기도같이 생긴 이 씨밸넘아.”

“아! 하여간 이놈의 외모는 어딜 가나 오해를 받는다니까. 어이! 난 광수대 팀장 맞고, 우리 애들은 일하느라 바쁘거든. 그러니 어쩌겠어. 너희처럼 허접스러운 놈들은 내가 직접 잡으러 와야지.”

갈수록 가관이다. 저런 머리로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우리가 사기꾼에 살인범이라는 것까지 아는 걸 봐서는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여길 혼자 온 건 저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다.

어리석은 놈.

덩치를 보아하니 싸움에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우리에게는 로보캅이 있거든.

그게 끝이 아니야. 옆에 있는 휘발유도 싸움 좀 한다는 경찰과 다이다이로 붙으면 거의 질 일이 없는 녀석이야.

결국, 제 무덤을 제가 판 꼴이지. 쯧쯧. 멍청한 놈.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어. 그만큼 로보캅과 휘발유를 믿었어. 도망갈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지.

그냥 여유롭게 싸움 구경이나 하는 거지. 원래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잖아.

“캅아. 빨리 끝내고 여길 뜨자. 혼자 왔다고는 해도, 언제 다른 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염려 마세요. 백 선생님. 제가 저 건방진 놈. 뼈마디 하나하나를 전부 분질러버릴 테니까.”

빨리 끝내라고 했더니 뼈마디 타령이나 하고. 하여간 머리 나쁜 놈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니까.

어휴! 그래도 뭐 어쩌겠어. 답답해도 이럴 때를 대비해 데리고 다니는 게 로보캅인데.

로보캅이 저렇게 말했으니 뼈마디 하나하나 전부 부러질 때까지 나도 못 말려.

그래도 경찰인데…. 죽이면 안 되는데. 설마 그런 머리는 있겠지.

퍽. 퍽. 퍽.

짝. 짝. 짝.

휘유

역시 로보캅이라니까. 이 경쾌한 소리. 그런데 오늘은 특이하게 뺨까지 때리네.

자칭 광역수사대 팀장 자식. 엄청 굴욕감 느끼겠는데? 크크크.

응?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네. 내 눈이 이상한가? 맞고 있어야 할 놈이 오히려 때리고 있어. 그것도 로보캅 혼자가 아니라 휘발유까지 얻어맞고 있잖아.

이건 아니야! 뭐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되었어. 세상에 로보캅을 가지고 노는 경찰이 있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저놈은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면 로보캅을 저렇게 가지고 놀 수 없어.

좆됐다! 도망가야 해.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어이. 거기까지.”

도망가려고 하는데, 자칭 광역수사대 팀장이 날 불렀어.

미쳤어? 부른다고 멈추게. 난 돌아보지도 않고 황급히 도망을 가려고 했지.

그런데 순간 머리가 번쩍이더니, 눈앞이 하얗게 변하네.

어라라. 서…설마 나 지금 기절하는 거야? 으악! 이럼 안 되는데…. 자꾸 눈이 감겨.

***

미친소 최광우.

고자요정 최광우.

광우를 가리키는 두 개의 별명이다.

첫 번째 별명은 그의 이름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밝을 광(曠)에 도울 우(祐)였으나, 가끔씩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미칠 광(狂)에 소 우(牛)를 써서 미친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별명인 ‘고자요정’에서 고자의 주체는 광우가 아니다. 주체는 범인들.

유연의 일치인지 그가 체포했던 범인들은 유달리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연쇄 성폭행범이나 아동성폭범의 경우는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양쪽 고환이 터지거나 성기가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 ‘고자요정’이다.

경찰대학교 4학년 시절 이미 사법시험을 패스할 만큼 법에 대해서는 바싹했기 때문에 과격한 범인체포에도 큰 징계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하의 광우도 권력의 중심에 있는 고위직 공무원의 아들을 고자로 만들었을 때는, 다들 더 이상의 경찰생활은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그를 도와준 사람이 장만복 회장이었다. 비록 경정에서 경감으로 강등되기는 했지만, 고위직 공무원을 건드린 대가치고는 매우 경미(?)한 징계였다.

경감으로 내려간 광우는 강등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수사 일선에서 무수한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경정으로 다시 승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팀장으로 임명되었다.

광우는 항상 경찰을 천직이라고 생각했으며 경찰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 경찰직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이 장만복 회장이니, 광우에게 그는 생명의 은인과 동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이 그를 직접 찾아와 부탁했으니, 공과 사가 철저한 천하의 미친소 광우도 그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한강 에듀케이션에 찾아가 건우를 만났다. 그가 봐도 건우는 정말 괜찮은 청년이었다.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업을 포기한 것도 대단해 보였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을 돕기 위해 장학회를 만드는 것도 놀라웠다.

장만복 회장이 왜 직접 광우를 찾아와 부탁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정을 미리 알았다면 자신이 나서서 먼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조금은 황당한 건우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복귀한 광우는 최선을 다해 이 사건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한 건 건우가 알려준 차량번호 조회였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대포차였다.

그다음으로 건우 아버지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던 공중전화를 조사했다. 딱히 뭔가가 나오는 것은 없었다.

당연히 이쯤에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공중전화가 있는 지역 주변을 중심으로 해서 폐차장을 하나둘씩 훑고 다녔다. 이 작업만 해도 며칠이 걸렸지만, 광우는 인내심을 가지고 탐문 수사를 계속했다.

수사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그가 찾던 자동차를 알아보는 폐차장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미 폐차를 해버렸기 때문에 증거는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도 광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날짜를 중심으로 플러스마이너스 5일에 해당하는 폐차장 주변 CCTV를 전부 확보했다. 그때부터는 정말 인내심의 싸움이었다.

거의 일주일을 CCTV만 돌려본 끝에 드디어 쥐색 쏘나타를 타고 다니는 남자가 찍힌 영상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한 지 닷새가 지나고 마침내 영상 속의 남자가 식료품을 사기 위해 인근 마트에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광우의 끈기가 드디어 결실을 만들어냈다.

부하 직원에게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광수대 팀장의 결재가 필요한 일은 연륜이 있는 부팀장에게 모두 떠넘기고 사건에 매달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우는 조심스레 남자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인적이 거의 없는 외딴 산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산장이 나타났다. 놈들의 아지트가 분명했다.

그때부터 조용히 산장 주변을 관찰했다. 예상 도주로를 돌아다니며 산의 지형까지 샅샅이 파악했다. 몇 시간에 걸친 준비 작업은 끝났다.

완벽했다. 이젠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산장을 들이닥쳤다.

“개놈의 새끼들 드디어 찾았네.”

광우는 큰 소리로 자신이 온 것을 알렸다. 그의 목소리에 3명의 남자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타났다.

유치한 대화가 오갔다.

한 놈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면서 싸움깨나 하게 생긴 덩치 녀석에게 지시를 내렸다.

“캅아. 빨리 끝내고 여길 뜨자. 혼자 왔다고는 해도, 언제 다른 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염려 마세요. 백 선생님. 제가 뼈마디 하나하나를 전부 분질러버릴 테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덩치가 광우를 향해 돌진했다. 확실히 한가락 하는 놈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대한민국 최강의 경찰, 고자요정 최광우였다.

광우는 아주 간단한 움직임으로 덩치의 움직임을 피했다. 회피 동작에 허점을 드러내자 주저하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퍽!!!

“윽!”

덩치는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충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광우는 덩치를 내버려두고 황당한 얼굴로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대머리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놀란 그는 재빨리 방어를 취하려고 했다.

퍼억!

“크악!”

“뭐야. 대머리는 덩치보다 훨씬 약골이잖아. 젠장! 손맛만 버렸네. 이렇게 맷집이 약해서야 때릴 맛이 생기겠어. 정신 차리고 이빨 꽉 물고 버텨라. 딱 100대만 때릴 거니까. 기절하면 그때마다 100대씩 추가다.”

순식간에 덩치와 대머리를 제압한 광우였다. 그때부터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퍽. 퍽. 퍽.

짝. 짝. 짝.

“오! 대머리라서 그런가? 손바닥이 짝짝 달라붙네.”

그렇게 구타를 즐기는 순간, 백 선생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슬글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곧바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까지.”

도망가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광우는 발밑에 굴러다니는 짱돌을 하나 주워 도망가는 남자를 향해 냅다 던져버렸다.

쩍.

짱돌이 백 선생의 뒤통수에 부딪히는 순간 ‘퍽’이 아니라 ‘쩍’이라는 소리가 났다.

“아놔! 이런! 머리 깨진 소리다. 쯧. 여전히 힘 조절이 안 되네. 그러기에 도망가지 말라니까, 하여간 말을 안 들어요.”

안타깝다는 듯 말은 했지만, 광우의 얼굴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옆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덩치와 대머리는 악마 같은 그의 모습에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광우는 백 선생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멱살을 부여잡고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부터 내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한다. 짱돌로 손톱 위를 찍어버릴 예정이다. 알아들어?”

“저…저기. 경찰이라면서요. 경찰이 이래도 됩니까?”

대머리가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이야! 대머리. 넌 뭐라고 부르면 되냐?”

“휘발유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옆에는?”

“로보캅입니다.”

“하여간 별명도. 참. 구질구질해. 휘발유가 뭐냐? 휘발유가?”

“죄송합니다.”

“네가 휘발유인 게 왜 나에게 죄송할 일이야? 그렇게 떨지 마. 난 인자하다. 고로 너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지. 난 경찰이 맞다. 경찰이 이래도 되냐고? 당연히 안 되지. 민중의 지팡이가 그러면 안 돼. 그런데 난 된다. 난 지금 살인범 세 명과 대치 중이거든. 게다가 너흰 칼까지 들고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덩치와 대머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네? 저희에겐 칼이 없는데요.”

“없긴 왜 없어? 저기 안에 들어가면 가면 식칼이 있어 없어?”

건우가 세 사람이 숨이 지내던 산장을 가리켰다.

“있습니다.”

“그렇지? 난 그 칼을 가져와 저기 쓰러져 있는 백 선생이라는 작자의 손에 들려줄 거야. 칼로 나를 위협한 거지. 위기감을 느낀 나는 짱돌을 던져 제압했고. 이해가 가?”

“아니. 그런데. 정말 경찰이 그러면 안 되지 않나요? 크아아악! 아이고! 사람 죽네! 아이고! 아이고! 내 손가락이야.”

질문이 계속되자 짜증이 난 광우는, 들고 있는 짱돌로 대머리의 손가락을 찍어버렸다.

“개자식이. 미쳤나. 한 번 받아주니까 내가 만만해 보이냐?”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나 죽어.”

“어쭈구리! 지금부터 입에서 엄살 부리는 소리가 나오면 그때마다 짱돌 한 대씩이다. 알아들어?”

“넵! 알겠습니다.”

일사불란한 대답이었다. 엄청난 고통에 바닥을 뒹굴던 대머리도, 깡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덩치도 광우의 잔인한 행동에 겁을 먹었다.

광기에 찬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최진호 씨, 조수현 씨에 대해서 알아 몰라?”

“그게 누구죠?”

“이 새끼들 봐라. 몇 달 전에 너희가 차로 친 분들. 이래도 기억이 안 나?”

“아닙니다. 납니다.”

“그렇지? 역시 알고 있었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누가 죽였어?”

광우의 대답에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켰다. 순간 짱돌을 들고 있던 광우의 오른손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가차 없이 내리찍을 기세였다.

“으아악!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팀장님. 제가 전부 말하겠습니다. 그건 로보캅이요. 로보캅이 그랬어요.”

“뭐? 너. 휘발유 이 개자식이 날 배신해?”

짱돌이 주는 고통을 맛본 한번 대머리는 의리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병신들 꼴값을 떨어요. 야! 로보캅.”

“넵. 형사님. 말씀하십시오.”

덩치는 광우가 자신을 부르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지금부터 2분의 시간의 너에게 준다. 도망쳐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귀 못 알아들어? 짱돌로 맞아봐야 정신 차리겠어?”

“아닙니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렇지? 지금부터 2분의 시간을 줄 거야. 튀어. 아니면 넌 나에게 죽도록 맞을 거야. 지금 출발한다. 실시.”

“시…실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덩치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곳 산장에서 지냈을 때부터 가장 먼저 확보한 것이 도주로였다. 광우가 방심하는 거라면 자신은 이 공포스러운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실시’라는 말에 무작정 도주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모아서.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