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현수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열고 인터넷 강의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 다음 소리를 잔뜩 키운다.
이불을 정리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강의를 하는 강사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진다.
간단한 스트레칭이 끝나면 스마트폰을 들고 주방으로 간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일어났니? 자, 여기 녹즙.”
현수의 어머니는 현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아침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들이 일어날 시간 즈음에 몸에 좋다는 채소와 과일을 넣고 녹즙을 만든다.
현수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어머니가 건네주는 녹즙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잘 먹었어요.”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녹즙 잔을 식탁 위에 툭 올려놓고, 화장실로 향한다.
거실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는 동안 현수의 스마트폰에서는 시끄러운 강의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그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왜? 당연히 고3이니까 그렇다. 고3이 되면 웬만한 일은 모두 용서되고 이해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현수는 변기 앞에 서서 한 손으로 바지를 내리면서도 눈과 귀는 계속 스마트폰에 집중되어 있다.
볼일을 다 보고 물을 내리고 간단하게 손을 씻고 세수를 할 때도 그는 강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식사할 때도 여지없다. 숟가락질을 할 때도 귀는 여지없이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다.
예전에는 식사시간에 대화도 하고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큰아들이 고3이 되면서 밥 먹는 내내 온 가족이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현수의 아버지는 유난을 떠는 아들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지는 못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어디. 대학만 붙어봐라, 내가 가만 놔두나.’ 라고 다짐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는다.
왜? 고3이니까!
식사를 마치고 등교준비가 끝나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학교로 출발한다.
마주 오는 행인과 부딪힐 뻔도 하고, 살짝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런 위태로움을 겪으면서도 버스정류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서둘러 버스 위로 올랐다. 오늘은 웬일인지 자리가 하나 비었다. 재빨리 자리에 앉은 다음, 또다시 인터넷 강의에 집중한다.
그런 현수의 인터넷 강의 삼매경은 학교에 도착해서야 끝이 난다. 그의 학교는 등교와 동시에 스마트폰을 선생님들이 보관하다가 하교할 때 돌려준다.
현수는 그런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그냥 사용하게 두면 학생들 중 상당수가 그걸 가지고 수업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딴짓을 한다.
그 시간에 온라인 강의라도 들으면 차라리 낫지, 인터넷 검색은 양반이고, 웹툰을 보는 건 평범하며, 심지어 야동을 보는 학생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만 배려해달라고 선생님을 조를 순 없었다.
“응! 이건 뭐지? 갑자기 이렇게 조회수가 올라가? Choi’ce Edu? 에이. 뭐야 이 엉터리 단어는. 쯧쯧. 뻔하네. 또 누가 작업 들어갔나 보다.”
포털사이트 바나나가 운영하는 TV 캐스터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인터넷 강의도 바나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최신 인터넷 강의를 검색하고 있는데, 못 보던 강사의 강의가 순위권에 올라왔다.
아무리 건우가 이슈가 되고 한강 에듀케이션이 전국 뉴스에 나왔다고 해도, 중소도시에 사는 현수는 아직 건우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 현수에게 건우는 그저 듣보잡. 사정을 모르는 현수는 조회수가 빠르게 올라가는 건우의 동영상에 시큰둥했다.
더군다나 같은 사람이 6과목 강의라니…. 솔직히 뭐 이런 이상한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럼에도 순위권에 올라왔다는 것은 연예인기획사에서 음원 장난을 치듯, 상위권에 오르기 위해 고의로 작업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음반도 사재기가 있고 책도 사재기가 있는 것처럼, 온라인 강의도 사재기가 있다.
온라인 강의 조회수는 매일 자정에 새롭게 업데이트되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 유료 결제를 5,000건 정도 해버리면 자연스럽게 1위로 올라간다.
그때부터는 그냥 내버려둬도 1위 동영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들이 알아서 조회수를 올려준다. 그게 바로 온라인 강의 사재기다.
“에이. 저 새끼 때문에 오늘은 텄네. 그냥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 바나나 놈들. 예전부터 이런 거 좀 잡아내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그대로야.”
이런 식으로 사재기가 시작되면 다른 좋은 영상들이 순위권에 올라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고3인 현수가 바나나 TV 캐스터를 일일이 뒤지며 좋은 영상을 찾으러 다니긴 어렵다.
짜증이 난 현수는 건우를 향해 시원하게 욕을 하고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순위권에 있었다. 아니 어젯밤보다 순위가 더 올라 완전히 바나나 TV캐스트 교육방송 부분을 점령해버렸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순간 호기심이 일었지만, 일단 학교는 가야 해서 확인하는 건 나중으로 미뤘다.
“야! 현수야. 너 어제 최건우 선생님이 하는 인터넷 강의 들었어?”
학교에 갔더니 현수만큼이나 인터넷 강의에 중독된 친구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누구? 최건우? 혹시 혼자서 6과목 강의를 올린 그 또라이 강사?”
아침에도 여전히 순위권에 있는 것이 이상했지만, 정상적으로 순위를 유지하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1과목이라면 몰라도 6과목은 너무 심했다.
그래서인지 건우에 대해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뭐? 또라이? 헐! 너 그 선생님 인강 못 봤구나? 완전 대박인데 어쩌다가.”
아직 건우의 온라인 강의를 못 봤다는 사실을 확인한 친구는 굉장히 의기양양해져서는, 다소 거만한 어투로 현수를 내려다봤다.
온라인 강의에서는 항상 현수가 한발 앞섰는데 이번만큼은 자신이 앞섰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
“야! 구라를 쳐도 제대로 좀 쳐. 6과목 강의를 혼자 다하는 또라이가? 그게 말이 돼? 대박은 개뿔. 자기가 무슨 공부의 신이라도 된데? 딱 봐도 먹튀하려고 작업 치는 게 보이는데, 대박은 무슨 얼어 죽을 대박.”
평소와 다른 거만한 친구의 모습에 현수는 왈칵 짜증을 부렸다.
“구라는 무슨. 진짜야 인마! 그리고 최건우 선생님 공부의 신 맞거든!”
“뭐?”
“최건우 선생님. 하버드대 의대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학원 강사를 하는 거라던데. 야. 그냥 의대도 아니고 천재들만 다닌다는 하버드 의대다. 그 정도면 공부의 신이라고 할 만하지 않아?”
“하버드? 그것도 의대? 아 놔! 점점 갈수록. 야! 너 같으면 미래가 창창한 하버드 의대 그만두고 학원 강사 하겠어? 뇌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
친구의 이야기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하버드 의대 출신의 강사라니. 거짓말을 해도 정도껏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친구 녀석이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상대하느니 무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책상에 있는 참고서를 향해 눈을 돌렸다.
“와! 진짜. 이 자식 갑자기 사람 못 믿는 불신병에라도 걸렸나? 미안한데 바나나 TV캐스트 강사 약력 란에 하버드 의대 중퇴라고 나와. 나도 믿기지 않아서 그 선생님이 직접 출강한다는 한강 에듀케이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거든.”
“그런데?”
“거기에도 하버드 의대 중퇴라고 나와 있었어. 이정도면 믿어줄 만하지 않아? 솔직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학력 위조를 해.”
“진짜야?”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바빠서 세 과목밖에 못 들어봤는데. 대박. 한마디로 해도 두 마디로 해도 대박 대박이야. 카리스마도 짱이고, 목소리도 귀에 쏙쏙 들어와. 그런데 강의 내용은 더 대단해. 공부의 신이 내려와 나를 가르치는 기분이었어.”
“구라 아니지? 장난이면 너 진짜 죽는다?”
“맹세. 진짜 맹세.”
현수가 진지하게 물었는데도, 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장난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럼… 아침에 봤던 그 순위가 정말이란 말이야?”
“그렇다니까. 거기다 더 대박이 뭔지 알아?”
“뭔데?”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현수가 점점 더 관심을 두자 수다 떨기 좋아하는 친구는 더욱 신이 났다.
“교재를 이북으로 판매해.”
“뭐? 이북?”
“응. 가격도 싸. 권당 오천 원. 진짜 저렴하지? 요즘 좀 괜찮은 참고서 사려면 만 오천 원 넘게 줘야 하잖아. 근데 아무리 이북이라고 해도 오천 원이면 완전 대박이지 않아?”
“그렇긴 한데 동영상이랑 교재를 스마트폰으로 동시에 볼 수는 없잖아.”
“프린트도 할 수 있어. 이북을 구매하면 프린트도 할 수 있게 설정을 해놨나 봐. 그게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고 컴퓨터로 교재를 보든지 해야지. 아무튼, 방법은 여러 가지야.”
친구는 이미 건우의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이북을 그렇게 프린트할 수 있으면 한 사람이 여러 번 해서 친구들 끼리 돌려볼 수도 있잖아.”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교재를 보고 싶을 때도 있을 것 아니야? 그러려면 어차피 이북도 구매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긴 하네. 그래도 이북까지 출시하면 정말 편하긴 하겠다.”
현수는 어느새 친구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건우의 동영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엄마한테 졸라서 태블릿 하나 주문하려고.”
“무슨 태블릿?”
“아직 정하진 않았어. 아이패드를 살지, 갤럭시 노트를 살지. 처음엔 목돈이 나가는데 나중엔 더 이득일 걸? 따로 프린트할 필요 없지. 태블릿으로 바로바로 필기할 수도 있지. 얼마나 좋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참고서 이북이라는 거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이제는 무겁게 참고서를 과목마다 책가방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어. 하버드 의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생각하는 게 차원이 달라. 어떻게 참고서를 이북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같은 남자인데도 반할 것 같아. 크크크.”
“나도 엄마 졸라서 갤럭시 노트나 아이패드 사달라고 해야겠다.”
현수는 아직 동영상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태블릿을 살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태블릿으로 필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기분 좋은 상상 덕분에 학교 수업은 하루 종일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딱.
“아야. 형! 아프잖아.”
“스마트폰 닫아. 내가 이야기했지. 가족끼리 있을 때는 스마트폰 사용금지라고. 전화 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자질 금지, 인터넷 금지. 그건 혼자 있을 때나 해.”
아침 등교 시간. 건우는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는 동우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렸다.
건우와 동생들이 상의해서 만든 금지조항을 어겼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스마트폰의 인기가 지나치게 높아지다 보니, 심지어 식사시간에도 바나나톡 등을 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보다 못한 건우가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해 스마트폰 사용 제한 방안에 대한 안건을 상정(?)하고 표결에 부쳤다.
언젠가부터 로맨스소설 동호회에 가입해서 누님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바나나톡질에 여념이 없던 동우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혼자만의 반항일 뿐이었다. 아직 피처폰을 사용하는 은우와 건우의 말이라면 일단 고개부터 끄덕이고 보는 정우 덕분에 안건은 3:1이라는 압도적 스코어로 통과되었다.
스마트폰 사용 제한 방안에 대한 안건이 통과된 이후 동우 또한 그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나도 알지. 차 안에서는 스마트폰 사용금지. 왜냐하면, 형은 우리의 형이지 운전기사가 아니니까.”
“그렇게 잘 아는 녀석이 왜 차 안에서 스마트폰이야?”
“신기해서 그래, 신기해서.”
“뭐가 신기한데?”
“형이 만든 인터넷 강의 말이야. 사실 그동안 형이 학원 강사를 한다고 해도 실감이 안 났거든. 나도 학원에서 일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형한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형이 강사가 됐구나 싶긴 한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실감이 안 났어. 내가 형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 그거 봤어? 그런데?”
동우가 자신의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고 하자 건우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형이 만든 온라인 강의가 딱하고 올라오는데, 그걸 보니까 우리 형이 학원 강사가 맞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하더라고.”
“오버하기는.”
“맞다! 그러고 보니 형은 우리한테 어떻게 말 한마디도 없이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할 수 있어? 진짜 서운하네. 친구 중 한 명이 대박 인강 하나 떴다면서 아침에 링크하나를 걸어주는데 거기에 형 얼굴이 보이는 거야. 내가 얼마나 놀랐겠어?”
“하하하. 그건 미안하다. 내가 요즘 좀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 그런데 뭐 그걸 굳이 이야기해야 해?”
흥분하며 말하는 동우 앞에서 건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당연히 해야지. 안 그러냐, 얘들아?”
동우의 말에 정우와 은우도 서운했는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봤지, 형? 얘네들도 서운하다고 고개 끄덕이잖아.”
“진짜 그랬어?”
“그래. 형. 이번엔 좀 실망이야. 우리 보고는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도 다 이야기하라고 해놓고, 어떻게 온라인 강의처럼 큰 사건을 이야기 안 할 수 있어!”
“맞아. 오빠. 오빠 나빠. 칫!”
건우는 동생들의 반응이 낯설었다. 예전이었다면 건우가 무엇을 하든 그렇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새로운 삶에서는 호들갑스러울 정도의 관심을 받으니 괜스레 기분이 우쭐해졌다.
“미안해. 앞으론 꼭 먼저 이야기할게. 솔직히 쑥스러워 그랬어. 잘 될지도 모르는데, 괜한 설레발로 너희 앞에서 망신당하기 싫었거든.”
“자신감 넘치는 형도 쑥스러운 게 있구나. 그렇다면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할게. 근데 형.”
“응?”
“참고서 이북은 뭐야? 나도 잠깐 봤는데 진짜 편해 보이긴 하더라.”
“아, 그거? 말 그대로 이북이야. 전자책. 바나나가 TV캐스트뿐만 아니라 이북 사업도 하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싶어 이북 참고서에 대해서도 문의해봤거든. 바로 OK 하더라고.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한 했나봐. 그런데 아직은 이윤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가까워.”
건우의 말처럼 참고서 이북은 아직 생소한 시장이다. 첫 시도이기 때문에 앞으로 시행착오도 많이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을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사업이었다.
선점 효과라는 게 있다. 가장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그런 생각에 건우는 과감하게 참고서 이북이라는 낯선 시스템을 도입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