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49화 (49/256)

제49화

건우가 서른다섯이 될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직접 운영하는 학원 때문에 정신이 없이 바빴었다.

운영도 운영인데 실력 있는 강사를 모셔오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 무렵 학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역사참고서가 상당한 화제였다. 호기심에 건우도 사서 읽어보았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재미있게 설명해놓은 교재를 보며 저자에 대해 깊은 관심이 생겼다.

‘이런 실력을 가진 사람을 우리 학원 강사로 스카우트하면 참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소식통을 동원해 저자의 연락처를 얻었다.

짧은 통화를 했을 때만 해도 느낌이 좋았다. 게다가 그런 실력자가 아직도 보습학원에서 강사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윤은영은 처음에는 곤란하다고 이리저리 뺐지만, 건우의 집요한 설득에 결국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 날. 건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했다.

약속 시각이 5분 정도 남았을 때,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렸다. 맑은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고, 순간 그의 몸은 동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뭐지. 저 못생긴 여자는. 응? 왜 여기로 와. 설마? 아냐. 아닐 거야. 제발. 여기로 오지 마. 빌어먹을.’

건우가 아무리 속으로 아니길 외쳤지만, 신은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상한 잠자리 안경, 꿈에서라도 볼까 두려운 끔찍한 화장, 괴악한 옷차림.

같이 있기조차 부끄러운 패션의 주인공이 오늘 만나기로 한 바로 그녀였다.

“호호호. 안녕하세요. 최건우 선생님 맞으시죠?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한눈에 알아봤어요. 반갑습니다. 윤은영입니다.”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온 윤은영은, 건우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물론 건우 눈에는 미소가 아니라 찡그림으로 보였지만.

건우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아…안녕하세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럼요. 유명하시죠. 수학 쪽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분인데요. 게다가 하버드 대학까지 나오신 수재시잖아요. 우리 같은 평범한 강사들 사이에서는 로망이나 마찬가지죠. 호호호.”

‘평범함은 개뿔. 그런 얼굴이 어떻게 평범함이냐. 그리고 제발 그렇게 웃지 마. 뻐드렁니가 드러나서 오크처럼 보이니까.’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하하하. 강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니, 정말 영광이네요.”

“실망하셨죠?”

“네?”

“잔뜩 기대하고 나오셨는데, 저를 보고 실망하셨죠?”

“아…아니 그…그게 말이죠.”

“괜찮아요.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걸요. 이제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안 나오려고 했는데, 그냥 궁금했어요. 하버드 대학을 나온 인기 강사는 어떤 느낌이 날지. 죄송하지만 여기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윤은영은 당황하는 건우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건우가 쓴, 별로 인기도 없는 ‘나는 왜 하버드를 그만두고 학원 강사가 되었는가’라는 책을 꺼냈다.

출판사에서 끈질기게 찾아와서 어쩔 수 없이 만든 책이었다. 게다가 대필 작가가 썼기 때문에 내용도 매우 빈약한 책이었다.

그런 책을 그녀는 소중하다는 듯 꺼내서 사인을 요청했다. 민망하기도 하면서,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민망함인지, 쪽팔림인지, 죄책감인지.

아니면 셋 모두일 수도 있었다.

착잡한 마음을 감추고 사인을 해주자 윤은영은 환하게 웃으며 책을 받았고, 그럼 먼저 일어나겠다는 인사를 끝으로 카페를 떠났다.

환하게 웃고는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한 눈빛이었다.

뭔가 굉장히 큰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 쓸쓸한 눈빛은 건우가 죽음을 맞이하던 그 순간까지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를 괴롭혔었다.

***

치아교정에 살을 빼는 것부터 옷을 입는 것까지 모든 비용을 대고, 작업실에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건 누가 봐도 과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예전 삶에서 보았던 윤은영의 쓸쓸한 눈빛의 기억을, 그리고 마음속 깊이 박혀있던 죄책감을 지우고 싶었다.

스무 살로 돌아온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윤은영에 대한 기억만 떠올리면 따라오던 쓸쓸하게만 생각됐던 미소가, 오늘따라 유달리 따뜻하게 느껴졌다.

비록 모니터 속에서 웃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

이번에는 웬 커다란 남자가 등장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커다랗다기보다는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릴법한 사내였다.

키는 190cm 정도 되어 보였다. 스모 선수가 연상될 만큼 배가 툭 튀어나왔고, 굵은 두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엄청나게 두꺼웠다.

몸무게는 최소 130kg 이상은 나갈 것처럼 보였고, 그 몸으로 강의실 사이를 뒤뚱뒤뚱 걷는 모습은 마치 아기코끼리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정말 컸다. 가까이서 그를 본다면 덩치 하나로 기가 질릴 만큼 컸다.

얼굴은 살이 잔뜩 붙어 타이어 회사의 마스코트인 미쉐린맨과 판박이다.

극심한 탈모를 가리려 애쓴 듯 남아 있는 주변머리로 비어있는 부분을 가리려 애썼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나서 스스로를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

남자는 전체적으로 비대한 몸에 아직 여름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더운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강의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칠판에 판서할 때마다 흔들리는 뱃살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수업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키득거리기 바빴다.

그래도 수강하는 아이들도 40~50명 정도 되고, 윤은영보다는 상황이 좋아 보였다. 여자보다는 남자 외모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강의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그의 수업 퀄리티는 시중에서는 쉽게 듣기 어려울 만큼 수준이 높았다.

“그래도 윤은영 선생님보다는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비대한 살과 치렁치렁하게 둘러쳐진 저 주변 머리카락만 어떻게 정리하면요.”

손다정은 플레이 되던 영상이 멈추자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그렇죠. 비 오듯 흘리는 땀이 살 때문이 아니라 다한증이라면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이승훈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던가요?”

“잠시만요. 아! 여기 있네요. 성명 이승훈. 나이 서른일곱 살.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공모전에 몇 번 도전했으나 줄줄이 낙방. 몇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골방 폐인처럼 글만 쓴 덕분에 지금처럼 뚱뚱한 체형으로 변화.”

“작가가 꿈이었답니까?”

“그렇긴 한데 생각보다 글쓰는 재능은 별로였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7년 전, 마지막으로 도전한 공모전이 떨어지자 작가의 꿈은 포기. 지나치게 비대하게 변한 몸으로는 취직이 쉽지 않자, 결국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학원 강사 시작.”

“학원이 제법 큰가 봅니다. 영상으로 보면 작은 단과 학원처럼 안 보이네요.”

영상 속 교실은 150~200명 정도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작구의 대입전문학원에서 국어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서울대라는 간판 덕분인지 윤은영 선생님보다는 형편이 좀 낫네요. 그래 봤자, 쥐꼬리만큼의 차이지만요.”

“지금은 동작구에 계셨구나.”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강의 영상을 보니 소감이 어때요?”

“외모는 정말 아닌데, 실력은 확실히 굉장하네요. 대체 어디서 저런 분들을 찾아낼 수 있죠? 그것도 두 명씩이나.”

“운이 좋았죠.”

“운이 아니에요. 한 명이면 모르겠지만. 저는 이쪽에서 10년을 일했어요. 대표님은 반년도 안 되었고요. 대표님 눈에 보이는 사람이 제 눈에 안 띈다? 한 번이면 몰라도 두 번이나?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하는 일이 저런 실력 있는 선생님을 찾는 거였는걸요.”

“하하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요하세요?”

“집요한 게 아니라. 아니에요. 집요한 거 맞아요. 컨설팅회사를 그만두긴 했지만, 10여 년이나 일했기 때문에 아직은 제 몸에는 컨설턴트의 피가 흐른다고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요.”

건우는 농담을 던졌지만, 손다정은 진심으로 낙담한 듯 어깨가 축 처진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아! 이게 아니구나.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죠. 초심자의 운이라는 말도 있고요. 그러니 너무 그렇게 낙담하지 마세요. 아직 우리가 필요한 선생님들은 많이 남았습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왜요?”

“세 분이면 충분하잖아요. 국어 이승훈 선생님. 수학, 과탐, 영어 최건우 선생님, 사탐 윤은영 선생님. 이렇게 세 분만 있으면 사실 다른 선생님은 곁다리나 마찬가지예요. 좋은 선생님이 있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아니, 왜요? 다른 사탐 과목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렇긴 하지만, 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선택된 상황에서 효율성도 생각해야죠. 아까 영상에서 윤은영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탐 두 과목을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로 선택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좋은데, 굳이 다른 사탐 과목을 개설할 필요가 있겠어요? 우리가 학교라면 모를까.”

손다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괜히 실력이 부족한 다른 사탐과목 선생님을 데려와서 초이스 에듀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음. 그건 그러네요. 우린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니, 굳이 다른 사탐 과목까지 개설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래도 서브 선생님들은 필요하잖아요. 특히 저는 혼자 여섯 과목을 담당한다고요. 서브 선생님이 없으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지 몰라요.”

“그렇지 않아도 이름값 높고 비싼 선생님보다, 젊고 잠재력 있는 선생님들로 알아보고 있어요. 지금은 조금 실력이 부족해도, 대표님, 이승훈 선생님, 윤은영 선생님과 함께하다 보면 실력이 금방 일취월장하겠죠.”

“그게 낫겠네요. 그건 손 팀장님이 알아서 잘하겠죠. 그럼 우린 바로 두 분 선생님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러 가볼까요?”

“네? 지금 바로요?”

“그럼요. 한시가 급하잖아요. 이승훈 선생님도 그 체격에서 살을 빼려면 최소한 6개월은 잡아야 할 걸요. 너무 급격히 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여유기간을 좀 줘야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서두르시는….”

“자자. 어서 갑시다. 손 팀장님은 윤은영 선생님을 담당하세요. 저는 이승훈 선생님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하실 수 있죠?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가고, 내일 안 되면, 모레 또 가세요. 뜬금없이 나타나서 치아교정부터 하겠다고 하면 웬 미친 사람인가 오해받을 수도 있겠지만요. 후후후.”

“어머 이거 왜 이러세요? 저 이래 봬도 대표님까지 스카우트한 유능한 컨설턴트였어요. 내기할까요?”

건우가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손다정은 가슴을 쭉 내밀고 자신감을 보였다.

“무슨 내기 할까요?”

“그냥 간단하게 돈내기 어때요?”

“그럼 먼저 스카우트 하는 사람이 오만 원. 콜?”

“콜.”

합의가 끝나자 두 사람은 오만 원을 따기 위해 이승훈과 윤은영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다급히 차를 몰았다.

건우는 이승훈을 만나러 가는 길이 무척 즐거웠다.

이승훈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실망했을 때, 가족까지 외면하던 건우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던 유일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

건우가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 몰려 긴급 체포되었을 즈음의 이야기였다.

언론에서는 재미난 먹잇감을 발견한 듯 매일 같이 그를 난도질하기에 바빴고, 성난 군중들은 당장에라도 사형을 시켜야 한다며 포털사이트에 청원 운동을 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됐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강사 중 그 누구도 건우를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그를 외면했다.

둘째인 동우만 찾아와서 짜증만 부리고 돌아갔다.

그때 건우를 찾아온 사람이 이승훈이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만났었나?

우연히 그가 하는 강의를 보며 실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잠깐 만나서 칭찬과 함께 강의 노하우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 정도의 친분만 있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줄줄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면회 온 모습이 참 의외였다.

가족에게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외면당했던 건우 입장에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면회였다.

가슴이 짠해서 울컥거리며 눈물을 흘릴 뻔했던 기억이었다.

“여기까진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승훈 선생님.”

“그게…. 그냥 뉴스나 신문에서 최건우 선생님 소식을 듣고 왠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부끄러운 모습이라니요. 그런 말 마세요. 전 최 선생님을 믿습니다.”

“네?”

그냥 정말 실력이 좋아서 잠깐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그게 이승훈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 명강사의 칭찬이었으니 기쁨도 두 배였다.

그랬던 건우가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뚱뚱한 모습답지 않게 감성이 풍부한 이승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승훈이 본 건우는 겉으로는 냉정해도 속은 정말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다니,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를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면회를 가도 될까? 내가 면회를 갈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오히려 건우가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승훈은 밤새 그런 고민을 하다 결국, 면회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최건우 선생님은 좋은 사람입니다. 꼭 무죄로 풀려날 거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가서 꼭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자주 만나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 사이는 아닙니다만, 최소한 최 선생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압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보도들 저는 안 믿습니다. 그런 일을 저지를 분이 아니죠. 저같이 볼품없이 뚱뚱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실력 좋다며 칭찬하실 정도로 선입견이 없는 분입니다. 제 경험상 그런 분들 중에는 나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저는 최 선생님을 믿습니다. 힘내세요. 꼭 무죄로 풀려날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요. 그러니까 지금 나오는 뉴스들 때문에 절대 상처받지 마세요.”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건우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믿는다는 말은커녕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 봤느냐며 의심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건우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버렸다. 모두 그렇게 믿자 나중에는 자신이 정말 성폭행범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라도 술을 마시고 너무 취해서 강제로 덮쳤거나, 아니면 몽유병이라도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구치소에 갇혀 밤마다 그런 의심을 하곤 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친분도 별로 없던 사람이 찾아와 ‘너를 믿는다. 힘내라’라고 말해주자 정말 큰 위로가 되었고 흔들리던 마음도 다잡을 수 있었다.

그 말 덕분에 포기하려던 마음을 접고 끝까지 싸울 수 있었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재판 중간에 경찰들의 허술한 관리로 염산테러를 당해 얼굴이 망가지는 사고까지 겪었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날 면회 온 이승훈 덕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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