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51화 (51/256)

제51화

윤은영이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씩씩하게 잘 견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다정은 윤은영이 마음에 들었다.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녀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설득이 먼저다.

“무조건 예뻐집니다. 저를 믿으세요. 제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초이스 에듀에 투자된 500억 원을 믿으세요. 아까도 말씀드렸죠. 우리는 윤은영 선생님의 역사 강사로서의 자질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요. 완전히 변신시켜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투자한 500억 원을 지키기 위해서요.”

“어떻게요.”

“저희와 계약하면 제일 먼저 최고 수준의 치아교정을 포함한 뷰티 프로그램을 가동됩니다.”

손다정은 살을 빼고, 체형을 교정하고, 피부 관리를 받으며, 코디까지 조언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뷰티 프로그램이라고 이름 지었다.

“뷰티 프로그램요? 왠지 비용이 엄청날 것 같은데요.”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 초이스 에듀가 모두 지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뷰티 프로그램을 받는 동안 들어가는 모든 생활비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네? 생활비까지요?”

“물론입니다. 선생님은 그냥 예뻐지시기만 하면 됩니다. 일종의 계약금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도… 한두 푼이 들어갈 것 같지 않은데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도 아직 윤은영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최건우 선생님이요.”

“최건우 선생님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윤은영은 건우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성으로 보는 관심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존경하는 의미의 관심이었다.

손다정은 그런 윤은영의 모습을 보며 건우를 팔아서라도 그녀를 설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요. 윤은영 선생님에 대한 정보도 최건우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알게 된 거예요. 실력만큼은 우리나라 최고의 선생님이니,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게 몇 번이나 강조하셨죠.”

“믿어지지가 않네요. 이렇게 작은 학원에서 일하는 저를 어떻게 알고요?”

“저도 그게 좀 의외였어요. 누군가가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우연히 발견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어쨌든, 윤은영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히 뛰어나세요. 그리고 최건우 선생님도 그 실력에 반하셨다고 하셨고요.”

“반하셨다고요?”

변장 수준의 두꺼운 화장을 뚫고, 윤은영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네. 같은 강사로서 존경스럽다고 하셨어요. 그런 실력 있는 선생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말씀도 했어요. 저를 여기 보낸 사람도 최건우 선생님이세요. 직접 오시고 싶었지만, 남자가 직접 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잖아요. 혹시 의심이 드신다면 내일 최건우 선생님과 함께 방문할 수도 있어요.”

손다정은 건우가 했던 말과 하지 않았던 말을 절묘하게 섞어서 윤은영의 마음을 공략했다.

“아니에요. 믿어요. 굳이 제게 그런 사기를 칠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보고 돈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팔릴 만큼 예쁜 외모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스러우시죠?”

“네. 어안이 벙벙하네요.”

“이것도 선생님께서 강사로서 열심히 노력하셨기 때문에 생긴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손 팀장님. 내년 1월 개원이라면서요. 왜 벌써 저에게….”

“뷰티 프로그램을 받는 기간은 7~8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어요.”

“7~8개월이나요? 그럼 저는 그동안 놀아야 하나요?”

“그건 염려 마세요. 회복 기간에도 생활비는 드린다고 했죠? 이곳 학원에서 받는 월급보다는 훨씬 많을 거예요. 대신.”

“대신요?”

“쉬는 기간 동안 그냥 놀면 심심하시잖아요. 그래서 남는 시간에 역사 교재를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와!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고 오셨네요. 회복 기간에 교재 만드는 일까지 고려하신 걸 보니까요”

“그럼요. 아까도 말씀드렸죠?”

“500억이 들었다고요?”

“호호호. 맞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칼 맞지 않으려면 철두철미해야죠.”

손다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은 양심에 찔렸다. 그러나 차마 건우가 서둘러 결정하는 바람에 헐레벌떡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조…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아, 그러시겠어요?”

완전히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였다. 그러나 윤은영의 밝은 얼굴을 보면 빠른 시간 안에 긍정적인 답변이 오리라는 느낌이 왔다.

“네.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결심이 서면 제가 아까 드린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주세요. 아니면 아래 주소로 직접 찾아오셔도 됩니다. 오전 중에 오시면 최건우 선생님도 뵐 수 있어요.”

“그렇게 할게요. 죄송해요. 바로 답변을 드리지 못해서요.”

“아닙니다. 바로 결정할 일은 아니죠. 선생님의 운명이 바뀌는 일인데요. 그런데 윤은영 선생님.”

“네?”

“저희 제안을 받아들이시려면 독하게 마음먹어야 해요. 뷰티 프로그램은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받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럴 것 같긴 해요.”

“운동은 당연히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식이요법도 병행할 겁니다. 치마 위로 불룩 나온 똥배. 곤란해요. 그리고 그 패션 감각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거에요. 코디를 붙여 드릴 거니까 그분 조언을 따라주시면 돼요. 어렵진 않아요. 노력만 한다면.”

손다정은 마치 윤은영이 ‘예스’라고 대답이라고 한 것처럼 당당하게 그녀의 단점을 지적했다.

손다정의 지적에 윤은영은 재빨리 손으로 자신의 배를 가렸다. 그렇지만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표정에 가까워 보였다.

***

이승훈이 일하는 학원을 찾는 건 쉬웠다. 꽤 큰 학원이라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건우는 이제 곧 이승훈을 만난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학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좋았던 그의 기분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저기 이 선생. 그놈의 땀 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끝날 일이 아니지. 보는 사람도 생각 좀 해줘요, 네? 이제 겨우 4월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땀을 흘리면 어떡하나. 정말 볼 때마다 숨이 탁탁 막혀서, 원. 어휴.”

“그러게요. 그리고 좀 씻으세요. 땀 냄새가 너무 고약하다고요. 지나갈 때마다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없던 두통까지 생길 노릇이라고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확실히 인간이라는 동물은 굉장히 잔인한 구석이 있다. 특히 상대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될 때는 잔인한 면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승훈이 일하는 학원의 강사 중에도 그런 인간들이 있었다.

볼품없는 외모를 지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생들도 있는 복도에서 이승훈은 그렇게 심한 모욕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연신 땀을 훔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대입전문학원이라서 그런지 오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과반 수업을 듣는 재수생이 꽤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 또한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꾸중을 듣고 있는 이승훈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학원이라지만, 그래도 선생인데 그렇게 제자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니 건우는 속이 천불이 날 것처럼 타올랐다. 당장에라도 나서서 이승훈을 모욕하고 있는 두 남녀 선생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그놈의 죄송합니다, 그딴 말 좀 그만 하세요. 죄송한 줄 알면 살을 좀 빼던가, 아니면 수술이라도 하세요. 옆에서 같이 지내는 사람도 생각해 주셔야죠. 맨날 그렇게 돼지처럼 먹기만 하니, 살이 빠질 턱이 있나?”

참으려고 했는데 성냥개비처럼 볼품없이 비쩍 마른 신경질적인 눈매의 여자가 내뱉은 모욕적인 언사에 건우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같이 지내기 싫으면 안 지내면 되겠네.”

“무…뭐라고요? 누구시죠?”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정문을 향했다.

“내가 누군지 그쪽이 알 바 없고. 귀가 안 좋나 보네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같이 지내기 싫으면 안 지내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니, 이보세요. 누구신데 갑자기 이렇게 끼어드십니까?”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학교든 학원이든 캐주얼하게 입고 강의를 하는 게 보편화 되어있다.

그러나 건우는 캐주얼한 옷차림보다는 단정하면서도 클래식한 고급 슈트를 즐겨 입는다. 그렇게 차려입어도 앳된 외모를 감추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고급 정장이 주는 무게감은 무시하기 힘들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승훈을 구박하던 학원 강사들도 건우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쪽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승훈 선생님 되시죠?”

정체를 묻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굳은 표정을 풀며 이승훈의 앞으로 다가갔다.

“네. 그렇습니다만.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당연하죠. 이승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런 허접스러운 학원에 찾아올 일이 있겠습니까?”

“아니, 지금 저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봐요. 당신이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여기가 허접하니 어쩌니 하는 겁니까?”

건우의 도발에 학원 로비는 갑작스레 소란해졌다. 그리고 몇몇 강사는 심한 모욕을 느꼈는지 얼굴까지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럼 허접한 곳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뭐요? 허접? 당신이 뭘 안다고 우리 학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거요? 잘 모르나 본데, 그래도 우리 학원이 동작구에서는 알아주는 학원이요. 절대 허접한 학원이 아니란 말입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면 뭐합니까? 속에서 똥 냄새가 가득 풍기는데.”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당신 도대체 뭐야? 뭔데 똥 냄새가 난다고 그래? 우리 학원 염탐 온 스파이야? 응?”

“스파이는 개뿔. 이딴 학원에 뭘 뜯어 먹을 게 있다고.”

“어허. 당신 몇 살이야?”

“몇 살이면?”

“몇 살인데 이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난동을 부리는 거야? 넌 위아래도 없어?”

“미친. 그러는 너는.”

“뭐?”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 났기에, 제자들 앞에서 선생님을 개망신 주는데?”

건우의 말투가 점점 더 거칠고 날카로워졌다. 정신과 의사인 조유미도 그랬다. 너무 참지만 말고 지를 땐 지르라고.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뭐? 내…내가 언제?”

“내가 언제? 조금 전에 했던 행동도 기억 못 하는 닭대가리야?”

“어허. 젊은 양반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구먼.”

이승훈을 망신 주던 강사와 건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이 지긋한 사내가 끼어들었다.

“어이가 없네. 저기요. 그렇게 예의범절 따지기 좋아하시는 분이 왜 이승훈 선생님이 모욕당할 때는 가만히 계셨습니까? 예의가 그렇게 중요했으면 그것부터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흠흠. 이유야 어찌 되었던,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까 일은 우리 학원의 일입니다. 외부인이 끼어들 일이 아니죠. 그쪽은 어떻게 봤는지 몰라도, 그냥 단순히 주의를 주었을 뿐입니다. 괜한 침소봉대는 삼가주시죠.”

“아. 정말 개… 휴. 그래도 나이가 많아 보여서 막말은 안 하겠습니다. 단순히 주의를 주려면 조용히 불러서 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굳이 학생들 많은 로비에서 그따위로 몰상식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죠.”

“뭐? 그따위로 몰상식? 어이 거기. 저 사람 당장 밖으로 쫓아내요. 별 미친놈이.”

학원이 소란해지자 빌딩 경비를 보는 나이 많은 노인 두 명이 다가왔다.

이승훈을 구박하던 강사는 그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어이’라고 아랫사람 부르듯 부르며 건우를 쫓아내려 했다.

“그래. 역시 그렇지. 네 수준이 그 정도야. 당신 아버지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어른한테 ‘어이’라고 부르는 인간이니, 상식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괜히 싸워봐야 내 입만 아프겠네. 내 입만 더러워져.”

“뭐…뭐. 이 인간이 정말.”

남자는 얼굴은 금세 붉으락푸르락 변했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은 걸 의식해서인지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했다.

“됐고. 나도 내 볼일만 보면 금방 돌아갈 테니까, 서로 간에 신경 끄자고. 이승훈 선생님.”

“네, 네?”

“저는 초이스 에듀의 최건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더 이상의 입씨름이 짜증이 난 건우는, 마른 남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이승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 네. 그런 것 같더군요.”

- 야야. 최건우래. 진짜 최건우 쌤인가 봐.

- 그 봐. 내가 그랬잖아. 내가 저 쌤 인강만 벌써 수십 개를 봤다.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지.

- 그래. 나도 긴가민가했어. 지금 가장 핫한 쌤인데 이런 곳까지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 이런 곳이라니?

- 아까 최건우 쌤도 그러셨잖아. 허접한 곳이라고. 솔직히 여기가 강남 학원에 비하면 허접한 건 사실이잖아.

- 그건 그렇긴 하지. 그런데 실물로 보니까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 그치? 완전 멋있더라니까. 우리 뚱땡이 쌤이 땀을 좀 많이 흘리긴 해도, 강의는 잘하시잖아. 그런데 별 실력도 없는 강사 둘이서 구박하는 모습 보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거든.

- 맞아. 나도 그랬어. 졸라 재수 없더라니까.

- 그때 호통치면서 딱 나타나는데,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니까.

- 나도 저 쌤에게 수업 한번 들어보고 싶다.

- 야. 아서라. 지난번 뉴스 보니까 저 쌤 강의 들으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더라. 밤새워 줄을 서며 기다려도 수강 신청에 실패했다잖아.

- 그랬어? 아, 역시 우린 인강이나 들으며 만족해야 하나.

- 그러게

건우의 인터넷 강의 조회수는 얼마 전에 200만 건을 돌파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고등학생 수가 대략 200만 명이다. 수치적으로만 보면 모든 학생이 건우의 인터넷 강의를 봤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한 챕터 안에 50개의 강의가 있고, 또다시 6개의 과목으로 나눠야 해서 단순한 수치계산은 무의미하긴 하다.

그래도 서울지역 특히 수험생들은 상당수가 그의 인터넷 강의를 봤고, 덕분에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얼굴까지 알려진 유명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승훈에게 자신을 소개하자 긴가민가하던 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건우가 내뿜는 카리스마 때문에 가까이 접근은 못 해도 휴대폰을 꺼내 인증사진이라도 찍으려는 아이들로 로비는 순식간에 시장바닥으로 변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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