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그런 것 같다고요? 저를 아시나 보네요.”
“아이들 반응을 보세요. 이미 학원가에서는 유명 스타나 마찬가지시잖아요.”
“하하. 이것 참 민망하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이승훈 선생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네? 저…저를요?”
- 헐. 대박. 들었어? 들었어?
- 너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지금 누굴 스카우트하겠다는 거야?
- 누구긴 뚱땡이 국어 쌤이지. 그런데 설마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 미쳤어? 이런 일로 장난하러 여기까지 오게.
- 그건 그래. 그런데 뚱땡이 국어 쌤이 그렇게 유명했나?
- 유명한 건 모르겠고, 실력이 좋은 건 사실이잖아.
- 그래도 강남이라면 더 대단한 쌤들도 많지 않을까?
-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저 쌤이 외모만 좀 평범했으면 강남 학원가도 씹어 먹었을걸? 내가 방학 때 강남에 있는 학원에 다녀봐서 아는데, 국어는 저 쌤보다 나은 사람이 없더라.
- 헐. 그 정도였어?
- 외모에 실력이 가려진 안타까운 케이스지. 그래도 스카우트 제의는 의외다.
- 그건 왜? 실력은 최고라며.
-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솔직히 줄줄 흘리는 땀을 지켜보며 수업 듣는 건 솔직히 고역이잖아.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쉽게 성공하기 어려울 텐데.
- 그건 그렇지. 나도 처음엔 진짜 짜증 났는데. 그래도 자꾸 듣다 보니 적응되더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 모르지. 우리가 비위가 좋아서 그럴 수도.
- 그런 거였어? 크크크
건우의 폭탄 발언에 로비는 또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지금 강남,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 평소 구박이나 받으며 무시당하고 사는 이승훈을 스카우트하러 왔다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네. 이승훈 선생님 저희 쪽으로 모시고 싶어요. 듣는 귀가 많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하시죠.”
“네? 지…지금요?”
“지금 분위기를 보세요.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긴 어려울 것 같네요. 수업 있으세요? 그럼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아…아닙니다. 마침 다음 시간 공강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가시죠.”
“그래도 잠시. 다른 분들에게 말이라도….”
“됐습니다. 자기들도 귀가 있는데 무슨 일 때문에 외출하는지는 들었겠죠.”
건우는 당황하는 이승훈의 팔을 잡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학원을 빠져나왔다. 그에게 팔을 잡혀 뒤뚱뒤뚱 힘겹게 따라가는 이승훈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까는 제가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했습니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긴 건우는 이승훈에게 우선 사과부터 했다. 욱하는 마음에 나선 것이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주제넘어 보였을 수도 있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이승훈 선생님.”
“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승훈 선생님을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아! 역시 제가 잘 못 들은 게 아니었군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제안이긴 하지만요.”
“왜 이해가 안 가시죠? 전 이 선생님이 우리나라 국어 강사 중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우리나라 최고라니요. 그건 정말 농담이 심하시네요. 하핫.”
당황한 이승훈이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도 무턱대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이미 이 선생님에 대한 조사는 모두 마쳤고, 충분히 통하리라 판단해서 제가 직접 온 겁니다. 혹시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없으십니까?”
예전 삶에서 건우와 이승훈은 교류가 많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승훈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은 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실력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그건 아닙니다. 단지 학원이라는 게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곳이 아니라서요. 목소리로만 강의한다면 모를까 제 외모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혹시 뚱뚱한 체형에 대머리라서 그러신가요?”
“그…그렇죠.”
두 번째는 뚱뚱한 것보다는 대머리에 대한 지독한 콤플렉스. 그래서 항상 주변머리를 길게 길러 빈 공간을 채우려 애쓰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건우는 첫 만남부터 대뜸 그의 약점을 찔렀다. 그의 지적에 이승훈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웅크리며 방어적 자세를 취했다.
아까보다 땀이 더 비 오듯 쏟아졌다. 손수건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지만 붉으락푸르락 된 얼굴이 열기로 가득했다.
익숙해졌다고 했는데 오늘 처음 보는 건우의 지적은 굉장히 아팠다. 호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건우는 미안한 마음을 꾹 참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이승훈을 바라봤다.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뭔가요?”
건우는 함께 들고 온 태블릿을 꺼내 저장해뒀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단 보시죠. 이 사람은 호셉 과르디올라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죠. 이 사람은 너무나 유명한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고요. 이 분은 오래된 분이라 아실지 모르겠지만, 율 브리너라는 러시아 배우입니다. 그다음은 빈 디젤 그리고 제이슨 스타뎀. 유명한 액션 배우죠. 외국사람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윤동환이라는 배우입니다. 이 분도 꽤 멋지지 않습니까? 그다음은 홍석천…. 아! 이 분은 빼고요. 아무튼, 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사진이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승환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 사진 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대머리로 유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건우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소감이요? 지금 저 놀리시려고 찾아오신 겁니까?”
학생들 앞에서 당하던 모욕도 참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되었다.
“아니요. 제가 왜 이 선생님을 놀리겠습니까? 그냥 묻는 겁니다. 사진 속에 저 사람들. 대머리를 감추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밀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멋지지 않습니까?”
“네. 멋지네요. 멋집니다. 그런데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이 선생님도 저렇게 변신해보시라는 겁니다.”
“네? 하…하지만.”
“물론 머리 스타일만 그렇게 바꾼다고 사진 속 저 사람들처럼 되는 건 아니죠.”
“맞아요. 저처럼 뚱뚱한 사람이 저런 머리를 하면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일 겁니다.”
이승훈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세에 두툼한 턱살이 두 덩이로 나뉘어 제멋대로 흔들렸다.
“그럼 살을 빼 보는 건 어떨까요?”
“그걸 모르겠습니까? 말처럼 쉬운 일이었으면 벌써 뺐겠죠. 하지만 너무 바쁩니다. 도무지 시간이 안 나요.”
“그렇겠죠.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시니까요. 병원비를 벌려면 열심히 수업해야겠죠. 그렇게 생긴 스트레스는 다시 먹는 걸로 풀고요. 악순환이네요.”
“휴. 저를 조사하셨다더니 그런 것도 알고 계셨네요.”
이승훈이 작가의 꿈을 포기한 것은 그를 믿어주고 지원해주던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면서부터였다.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이라 가세는 금방 기울었고, 이승훈은 어떻게 해서든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다.
다른 강사들이 놀려도 참아가며 다녀야 했다. 자존심보다 어머니 생명이 더 중요하니까.
“어머님에게 들어가는 치료비 저희가 모두 지원하겠습니다.”
“네? 뭘 지원한다고요?”
이승훈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두 눈을 껌벅거렸다.
“어머님이 완치되실 때까지 모든 비용을 대겠습니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대신!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정상 체중이 될 때까지 살을 빼주세요.”
“아니! 잘 모르시나 본데요. 우리 어머니가 걸린 병이 감기처럼 가벼운 게 아닙니다. 병원비가 어마어마해요. 최고 1억 이상은 들 겁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 돈 잘 법니다. 굉장히요. 그러니 제게 그 정도는 부담도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돈 자랑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쉽게 믿기지 않았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제안하기엔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악순환을 끊으면 선생님도 가능한 일입니다.”
“악순환을 끊는다고요….”
“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만 빼면 외모는 꽤 호감형이지 않습니까? 이미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실력에 과거의 호감형 외모라면 저처럼 스타강사가 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능할까요?”
“그러니까 악순환을 먼저 끊자는 겁니다. 딱 한 번만 끊으면 됩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살을 빼면 지금 하고 계신 수업의 반만 해도, 수입은 열 배 이상 늘어날 겁니다. 인터넷 강의까지 하면 백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번 도전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승훈 입장에서는 건우의 스카우트 제의부터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병원비까지 지원해준다는 말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편으로 더럭 겁도 났다. 항상 불행하기만 했던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낯설기만 했다. 알고 보면 이것도 결국, 행운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배…백 배나요?”
“당연하죠. 모든 건 이 선생님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당장 학원을 그만두고 몸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세요. 올해 말까지 정상체중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부 제가 지원해드립니다. 이런대도 자신 없으세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우리가 숙소도 마련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옆집에는 우리와 계약한 미녀 여강사님이 지내실 예정이고요.”
“하겠습니다. 할게요.”
이승훈은 속으로 외쳤다. 미녀 때문에 넘어간 건 아니라고. 하지만 옆집에 미녀 강사가 산다는 말에 가슴이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태솔로의 특징이다. 처음에는 글 쓴다고 정신이 없었고, 나중에는 살이 쪄서 여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옆에 미녀가 살아?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저 가끔씩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게 미녀 아니겠는가.
물론 건우가 말한 미녀 강사님은 아직 없다. 미녀 강사가 될 예정인 윤은영만 있을 뿐.
***
이승훈과 미팅을 마친 건우는 그와 만났을 때와는 달리 상당히 기분 나쁜 표정으로 식식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머 오셨어요? 표정을 보니 일이 잘 안 된 모양이네요? 호호호.”
사무실에는 손다정이 이미 도착해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건우의 표정을 보며 스카우트 건이 쉽지 않았으리라 지레짐작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건우가 내기에서 이길까 봐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아뇨. 스카우트는 성공했어요. 그러니 5만 원은 주세요.”
“네? 성공했다고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다른 일 때문에요.”
“무슨 일인데요?”
“그건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게요. 바로 학원으로 들어가 봐야 해서. 지금 일산에 있는 학원 중 우리와 제휴할 곳 찾아보고 있죠?”
“네. 팽 원장님이 그렇게 가버렸으니 이번엔 좀 더 심사숙고해서 찾아보려고요.”
“조사하는 김에 동작구 쪽도 알아봐 주세요.”
“네? 동작구는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셨잖아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특히 이승훈 선생님이 계신 학원 근처에 괜찮은 학원이 있다면 더더욱 좋고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함께 알아볼게요.”
거의 보지 못했던 심각한 건우의 표정에 손다정은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동작구 쪽 학원을 알아보리라 다짐했다.
***
초이스 에듀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
지난번 학원 제휴 건으로 끝까지 남았던 네 명의 원장 말고 새로운 얼굴이 두 명 더 와 있었다.
“그럼 초이스 에듀 확장 개편을 위한 2차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에 앞서 오늘 회의에는 새로운 얼굴 두 분이 참석하셨습니다. 손 팀장님. 소개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간단하게 소개하고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 먼저 왼쪽에 계신 분은 지난번 팽 원장님을 대신해서 일산 지역을 담당하게 될 장 원장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은 동작구와 관악구 지역을 담당하고 될 김 원장님이십니다. 특히 김 원장님의 경우 최건우 선생님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습니다. 이점 꼭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성격이 불같았던 일산의 팽 원장의 건우의 태도에 불만을 느껴 1차 회의 때 자리를 떠났고, 그 자리를 장 원장이 대신 맡아서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문제는 김 원장이었다.
장 원장의 경우는 뒤늦게 합류하긴 했어도, 일산은 서초, 잠실, 목동, 분당과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곳이다.
동작구는 앞선 지역에 비해 교육열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물론 앞선 지역의 교육열이 과한 것이지 동작구가 낮은 건 절대 아니었다.
어쨌든 교육열에 차이가 있는 만큼 학원 규모의 차이는 명백하다.
사정이 어려운 학원들이라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모른다. 괜히 급이 다르다며 불쾌하게 생각할 지도 모를 일.
손다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관악구까지 관할 구역을 확대해줬다. 규모를 맞춘 것이다.
그리고 건우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던 점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너희와 비교해 레벨이 떨어진다고 기분 나빠하지 마라. 혹시나 아무리 생각해도 불만이면 최건우 선생에게 따져라’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김 원장은 지금 이게 웬 떡인가 싶은 심정이었다.
먼저 연락은 취했으나 답변이 없길래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같이 일해보자고 갑자기 연락이 왔었다.
회의하기 전에 손다정을 만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는 모두 끝냈다.
워낙 빠르게 일이 진행되어 뭐가 뭔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회의에 참석하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대박의 기회를 잡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흠흠. 저희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죠. 같이 의지할 동지가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데요. 허허허.”
경고성 메시지가 담긴 손다정의 이야기가 끝나자 서초의 방 원장이 가장 먼저 환영의 뜻을 표했다.
강남을 제외한다면 가장 학구열이 높은 서초에서 그렇게 입장을 표했으니 다른 원장들은 더는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회의 시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