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57화 (57/256)

제57화

- 다음은 이 주의 화제 인물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혹시 ‘나 초듀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요즘 중,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입니다. 자세한 소식 이강차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금 M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학교 가기 싫어’라는 청소년 시트콤의 한 장면입니다. 한 등장인물이 태블릿PC를 꺼내서 프로그램을 작동시킵니다. 복잡한 수학 공식들이 등장합니다. 이게 바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참고서 이북입니다.

- 노트나 연필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화면 위에 쓰기만 하면 필기가 됩니다. 앱에서 메모장 하나를 실행시킵니다. 복잡한 공식이 들어가는 문제를 풀 때도 이제 종이 연습장이 필요 없습니다. 화면처럼 메모장을 이용해 종이 연습장처럼 문제를 풀어나가면 간편합니다.

- 참고서 이북의 장점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가는 학생도 있지만, 어떤 학생들은 정말 가벼운 손가방 하나만 들고 학교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방 필요 없어요?”

“네? 아. 필요 없어요. 교과서는 학교 사물함에 넣으면 되고. 참고서는 태블릿만 있으면 되거든요.”

“정말 태블릿만 있으면 되나요?”

“초듀 모르세요?”

“초듀요?”

“초이스 에듀라고. 아무튼, 그런 곳이 있어요. 거기서 참고서 이북을 만들어 출시했거든요. 그 덕분에 굳이 무거운 참고서를 가방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어요.”

- 이처럼 참고서 이북은 출시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학생들의 삶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참고서 이북을 처음으로 만든 곳은 학원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초이스 에듀라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 직원도 몇 명 없는 이 작은 출판사에서 이렇듯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대표인 최건우 씨 덕분입니다. 최건우 대표는 하버드대 의대를 중퇴하고,

……중략……

-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듯 최건우 대표의 참고서 이북 도전은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혁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건우 대표와 초이스 에듀의 도전처럼 사소한 변화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아닐까요?

- 지금까지 MBS뉴스 이강차였습니다.

“엄마, 나도 태블릿 하나 사줘. 저거 생각보다 좋은 것 같아.”

TV를 보던 아들이 엄마를 보며 졸랐다.

“그러게 말이야. 난 그동안 태블릿으로는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 같은 것이나 볼 줄 알았지. 저런 좋은 기능이 있는지는 몰랐네. 역시 하버드대 출신이라 다른가?”

“그럼 나 사주는 거야? 그럼 진짜 열심히 공부할게.”

“그런데 태블릿 말이야. 너무 비싸지 않을까?”

“비싼 건 비싸도, 저렴한 건 10만 원 조금 넘게 주면 살 수 있다고 하던데.”

“그래? 그렇게 싸? 싼 게 비지떡일 수도 있는데.”

“아까 드라마에서 나온 태블릿. 그것도 초이스 에듀에서 OEM으로 주문한 거래. 며칠 전에 친구 녀석이 사용하는 걸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런가? 초이스 에듀에서 제작했다면 왠지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 태블릿 잘 돼야 자기들이 동영상하고 이북도 잘 팔릴 거 아니야.”

만약 초이스 에듀에서 만든 태블릿이 엉터리라면 인터넷 강의랑 참고서 이북이 안 팔릴 텐데, 그럼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이 아니라 OEM이라니까.”

“아무튼, 초이스 에듀 마크를 달고 나온다는 거잖아. 자기들 마크를 달았는데 허접한 제품을 팔지는 않겠지.”

“그렇기도 하겠다. 들어보니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는 학생들에게는 거의 마진 없이 판매하는 행사를 한다고 하더라고.”

“그거 좋은 행사네. 그럼 우리 내일 당장 사러 갈까?”

“정말? 우와! 엄마. 고마워! 흐흐흐.”

“어구구. 다 큰 녀석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엄마를 그렇게 덥석 안아?”

“어때. 우리 엄만데.”

***

초이스 에듀에 스카우트된 김완태 팀장은 드라마의 초대박으로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직하고 처음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MBS의 시사팀과도 접촉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설득 끝에 화제의 인물이라는 프로그램에 건우를 등장시킬 수 있었다.

하버드 출신, 21살의 어린 나이,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셔서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 장학회 운영 등.

시사팀이 군침을 흘릴만한 요소가 건우에겐 상당히 많았다.

여러 번의 설득 끝에 공중파에 건우의 얼굴이 등장한 결과는 정말 엄청났다. 김완태 팀장의 예상 그대로였다.

말끔하고 이지적으로 생긴 외모와 중퇴라고는 해도 하버드대 의대 출신이라는 학력 그리고 초대박 학원 사업까지.

그의 화려한 경력은 ‘초듀’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건우를 섭외하려고 안달이 날 지경까지 이르렀다.

한편.

세계교육이라는 학원의 한 사무실.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된 그 사무실의 주인인 박유하 이사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네. 박 이사님. 정 실장입니다.

“이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올라가 버렸네요.”

- 그럼. 이제 추락시킬 때가 된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충분히 높이 올랐으니 이젠 추락할 시간입니다. 작전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를 시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건우는 2015년 1월부터 학원 강의로 매달 2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5월까지 약 10억 원. 그리고 인터넷 강의와 참고서 이북 판매로 올린 매출이 약 80억에 이른다.

1년에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강사가 건우 혼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건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제 시작한 초보 강사다.

그리고 6개의 분점의 매출과 내년 1월 개원하는 초이스 에듀 본점의 매출은 빠졌다.

여기에 2~3년 안에 추가될 10여 개의 분점까지 고려한다면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분명했다.

그뿐만 아니다. 인터넷 강의나 참고서 이북 판매도 엄청나게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프라인 매출이 10억인데, 온라인 매출은 80억이었다. 이미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넘어섰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은 가능성이 무한하다. 지금보다 미래 시장이 더 커질 것이고, 건우의 유명세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 교육 시장의 규모가 이미 3조 원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정확하게 하면 3조 원은 이미 2013년에 넘었고, 2016년에는 4조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엄청나게 큰 시장이다. 그리고 건우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시장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이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대기업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도 절대 꿈이 아니다.

“아니 왜 안 된단 말이에요.”

“그냥이요. 그냥. 지금도 너무 과한 관심을 받고 있어요. 여기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가는 내가 학원 강사인지 연예인인지 헷갈릴지도 모른다고요.”

“그래도 너무 좋은 기회잖아요. 이건 기회만 잘 살리면, 아마 대한민국에서 최건우 모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될지도 몰라요.”

“그런 관심은 필요 없다니까요. 왜 굳이 그런 인기를 얻어야 해요. 그렇게 유명해진다고 수익이 몇 배씩 오르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혹시 알아요? 광고라도 찍게 될지.”

“어허. 손 팀장님.”

“네?”

“냉정해지세요. 광고라니요. 제가 광고를 찍어봤자 학습지나 학원 광고일 텐데, 우리 초이스 에듀가 아닌 다른 경쟁사의 광고에 등장하라는 말입니까?”

“호호호. 그건 아니죠.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죠.”

“기부는 원래 다른 한 손이 모르게 하는 거라고요. 대놓고 이야기하면 그게 무슨 기부예요.”

건우와 손다정은 조만간 기부할 금액 30억(총 90억 원의 30%) 원을 언론에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대한 문제로 격하게 논쟁을 하고 있었다.

손다정은 지금처럼 엄청나게 떴을 때 한방 더 터트려주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3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박지성이나 박찬호 이상 가는 국민적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건우는 손다정의 주장이 탐탁지 않았다. 지금도 이미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돈을 벌고 있다.

여기서 더 인기를 얻는다고 해도, 연예인도 아니기 때문에 수익이 증가할 요소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큰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괜한 유명세를 치르며 마음껏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그런 종류의 고생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정 뭣하면, 나중에라도 공개하면 그만이다.

단지 이미 과한 관심으로 피곤할 지경인데, 이보다 더한 관심은 당분간 사양하고 싶었다.

결국은 건우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건우가 싫다고 하니 피고용인인 손다정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30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기부행위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이루어졌다.

***

의사를 꿈꾸다가 다시 요리사가 하고 싶었고, 최근에는 부모님의 뺑소니 범인을 박살 내버린 광우를 보며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아직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꿈 많은 중2 소년 정우.

부모님이 동시에 돌아가시는 큰 아픔을 겪었지만, 요즘의 그는 그런 아픔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느껴질 만큼 밝고 활발했다.

특히 학교에 가는 일은 정우에게 너무너무 행복하고 설레는 일이다.

짝사랑하는 여선생님이나 여학생이 있어서가 아니다. 수업이 재미있어서도 아니다. 친구들과 노는 좋아서도 아니다. 매점에서 파는 크림빵이 특히 맛있어서도 아니다.

정우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해하며 학교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의 자랑이자 영웅인 건우 덕분이다.

한 달 전부터 서비스하고 있는 건우의 인터넷 강의는 ‘학교 가기 싫어’라는 드라마의 흥행 돌풍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 인기몰이는 정우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야야. 어제 ‘학교 가기 싫어’ 봤냐?”

“그럼. 봤지. 완전 꿀잼!”

“거기 드라마에서 나오는 참고서 이북 있잖아. 그거 실제로 서비스되고 있대. 인터넷 강의도 같이. 그런데 인터넷 강의가 참고서보다 더 대박이래.”

“진짜? 그게 정말 현실에서도 가능한 거였어?”

드라마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네 학급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이때 정우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큰형이 사준 최신형 태블릿을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놈.”

“뭐 인마?”

“에헴. 이것이 바로 요즘 유행하는 초듀라는 거다.”

“초듀? 그게 뭔데?”

“쯧쯧쯧. 아직 초듀를 모른다니. 지금 고등학교 형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강의야. 한 달 조회 건수가 무려 백만.”

“뭐라고? 백만 명? 진짜?”

“그럼. 내가 없는 말을 지어서 하겠어? 짜잔 보시라.”

정우는 어깨를 우쭐거리며 스마트 폰을 꺼내 건우가 하고 있는 강의 동영상을 플레이시켰다. 그리고 태블릿으로는 참고서 이북을 실행시켜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오! 뭐야. 진짜 되네. 와. 신기하다. 태블릿에 필기가 된다. 개신기해, 정우야.”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강의 내용은 더 대박이야. 강사 실력이 킹왕짱 끝내주거든.”

“진짜? 진짜 그렇게 끝내줘?”

“오! 정우가 끝내준다면 끝내주는 거겠지. 전교 1등이 그렇다는데.”

친구들의 끝없는 관심에 정우의 미소는 주체할 수 없이 흐뭇해졌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이 강의 강사가 바로 하버드대 출신이라 사실!”

“뭐?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인데.”

“그러고 보니 정우네 형이 하버드대 그만두고 학원 강사를 하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야 그럼 저기 동영상에 나오는 선생님이 정우 너네 형이야?”

“흐흐흐. 당연하지.”

“헐. 대박! 너네 형이 벌써 인터넷 강의를 할 정도로 유명해졌어?”

예상대로다. 이런 반응을 원했다. 정우의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유명 정도가 아니지. 너희 혹시 PPL이라고 들어봤어?”

“요즘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드라마에서 은근슬쩍 기업 광고해주는 거잖아.”

“에헴. 우리 형도 PPL한다. ‘학교 가기 싫어’ 드라마 속 참고서 이북이나 태블릿도 전부 우리 형이 지원해주고 있는 거야.”

“뭐? 진짜? 헐헐헐. 정우야, 정우야. 그럼 거기 나오는 김소현 누나에게 사인도 받아줄 수 있어?”

“으잉? 소현 누나 사인? 글쎄. 그건 나도 잘….”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며 형의 자랑을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에는 건우가 ‘화제의 인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버렸다.

덕분에 학교에서는 정우가 건우의 동생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고, 매일매일 큰형 자랑에 벌어진 입이 닫힐 줄을 몰랐다.

심지어 중3 선배 중 조숙한 여학생들은 건우가 멋있다며, 정우에게 러브레터를 좀 전해달라고 찾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던 정우였는데, 그래서 오늘은 어떤 자랑을 할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등교를 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야! 너네 형 병역 비리 저질렀다며?”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라고 하긴. 병역 비리 저질렀다고. 너네 형이.”

“무슨 그런 뭣 같은 소리가 다 있어? 넌 대체 어디서 그런 개소리를 듣고 온 거야?”

“어디서 듣고 오긴. 신문에서 봤지.”

“뭐? 신문?”

아침에는 항상 운동하고, 씻고, 밥 먹고 바로 학교로 가야 하기 때문에 신문이나 뉴스를 볼 시간이 없었다.

이제 막 학교에 왔는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녀석이 의기양양하게 다가와 정우를 보며 건우 이야기로 시비를 걸었다.

정우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열어 오늘의 뉴스를 검색해봤다.

사실 검색도 필요 없었다. 포털사이트 제1면부터 건우의 이야기가 나왔다.

‘수십억 대 수익을 올리는 학원 강사, 생계곤란을 이유로 병역 면제’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털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했고,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1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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