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60화 (60/256)

제60화

정신과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초이스 에듀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삐익.

“네, 대표님.”

“손다정 팀장님 좀 들어오라고 하세요.”

건우는 출근하자마자 스피커폰으로 새로 들어온 비서인 미화를 호출했다.

이런 식의 거추장스러운 과정이 어색했지만, 손다정은 어느 정도 형식적인 모습이 어린 건우에게는 필요하다고 강권했다. 한마디로 무게를 좀 잡아야 직원들이 얕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한 번 들어나 보세요.”

“어떤….”

“해결책이요. 해결책.”

“아! 정말이요? 정말 괜찮은 방법이 생각나셨어요?”

“괜찮다기보다는….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하긴 그런데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요.”

손다정은 굉장히 기대가 찬 듯 물었지만, 건우는 왠지 뭔가 그렇게 자신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는 소리네요.”

“네. 해결책이긴 하죠. 좀 정석에서 많이 어긋나서 그렇지.”

“정석에서 어긋나요? 대표님이 웬일로요?”

“그게… 하하하. 손 팀장님이 지난번에 꼼수 마케팅이라는 책을 보며 엉뚱한 아이디어를 냈잖아요.”

“엉뚱한 아이디라니요. 솔직히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완전 흥행 돌풍이었잖아요.”

“그렇죠. 흥행 돌풍. 그럼요. 아무튼, 그래서 저도 그 책을 사봤어요.”

“어머! 정말이세요?”

정석의 대명사인 건우가 꼼수 마케팅을 사다니, 손다정은 정말 깜짝 놀랐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호호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 것 같았거든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방법은 찾아내고 싶었어요. 특히 동생들 상처 입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혹시나 하며 그 책을 샀죠.”

“그래서 방법을 찾은 거예요?”

질문하고 있는 손다정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찼다.

“거기 제목 중에 ‘불난 집에 부채질 or 맞불 작전’이라는 챕터가 있어요.”

“아! 저도 기억나요. 혹시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거예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어떤 방법인데요?”

“시선을 흐리고 논점을 흐리는 거죠. 자칫 잘못하면 자폭이 될 수도 있는 단점이 있지만요.”

“자폭이요? 대체 무슨 방법이길래….”

“제 경력이 가짜라고 터트리는 거죠.”

“네? 그게 무슨….”

“알고 보니 하버드대 의대 다녔다는 말이 뻥이더라.”

손다정은 건우가 하고자 하는 말이 대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라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지금까지 제 경력란에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나온 건 뺐잖아요. 괜히 생물 전문 강사로 비칠까 봐서요.”

“그랬죠. 6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굳이 생물학과 나온 걸 밝힐 필요는 없죠. 괜히 다른 과목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져 보일 것 같다고, 제가 반대했죠.”

“맞아요. 그런데 그게 의외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미국 의대는 보통 우리나라와는 달리 의학 전문 대학원 방식이죠. 손 팀장님도 처음에 그것에 대해 헷갈렸었잖아요.”

“호호호. 그런 적이 있었죠.”

지금은 웃고 있었지만, 당시의 손다정은 내심 엄청나게 당황했었다.

의대 출신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생물학과 출신이라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놀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겁니다. 왜 경력사항에 학부는 빠져 있느냐? 이거 혹시 사기 아니냐? 미국 의대는 의학 전문 대학원 방식인데, 그것도 모르고 학력 위조한 것 아니냐? 이렇게요.”

“그럼 금방 생물학과 졸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렇죠. 그렇게 금방 끝나면 재미없죠. 제가 15살에 생물학과를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거든요. 그것도 수석으로.”

“지금 그걸 자랑하려고 하는 건 아닐 테고요.”

“그렇죠. 뭐, 이런 식으로 가는 거죠. 하버드대 생물학과에 난다 긴다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3년 만에 그것도 수석으로 졸업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뻥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요.”

“음.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요. 그런데 그걸로도 좀 부족한 것 같은데요.”

뭔가 미심쩍은 듯 건우의 이야기에 반문하는 손다정. 그러면서도 그녀는 점점 더 건우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제 미국식 이름이 정확하게 ‘앨런 쇼어 초이’입니다.”

건우는 미국드라마 ‘보스턴 리갈’을 좋아했고, 거기서 ‘앨런 쇼어’라는 인물로 분한 ‘제임스 스페이더’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미국식 이름도 조금 거추장스럽지만 ‘앨런 쇼어 초이’라고 지은 것이다.

“그런데요?”

“당연히 졸업자 명단에 ‘건우 초이’라고 치면 안 나오겠죠?”

“그렇겠죠?”

“논란이 살짝 생기면, 사실 미국명은 ‘앨런 초이’라고 은근슬쩍 흘리는 겁니다. 그런데 ‘앨런 초이’라고 치면 제가 안 나오고, 철학과의 ‘앨런 초이’라는 이름을 가진 졸업생 한 명만 나옵니다.”

“네? 그게 가능해요?”

“그냥 ‘앨런’이라고 검색하면 저도 나오겠죠. 그런데 ‘앨런 쇼어 초이’에서 미들네임을 빼고 검색하면 제 이름은 검색이 안 됩니다.”

“아! 그럼. 그때부터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의심을 시작하겠군요. ‘앨런 초이’라고 검색하니 철학과 밖에 안 나온다. 의대 출신이 아니라 철학과 출신 아니냐? 망할 자식. 학력까지 위조한 거였어? 수능 적중률 사기에, 병역 사기에, 학력 사기까지. 3종 사기네. 역시 수능 적중률 과대광고할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어.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려나요?”

“그렇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곳의 특성상 그런 사실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겠죠. 그냥 또다시 저를 까지 못해서 안달 날 겁니다.”

“맞아요. 전보다 더 신이 나겠죠. 병역 문제나 정신과 상담이야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범죄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잖아요. 그에 비해 학력 위조는 진짜 사기행위죠. 지금까지 있었던 비난까지 시너지효과를 발휘해서 진정한 국민 개자식으로 거듭나겠네요.”

“개자식이요?”

“호호호. 그냥 남들이 그렇게 부른다고요.”

손다정은 ‘개자식’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건우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어깨만 으쓱였다.

“뭔가 이상하지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죠. 그동안 저를 옹호해왔던 사람들까지 폭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정말 해결방법 맞아요? 그냥 국민 개자식이 되고 끝날 수도 있는데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논점을 흐리는 겁니다. 사람들은 저의 군 면제나 정신과 상담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사실 위의 두 가지는 욕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면이 있거든요. 하지만 학력 사기는 다릅니다. 마음 놓고 욕할 수 있습니다.”

“욕도 보통 욕을 하겠어요? 정말 수명은 엄청나게 길어지겠네요.”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학력 문제가 불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병역 문제? 괜찮다. 갑작스레 두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니까.”

“정신과 상담은요?”

“정신과 상담? 그럴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정신과 상담이 무슨 문제냐?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제정신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나는 그런 것쯤은 이해하는 쿨한 사람이다. 그러나 학력위조는 절대 용서 못 한다. 이런 식으로요.”

“결국, 병역 문제나 정신과 상담은 이슈에서 완전히 사라지겠군요.”

손다정은 비로소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학력위조만 쟁점으로 남을 겁니다.”

“그렇게 학력위조만 쟁점이 되면요?”

“뭐가 걱정입니까? 방송국 하나 끼고 하버드에 직접 가서 촬영하면 되죠. 워낙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서 제가 제안만 해도 옳다구나 할걸요?”

“제가 방송국이라도 그런 제안이 들어오면 덥석 잡을 것 같네요.”

“하버드만 가면 절 알아보는 친구나 교수님들은 꽤 많을 겁니다. 생물학과 수석 졸업에 최우수 논문상까지 받았으니까요. 의대 가지 말고, 생물학 쪽으로 같이 공부해보자고는 제의도 꽤 많이 받았어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생물학과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학과로 평가받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제의에 상당히 고민했었어요. 결국에는 의대를 선택했지만요.”

“방송만 나가기 시작하면 논란은 금방 가라앉아버리겠군요. 아니죠. 수석 졸업에, 최우수 논문상까지 받은 경력이 나오면 어쩌면 또다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어휴. 그런 말은 하지도 마세요. 인기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요.”

건우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절레절레 손을 흔들었다.

“호호호. 그건 나중에 가보면 알 일이고.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요. 학력위조가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면 병역 문제나 정신과 상담 문제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군요.”

“그래도 완벽하게 논란이 일기 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병역 문제로 뭐라고 할 테고, 정신과 상담 문제로 시비를 걸겠죠.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호응은 못 얻을 게 분명합니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실행에 옮기죠?”

“은밀하게 돈을 줘서 시키세요. 우리가 아니라 우리 반대편이 주는 것처럼 꾸며서. 할 수 있겠죠?”

“아!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굳이 배후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꼼수 마케팅이라는 책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요. 대표님을 이렇게 잔머리의 대가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죠. 어쩌겠습니까? 남들이 자꾸 꼼수를 사용하는데, 저라고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 빨리 작전 준비를 해야겠네요. 이제 좀 안심이 돼요. ‘이카로스의 추락’이라며 대표님을 비꼬는 신문을 보며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이카로스가 되기에는 제가 너무 낮게 날았죠.”

“네?”

“겨우 지금 정도의 인지도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제 꿈은 겨우 지금 정도의 성공이 아닙니다. 높이가 아니라 낮게 날았기 때문에 충격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추락이라는 경험을 했으니 앞으론 쉽게 추락하는 일도 없겠죠.”

건우는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두 가지 변수가 건우를 완전히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도 알지 못했다.

***

[스타강사의 끝없는 추락, 이번에는 학력위조 의혹]

이북을 참고서와 연계해서,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새로운 학습방법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던 한 인기강사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병역 문제로 입방아에 오르더니 얼마 전에는 정신과 상담 이력으로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었다. 양파도 아닌데 까도 까도 계속 나온다.

바로 학력위조에 관한 의혹이다. 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건 엄연한 범죄행위이며 우리나라 국민 모두를 우롱한 심각한 사기행각이라고 볼 수 있다.

논란이 있었던 병역 문제의 경우, 당사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해할 만했다. 갑작스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은 유치원생을 포함한 세 명의 미성년자 동생. 게다가 부모님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집도 절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날아온 입영통지서.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면제 신청을 할 수밖에 상황일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연기 신청을 하겠는가?

정신과 상담 이력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번 논란은 아직 우리나라가 정신과 상담에 대해 얼마나 미개한 인식을 가졌는지 여실히 보여준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단지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만 나왔을 뿐인데, 그 사실이 확대재생산되어 정신 분열증이니, 마약이니, 여성들과 어울린 광란의 파티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 세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면, 누구라도 정신적으로 불안하지 않겠는가?

냉정하게 말해, 정신과 상담문제는 우리가 가해자고 당사자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학력 위조 의혹은 앞선 두 이슈와는 상황이나 성격이 다른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학력 위조와 관련해 지금까지 제기된 가장 큰 의혹은 과연 최 모 씨가 하버드대를 입학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버드에 다닌 것은 맞지만, 그가 입학한 곳이 사실은 의대가 아니라 철학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 제기이다.

하버드대를 다닌 적이 없다면, 그게 아니라도 제기된 의혹처럼 의대가 아니라 철학과에 다녔다면 이건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고착화된 아이들의 교육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국민들의 기대까지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충격이 작지 않다.

더군다나 최 모 씨의 부모님은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런 아픔을 겪은 그이기 때문에 이번 사기행각에 느끼는 배신감은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것만큼이나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미래일보 나노선 논설위원

“수고하셨어요. 손 팀장님.”

“수고라고 할 게 있나요. 그런데 정말 이런 기사가 나가도 괜찮겠어요? 부모님 일까지 언급되었는데.”

“그래야 논란이 더 커지죠. 부모님이 사기당한 일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와도 좋고요.”

“이러다 이 논란이 수습되지 않으면, 대표님은 더 이상 한국에 살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하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기사 내용이 조금 과격하다고 해도 어쨌든, 이번 논설의 중요한 키포인트는 병역문제와 정신과 상담에 대한 언급이니까요. 아마 상당수의 사람이 지금의 논설처럼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럼 더는 병역문제나 정신과 상담 문제가 큰 이슈가 되는 일은 없어지겠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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