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65화 (65/256)

제65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스트리 교수와 최건우 씨 좌담 영상.]

- 이 영상은 뭐죠? 자막이 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 외계인의 대화입니다.

- 왜 이렇게 이상한 영상을 올렸어? 영어 잘한다고 잘난 척하는 건가?

└ 굳이 이런 걸로 잘난 척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영어 인강만 봐도 엄청나더구먼.

- 제가 생물학과를 나왔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ㅠㅜㅠㅜ

└ 지잡대라서 그럴 수도.

└ 인서울임!!!

└ 그럼 인서울잡대.

└ ㅆㅂ! 넌 얼마나 잘났는데?

- 이거 유튜브에도 올라왔는데 거기 댓글은 장난 아니던데요?

└ 좌표 좀!

└ 좌표 말고 해석 좀! 댓글이 영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음.

└ ㅂㅅ. 그냥 구글 번역기 돌려. 그럼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

└ 전문 용어가 많아서 해석 불가.

- 대충 몇 개 가져와 봤어요. ‘와우! 대체 저 친구 누구야? 고작 20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짠 건 아니지?’

└ ‘쯧쯧쯧. 짰다고? 스트리 교수 성격을 안다면 그딴 소리 안 할 텐데.’

└ ‘5시간짜리 영상인데 한 번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봤습니다. 최신 생물학 이론들이 총 망라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굉장히 쉽게 풀어서 이야기를 나누네요. 두 분이 허락한다면 수업 시간에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씀은 저도 공감합니다. 생동감 넘치는 멋진 생물학 강의를 보는 듯합니다.’

└ ‘젊은 친구가 대단하네요. 우린 지금 20년 후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20년요? 10년 후에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 대단한 스트리 교수에게 조언할 정도입니다.’

└ ‘나는 RSFE-325라는 미생물이 뭔지 궁금해. 바이러스를 먹는 바이러스라니. 이거 왠지 대박 조짐이 보여.’

└ 유튜브 댓글 해석은 여기까지입니다. 참고로 ‘네가 뭔데 노벨상을 받느니 마니 하느냐’는 댓글도 있었는데, 그 발언을 하신 분은 스탠퍼드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 헐…! 최건우 진짜 천재인가 봅니다.

- 미친 거 아니야? 나 지금 소름 쫙! 저런 천재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거야? 역시 헬조선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시키면 안 될까? 일본 말고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생리의학상 받는 사람 좀 보자.

- 역시 우리나라다. 저런 천재를 사기꾼으로 몰고 가다니. 나 같으면 미국으로 망명해버릴 것 같다.

- ㅆㅂ! 인성도 ㅈㄴ 좋아 보임. 어떻게 방송에 나오는 사람마다 다 칭찬을 해? 나 이제 최건우 팬 한다.

└ 그건 방송이니까. 안 좋게 이야기하는 걸 내보내겠음? 편집해서 좋은 것만 내보내겠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ㅆㅂ! 잘났다!

***

[조유미의 인터뷰]

- 기자 : 반갑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 유미 : 정신과 전문의이다. 그리고 아동 심리학 박사학위와 가족 심리 상담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그 밖에도 심리 상담에 관한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 기자 : 오늘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가 최근 이슈가 되었던 최건우 씨 때문이라고 하는데.

- 유미 : 그렇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오해를 받아 마음이 많아 아팠다.

- 기자 : 어떤 사이인데 마음이 아픈가?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서로 연애라도 하는 사이인가?

- 유미 : 호호호. 아니다. 그의 상담사다.

- 기자 : 최건우 씨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문제가 논란이 되었는데, 그 담당 의사였단 말인가?

- 유미 : 미안하지만, 방금 말은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정신과 상담이 아니었다.

- 기자 :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면 정신과 상담 아닌가?

- 유미 : 분명 처음에 이야기했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이지만, 동시에 아동 심리학 박사이며 가족 심리 상담사이기도 하다.

- 기자 : 그렇다면 최건우 씨는 정신과 심리가 아니라 아동 심리나 가족 심리에 대한 상담을 받았단 말인가?

- 유미 : 그렇다. 최건우 씨의 경우는 갑작스레 3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머리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겨우 20살 된 청년에게 양육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다. 나는 그런 고민을 들어주고 약간의 조언을 해줬을 뿐이다.

- 기자 : 결국, 동생들을 좀 더 잘 키우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는 말인가?

- 유미 : 맞다. 그는 정말 세상에 다시 보기 힘든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부모님이 사고 소식에 지금껏 공부했던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선택했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상담하면서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

……중략……

- 기자 : 그래도 정신과 상담의로서 이번 최건우 씨의 사태에 대해 큰 유감을 가졌을 것 같다. 한마디 해줄 수 있는가?

- 유미 : 최건우 씨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정신과 상담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치료가 아니다. 그냥 감기가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과 똑같다. 냉정하게 따지면, 현대인의 90% 이상이 크고 작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감기보다 더 흔한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상담이라는 것은 미친 것을 고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유미의 인터뷰 기사는 엉뚱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사의 내용보다도 더 큰 화제가 된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였다.

인터뷰와 함께 실린 사진에서 그녀는 영화배우 리브 타일러가 연상되듯 하얀 피부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과 시원한 입술의 매력적인 여성으로 나왔다.

여배우도 부럽지 않을 아름다운 외모였다.

사진기자의 약간은 오버한 듯한 카메라 연출 덕분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나 많은 남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외모가 화제가 되자 그녀의 사진이 실린 인터뷰 기사 또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덕분에 건우의 억울한(?) 사연도 덩달아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그 인터뷰 기사의 가장 많은 호감을 받은 댓글은 ‘저렇게 아름다운 정신과 의사라면,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라는 조금은 황당한 내용이었다.

상황이 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학원은 다시 활기차게 돌아갔고 인터넷 강의 조회 건수도 정상수치를 회복했다.

가끔은 학원 수강을 그만뒀던 예전 수강생이 찾아와 다시 등록시켜달라고 조르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그렇지만 그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영순은 5살 난 딸이 있는 엄마였다.

보통의 5살 난 딸이 있는 엄마라면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어린이집에 가니 안 가니 하며 실랑이를 하고, 주말이면 좋은 곳으로 놀러 가기 위해 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맞벌이 때문에 일이 바빠서 그런 게 아니라, 아이가 소아암 환자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소아암에 걸렸다는 것은 가족이나 환자 본인에게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소아암 진단을 받으면 보통 2~3년 정도의 치료 기간 동안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어른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치료과정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자칫하면 마음의 병까지 생길 수 있다.

영순은 병으로 고통받는 것도 마음 아픈데, 마음의 병까지 얻는 것은 아닐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돌봤다.

그런데 치료기간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치료비가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치료비도 치료비인데 조만간 큰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당장 수술비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 신문에 [눈물 머금고 아들·딸 연명치료 포기한 부모 늘어]라는 신문기사를 봤는데, 그게 정말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막막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영순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그냥 사소한 수준의 도움이 아니라 밀렸던 병원비와 아이의 수술비까지 모두 지원해주는 기적 같은 일이 그녀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영순은 남편을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하늘에 감사하고 자신들을 도와준 익명의 독지가에게 감사했다.

누군지 몰라도 이런 도움을 준 사람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라도 꼭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익명을 요청했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만 했다.

아쉬웠지만, 고마운 은인의 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병원 안에서도 여럿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참 대단한 분이구나 속으로 감탄만 했다. 존경심이 절로 생겼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던 영순은 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의 전화 통화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래요? 그럼 정말 큰일이네요. 정말 훌륭한 독지가 한 분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곤란한 일을 겪게 되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들 참 너무하네요. 병역 문제야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정신과 상담문제까지 시비를 걸 수 있죠? 정말 무지해요.”

“휴…. 하는 수 없죠. 이미 여론이 그 정도로 악화하였으니, 재기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고.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분의 지원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들이 여전히 많은데.”

전화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병원을 후원하던 독지가 한 분이 큰 곤경에 처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독지가가 영순에게 도움을 준 그분일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그래서 간호사와 의사를 졸라 도움을 주신 독지가의 정체를 기어코 알아냈다. 바로 그 사람이 최근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건우였다.

건우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사람들이 도대체 왜 건우를 욕하는지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훌륭한 분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다는 걸 보면 자신과 자신의 딸이 모욕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어떻게든 건우를 도울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울 수 있는 방도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영순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몸으로 때우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마음 좋은 간호사를 설득해 건우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 부모의 명단을 건네받았고, 부모들을 직접 만나 건우의 지금 처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은인이 처한 곤란한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분개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녀와 함께 행동하기로 결의했다.

***

서울 도심 한복판.

아직은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새벽. 사방은 오가는 자동차 소리만 간간이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큰 도로 옆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신문사 중 하나인 조내일보가 그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 서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대략 15~20여 명으로 보이는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조내일보 정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진 눈빛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조내일보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당장 경비실에 지금의 긴급한 상황을 알렸고, 만약의 일을 대비해 경찰에도 연락을 취했다.

일단의 무리가 점점 더 다가오자, 경비원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문 앞에 섰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정문 앞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온 피켓들을 하늘을 향해 일제히 들어 올렸다.

‘조내일보는 최건우 선생님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즉각 중단하라.’

‘최건우 선생님은 소아암에 걸려 고통받는 우리 아이에게 기적을 선물한 천사다.’

‘기적을 선물하신 분을 악당으로 묘사하고 있는 조내일보는 당장 사과하라.’

‘내 아이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다. 필요하다면 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

표현은 과격했지만, 내용은 정말 절절했다.

건우에 대한 방송이 나간 이후 상황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조내일보는 여전히 건우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그래서 영순은 조내일보를 타깃으로 잡았다.

경비들은 다른 언론이 알기 전에 그들을 해산시키려고 했으나, 배수의 진을 친 병사들처럼 독기로 똘똘 뭉친 그들을 쫓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경찰이 도착했으나, 시위자들이 들고 있는 피켓의 문구를 보고 난감한 표정만 지었다.

비록 불법 시위는 분명하나, 평소 볼 수 있었던 그런 시위와 종류가 달랐다. 이런 시위대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칫 감당하기 힘든 역풍이 불지도 모른다는 걸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직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경비원과 시위대의 충돌을 막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처밖에 할 수 없었다.

해가 뜨고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사람들의 이목은 점점 더 시위대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다른 방송국과 신문사 기자들도 벌써 냄새를 맡았는지 속속 등장했다.

관련 기사들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졌고, 어떻게 알았는지 건우의 도움을 받았던 다른 병원 사람들도 뒤늦게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50여 명.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그들을 응원했고, 인터넷 기사를 퍼 나르는 등의 방법으로 작게나마 힘을 보탰다.

작은 시위대가 일으킨 파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전 국민이 조내일보를 손가락질하기에 이르렀다.

조내일보는 처음엔 들은 척도 안 했다. 대한민국 메이저 신문사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고작 5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시위자들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여론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견디다 못한 조내일보는 편집장이 사장 대신 내려와 직접 사과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그래도 시위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장이 직접 나와서 사과할 걸 요구했다.

경찰들도 난감했다. 여기저기서 압력은 계속 들어오는데, 법적으로도 분명 해산을 시켜야 하는데. 강제 진압은 꿈도 못 꿨다.

일단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언론의 눈도 날카로워졌으며 대학 학생회나 유모차 부대와 같은 젊은 엄마들의 모임은 아래와 같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환아 어머니들의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시위의 순수성을 위해 지켜보고만 있지만, 강제 해산 시도 시 우리도 즉각 행동에 나서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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