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알았다니까. 그만 좀 해!”
“야! 최은우. 내가 틀린 말 했어?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학교 다니라는 이야기잖아. 괜히 욱해서 사고 치면, 네가 아니라 형이 고생한다니까.”
첫 등굣길.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동우와 은우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외부의 적이 생기면 내부는 단결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건우 관련 스캔들이 터진 동안에는 그야말로 똘똘 뭉쳐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줬던 두 사람이다.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 사건이 좋게 마무리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아웅다웅하는 사이로 변했다.
“누가 뭐래? 사고 안 친다고. 이제 사고 칠 일도 없잖아. 우리 큰오빠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놀릴 애들도 없을걸?”
“어휴. 또 단순하게 생각한다. 시기 질투하는 애들이 그런 사정을 보고 사람 놀린다고 하디? 그냥 무조건 놀리고 보는 거야. 네가 반응하면 더 신 나서 놀릴걸? 오늘 학교 갔는데, 누가 너보고 고아라고 놀리면 어떡할 거야?”
“그걸 그냥 둬? 머리카락을 확 뽑아버려야지.”
사고 안 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던 은우였지만, 동우의 질문에 금세 발끈하며 눈빛이 사나워졌다.
“저 봐. 저 봐. 또 성질 나온다. 하여간 쬐끄만한 계집애가 성질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니까. 완전 싸움꾼이야, 싸움꾼. 형. 정말 괜찮겠어? 내가 장담하는데 은우 분명 사고 친다.”
“최은우.”
“응. 큰오빠.”
“오빠랑 약속했지?”
“응. 했어. 절대 성질부리지 않기로. 그치만 가족 욕하는 사람은 가만 내버려 둘 수가 없다고.”
“네가 그렇게 자꾸 발끈하니까, 애들이 자꾸 널 건드리는 거야. 반응하지 마. 또 학교에 불려가야 할 형을 위해서라도 제발 참아라. 너 정말 그러다 학교에서 왕따 당한다.”
“안다니까. 어휴 잔소리쟁이. 하여간 작은오빠는 점점 더 아줌마처럼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 같아. 귀에 딱지 앉을 것 같아.”
“뭐? 아줌마? 넌 나처럼 건장하게 생긴 아줌마 봤어?”
“못 봤지. 그러니 더 이상해. 그 덩치가 아깝다. 그 로맨스 카페 작작 좀 드나들 수 없어? 거기서 맨날 아줌마랑 채팅이나 하고 있으니 그렇게 수다스러워지는 거라고.”
“작은형. 최은우. 그만 좀 하지. 꼭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까지 이렇게 투닥거려야겠어? 대강 좀 하자. 아주 지겨워 죽겠어.”
“남이사.”
동우와 은우의 유치한 말싸움을 보다 못한 정우까지 끼어들어자동차 안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도 건우는 오랜만에 듣는 소란스러움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기자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다.
다행히 소란스럽던 사건은 무사히 해결되었고, 이렇게 예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니 이게 행복처럼 느껴졌다.
동우와 정우를 내려다 준 자동차는 은우의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큰오빠. 잘 가. 이따 저녁에 봐.”
은우는 자신을 태워다주고 돌아가는 건우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오빠 때문이 아니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내키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깡이 좋고 말괄량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괴롭힘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어버리는 과격한 행동을 한 덕분에 쉽게 건드리진 못해도 은근히 따돌리는 것까진 은우도 어쩔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왕따의 초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은우도 어렴풋이 자신이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빨리 방학을 한 덕분에 노골적인 괴롭힘까지 발전하는 일은 없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됐을 뿐 반이 바뀐 건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은우였기 때문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최대한 늦게 걸음을 옮겼으나 어느새 교실 앞이었다.
‘최은우. 쫄지 말자. 그까짓 것들이 왕따 하면, 나도 걔들을 왕따 하면 되는 거야. 흥! 뭐가 무섭다고.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오빠가 셋이나 있다고.’
은우는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속으로 그렇게 다짐한 후 조심스레 교실 뒷문을 열었다.
긴장이 풀리지 않아 두 주먹을 꽉 쥔 상태였다.
드르륵. 쿵.
조심스럽게 열려고 했는데, 긴장해서 힘이 들어갔는지 교실 문에서 쿵 하며 큰 소리가 났다. 수다스럽던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이 일제히 은우를 바라봤다.
‘망했다.’
수많은 눈동자가 자신에게 몰리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최대한 조용히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계획은 실패했다.
“어! 태극기 소녀다.”
“오! 정말 은우 왔네. 야! 최은우. 네가 정말 TV에 나온 그 태극기 소녀 맞아?”
“당연한 걸 물어봐? 은우가 당연히 태극기 소녀지. 그지 은우야?”
누군가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정말 반가운 친구 대하듯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은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태극기 소녀 이야기, TV에 출연해서 좋겠다는 이야기 등을 하며 스타를 보듯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은우를 둘러쌌다.
은우에게 호되게 당했던 몇몇 아이들만 멀뚱멀뚱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을 뿐, 대부분의 학급 친구들은 그녀의 등장을 그렇게 반겨줬다.
처음엔 당황했던 은우도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미국에 가서 태극기를 두르게 된 사연을 마치 대단한 무용담이라도 겪은 것처럼 자랑스럽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차지훈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차지훈 님. 최건우입니다. 장만복 회장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회장님이 일주일 전쯤 조만간 찾아갈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들을 데려다 주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웬 낯선 남자가 건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지훈이었다. 장 회장이 정보 쪽 계통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테랑 중 한 명이라고 해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첫 모습은 좀 의외였다. 차지훈은 건우가 상상했던 정보 분야 최고의 베테랑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쭈글쭈글한 면바지에 후줄근한 반소매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과 선한 느낌만 드는 선한 눈매.
어딜 봐도 잘나갔던 스파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선한 눈매에도 불구하고 눈빛만큼은 깊고 또렷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명색이 정보통인데 바로 올 수야 있나요. 일주일간 제 정보망을 동원해서 초이스 에듀와 이곳 학원가에 도는 여러 정보를 수집하느라 바빴습니다.”
“역시 베테랑다우시군요. 그래서 쓸 만한 정보는 수집하셨습니까, 차지훈 님?”
“그냥 차 팀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어차피 같이 일할 사이 아닙니까. 대표님.”
“그럴까요? 그럼 편하게 차 팀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럼 아까 하신 질문에 답변을 드려야겠죠.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대표님을 공격했던 조직의 정체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은밀하더군요. 정신과 상담 문제를 기사화했던 신문사는 예상대로 유령신문사였습니다. 열심히 탐문 수사를 했는데 거기서 탁 막혔습니다.”
“유령신문사요? 그렇게까지 했다는 건 저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확실히 있다는 뜻이겠군요.”
말을 하는 건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맞습니다. 뒤처리가 깔끔한 걸 보면 그냥 단순한 조직이 아닙니다. 절대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겁니다.”
“그래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하니 괜히 걱정이 됩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너무 염려는 하지 마세요. 학원가에서 암투를 벌이는 세력치고는 은밀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최첨단 기술이 오가는 자동차나 통신 분야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 수준입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차지훈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몰랐다면 오만(傲慢)처럼 비쳤겠지만, 장만복 회장이 소개해준 사람이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그럼요. 제가 요 며칠 정보 수집을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밤이 되면 학원에 잠깐씩 들렀거든요.”
“네?”
“허락 없이 몰래 침입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 이상으로 보안이 허술하더군요. 컴퓨터 관리도 엉망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초등학생이 와도 쉽게 정보를 빼어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몰래 침입을 하시면….”
“하하하. 이상하십니까? 그냥 테스트였다고 편안하게 생각하십시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하기에 앞서 자기 앞마당부터 철저하게 살피는 게 습관입니다. 제가 며칠 동안 샅샅이 훑어봤는데 학원 내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다든가 도청을 시도했다든가 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몰카요? 도청이요?”
건우는 차지훈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나오자 깜짝 놀랐다.
솔직히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었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지금까진 대표님을 깔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시도는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정도 조직력을 가진 곳이라면 다음에도 그러지 않으리라 무작정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도청까지 시도하겠습니까? 명백한 불법 행위인데.”
“대표님.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알아보니 사교육 시장이 스마트 시장과 결합하면서 앞으로 엄청나게 발전할 것으로 보이더군요. 제 말이 맞습니까?”
“잘 보셨습니다. 지금도 변하고 있지만, 앞으로 10년 후 정도면 학생들의 학습방법은 180도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스마트 시장이 되겠죠.”
2013년 기준 대한민국 총 사교육비 지출은 총 18.6조 원. 스마트 부분 교육비는 3.6조 원. 스마트 사업이 커진다는 것은 총 사교육비 지출에서 스마트 부분 교육비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는 뜻이다.
3조 원도 큰돈이지만, 10년 후라면 10조 원 이상 가는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10조면 총 사교육비의 절반이다.
“그걸 아시면서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스마트 시장이라는 것은 결국 온라인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곳 아닙니까? 보안. 당연히 중요하죠. 게다가 대표님의 경우는 수능 족집게로도 유명하시지 않습니까. 만약 올해도 적중률이 높다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정보를 얻어 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겁니다.”
“그런 건 걱정 없습니다. 수능 관련 분석은 전부 제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알아보니 대표님의 지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분명 어딘가 유용한 정보를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찾아내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되면 도청이나 해킹 정도는 서슴지 않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분명 생겨날 거고요.”
중요한 건 건우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난번 스캔들은 대표님이 운이 좋아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겁니다. 앞으로도 그런 요행을 바라시면 진짜 큰코다치십니다. 전,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잘 공격하다가 왜 갑자기 학력위조를 들고 나왔는지. 그런 식으로 자폭만 안 했다면 대표님은 지금 굉장히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겁니다.”
“만약 자폭이 아니라면요?”
건우가 차지훈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대표님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뭐,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겠네요.”
“아니요. 우연은 아닙니다. 의도한 일이긴 한데, 그걸 주도한 게 정체 모를 조직이 아니라 저라면요?”
“네?”
차지훈은 순간 건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초이스 에듀가 일부러 학력 위조 논란을 일으켰다는 뜻이야? 왜 그런 미친 짓을……. 아니지. 아니야. 미친 짓이 아닐 수도 있어.’
차지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달리 베테랑 정보원 출신이 아니었다.
“민망하긴 해도 어차피 지금부턴 차 팀장님이 해야 할 일이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학력 위조는 우리 쪽에서 먼저 터트린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아! 세상에! 하하하.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입니다. 와! 어쩐지.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그런 시도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학력 위조가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와 저도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런데 그게 대표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니…. 이제야 의문이 모두 풀리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저와 대표님은 잘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한 샌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차지훈은 안 그래도 호감이 갔던 건우가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것참. 그렇게 말씀하시니 쑥스럽네요.”
“아닙니다. 그런 임기응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설마 소아암 어린이를 돕는 일도 이런 일을 예상하고 일부러….”
“어휴.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까지 예상합니까? 사람들은 가끔 머리 좋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예측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그냥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고 이해력이나 연산능력이 뛰어날 뿐이죠. 특히 사람의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신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하긴. 그런 그렇겠네요. 그럼 소아암 어린이들을 도운 일들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셨습니까?”
“음.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남을 도운 건, 100% 선의에서 나온 행동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결정한 겁니다. 소아암 어린이를 돕기로 한 건, 제 막냇동생인 은우가 TV를 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차지훈은 앞으로 건우를 도와 앞으로 정부 분야를 총괄해줄 인물이다. 손다정 만큼이나 믿고 의지해야 할 사이.
그런 그에게 거짓말로 포장하는 것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서로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 그 태극기 소녀를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그 방송 봤는데,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태극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더군요.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보기 좋았어요. 막냇동생이 대표님께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군요.”
“하하하. 언제나 제겐 행운의 여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말썽은 부려도 은우는 건우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다.
“그렇게 귀엽고 깜찍한 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럽습니다. 흠흠.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보시지요.”
은우의 칭찬으로 분위기가 좋아지자 차지훈은 민망한 듯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건우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보안강화를 위한 예산안? CCTV 설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보안 강화. 출입문 교체. 항목이 무척 많네요. 음…. 총 금액이 오억 원이 넘네요?”
“조금 많죠? 정보 수집을 하려면 이런저런 장비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사용하던 장비는 반납했기 때문에, 전부 새로 구매해야 합니다. 일하는 환경은 스펙터클해도 그래 봤자 공무원이다 보니 모은 돈이 별로 없어서 장비 구입할 돈이 부족하네요. 그래도 많이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물건만 고르고 고른 겁니다.”
차지훈은 본인이 생각해도 민망한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처음 봤는데 대뜸 5억 원을 요구하는 건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굳이 과하게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는 없습니다.”
“네?”
까다롭게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다.
“그러니까. 지원 금액이 5억 원이면 정도면 충분하냐는 말씀입니다. 부족하진 않나요?”
“음. 쓰려고 하면 부족하고, 아끼려고 하면 충분할 수도 있죠.”
“그럼. 우선 차 팀장님 앞으로 10억의 예산을 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차 팀장님이 하시는 일은 전부 선조치 후보고로 하겠습니다. 예산도 마찬가지고요.”
“헉! 부담되시지 않겠습니까? 저라는 사람은 오늘 처음 보셨을 텐데요.”
“일단 장 회장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봐도 왠지 믿음이 가는 분 같습니다. 이 정도면 이유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수고 좀 많이 해주십시오. 차 팀장님.”
“정말 시원시원하시군요. 이십 대 초반답지 않은 노련미도 느껴지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와 함께 일하게 된 것에 대해 절대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희미한 웃음만 머금고 굳게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