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77화 (77/256)

제77화

건우의 인터넷 강의 서비스에 대한 포털 바나나의 8월 매출은 동영상 9백만 건, 이북 3백5십만 건, 총 매출액은 457억 원이었다. 9월 매출은 동영상 1천3백만 건, 이북 오백만 건, 총 매출액 653억 원으로 약 43%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인터넷 강의 하나로 이 정도의 매출을 거뒀다는 건 정말 엄청난 성과였다. 그러나 그것도 10월에 비한다면 평범한 성적이었다.

동영상 2천만 건. 이북 다운로드 횟수는 8백만 건. 총 매출액은 무려 1천억 원 돌파. 전 달 대비 53%의 매출 신장.

1년이 아니라 겨우 한 달 동안 기록한 매출액이었다.

물론 11월 둘째 주에 있는 수능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매출 신장에 지대한 영향을 줬지만, 그런 특수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월매출 1천억 원을 달성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아직 부족해요.”

초이스 에듀는 매월 초 매출 분석을 위한 회의를 한다. 11월도 당연히 예외는 없었다.

월매출 천억 원이 넘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기뻐했고 회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손다정의 얼굴만 무덤덤했다. 오히려 차갑고 단호한 말로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줬다.

“손 팀장님. 무려 천억 원이라고요. 천억 원. 일 년 매출이 아니고 한 달 매출이 천억 원을 넘었단 말입니다. 이 정도면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요?”

“김완태 팀장님. 천억 원이 우리 회사 매출인가요? 그 매출이 우리 초이스 에듀의 순수한 매출이면 인정해드릴게요. 황효주 씨.”

“네. 팀장님.”

손다정의 부름에 황효주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효주는 손다정이 팀장으로 있는 기획팀 소속이다. 손다정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워낙 확실한 사람인지라 황효주에게 그녀는 호랑이 선생님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죄진 것도 없는데, 놀랄 것 없어요. 우리 매출 분석 완벽하게 해뒀죠?”

“물론입니다. 핸드아웃도 만들어뒀습니다. 팀장님.”

“수고했어요. 그럼 분석한 자료를 여기 회의실에 있는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 주세요.”

황효주는 손다정에 지시에 따라 준비해온 핸드아웃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표와 그래프로 깔끔하게 정리된 매출분석표였다.

“뭐야. 10월 초이스 에듀 매출이 겨우 186억 원? 아니 정말 이거밖에 안 되나요?”

분명 매출이 천억 원을 넘었는데 실제 매출은 186억 원밖에 안 된다고 하니 다들 황당해 했다.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186억 원도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기가 싱크빅입니다. 그곳 한 달 매출이 얼마인지 알아요? 700억 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들에 비해 반의반밖에 되지 않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들떠서야 되겠습니까?”

손다정의 정확한 지적에 모두 조용해졌다. 같은 팀장급도 있고 손다정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을 채용한 사람이 그녀였다.

직급은 팀장이지만 사실상 초이스 에듀의 경영 파트 책임자가 손다정이라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

여기서 같은 팀장이라면서 시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손 팀장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적은 것 같아요. 순수익이 아니라 매출을 계산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줄어들 수 있죠?”

황효주가 나눠 준 핸드아웃을 제대로 보지 않고 어이없는 질문을 하자 손다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거기 표를 보면 나와 있을 텐데요. 우선 바나나와 우리는 동영상의 경우 6:4, 이북의 경우 7:3으로 나누기로 했어요. 거기에 판매 수수로 10%는 별도고요. 그런 비율로 계산하면 바나나의 몫을 제외한 매출이 약 576억 원이죠. 이게 끝이 아니에요. 최건우 대표님과 우리 초이스 에듀가 7:3으로 다시 나눕니다. 대표님 몫을 빼면 170억 원이 조금 넘어요. 거기에 초이스 에듀 분점 6곳의 매출을 포함하면 186억 됩니다. 이해가 가셨어요?”

뭔가 계산법이 이상하긴 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매출이 아니라 영업이익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손다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그런데 초이스 에듀는 어차피 우리 대표님 혼자서 돈을 버는 곳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대표님의 수입을 매출에서 제외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니죠. 그건 어디까지나 대표님의 순수한 수익. 사실 170억 원이라는 돈도 따지고 보면 대표님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입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초이스 에듀의 분점 6곳에서 나오는 13억 원이 우리 매출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우린 언제까지 대표님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할까요? 자존심 상하지 않아요? 대표님 아니면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는데 부끄럽지 않나요?”

“그렇지만….”

“언제까지 대표님만 바라보며 손가락을 빨건 가요? 전에 김완태 팀장님이 드라마 PPL 아이디어를 낸 이후 매출이 두 배 이상 뛰는 거 보셨죠? 그게 바로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만 내면 학원 차원에서 얼마든지 인센티브를 지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주체적으로 움직이세요. 우린 고작 186억 원의 매출밖에 되지 않는 평범한 학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요.”

월매출이 186억 원인 학원이 평범한 학원일 리가 없다. 그러나 손다정은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 1위 학원인 기가 싱크빅 매출의 절반 이상은 오프라인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다. 아무리 온라인이 대세로 흐른다지만, 오프라인 시장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건우 덕분에 온라인 시장에서는 이미 절대 강자가 된 초이스 에듀라고 해도 오프라인은 아직까지 다른 학원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초라하다.

본점이 개원한다면 그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손다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학원을 만들고 싶었다.

정식으로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 된 학원이라는 걸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이지만 그 결과에 안주해서는 곤란했다.

그러기에 건우의 꿈은 너무 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손다정이다.

“저기 손 팀장님.”

“네. 송 팀장님.”

회의는 다소 경직된 분위기.

그때 직원 중 가장 연장자이자 법무팀장인 송미주가 나섰다. 변호사인 만큼 그녀의 주된 업무는 법과 관련된 일이다.

학원의 매출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항상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평소에는 조용히 듣기만 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시겠지만 저는 우리 초이스 에듀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주된 임무잖아요.”

“네. 그렇죠. 그럼에도 우리 학원의 매출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별말씀을요. 같은 회사 직원인데 당연한 일이죠. 아무튼, 교습법과 같은 저작권 및 지적 재산권에 관련된 업무도 진행하다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떤 생각이죠?”

“저작권 및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특허는 매우 광범위해요. 한계를 우리나라로만 국한할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특허 출원을 준비하고 있고요.”

“다른 나라에 미리 특허를 내는 것은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좋겠네요. 잘하셨어요.”

손다정은 송미주가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궁금했다. 단순히 칭찬을 듣자고 그럴 리는 없고.

“그런데 제가 우리 대표님이 만드신 교습법 등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정말 쉽게, 그러면서도 획기적인 교습방법들이 많이 있더군요. 어릴 때 고생고생하며 어렵게 공부했던 게 억울해지더라고요. 호호호.”

“그렇긴 하죠. 단지 강의만 잘해서는 지금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힘들었을 거예요. 놀랄 만큼 획기적인 교습방법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지금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과정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지 않나요? 다른 분야는 몰라도 수학과 과학은 아마 비슷하겠죠?”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수학과 과학이야 비슷하지 않겠어요? 나이에 따른 적당한 교과 과정이 다를 순 있겠지만, 배우는 이론은 큰 차이가 없을 거예요. 그래서 국제 수학올림피아드가 열리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죠? 그럼요. 우리도 굳이 한국 시장만 국한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교습법을 수출해도 되잖아요. 그렇게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인 교습법인데 다른 나라라고 해서 그 가치를 몰라볼까요? 다른 나라에 있었으면 이미 우리나라에 알려졌겠죠.”

“아!”

송미주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한 직원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왜 그렇게 쉬운 생각을 못 했는지 머리를 두들기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님은 영어도 되시잖아요. 그러니 영어판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앱 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에 배포하는 방법도 있어요. 큰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선진국이라도 해서 아이들이 공부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정말 그러네요. 교과과정이야 조금 다를 수 있다지만, 해당 국가의 교과 과정에 맞춰서 틀만 살짝 바꿔주면 아무 문제가 없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게다가 미국 같은 나라는 우리나라의 고리타분한 교육부 공무원과 달리 검증만 잘 된다면 새로운 이론에 대해 매우 너그러운 편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 운이 따른다면 대표님의 이론을 교과서에 실을 수도 있어요.”

“교과서에요?”

“물론이죠. 어렵지 않아요. 대표님은 하버드대 출신이잖아요. 그쪽 라인을 통해 로비만 잘한다면 미국에서 사용되는 수학이나 과학 교과서에 대표님의 교습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곳도 분명 생겨날 겁니다. 거기에 해당 과목 교수의 검수가 있다면 더욱 좋겠죠. 그 교수가 하버드대학 교수라면 금상첨화고요. 대표님은 생물학과 출신이니 우선 생물 과목부터 추진하는 건 어떨까요?”

송미주의 말처럼 미국에서 하버드의 위치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 나라도 인맥을 따진다.

한국의 듣보잡 강사가 자신의 교습법을 수출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하버드에서 수석졸업까지 한 우등생이 만든 교습법을 수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렇게만 되면 정말 엄청나겠군요.”

“그럼요. 미국의 선택만 받는다면 다른 영어문화권 국가에도 충분히 통할 수 있어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만 생각해도 인구가 약 4억 5천만 명입니다. 우리나라의 10배죠. 한국의 중고등학생 수가 약 350만 명.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귀찮으니까 그냥 10배로 계산할게요. 그럼 3,500만 명이에요. 거의 우리나라 인구죠. 그런 거대한 시장에 영어를 제외한 다섯 과목의 교과서를 권당 0.1달러의 로열티만 받고 공급한다고 해도 정말 어마어마하겠죠?”

0.1달러를 받고 3,500만 명에게 공급한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약 35억 원이다. 그런데 한 과목이 아니라 다섯 과목이니 175억 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겠지만, 일만 잘 풀린다면 매년 175억 원의 엄청난 과외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로열티니까 세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순이익이다.

“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정말 가능할까요?”

“호호호. 손 팀장님 아까의 패기는 다 어디 가셨어요? 안 되면 되게 해야죠.”

“그러게요. 정말 대단하세요, 송 팀장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이 수출 건만 제대로 성사되면, 송 팀장님은 더 이상 학원에서 일하실 필요가 없겠는걸요. 아이디어에 따른 인센티브만 해도 엄청날 테니까요.”

“에이. 그래도 사람이 일을 해야죠. 그리고 그게 하루 이틀 안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3~5년. 길게는 10년까지 두고 봐야 하는 장기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되기만 한다면 10년이 걸려도 상관없겠죠. 송 팀장님이 제시하신 내용은 최대한 빨리 대표님과 논의를 해봐야겠어요. 허락만 떨어지면 당장 법무팀 인원부터 최우선적으로 보강해야 할 것 같네요. 변리사와도 연계해야 할 것 같고요.”

“인원 보강이요? 그건 정말 반가운 소린데요?”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송미주가 인원을 보강한다는 이야기에는 눈이 반짝였다. 그만큼 최근 초이스 에듀의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았다.

돈을 아끼고 직원들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너무너무 바빠서 신입 사원을 뽑을 시간조차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동안 힘드셨죠?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직원들을 뽑으려고 준비 중에 있어요. 일이 너무 바빠서 직원들을 뽑을 시간이 없었던 게 문제지만요.”

“직원을 뽑을 돈은 있는데 뽑을 시간이 없다는 게 슬프네요.”

“그래서 각 팀장님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드리려고 해요. 신입사원의 경우는 공채를 통해 뽑겠지만, 경력 사원은 팀장님들이 직접 뽑을 수 있게 하려고요.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지 않으면 팀장님들만 고생하니까, 알아서 좋은 인재를 찾아오리라고 생각해요.

“그럼 경력 사원을 먼저 뽑는 겁니까?”

“네. 경력사원을 우선적으로 뽑아 인력난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초이스 에듀 본점 개원 시기에 맞춰 신입사원을 뽑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습니다.”

“무조건 좋습니다.”

손다정의 이야기가 끝나자 각 팀장들이 기다렸다는 듯 호응했다. 일이 힘든 것은 송미주만의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법률 관련 일만 하면 되는 송미주와 달리 부족한 일손 때문에 팀에 상관없이 잡다한 일까지 해야 했던 다른 팀장들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아주셔야 해요. 재량권을 드린 만큼 뽑힌 직원에 대한 책임은 각 팀장님에게 있다는 사실이요. 그 사실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회의를 평소보다 빨리 끝냈다. 손다정은 회의보다 송미주가 낸 의견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은 아이디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교육학원이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해외로 진출하는 건, 지금까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

어쩌면 학원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신선했고,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아이디어만 잘 가다듬어 성사시킬 수 있다면, 초이스 에듀는 지금보다 몇 단계는 훌쩍 뛰어넘으며 빠르게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수출하는 사교육 학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다정은 한강 에듀케이션에서 열심히 강의하고 있을 건우를 당장에라도 소환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다잡고, 아이디어의 당사자인 송미주와 단둘이 모여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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