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든 말든 강경준은 건우가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그의 사무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노크를 했는데도 대답이 없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걱정이 많은 듯 굳은 표정이었다.
강경준은 그 표정을 보며 또다시 감동을 받았다.
저 얼굴은 분명 자신을 포함한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칠지 걱정하고 있는, 그런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최건우 선생님.”
노크소리에도 대답이 없어서 조금 크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경준의 목소리는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떨렸다.
“어? 아! 경준이구나. 내가 뭐 좀 고민하느라. 네가 온 줄도 몰랐네. 그래, 시험은 잘 쳤고?”
건우가 강경준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데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았다.
“그럼요. 선생님. 저 있잖아요. 아직 가채점이긴 한데, 수능 만점 받은 것 같아요.”
“뭐? 만점? 그게 정말이야? 으하하. 이 녀석! 축하한다. 정말 축하해. 이번 수능 난이도가 꽤 있는 것 같던데,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겠구나.”
“전부 선생님 덕분이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강경준은 감격스러운 자기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건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
건우는 강경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지만, 금방 침착함을 되찾고 그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줬다.
“고맙긴. 네 노력 덕분이지. 경준이 덕분에 우리 학원 홍보 제대로 되겠는걸. 하하하.”
고작 2살 차이인데 건우의 품이 꼭 아버지 품 같이 넓고 따뜻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건우에게서 받은 은혜는 죽을 때까지 갚아도 갚지 못할 것 같았다.
‘선생님. 선생님에게 받은 이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제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품에 안겨 감사한 마음을 전하던 강경준이 돌아가자, 건우의 얼굴은 또다시 심각하게 굳어졌다.
강경준은 그의 굳은 표정을 보며 자신을 포함한 근로장학생들이 행여나 시험을 망치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건우 빠돌이다운 오해였다.
‘수능 문제가 어느 정도 바뀔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이 바뀔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 했어. 어떻게 이렇게 어렵게 문제가 나올 수 있는 거지? 출제위원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먹은 건가? 아무리 고민해봐도 변수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올해가 이 정도면 내년에는 대체 얼마나 바뀐다는 거야?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심하게 바뀔 줄은 몰랐어. 아직 2~3년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계획을 바꿔야 하나?’
건우가 지금껏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생각 이상으로 바뀐 수능 문제 때문이었다.
작년처럼 50% 적중률을 장담하는 광고는 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일 정도였다.
얼핏 계산해보니 대략 30% 정도의 적중률이었다. 사실 3주의 짧은 수업을 생각했을 때, 이것도 대단한 확률이다.
그러나 50%의 적중률을 보였던 작년에 비한다면 실망스러운 수치임은 분명했다.
건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많은 반면, 여전히 건우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기자라는 족속들의 습성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엉터리 스캔들에 대해 고소, 고발을 하며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작은 신문사 몇 개만 문을 닫았을 뿐이었다. 대부분 언론은 그냥 벌금 몇 푼 내고 끝이었다.
화해의 제스처로 좋은 기사를 내는 언론사 중에서도, 틈만 보인다면 언제든지 다시 물어뜯을 준비가 된 곳도 많다. 그들이 아니라도 건우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지난해와 비교해 적중률이 떨어졌다? 주관식 적중률은 오히려 높아졌다든지 하는 실효성에 상관없이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볼 것이 뻔했다.
‘수능 적중률 신화의 마감.’
‘최건우 강사, 수능 적중 실패.’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의 좋은 본보기.’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이런 종류의 제목을 가진 기사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언론이라는 족속들은 진실이 뭐든 상관없이, 어떻게든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기사를 만들어 대중들의 관심만 끌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많다.
언론의 무자비한 공격에 트라우마가 생겼던 건우로서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참 의외긴 하네. 변수가 생겨 수능이 어렵게 나올 것을 대비해 혹시나 하며 추가했던 문제들이 그렇게 많이 적중될 줄이야. 이번엔 확실히 운이 좋았어. 그렇지만 더는 미래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기 힘들어졌어.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해.’
어떻게 보면 건우에게 이번 수능은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건우라는 변수 하나로 수능 문제가 지금처럼 많이 변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건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이렇게까지 심한 무리수를 둘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최근의 수능 문제 유형도 그랬고, 향후 20여 년간의 수능 문제 흐름도 계속 마찬가지였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능은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풀 수 있도록 쉽게 내자.’ 이것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모토이자 원칙이었다.
아무리 머리가 명석하다고 해도, 건우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원칙을 깨고 자폭하리라고는 예상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일부러 틀리기 위해 내놓은 기출 문제가 엉뚱하게 적중했다는 것이다.
사실 수학경시대회같이 초고교급 실력을 묻는 대회가 아닌 이상, 고등학교 수준에서 수능 문제를 어렵게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쉽게 말해, 고등학교 수학에서 아이들이 어려워할 만한 부분은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사나 강사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수능에 나올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냥 ‘만약 수능이 혹시라도 1997년처럼 어렵게 나온다면 이렇게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별 뜻 없이 만들어 첨가해놓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버리려고 만든 문제들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운이 내년에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해. 이제 나 혼자 수능 문제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만들어야겠어. 출제위원이 누군지 분석하는 것은 차 팀장님에게 팀을 만들라고 해서 맡기면 되지만 출제위원의 문제 출제 성향에 대해 분석하는 팀은 내가 직접 운영을 해야 해.’
‘그 팀이 분석해서 만든 자료와 내가 가지고 있는 미래 지식을 잘 조합한다면 올해와 같은 실패는 없을 거야. 수능을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필요해. 운은 한 번뿐이야. 내년에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당장 팀부터 꾸릴 준비를 해야 해.’
팀 앨버트로스(Team Albatross)는 건우의 이 같은 고민이 만들어 낸 수능예측 전문가 집단이었다.
건우의 이런 선택은 훗날 최건우, 윤은영, 이승훈이라는 최강 강사진 트로이카와 더불어 초이스 에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
[수능 난이도 조절 대실패]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시행되었다.
여러 가지 이슈로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렸던 이번 수학능력시험. 그러나 누구도 예상 못 한 뜻밖의 어려운 수능 난이도 때문에 전국은 지금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
수능 시험을 치다가 중간에 뛰쳐나온 학생, 어려운 문제에 끙끙 앓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에 실려 간 학생,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오면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 매년 이런 종류의 학생들이 등장했지만, 올해는 그 수가 유달리 늘어났다.
올해 수능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 한 학생은 ‘선생님들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했던 부분에서 시험문제가 출제되었다. 이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거냐’며 눈물을 흘렸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집단 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를 조절했을 뿐.]
수능 난이도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장표명을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약간의 난이도를 조절했을 뿐이다. 학생들이 어렵다고 느낀 것은 그동안 쉬운 문제에 익숙해져서 그렇다. 예년과 비교하면 점수가 낮게 나올 수는 있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라며 그동안의 논란을 일축했다.
[XX시에 사는 고3 학생, 수능 성적 비관 자살.]
또다시 수능시험에 좌절하며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능시험이 끝난 이후 벌써 다섯 번째 일이다.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문가들. 이번 수능시험은 모두에게 어려웠기 때문에 낙담은 일러.]
유독 어려웠던 수능. 전문가들은 수능시험이 어려웠다고 해서 미리부터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모든 학생에게 어려웠던 것만큼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성적발표가 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봐야 한다고…….
[재수를 준비하는 학생들 속출, 정부의 책임은 없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재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수능시험 점수가 발표 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런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학생들이 이번 수능시험에 대해 얼마나 좌절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재수학원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학원 등록을 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몰린 적은 처음’이라며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기현상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정부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 내년 수능은 다시 쉽게.]
문제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결국 여론에 뭇매를 맞고 꼬리를 내렸다. 올 수능시험이 다른 해보다 어려웠던 것을 인정하며, 내년부터는 다시 평년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를 출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일선 학교 교사는 정부의 이 같은 성의 없는 발표에 매우 실망하는 모습이었다. ‘어려운 수능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이들을 구할 생각부터 해야지, 그냥 수능시험을 다시 쉽게 내겠다고 하면 끝이냐. 예전에도 쉽게 내겠다고 했지만, 결과를 봐라. 차라리 어렵게 내겠다고 하면, 미리 공부라도 하게 했을 것이다. 이게 정부를 믿은 결과냐?’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려워진 수능 난이도 덕분에 사교육 다시 기승?]
올해 수능시험이 어려워지자 한동안 잠잠했던 과외 열풍이 다시 찾아왔다.
지금 고2인 학생들은 이번 수능시험이 예년과 다르게 어렵게 출제되자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내년도 수능시험부터 다시 쉽게 출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더 이상 정부가 하는 일은 믿지 못하겠다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2012학년도에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시험 난이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영역별 만점자를 1%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 한다’고 밝혔으나, 결론적으로 정부가 공언했던 만점자 1%는 사실상 실패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애초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 수험생에게 혼란만 주었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다.
이렇듯 정부의 발표는 공수표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불신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변했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좋은 과외 강사 구하기에 나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왜 이렇게 어렵게 수능을 출제했나?]
예년과 비교하기도 어려울 만큼 난이도가 높아진 올 수능시험. 10여 년 가까이 무난했던 수능시험이, 올해 갑자기 어려워진 이유가 뭘까? 본 기자는 이 점에 대해 추리해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번 수능시험 문제를 출제하면서, 작년과 같이 높은 적중률을 기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얼핏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말 같지만, 실제로 작년에 높은 수능시험적중률로 이득을 본 사람은 최건우 대표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 대표를 저격하기 위해 일부러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높였고, 그 바람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이 추측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의 임무는 특정 인물을 저격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시험을 위해 수년간 노력한 아이들이 공평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야 했다.
[최건우 대표, 수능 족집게 실패. 적중률 대폭 하락.]
지난해 엄청난 수능시험 적중률을 자랑하며 우리나라 최고의 강사 중 한 명으로 급부상했던 초이스 에듀의 최건우 대표. 그러나 그의 명성은 어쩌면 1년 천하로 끝날 지도 모를 일이다. 수능시험 적중률이 작년과 비교하면 턱없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작년처럼 귀신과 같은 적중률을 기대했던 학생과 학부모들 대다수가 상당히 실망하는 눈치였다.
어떤 학부모는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다. 왜 작년처럼 환불 정책을 실시하지 않느냐며, 마음 같아서는 1년 동안 매달 6과목씩 수업을 들은 금액 전부를 환불하고 싶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최건우 대표의 신화는 계속되다. 고난이도 문제 ‘대박’ 적중.]
유난히 어려웠던 이번 수능시험.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초이스 에듀의 최건우 대표만큼은 기쁨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 대표를 저격하기 위해 일부러 난이도를 높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최 대표가 입은 피해는 거의 없을뿐더러 오히려 이득을 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0%에서 최하 25%(추정치)로 하락.
수치상으로 보면 분명 적중률은 작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에서 높은 적중률을 보인 덕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아이들이라면 오히려 석차가 뛰어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누구나 맞추라고 내준 쉬운 문제를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그의 대박 신화는 내년에 쭉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긴급 발표. 수능 점수 발표일 10일 이상 앞당기기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공식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잠잠해지지 않자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인력을 총동원해서, 수능시험 점수 발표일을 기존보다 열흘 앞당긴 11월 21일로 결정했다.
수능시험 발표일을 앞당긴다는 소식에 가중되던 혼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추세다. 며칠 남지 않았으니 발표일까지는 일단 기다려보자는 관망적 자세가 나오기 시작한 덕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