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85화 (85/256)

제85화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성공한 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들 중 15%의 사람들이 전문적인 기술이나 뛰어난 두뇌 덕분에 성공했고, 나머지 85%의 사람들은 모두 성격 덕분에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의 취업 지도부가 해고당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서투른 대인관계 원인인 사람이 업무 능력 부족이 원인인 사람의 두 배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숨죽인 채 조용히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은 공부만이 전부인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공부만이 최고다. 넌 아무것도 하지 마라. 엄마가 다 해줄게. 그렇게 키우면 훌륭한 자녀가 될 것 같습니까? 설마 나중에 취직 설명회도 학부모님들이 대신 갈 건 아니죠? 그걸로 끝일까요? 승진 시험도 대신 봐주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녀분들을 너무 닦달하지 말고, 삶에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세요. 자기 배 아파 낳은 여러분들의 자식입니다. 믿으세요. 재수 공부는 2월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보다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진 후 공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약속드립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건우가 참석자들을 그리고 교실에 설치된 TV와 컴퓨터 모니터로 설명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을 일시에 사로잡는 순간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초이스 에듀의 재수생 종합반 모집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공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저와 거리가 가까운 분들의 질문만 받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재수생 종합반 등록 원칙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선착순입니다. 등록방법은 무조건 인터넷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학원 앞에서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이스 에듀의 인기는 다른 어떤 학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오늘처럼 재수생 종합반 설명회에 몰린 인원만 봐도 그 인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원은 채우고도 남을 자신이 있으니 선착순이 아니라 시험을 쳐서 학생들을 골라 뽑자는 의견도 나왔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뽑으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아진다. 그런 성과는 당연히 해당 학원의 명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시험을 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2월부터 재수생 종합반을 시작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머리를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아이들을 시험으로 뽑는다면, 제대로 쉴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학원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만 더 주는 셈이 된다.

“단, 인터넷을 이용해 등록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 등록 후 수강신청 기간 동안 우리 초이스 에듀를 방문하셔서 생활기록부 사본을 제출하셔야 합니다. 이유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과 출결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내신의 경우 국, 영, 수, 과학, 한국사. 이 과목들은 무조건 4등급 안에 들어야 합니다.”

아예 공부에 소질이 없는 학생을 억지로 재수학원에 등록시킬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시험을 칠 수도 없으니, 학생을 선발할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내신과 출결 여부였다.

건우의 말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았는데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파도응원이라도 하듯 우르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아직 설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궁금한 점이 많으신가 보군요. 왠지 뻔한 질문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분에게만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거기 둘째 줄에 보라색 원피스 입으신 어머님. 네. 손드신 분 맞습니다. 질문하세요.”

“왜 선착순으로만 뽑지 않고 내신을 보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설명회 시작하시면서 공부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기에 기대했었는데, 결국은 성적을 보는 것 아닙니까?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네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학부모는 정말 실망이 컸는지 목소리가 다분히 공격적이었다.

“아!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는 것은 우리 학원은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능률이나 효율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기초를 가르쳐가며 수업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재수생 반의 경우는 커리큘럼 상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다시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일반 고등학교에서 5등급 이하의 내신을 받았다는 것은 기초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학생들은 괜히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기초부터 다시 배우는 게 낫습니다.”

“기초도 없으면서 제게 수업을 들으면 수능 시험 대박이 날 것이다? 그런 요행을 바라신다면 죄송합니다만,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의도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국, 영, 수 이렇게 세 과목만 보면 되지 왜 굳이 과학과 국사까지 포함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리고 출석은 성적과 상관도 없잖아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학생들의 성실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외는 있겠지만, 내신과 출석은 그 성실함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국사를 포함한 건요?”

“솔직히 제 마음 같아서는 전 과목 내신을 보고 싶습니다만, 그나마 과목 수를 줄인 겁니다. 그리고 사회과목 중에 유일하게 국사가 들어간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우리 학원에서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항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다른 학원과 차별화된 우리 학원만의 고유색깔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럼 다른 질문 있습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다.

불만이 있는 얼굴을 한 학부모의 모습도 보였다. 심지어 몇몇 학부모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별다른 동요 없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건우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학생들의 성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결상황과 봉사활동도 체크할 생각입니다. 집안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결석한 경우나 병원에 입원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 6일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은 학생은 받지 않겠습니다. 형식적이든 아니든 봉사활동이 기준 일수보다 부족한 학생도 탈락입니다. 자! 그럼 대략적인 설명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많은 학부모가 일제히 손을 들었다.

대부분 내신이나 출석에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건우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농담까지 하며 여유롭게 질문을 받았다.

과거의 그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항상 진지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새로운 삶을 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다 보니 성격 또한 점점 더 밝게 변하고 있었다.

“이제 질문이 없는 것 같군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미 공지한 것처럼 종합반 수업에 제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력 좋은 강사들을 여러 명 섭외했기 때문에, 안심하셔도 됩니다. 별도의 혜택도 있습니다. 먼저 모니터를 통해 일주일에 세 번은 제가 직접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운영하는 2017학년도 수능 시험대비 3주 특강반 모니터 강의 수강권을 드립니다. 별다른 사유 없이 8일 이상 결석한 학생들은 제외합니다.”

“와아!”

건우의 마지막 말에 참석자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3주 특강반에 대한 명성은 이미 높아질 만큼 높아진 상태다. 그리고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학생들이 몰릴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건우와 손다정이 3주 특강반 수강권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분점 때문이다.

좋은 강사의 숫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특히 분점의 경우 시범적 운영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강사진 전부를 실력 있는 사람들로 채우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3주 특강반 수강권과 건우의 별도 특강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지금 당장도 괜찮은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재수생 정원과 분점의 숫자를 늘린다면 수입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그때를 대비한 하나의 미끼다.

“또한, 학원이 마련한 별도의 시청각 자습실에서는 개인 모니터를 통해 얼마든지 무료로 초이스 에듀의 동영상 강의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우리 초이스 에듀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그 시스템 중 하나가 바로 수능시험 예측과 선진 교습법 연구를 주로 담당할, 새로운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칭 ‘팀 앨버트로스’의 신설입니다. 아직 용어가 낯설겠지만, 팀원들은 모두 수능 애널리스트들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재수생 종합반 설명회에서 건우가 말한 내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이슈가 되었다.

한국사 성적을 선발 기준에 넣겠다는 이야기는 대중들의 많은 공감을 샀다.

그러나 일반적인 대중들과 달리 학원가에서는 건우가 말한 수능 애널리스트가 과연 무엇인지 거기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대체 어떤 일을 하길래 주식시장에서나 등장할법한 애널리스트라는 이름까지 써가며 거창하게 포장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처음으로 수능 애널리스트라는 이름을 소개한 건우는 거기에 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있어서 사람들의 호기심만 더욱 커져갔다.

***

“무식한 것들. 수능 애널리스트가 뭐겠어? 당연히 수능을 분석하는 전문가를 말하는 거지. 그냥 드러난 의미만 생각하면 되는데, 괜히 저의니 속내니 그딴 거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헛소리나 처하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최 대표 이 사람 정말 천재긴 한가보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저렇게 신선하면서도 치밀할 수 있지? 정말 내가 기다려왔던 사람이 틀림없어.”

한 남자가 인터넷으로 건우의 설명회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우현. 나이 29살.

17살에 카이스트를 들어갔고, 뛰어난 머리 덕분에 장래가 기대되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에디슨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전파상을 하며 살아갔을 것이라는 말처럼 그의 명석한 머리도 그게 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연구 결과 문제로 담당 교수와 크게 싸운 이후 대학원까지 탈락하면서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그와 악감정을 품게 된 교수가 그의 앞길을 막았고, 안우현은 울며 겨자 먹기로 군대에 갔다. 군대를 제대하고도 여전히 교수의 영향력이 막강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전의 사교육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건우는 처음부터 학원 강사로 시작했다면, 안우현은 과외 강사로 시작해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유명세는 점점 높아졌고, 최근에는 수천만 원짜리 과외를 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학원 강사도 해볼까 시도했지만, 이상하게도 여러 명 앞에서는 항상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나마 과외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랄까?

그런 안우현의 눈빛이 오랜만에 반짝였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아이처럼.

***

“그것참. 안에 계신 것 안다니까요. 만나게만 해주세요. 제가 대전에서는 정말 유명한 과외 강사라고요. 안우현이라고요. 안우현.”

“정말 지금 자리에 안 계세요.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대전에서 올라온 안우현은 다짜고짜 초이스 에듀의 사무실로 찾아와 건우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동생들을 등교시키는 것이 그의 일과였기 때문에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안우현은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하며 고집을 부렸다.

“무슨 일입니까?”

직원들과 안우현이 실랑이하는 동안 건우가 사무실로 도착했다.

“어! 정말 아직 안 오셨었군요. 하하하. 이런! 죄송합니다. 진즉 말씀하시지….”

“부재중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그…그렇죠? 저는 또 저를 따돌리는 줄 알고. 정말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아! 그리고 최 대표님. 반갑습니다. 꼭 만나고 싶어서 대전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과외로 먹고사는 안우현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우현 선생님이라고요? 그런데 무슨 일로…?”

“초면에 실례라는 것은 알지만, 최 대표님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네? 테스트요? 갑자기 저를 왜 테스트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뜬금없는 안우현의 이야기에 건우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왜긴 왜입니까? 제가 모실만한 분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죠. 물론 놀라운 수능 예측 능력과 파격적인 교습법만으로도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제가 평생 모실 분인데 제대로 확인은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이것 참. 아침부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저기 대표님. 잠시만요. 안우현 선생님. 선생님은 잠시 대표님 방에 가서 기다려 주세요. 저희는 급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대표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무례한 안우현의 태도에 불쾌해진 건우가 화를 내려는데 손다정이 끼어들었다.

“하하하. 그럴까요?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안우현은 장미화의 안내를 받으며 대표실로 향했고, 손다정은 낮은 목소리로 건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사람이 좀 독특하죠?”

“네. 좀 그런 경향이 있네요.”

“안우현 선생님이라고 굉장히 유명한 분이세요.”

“그래요? 자기 입으로 유명하다고 하더니만 사실은 사실인가 보네요.”

“실력은 정말 대단한데,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를 듣고 있어요. 사실 한강 에듀케이션에서 대표님을 처음 스카우트할 때, 대표님과 경쟁했던 최종 후보 중 한 사람이었어요.”

“네? 그 정도였습니까?”

건우는 손다정의 설명을 들으며 많이 놀랐다.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사람을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만약 건우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과외 강사나 하면서 조용히 사는 것이 원래 안우현의 운명이었다.

“네. 틀림없어요. 과외 쪽에서는 전 과목을 가르치는 만능 강사로 유명했어요. 게다가 수능 분석력 또한 대단하다는 소문이고요. 하지만 방금 보신 것처럼 대인관계가 문제예요. 인성이 나쁘고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타인과의 대화 스킬이 어설퍼서 안 좋은 오해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어쨌거나 실력이 좋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일 수도 있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대표님을 말린 겁니다. 저런 인재는 독특하고 자존심도 높아서 쉽게 구하기 어려워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죠. 그러니 대표님이 잘 구슬려서 우리와 함께 일하도록 해보세요.”

“손 팀장님이 그렇게 평가했다면 그래야겠군요. 그의 능력이 진짜라면 수능 애널리스트의 첫 번째 팀원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제가 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호호호. 독특한 분이니까 성질은 내지 마시고요. 고생 좀 하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