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중산층 아파트 32평형 '집값 굴욕’]
서울 마포구 XX타운에 있는 래XX3차 아파트 전용 84㎡는 최근 6억 1,000만 원에 거래됐다. 금융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5년 전보다 2,000만 원가량 떨어졌다. 반면 소형인 59㎡는 같은 기간 평균 6,000만 원 오른 5억 1,000만 원 선에 주인이 바뀌었다. 5년 새 중·소형 가격차가 평균 1억 4,0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좁혀졌다. 4인 가구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탄탄했던 전용 84㎡ 수요층이 엷어진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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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XX부동산 이XX 대표는 “84㎡는 최근 거래가 줄면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며 “수요자들이 앞으로 집값 상승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가격이 조금이라도 싼 59㎡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박XX 조아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84㎡ 세입자가 59㎡ 매매로 돌아서는 상황”이라며 “4인 가구가 줄고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등 인구 구조 개편과 투자심리 위축이 맞물려 84㎡도 부담스러워하는 수요자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강경제 위현이 기자 ⓒ '성공의 지름길'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휴우.”
신문을 보던 A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신문에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실렸어요?”
부인인 B씨가 A씨의 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파트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그래.”
“어머. 또요. 얼마 전에도 집값 내려갔다고 그러더니. 우리 그럼 어떡하죠?”
“그러게 말이야. 넉 달 후면 외국 나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가격이 오를 리도 없고. 정말 걱정이네. 잘못하면 꽤 손해 보고 팔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A씨는 얼마 전 회사로부터 미국지사에 몇 년 다녀오라는 권유를 받았다. 은행원인 그의 경력에 미국지사 경험은 큰 플러스 요인이 되기 때문에 생각할 것도 없이 승낙했다.
그에게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두 딸에게도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제 곧 아파트를 내놔야 하는데 가격이 자꾸 떨어져 골치를 썩이는 중이다.
4인 가족이 살기 좋은 32평형을 대출까지 받아서 마련했는데, 집값은 점점 내려가니 대출 이자까지 생각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닥을 쳤다는 이야기에 무리해서 아파트를 산 게 이렇게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냥 뜬소문이 아니었다. A씨가 근무하는 은행에서 나온 이야기라 찰떡같이 믿었는데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은행원도 그런 일을 당하느냐고 비웃음을 사지 않으면 다행이다.
체면이고 뭐고 집을 팔아야 하는데, 요즘은 32평형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가격은 계속 내려가는데 찾는 사람은 없고, 그러다 보면 가격은 더 떨어진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아파트 때문에 미국으로 갈 좋은 기회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오르겠지, 오르겠지 했는데 도무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모른다며, 서울 아파트값은 놔두면 언젠가는 오른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이젠 신문 기사로 확인사살까지 해줬다.
당장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A씨는 아침에 본 신문 기사 때문에 우울해진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기분이 다운된 것은 B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녀가 망설이는 남편을 설득해서 대출까지 받아 구매한 경우라서 마음이 더욱 불편했다.
Rrrr
“네. 여보세요.”
“7층 은희 엄마에요.”
“네. 은희 엄마.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무슨 일은요. 그냥 했죠.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 할까 해서요.”
“그럴까요? 그래요, 그럼. 그렇지 않아도 집에 맛있는 사과가 선물로 들어왔는데, 와서 그거나 같이 먹고 가요.”
“호호호. 알았어요. 금방 올라갈게요.”
속이 상해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은희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별다른 용무는 아니었고, 그냥 커피나 한잔 하면서 수다나 떨자는 이야기였다.
유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 가라앉은 기분이 좀 풀릴까 싶어, B씨는 은희 엄마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은희 엄마는 B씨를 보며 깜짝 놀랐다. 며칠 전 봤을 때와는 다르게 얼굴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다.
“아픈 건 아니고요. 왜 전에 제가 이야기했죠. 우리 그이 미국으로 파견 간다고.”
“네. 했었어요. 제가 얼마나 부러워했는데요. 요즘같이 영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그렇게 쉽게 영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 보통 일인가요? 그 일이라면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얼굴이 왜 그래요? 미국 파견이 취소됐어요?”
“아니요.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데 가격이 자꾸 떨어진다고 그래서요.”
“어디 아파트가요?”
“어디긴 어디에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죠.”
“누가 그래요? 우리 아파트값이 떨어진다고.”
은희 엄마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오늘 신문에 나왔어요. 마포에 있는 32평형 아파트값이 전부 떨어지고 있다고요.”
“에이. 그건 다른 동네 이야기죠. 윤정 엄마 요즘 미국 가는 것 때문에 정신이 없나 보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랐어요?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아파트값은 지금 시세가 팍팍 오르고 있는데.”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은희 엄마는 어떻게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며 B씨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말든, 은희 엄마의 이야기에 우울했던 B씨의 표정은 가뭄 끝 단비를 맞은 것처럼 활짝 폈다.
“그럼요. 아파트값 오르기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됐어요.”
“열흘 전부터요?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어머. 정말 모르고 있었구나. 초이스 에듀라고 알죠?”
“그럼요. 최건우 대표가 운영한다는 유명한 학원이잖아요. 그 정도는 저도 알죠.”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현동에 본점을 짓고 있대요. 아니지. 이제 간단한 마무리 작업만 남았다고 했으니, 거의 완공된 것이나 마찬가지죠.”
“어머머. 그게 정말이에요? 혹시 우리 아파트 건너 새로 짓고 있는 건물 두 채 말하는 거예요?”
“네. 바로 거기요. 덕분에 지금 그 주변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어요.”
“에이. 설마.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학원을 운영한다고 해도 아파트값이 오를까요?”
“우리도 설마 했는데, 아파트값이 벌써 껑충 뛰고 있는 걸요. 최건우 대표가 학생들 모집할 때 분점이 있는 지역은 웬만하면 분점에 등록하라고 그랬나 봐요. 주소지 해당 구(區)에 분점이 있는 학생은 감점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난리도 아닌가 봐요. 특히 강남이 아주 난리래요.”
은희 엄마의 말처럼 건우는 분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거주지 가산점 제도를 도입했다.
본점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났다.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이상 수강생 모집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분점을 밀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니터 강의 등을 통해 본점과 분점 사이의 수업 질은 큰 차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본점과 분점이라면 본점이 좋아 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심리였다.
더군다나 본점은 건우가 직접 강의를 하는 곳 아닌가?
그런 건우의 선택이 서울의 부동산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남이요? 강남에 분점 없잖아요.”
“한강 에듀케이션 알죠?”
“네. 들어는 봤죠. 최건우 대표가 원래 일하던 곳이잖아요.”
“꽤 큰 학원이었는데, 초이스 에듀 분점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나 봐요. 덕분에 강남지역 학생들도 감점을 받게 생긴 거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작스러운 결정에 항의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대요.”
“그래서요? 그거랑 집값이 오르는 거랑 무슨 상관이래요?”
“꼭 본점에 보내고 싶은 사람이면 어쩌겠어요? 특히 애들 교육에 목을 매는 강남 부자들이라면?”
“설마 학원에 보내려고 집을 산단 말이에요?”
B씨의 말에 은희 엄마가 피식 웃었다.
“그 설마가 현실이 됐어요. 지금 아현동 주변 부동산은 집을 사겠다고 몰려든 강남 사람들로 넘쳐난대요.”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이해가 안 되네요. 주소만 필요하다면 굳이 아파트를 살 필요가 있어요? 허름한 원룸을 구해도 되고 굳이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해도 전세에 살면 되잖아요.”
“글쎄요 부자들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아까 잠깐 만난 우리 동대표가 그러더라고요. 초이스 에듀 본점이 여기 있는 한 집값은 계속 오를 테니 교육 겸 투자 겸 겸사겸사 미리 아파트를 사는 거라고. 덕분에 아파트값은 계속 오르겠죠?”
“와! 정말 바람직한 청년이네요. 사위 삼고 싶다.”
“네? 윤정이가 이제 고작 9살 아닌가요?”
“어때요. 겨우 띠동갑인데. 지금이야 몰라도, 나중에 30대 넘어가면 어린 여자를 더 좋다고 하는 게 남자들이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럼 우리 희정이 예비 사위로 욕심내볼까요?”
“어머! 그럼 우린 이제부터 라이벌이 되는 건가요?”
“그러네요. 호호호.”
B씨는 자신이 아파트의 시세가 오른다는 말에 우울했던 마음이 완전히 날아갔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식에 농담 따먹기까지 하며 오랜만에 즐거운 다과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남편에게 문자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
‘여보. 세상에. 빅뉴스. 그냥 빅뉴스도 아니고 빅빅뉴스. 우리 아파트값 올랐데요. 자세한 건 이따 점심시간에 통화해요. 사랑해요.’
***
[아현동이 학원가의 메디나로 거듭날 수 있을까?]
무함마드는 고향 메카에서 이슬람 포교를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고민 끝에 야스리브로 이주를 단행했다. 그 과정을 헤지라라고 하고, 야스리브는 메디나로 불리게 된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한국의 학원가에서는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최건우 대표의 초이스 에듀. 한국 학원가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에서 맹활약하던 그가 2016년 1월부터, 얼마 전 완공된 아현동 본점으로 출근한다.
최건우 대표는 지금 태풍의 눈. 그의 선택 때문에 학원가 사람들의 모든 이목이 지금 아현동에 쏠리고 있다.
혹자는 대치동이 학원가의 메카로 불리고 있다는 점에 착안, 아현동을 새로운 메디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주를 헤지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개원도 하지 않은 학원 때문에 주변 아파트값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치동을 제외한다면 학원 때문에 아파트값이 오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치동 또한 혼자 힘이 아니라 여러 학원이 몰려서 이뤄낸 결과이다.
그런데 최건우 대표는 혼자 힘으로 주변 아파트값을 올리고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의 이주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주를 선택했던 무함마드와 달리 최 대표는 충분한 시장조사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현동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인 공덕동과 효창동까지 아파트값이 들썩이는 상황.
게다가 아현동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ㄱㄴㄷ 순)라는 명문대와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까지 잘 활용한다면, 훗날 아현동은 대치동을 넘어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 타운으로 거듭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경운일보 전대수 기자.
***
마포소방서 XX안전센터.
“야. 동석아. 우리 센터장님 왜 저렇게 싱글벙글 이야?”
A소방관이 B소방관에게 물었다.
“그러게. 갑자기 무슨 좋은 일이 생기신 건가? 며칠 전까지만 아들내미 재수하게 생겼다고 열 받아 죽으려고 하더니, 갑자기 무슨 좋은 일이 생겼길래 저렇게 좋아하실까?”
B소방관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라. 두 분은 아직 그 소식 못 들으셨어요?”
그때 지나가던 C구조대원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식?”
“센터장님 아들. 이번에 초이스 에듀에 합격했대요.”
“초이스 에듀? 아! 그 최건우라는 사람이 운영한다는 학원? 그럼 재수학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잖아. 겨우 그런 일로 그렇게 사람이 싱글벙글한 거야?”
“에이. ‘겨우’라니요. 그건 아니다. 그럴 만도 하지. 우리야 아직 애들이 너무 어려서 실감이 안 나지만, 듣기로는 초이스 에듀에서 운영하는 재수생 종합반에 들어가면 서울에 있는 중상위권 대학은 무조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
“뭐? 그 정도야?”
“소문은 그래요. 확실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럼 들어가기 엄청나게 힘든 거 아니야? 센터장님, 운이 좋으셨네. 아들내미가 공부를 썩 잘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운도 보통 운이 아니에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최건우 대표가 우리 같은 소방공무원이나 군인 그리고 경찰 자녀들을 특별전형 형식으로 뽑아준다고 해요. 게다가 학원비도 반값이라고 하고.”
“오! 그래? 사람 착해 보이더니 좋은 일 하네. 우리를 그렇게 대접해준다고 하니까 갑자기 뿌듯해지는데.”
“그러게 말이야. 들어보니 평소 기부도 많이 한다더라. 아직 20대 초반이라는데 젊은 사람이 생각이 참 깊어.”
“먹고사느라 바빠서 제대로 된 기부 한 번 못 해본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아, 맞다! 아현동에 새로 지은 건물이 최건우 대표가 운영할 학원이라며. 앞으로 편의 좀 봐줘야겠는걸?”
“그래야지. 안전점검이야 철저하게 해도, 괜히 트집 잡거나 까다롭게 굴진 말아야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훌륭한 사람이 많아야 나라가 잘될 텐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