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인터뷰는 무사히 마쳤고, 인터뷰 기사는 며칠 후 잡지사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그녀의 최근 사진과 함께 전격적으로 공개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교육전문 잡지사인 ‘열공’도 방문자들이 어느 정도 몰릴 것으로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접속자들 때문에 홈페이지는 순식간에 다운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은영을 안다는 사람이 한두 명씩 등장했다.
며칠이 지나자 ‘윤은영의 과거’라는 이름의 옛 사진이 올라왔다. 그녀의 성공을 배 아파하는 악의적인 사진이 많았다.
맞다 아니다 논란이 일었다. 사진 속 인물이 윤은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그런데 윤은영이 직접 자신이 맞다고 인정해버렸다.
대중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젠 성형 여부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과 너무 달라진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의심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치아 교정을 하고 살을 빼고 안경을 벗은 것뿐이라는 주장은 힘을 잃었다. 예뻐도 너무 예뻐진 게 문제였다.
각종 인터넷 신문들은 재미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듯 윤은영의 인터뷰기사를 퍼 날랐고,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에도 ‘윤은영’, ‘윤은영 성형’, ‘한국사 전문가 성형’과 같은 단어들이 순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윤은영을 비난했다. 그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연예인도 아닌데 성형이 논란이 되어, 마지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나쁜 여자로 몰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발적인 악플러들도 많았지만, 경쟁학원들이 그런 소문들을 조장하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건우도 윤은영도 논란에 당당히 맞설 생각이었지만, 온라인에서의 대중들은 생각보다 훨씬 천박하고 훨씬 야비했다.
***
- 그 봐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 미인은 개뿔. 어색했다니까.
- 인조인간. 로보트.
- 되도 않은 얼굴에 쏟아 부을 돈으로 책 사 보고 교양 쌓고 어려운 사람 돕고 살아라. 그럼 저절로 내면의 미가 겉으로 나와 미인이 된단다.
- 흔한 강남 성형공장출신녀.
- 미인이 아니라 성형인.
- 이제 사람도 자연산은 찾아보기 힘들군요. 다 인공으로 얼굴을 만드니.
- 한국 여자들 성형중독 심각하다. 개성도 없고, 미소도 잃어버리고.
- 성형을 안 했다고? 개뿔.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 성형 여부가 논란이 되는 게 안타깝다고? 웃기시네. 그럴 거면 영화 홍보 동영상을 찍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한국사 전문가네 어쩌네 하며 동영상을 찍을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니. 대가리에 똥만 들은 된장년.
- 난 저런 성괴보다 내 얼굴이 예쁘고 좋다. 평범해도 이런 자신감으로 살면 성형중독에 빠진 된장녀보다 백배는 더 예쁘다.
- 내가 장담하는데, 저 여자 절대 학원 강사 오래 안 한다. 분명히 방송사 진출할 거다. 아니면 어디 돈 많은 남자 물어서 팔자 펴려고 하겠지. 영악한 년.
- 유흥업소에 널린 스타일.
- 우스갯소리로 강남에 가면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더 이상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듯. 자꾸 성형인에게 미인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문제. 성형미인이라고 하니 진자 미인인 줄 알고 너도나도 성형외과로 출동.
- 돈 지랄 해서 성형한 얼굴이 겨우 그 정도야? X나 불쌍해. 같은 지역 공장에서 찍어서 그런지 생긴 게 쌍둥이처럼 서로 비슷해.
- 이게 이 나라 민족의 국민성이다. 외형, 외모, 외관만 보고 판단하는 어리석음의 극치인 나라. 문화와 내실 그리고 역사의식은 개나 줘버린 나라.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하거늘 이 나라는 온통 외관과 외양만 치장하는데 정신이 없다. 저런 여자가 우리 역사를 가르친다고? 나 같으면 절대 내 자식 저 사람에게 안 보낸다.
-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 정신병자들 아닌가? 동영상에 나오는 가슴 봐라. 덜렁덜렁. 누가 보면 가슴에 미사일이라도 달린 줄 알겠네.
- 여자들의 허영심은 마약보다 무섭다. 그런데 솔직하지도 않다. 더럽다.
- 못생겨도 내면을 가꾸고 스스로 스타일 잘 꾸미고 말 예쁘게 하면 다 예뻐 보이던데. 속 비고 예의범절도 공중도덕도 모르고 남 배려할 줄도 모르는 인간들이 꼭 얼굴만 뜯어고치더라.
-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최고가 성형수술이랍니다. 요새는 중학생들도 성형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성형시켜주는 엄마들 마인드도 큰 문제. 사십이 넘은 강남 사는 친구 왈. 성형 안 해서 얼굴이 촌스럽게 보인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의심스럽고 미래가 걱정됩니다. 심각하게.
- 어라. 나, 이 선생님 누군지 알 것 같아. 예전에 은평구에 있는 손바닥만 한 보습학원에서 애들 가르쳤던 그 선생님 같은데. 실력은 정말 좋았음. 그런데 진짜 대박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신하지? 장난으로 찍은 사진 있는데 올리겠음. 추천 바람. @ 사진 첨부.
└ 헐. 대박.
└ 대박. 22222222222
└ 대박. 333333333333
└ 대박.
└ X발. 눈이 썩는 것 같아. 진짜 대박.
└ 와.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진짜 성공했네. 그런데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으면 정말 대박일 듯.
└ 이 정도면, 성형할 만하네. ㅋㅋㅋ 어떻게 얼굴이 저따구지? 오크가 언니 하겠다.
└ 음. 이정도면 미용성형이 아니라 치료목적의 성형이다. 인정!!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치료목적의 성형이래. 댓글 센스 굿!!
└ 말이 좀 심하네요.
└ 웃자고 하는 말에 진지 빨기는. 씹선비는 꺼져.
쾅.
건우의 사무실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고 얼굴이 붉게 상기된 이승훈이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항상 환하게 웃고 다니던 사람. 사람 좋기로도 소문난 이승훈의 거친 행동에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건우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보이지 않았다.
“최 대표님.”
“오셨어요?”
“그런 인사를 나눌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 보셨습니까? 괜찮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온통 은영 씨 이야기뿐입니다. 무슨 나쁜 범죄라도 지은 사람 취급을 하고 있어요. 도대체 그 사람들에게 은영 씨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심한 댓글들을 다는 거죠?”
“역시 그것 때문에 오셨군요. 윤 선생님은 어떠세요?”
“다행히 겉으로는 편안해 보입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이 이렇게 찢어질 것 같은데요.”
자신이 일이라면 이렇게 화내지 않았을 이승훈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윤은영의 일이기에 실례인 줄 알면서도 건우에게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이었다.
건우도 이승훈의 그 마음을 이해했다.
“이 선생님.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처음 며칠은 좋은 소리 듣기 힘들지도 모른다고요.”
“물론 하셨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성형은 분명 안 했다고 했는데 왜 사람들이 이렇게 성형 괴물로 몰아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나올지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보다 심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사람이 건우였다. 그런 그가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할 고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휴…. 아닙니다. 아무리 대표님이라고 이런 일까지 예상하셨을 리는 없는데,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요? 은영 씨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네요.”
“이 선생님.”
“네. 최 대표님.”
“윤 선생님을 너무 여리게 보지는 마세요. 제가 그분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정말 강단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믿으세요. 상처는 받을지 몰라도 이겨낼 겁니다.”
“그럴까요?”
“그럼요. 길어야 하루 이틀입니다. 솔직히 윤 선생님이 인기 연예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중들의 관심은 금방 식습니다.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겠죠. 지금은 그냥 옆에서 조용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래요. 제가 아니면 누가 우리 은영 씨에게 힘을 주겠어요.”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고의적으로 악성 댓글을 유포한 사람,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추측성 기사를 쓴 언론사. 모두 고소할 생각입니다. 제가 당했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 일은 법무팀에게 이야기해서 이미 자료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예상하고 송미주 법무팀장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한 건우다.
“아! 그건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좀 화가 풀릴 것 같네요. 제가 대표님 앞에서 너무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의 행동 덕분에 두 분이 연인 사이인 게 학원 전체에 금방 소문이 나겠군요. 설마 이걸 노리고 일부러 행동하신 건 아니죠? 하긴. 윤 선생님이 좀 예쁘셔야죠. 이 여자는 내 여자다 소문내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하하.”
“아…아니 그게. 제가 일부러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단지 은영 씨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제 마음 아시죠? 그럼 대표님. 저는 다시 은영 씨에게 가보겠습니다. 흠흠.”
흥분한 얼굴로 단단히 따지러 왔던 이승훈은, 건우의 놀림에 처음 왔을 때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사람이 점점 능구렁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뭐가요?”
이승훈이 돌아가자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손다정이 눈을 흘기며 말을 걸었다.
“뭐가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나올지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요? 이제 연기하셔도 되겠어요.”
“하하하. 그게 보였어요?”
“그럼요. 제가 대표님을 하루 이틀 봐요?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누가요? 언론이요? 아니면 윤 선생님이요.”
“둘 다요. 언론도 걱정이고, 윤 선생님도 걱정이에요. 아무리 강단 있는 사람이라도, 여자예요. 외모를 가지고 비하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요.”
“잘 될 겁니다. 일단 내일 언론을 통해 강경조치를 하겠다고 말할 생각입니다. 그럼 조금은 조용해지겠죠. 또 며칠 지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면 윤 선생님에 대한 관심은 대중들에게서 사라질 겁니다.”
“윤 선생님은요?”
“성형은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이라면 모를까 사실이 아닌 걸로 상처받을 분이 아닙니다. 저는 윤 선생님을 믿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말이죠. 그렇게 말씀하시니 대표님을 믿을게요.”
***
“괜찮아요?”
“뭐가요?”
건우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온 이승훈은 윤은영이 있는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초이스 에듀는 몇몇 강사들에게 별도의 연구실을 제공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그 왜 있잖아요. 그거.”
“그거? 아! 댓글들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해요?”
“호…혹시 은영 씨가 상처받을까 봐요.”
“제가요? 호호호. 괜찮아요. 저 예전에 진짜로 괴물이라고 놀림 받을 때도 있었는걸요. 성괴 어쩌고 하는 말에 상처받지 않아요. 괴물이라고 했으면 상처받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성괴는 사실이 아니잖아요. 사실이 아닌 걸로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리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네? 설마 지금까지 댓글들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있었어요?”
“네. 재미있어요. 예전부터 너무 많이 욕을 먹어서 그런가, 관심이 오히려 반갑네요. 혹시 이 사진 봤어요? 수업시간에 몰래 찍었나 봐요. 어때요? 예전엔 정말 못생겼었죠?”
윤은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보고 있던 모니터를 돌려 이승훈에게 보여줬다.
“아니요. 하나도 안 못생겼어요. 순수하고 착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에이. 그게 예쁘다는 말을 하기 힘들 때, 은근히 돌려서 하는 말이라고 하던데. 그런데 승훈 씨가 그렇게 말하니 왠지 믿음이 가네요. 솔직히 처음엔 사람들의 관심에 많이 당황했거든요. 하지만 예전 제 사진을 딱하고 마주치니 갑자기 그런 제 감정이 얼마나 사치였는지 깨달았어요.”
“전 지금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제게 기회를 준 최 대표님과 손 팀장님에게도 고맙고, 옆에서 저를 지켜주고 있는 승훈 씨에게도 고마워요.”
이승훈은 보기보다 윤은영은 훨씬 강하다고 했던 건우의 말이 이해가 갔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이상한 제 옛날 얼굴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요. 아참! 우리 초이스 에듀 홈페이지에 저와 승훈 씨에 대한 문의가 폭주하고 있는 거 알아요? 언제 동영상 강의 서비스를 시작하는지, 최 대표님처럼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는 하는지, 이북 참고서도 함께 판매하는지 등등. 기분 좋지 않아요?”
“뭐가요?”
“대중들에게 이렇게 관심받는 거요. 저도 그렇지만, 승훈 씨도 대머리에 뚱뚱보 아저씨였잖아요. 호호호. 그런데 지금은 완전 훈남으로 변신했어요. 학원에서 일하는 여자분들이 승훈 씨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모르죠?”
“크흠. 그…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제겐 은영 씨뿐인데. 그리고 뚱뚱보 아저씨 아니거든요. 제 배에 드러난 ‘왕’자를 그렇게 자주 봐놓고 그런 말 하기예요?”
“네? 아…아니 제가 또 언제 자주 봤다고….”
“어라. 인제 와서 시치미네. 그럼 지금 확인해볼까요?”
“뭘 지금 확인해요? 미쳤나봐. 여긴 애들이 있는 학원이에요.”
“그럼 이따 집에서 확인해보던가요.”
“어머머. 주책이야. 정말. 이상한 이야기 하려면 당장 나가요.”
윤은영의 손가락이 문 쪽을 가리켰지만, 그녀의 입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