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09화 (109/256)

제109화

“솔직히 말해 봐요. 전직이 뭐예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직이요? 전직이야 당연히 학생이죠. 알면서 왜 그런 질문을 하고 그래요?”

“아무리 봐도 학생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학생이 아니면요?”

“사이비 교주요.”

건우의 한 마디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손다정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하하. 뭐라고요? 사이비 교주요? 갑자기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건데요?”

“이번에 윤 선생님 사태가 해결되는 걸 지켜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언제는 외계인이라고 하더니. 어쩌다가 사이비 교주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그냥 대표님의 ‘불쾌하다’ 한 마디에 벌떼같이 일어나 악플러들을 초토화 시키는 모습을 봐요. 꼭 십자군 기사단이나 홍위병처럼 느껴지던데요.”

말은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하고 있지만, 솔직히 손다정은 건우에게 감동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네? 십자군 기사단이나 홍위병이요? 혹시 가미카제나 자살특공대 같지는 않았고요.”

“됐거든요. 하여간 띄워주면 안 된다니까. 이참에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 일왕이라도 되고 싶으신 거예요?”

“설마요. 한국 학원계의 왕이라면 모를까,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 왕 따윈 되고 싶진 않네요.”

“헐. 일본 왕 따위요? 그래도 왕은 되고 싶은가 보네요. 호호호. 그럼 앞으로 대표님이 아니라 ‘전하’라고 불러 드릴까요? 전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답니다.”

“어이쿠. 누굴 이상한 사람 만들 일 있어요. 뜻은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그런데 설마 저 놀리려고 여기 오신 건 아니죠?”

“설마요. 제가 대표님보다 더 바쁜 거 아시면서요. 퓨처 온라인 강의 경과를 보고 드리려고요.”

건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하기엔 너무 빨랐다.

“온라인 강의 결산이요? 너무 빠른 것 아닌가요? 이제 겨우 3일 지났는데.”

“그렇긴 하죠. 그래도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이번에는 대표님뿐만 아니라 이승훈 선생님 윤은영 선생님 동영상 강의도 함께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아닌 척해도 은근히 기대하고 계셨을 것 같은데.”

“사실… 궁금하긴 했는데 손 팀장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성적이 기대 이상인가 봐요?”

윤은영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가 뭔가?

그게 모두 이승훈과 윤은영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정도 노이즈 마케팅까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런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건우로서도 꽤 큰 타격이었다.

“티가 많이 나요? 아우. 감추려고 애를 쓰는데도 그게 잘 안 되네요. 호호호. 솔직히 지금까지 어떤 오류 신고도 없이 서비스가 원활하게 잘되고 있는 것만 해도 좋아 죽겠어요.”

“티가 많이 나요. 아주 입이 귀에 걸리셨거든요.”

“그럴 수밖에요. 인간적으로 그동안 바나나가 너무했잖아요. 수익을 6:4로 나누는 것으로 모자라 결제수수료까지 10% 떼 갔잖아요. 그럼 거의 5:5로 매출을 나누는 건데, 그 정도면 칼만 안 들었지 거의 날강도 수준 아니에요?”

“하하하. 날강도요?”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 거 아시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동영상이 가장 많이 팔렸던 게 2015년 9월이거든요.”

“수능 시험 치기 바로 전 달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때 누적 다운로드 횟수가 2천만 건을 넘었어요. 건당 3천 원이니 매출액만 600억 원이었는데, 거기서 바나나가 가져간 게 거의 280억 원이라고요. 가만히 앉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만 해주고 한 달에 280억 원을 벌었어요. 양심이 있으면 비율 조정을 했을 텐데, 계약서대로 이행하자는 말만 반복하더라고요. 욕심 많은 인간들 같으니.”

손다정의 불만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동영상뿐만이 아니라 이북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9월 참고서 이북의 판매 건수는 100만 건이었다. 권당 가격이 5천 원이고 매출액은 50억 원.

거기서 바나나가 가져간 금액은 대략 19억 원이었다.

동영상과 참고서 이북을 합치면 바나나가 가져간 금액은 총 300억 원. 서버 비용이나 카드 수수료와 같은 결제비용을 제외한다고 해도 거의 한 달에 250억 원 이상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 정도면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 포털사이트인 바나나라고 해도 초이스 에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야 실험적인 요소가 강했기 때문에, 초이스 에듀도 바나나 측에 상당한 양보를 했었다. 당장 가진 기술이 없으니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 가까웠다.

다행히 건우의 동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막대한 수익이 발생했고, 그 사실에 고무된 손다정은 바나나에게 수익 배분 비율 수정을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바나나 측은 그런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초이스 에듀를 위해 새로운 서버 구축 등 시설 투자를 많이 해서 남는 게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핑계는 그렇지만 초이스 에듀를 얕보고 배짱을 튕긴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퓨처’라는 앱이 나타나 손다정의 고민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퓨처를 통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뮬레이션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손다정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바로 바나나와의 계약 해지 통보였다.

“지금쯤 바나나는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겠네요.”

“물론이죠. 담당 이사까지 저를 찾아 왔더라고요. 퓨처를 통한 동영상 강의 서비스를 해도 괜찮으니 제발 자기들도 참여시켜달라고 조르다 못해 나중에는 반 협박까지 하더라니까요.”

“네? 반협박이요? 아니 그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어디서 협박을 해요? 손 팀장님. 그런 일이 있었으면 제게 당장 보고를 했어야죠.”

“호호호. 협박이긴 한데 좀 찌질한 협박이라 보고드릴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찌질한 협박이요?”

“이번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자신을 비롯해 부장, 과장까지 전부 회사에 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제발 다시 생각해달라고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사정을 하더라고요. 학교에 다니는 자기들 자식까지 들먹이며 계약해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그게 협박이 아니면 뭐가 협박이겠어요.”

“그러게 손 팀장님이 처음 비율을 조정하자고 했을 때 받아들였으면, 대승적 차원에서라도 함께 갔을 텐데.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쩌긴요. 저란 여자 보기보다 냉정하거든요. 그런 사정 다 들어주려면,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아니라 자선 사업을 해야죠. 바나나 정도의 회사에서 간부 자리까지 올랐으면 능력 있잖아요. 연봉이 떨어져도 눈높이만 낮추면 금방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봐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 요구를 묵살해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고, 그 판단은 바나나 측에서 한 거잖아요. 그럼 자신들이 내린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하셨어요. 그런데 그동안 바나나에서 강의 동영상이나 이북을 구입한 사람들은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조치하셨어요?”

“당연하죠. 어차피 구입 내역은 우리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실명 인증해서 가입하면 바나나에서 구입했던 콘텐츠들을 그대로 재지급하기로 했어요.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오겠죠.”

바나나와 결별하면 그동안 바나나를 이용했던 학생들은 자칫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바나나에서 유료로 결제했으니 기본적인 서비스는 계속 이용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수익은 없고 비용만 발생하는 곳을 제대로 관리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건우와 손다정은 고민 끝에 과감하게 보상을 결정했다. 총 다운로드 건수가 1억 건이 넘는 엄청난 수량이었다.

“고생하셨어요. 당장은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겁니다. 이래서 제가 손 팀장님을 믿고 여유를 부린다니까요.”

“그래요. 마구마구 부려먹으세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뭐라고 놀리셔도 짜증이 안 날 것 같거든요. 호호호.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서비스 첫날 동영상 다운로드 건수는 총 70만 건이었어요.”

“제일 많이 팔렸을 때가 한 달에 2천만 건. 그걸 하루 단위 계산하면 평균 67만 건이네요. 그런데 첫날부터 70만 건이 넘었다? 다행히 시작은 굉장히 좋군요.”

“하지만 가입하면 5개의 동영상을 무료로 서비스하기로 했기 때문에 첫날 수익은 제로에 가까워요.”

“에이. 엄살 피우지 마세요. 이북이 있잖아요. 이북 참고서는 얼마나 팔렸어요?”

“십만 건이요. 권당 5천 원이고 하루 총 매출이 5억 원. 더 이상 그 돈을 바나나랑 나눌 필요가 없어졌죠. 5억 원이 전부 우리 매출이에요.”

“걱정했는데, 동영상 조회도 이북 판매량도 괜찮네요. 계속 해보세요.”

“그리고 둘째 날은 동영상 강의 90만 건, 이북 참고서 15만 건. 셋째 날은 동영상 강의 110만 건, 이북 참고서 20만 건이에요. 3일 동안 동영상은 270만 건, 이북은 45만 건이 다운로드 되었어요. 동영상 강의 조회의 절반이 무료서비스를 통해 이용했기 때문에 매출액은 약 40억 원, 이북은 약 20억 원이에요.”

“좋군요. 하루하루 판매량이 많이 늘어나고 있네요. 거기서 이 선생님과 윤 선생님의 비율은 어때요?”

“윤 선생님의 경우 총 매출액의 1/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요. 대표님이 6과목을 가르치는데 비해, 윤 선생님은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이렇게 세 과목만 가르치잖아요. 그런데도 고작 3일 만에 6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에요.”

“원래 강사로서의 인지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영화를 통한 홍보가 제대로 통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동영상 조회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 실력도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로 보여요.”

“당연하죠. 그동안 준비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그리고 실력은 원래부터 확실했어요. 중요한 건 이 선생님인데. 별다른 홍보 없이 윤 선생님의 인터뷰를 통해서만 살짝 언급해서 좀 불안한데.”

“이승훈 선생님 매출은 3.5억 원이에요. 대략 1/17 정도의 비율이죠. 대표님이나 윤 선생님과 달리 한 과목만 강의하잖아요. 홍보도 거의 없었고. 그걸 생각하면 성공적인 데뷔라고 생각해요. 더욱 기대되는 것은 첫날과 비교해 셋째 날 매출이 거의 10배 가까이 올랐다는 사실이에요.”

사실 윤은영은 이슈도 많았고, 가르치는 과목도 3과목이다. 반면 이숭훈은 큰 관심도 못 받았고 담당 과목은 하나.

그런데도 매출이 두 배 차이가 안 난다는 건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앞으로 더욱 오를 겁니다. 최소한 윤 선생님은 총 매출의 1/5수준, 이 선생님은 1/10까지 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좀 더 적극적인 홍보 부탁드려요.”

“맡겨만 주세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이 선생님이 한문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시네요.”

“네? 한문이요? 갑자기 한문은 왜요? 원래 한문 전공도 아니잖아요.”

“대표님은 생물 전공이면서 생물 말고도 수학, 물리, 화학, 지구과학, 영어까지 강의하시잖아요. 윤 선생님도 한국사 전공이지만, 세계사와 동아시아사까지 가르치고. 게다가 우리 초이스 에듀의 가장 취약점이 한문을 포함한 제2외국어 부문이잖아요. 곧 있으면 2월이고 재수생 종합반을 운영해야 하는데, 초빙해온 제2외국어 선생님 수준이 너무 평범해요.”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제2외국어 과목이 너무 많아요. 9과목이에요. 인재풀도 작아서 좋은 강사는 이미 다른 학원에서 선점했고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한문.

현재 수능시험에서 제2외국어로 인정받는 과목은 이렇게 총 9과목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9과목 모두를 선택할 기회를 줄 형편이 안 된다. 그래서 보통은 학교마다 제2외국어는 1~2과목만 지정해서 가르친다.

그런 사정은 재수생 종합반이라고 해도 낫지 않다. 학원은 영리 목적을 가진 일종의 기업이다.

400여 명의 수강생 중에 비율로 따지면 5명도 안 되는 학생들을 위해 비인기 제2외국어 강사를 초빙하기는 힘들다.

2014년도 제2외국어 선택 비율을 보면 일본어(22.3%), 중국어(17.3%), 베트남어(15.8%), 한문 (14%), 아랍어(11.7%), 프랑스어(6.1%), 스페인어(5.3%), 독일어(5.2%), 러시아어(2.3%) 순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독일어는 거의 꼴찌로 추락했고, 아시아권 언어들이 강세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재수생 종합반은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이렇게 3과목만 수강과목으로 개설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아예 수강과목에서 빼버린다.

그런 사정은 초이스 에듀도 마찬가지다.

“저도 혹시나 싶어서 한문 강의 테스트를 해봤거든요. 괜찮아요.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한문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고, 쉽게 잘 설명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한 번 진행해보세요. 제가 걱정한 건 괜히 어설픈 실력으로 강의했다가 국어 강사에 대한 이미지까지 나빠질까 봐서였어요. 실력이 괜찮다고 하면 한문을 추가한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없겠군요.”

두 사람의 대화처럼 건우는 물론이고, 승훈과 은영의 동영상 강의에 대한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서비스 시작 한 달 후.

학생들의 월말 동영상 총 조회 횟수는 3천만 건을 돌파했고, 이북 참고서까지 포함한 월 총 매출이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넘는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한때 사교육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던 기가 싱크빅의 월 매출이 700억 원 안팎인데, 온라인 매출만으로 기가 싱크빅을 가볍게 눌러버렸다.

이젠 초이스 에듀는 더 이상 적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그로 인해 초이스 에듀를 견제하려는 다른 학원의 움직임 또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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