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10화 (110/256)

제110화

서울의 한 호텔.

기가 싱크빅과 초이스 에듀를 제외하고 서울 지역 매출 10위권 학원 중 8개 학원의 원장이나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니까 박 이사의 말은 공정거래법인가 뭔가로 초이스 에듀를 규제할 수 있다 이 말인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김 원장님. 저희가 정·관계 인사들에게 제대로 로비만 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모임의 주최자는 세계교육의 박유하 이사였다.

승훈과 은영이 초이스 에듀에 가세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고 두 사람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만 졌다.

건우 포함 세 사람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 덕분에 세계교육의 동영상 강의 판매량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엄청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초이스 에듀가 취급하지 않는 역사를 제외한 사회탐구영역과 제 2외국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과목의 매출이 예전의 1/4 이하로 뚝 떨어졌다.

천하의 박유하 이사도 지금의 초이스 에듀의 기세를 누르기 위한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기업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방법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솔직히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기는커녕 고작 학원 따위에 도움을 청한다며 비웃음이나 사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다 떠오른 게 공정거래법이다.

온라인으로만 국한하면 초이스 에듀의 동영상 강의 점유율은 50%를 훌쩍 넘어 70% 고지로 맹렬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시장 지배적 지위에 올라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힘들어도 다른 학원과 연합해 전방위적인 로비를 한다면 과거 SK텔레콤의 경우처럼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정거래법이요? 그전에 물어볼 게 있소. 왜 기가 싱크빅 용선재 대표는 이 자리에 오지 않은 거요?”

“기가 싱크빅에 연락을 넣었으나 불참하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요? 그것참 신기한 일입니다. 솔직히 기가 싱크빅이 우리 중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대체 왜 참석하지 않는다고 합디까?”

“그냥 불참하겠다고만 통보했지, 정확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초이스 에듀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하더군요.”

“뭐요?”

“그게 정말이오, 박 이사?”

“맙소사. 다른 곳도 아니고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이 서로 연합한다고요?”

“어허. 그게 사실이면 정말 심각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최 건우 대표 그렇게 안 봤는데, 알려진 것보다 욕심이 많은 인간이었군요. 서로 공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들 덩치만 키울 생각을 한답니까. 이건 상도덕에 어긋날 일이에요.”

뜻밖의 소식에 오늘 참석했던 원장들의 얼굴빛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온라인의 최고 정점에 오른 초이스 에듀와 오프라인에서는 여전히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기가 싱크빅.

만약 소문처럼 두 학원이 연계한다면 다른 학원들은 지금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위기감에 생겨야 반감이 커지고, 반감이 커져야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박유하 이사는 이처럼 다른 원장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일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과장되게 이야기를 흘렸다.

“그런데 박유하 이사님. 그거 정말 근거 있는 이야기요? 일부러 꾸며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요?”

“이런. 제가 조 원장님에게 그렇게 신뢰가 없는 인간이었습니까?”

“으흠.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안이 중요하다 보니 신중해지자는 뜻이지요.”

“근거가 필요하다고 하시니 근거를 보여드려야겠죠. 이걸 보면 제 말을 믿으실 겁니다.”

조 원장의 말에 박유하 이사는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서류 봉투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게 웬 사진이요? 음! 이 사람은… 기가 싱크빅에서 요즘 잘 나가고 있다는 하도훈 선생 아닙니까? MIT 나왔다고 한동안 엄청나게 광고를 해대던.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최건우 대표와 만나는 거요? 사진을 보니 꽤 친숙해 보이는데.”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둘의 만남이 더욱 잦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두 사람이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던 저들이 최근 들어 자주 만난다는 것은 뭔가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건우와 하도훈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고 미국에서 가까이 지내며 굉장히 친해진 사이지만, 그 사실은 일부러 숨겼다.

“그럼 진짜 큰일 아니오.”

“그래서 제가 다급하게 공정거래법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그 공정거래법인가 뭔가는 가능한 거요?”

“법이야 원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 학원 원장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탄원서 제출하고 교육청, 국회, 공정거래위원회에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는 건 안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니요?”

“김 원장님. 그럼 그냥 손 놓고 당하고 계실 건가요? 김 원장님 학원도 동영상 강의 쪽에서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편 아닙니까. 타격이 상당했을 텐데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초이스 에듀 점유율이 70% 고지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 모두 망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그건 그렇죠. 나쁜 일 하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에헴. 제가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라는 게 있습니다. 거길 보면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를 경우 시장 지배적 지위의 사업자라고 합니다.”

“쯧. 그놈의 고려대 법대는. 여기 조 원장님보다 학벌 떨어지는 사람 있습니까?”

“있지 않습니까? 연대 경영.”

“아니 뭐요? 어디 고양이 따위가.”

“뭐요? 고양이? 우리 안암골 호랑이를 어디 고양이 따위와 비교 질입니까? 끽해야 닭둘기밖에 안 되는 주제에.”

“닭둘기? 창공을 훨훨 나는 독수리를 닭둘기라니요. 조 원장님, 한 번 해보자는 겁니까?”

“시비는 박 원장님이 먼저 거셨지 않습니까?”

상황은 한시가 급한데 뜬금없는 연고대 논쟁이다. 두 사람의 한심한 모습에 박유하 이사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두 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꼭 여기서 까지 싸우셔야 하겠습니까?”

“흠.”

“크흠.”

“자! 자! 진정들 하세요. 여기서 이렇게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이 어떤 뒷공작을 꾸밀지도 모르는 판국에 우리끼리 싸우면서 시간 낭비하면 상대를 도와주는 꼴이 됩니다.”

“그런데 시장 지배적 지위라고 해도 그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잖소. 포털 바나나의 경우 점유율이 70%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가 없습니다?”

“둘을 비교하는 것은 조금 곤란합니다. 일단 바나나의 경우는 메이저 언론사도 눈치를 볼 만큼 영향력이 엄청납니다. 그러니 그들의 독점에 대해 비판할 제대로 된 언론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죠. 하지만 초이스 에듀는 아니지 않습니까? 돈은 잘 벌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가지고 있는 끈이 하나도 없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언론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맞습니다. 초이스 에듀는 너무 맑은 물이에요. 자고로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법이죠.”

“박유하 이사의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바나나의 경우도 그들의 독점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니 초이스 에듀의 독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박유하 이사.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살짝 다툼이 있었지만, 초이스 에듀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감했다.

“일단 진정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 말고 친하게 지내시는 다른 학원 원장님들까지 모두 동원해서 초이스 에듀의 독점에 대한 부당함을 정부와 국회에 호소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 방법이 있군요. 크든 작든 다른 학원들도 초이스 에듀 때문에 어느 정도 타격은 입었을 겁니다. 다 함께 동참하자고 하면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겁니다.”

“쪽수가 깡패라는 말도 있습니다. 초이스 에듀의 독점 때문에 동네 보습학원까지 말라죽게 생겼다고 주장한다면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해봅시다. 고려대 법대 나오신 조 원장님이나, 연세대 경영 나오신 박 원장님이나 연줄은 많이 가지고 계실 것 아닙니까? 이참에 동문의 힘을 한 번 보여주시죠?”

“좋습니다. 제가 우리 고려대의 끈끈한 힘을 보여주도록 하죠.”

“흥. 이번에야말로 연세대가 왜 고려대보다 한 수 위인지 제대로 보여드리죠.”

조 원장과 박 원장뿐만 아니라 다른 학원 원장들도 저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연줄을 이용해 초이스 에듀를 압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유하 이사는 호들갑을 떠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희미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인간들. 로비에 성공한다고 해서 50%의 몫이 너희에게 돌아갈 것 같지? 천만의 말씀. 열심히 재주를 부려보라고. 돈은 내가 가져갈 테니까. 후후후’

오월동주처럼 박유하 이사의 속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뒤통수를 칠 준비하고 있는 박유하 이사도 자신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를 누군가가 전부 듣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

“그것참. 박유하인지 뭔지 하는 자식. 촉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그냥 찍은 걸까요?”

“글쎄. 그냥 찍은 것 같은데.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이 방문학습지 사업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사실을 아는 건 우리 대표님, 용선재 대표, 하도훈 선생 그리고 손다정 팀장 이렇게 4명이 전부야. 물론 우리야 예외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는데, 박유하 이사가 눈치를 챘다고?”

“힘들까요?”

“그것보다는 오늘 참석한 사람들 마음을 흔들어 보려고 일부러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겠죠? 어휴. 전 눈치챈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저쪽에 우리를 능가하는 정보라인이라도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니까요.”

학원 원장들의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초이스 에듀 정보팀은 회의장소를 알아내고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한 다음 근처의 작전 차량에서 느긋하게 회의 내용을 듣고 있었다.

엄연한 불법이지만 그 사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를 능가한다고? 그건 불가능해. 넌 우리 팀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없어?”

“하하하.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냥 순간 그런 상상을 했다는 거죠. 솔직히 저쪽에서 알았으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온라인 방문 학습 시스템이 구축되면 제일 큰 타격을 입는 곳이 세계교육인데요. 그걸 모르니 저렇게 태평하게 뒷공작이나 펼치는 거겠죠. 그런데 팀장님. 박유하 저 자식 말처럼 학원도 공정거래법에 걸릴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까 이야기 나온 것처럼, 법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때가 많잖아. 로비만 잘하면 가능성은 있겠지.”

“그럼 곤란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을 거야.”

“왜요?”

“넌 대표님 말 한마디에 윤은영 선생 논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봐놓고도 그런 걸 물어봐? 지금 대표님은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이상으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어. 거기다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열혈 지지자 또한 많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번에 봐서 알잖아.”

“장난 아니긴 했죠. 다른 건 몰라도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무궁화회 모임 회원들이 경찰청장을 찾아갔다는 이야길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무궁화회란 총경으로 은퇴한 경찰들의 모임이다. 치안총감(경찰청장)과 비교하면 4단계나 낮은 계급이지만 구성원 대부분은 경찰청장보다 선배들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일선 경찰에게 부담이 될까 봐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는데, 그런 금기를 이번에 깬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일단 50% 점유율을 이유로 규제하려면 여론 조성이 우선인데, 과연 대중들이 지지해줄까?”

“생각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겠네요. 지금 시점이라면 괜히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게 될지 좀 더 두고 보자고. 이제 그만 철수하고 대표님에게 오늘 내용 보고해야겠다. 넌 기다렸다가 도청기 수거해 와.”

“넵. 알겠습니다. 팀장님. 이거 꽤 심심한 일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재미있어지네요. 흐흐흐.”

***

순희는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초이스 에듀로 향했다.

아침 8시까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모두 끝나면 학원에 갔다가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갈 수 있다. 고2가 된 그녀의 하루 일과다.

이제 겨우 고2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고3이 되면 얼마나 힘들까 벌써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2년만 더 고생해서 대학생이 되면, 그때부터는 ‘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부모님의 말씀만 믿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순희는 오늘따라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다. 최근 들어 자주 어지럽고 그랬는데, 생리까지 겹치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학원을 빠지고 하루 쉬고 싶지만, 초이스 에듀가 시행하는 결석 페널티가 무서워 그럴 수도 없었다.

초이스 에듀 본점은 두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고, 건물당 천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을 옮기려는 학생들로 복도는 늘 북적인다.

아무리 친(親) 학생적인 환경의 학원이라고 해도 쉬는 시간의 혼잡함을 해결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 학원에 늦게 도착했더니, 엘리베이터 앞은 역시나 벌떼처럼 몰려드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휴. 수업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엘리베이터는 왜 또 안 내려오는 거야. 오늘따라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곧 있으면 수업인데 올라갔던 엘리베이터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두세 번은 더 오고 가야 겨우 그녀의 차례가 될 것 같았다.

계속 기다렸다가는 아무래도 지각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순희는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여 계단이 있는 비상문으로 향했다.

1층. 2층. 3층.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숨이 가빠왔다. 식은땀이 목을 타고 등줄기로 흘러내렸다.

난간을 붙잡고 잠깐 쉬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4층을 지나 5층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머리가 ‘팽’하고 돌더니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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