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13화 (113/256)

제113화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예요. 대표님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대표님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너는 지상 최악의 해커가 되었을 거야.”

“에이.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에요. 전 세계에 야동을 전파하는 최고의 전도사가 되었다면 모를까.”

“크크크.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게 인정을 하시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요?”

“쓸데없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신문에 나온 두 사람에 대한 뒷조사는 모두 끝났겠지?”

“물론이죠. 자성이 형이랑 준규 형이 알아온 내용을 가지고 여기저기 죽 긁어봤는데 재미난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고자성과 이준규가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해오면 윤종수는 그걸 가지고 인터넷으로 더 깊숙이 파고든다.

“어떤 내용인데?”

“우선 유 모 씨라는 놈의 본명은 유재운. 나이는 21세 맞고. 서울의 명문대 학생인 것도 맞아요. 그런데 이 녀석 문제가 좀 많아요. 신문에 나온 것처럼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면서 스토킹 비슷한 짓을 하고 다녔나 보더라고요.”

“스토킹?”

“네.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여학생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다가 신고를 받은 적도 있고, 과외 하던 여학생 속옷이나 생리대를 훔치다가 걸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뭐? 그럼 완전 쓰레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성년자 속옷이나 훔치는 놈이라니. 혹시 성폭행이나 성추행 이력은 없었어?”

“아뇨. 그건 없었어요. 온라인에서는 과격하게 글을 남겼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굉장히 소심한 성격으로 보여요. 여자를 따라다니긴 해도 추행을 할 배짱은 없는 겁쟁이인 거죠.”

“그건 다행이긴 한데 그렇게 소심한 놈이 여학생 속옷이나 생리대는 어떻게 훔칠 생각을 했대?”

“그게 있죠. 화장실에 세탁기가 있는 집이 있잖아요.”

“윽! 설마 사용한 속옷이나 생리대를 훔쳐갔다는 거야? 이 새끼 완전 변태 아니야.”

대충 사건을 짐작한 차지훈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그나마 소심한 놈이라서 다행이지, 간 큰 놈이었으면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남았을 놈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 평범한 학생이 그런 식으로 과격한 악플을 달리가 없지. 그런데도 처벌을 안 받았어?”

“우리나라에서 스토킹은 아직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가 없어요. 직접적인 추행을 했다면 모를까 그냥 따라다닌 것만으로 처벌하긴 어려워요.”

“여학생은? 걘 미성년자잖아. 미성년자 속옷을 그것도 사용하던 속옷을 훔쳐갔는데 아무 처벌도 안 받았어?”

“글쎄요. 미성년자를 스토킹하면 더 큰 처벌을 받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고,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나면 자기 딸만 손해 본다는 생각에 고소를 취하했던 것 같아요. 추행을 당한 건 아니니 찝찝하긴 해도 남의 시선을 의식 안 할 수도 없잖아요.”

당사자 쪽에서 고소를 취하했으니 경찰로서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어휴. 한국은 아직 멀었어. 그걸 보면 우리 대표님이 잘하신 거라니까. 강력하게 처벌을 해야 다시는 그런 짓을 안 벌이지. 계속 봐주니까 반성을 안 하는 거야. 그럼 그 주부라는 여자는 어떻게 되었어.”

“그 주부는 온라인 경력이 화려해요. 연예인에 대해 악플을 달다가 고소된 것만 3번. 아기 엄마라는 사실에 마음이 약해진 연예인들이 매번 고소를 취하해서 그냥 넘어간 거지 아니었으면 벌써 여러 번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쯧쯧. 아무리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해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 쓰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 윤은영 선생님 일까지 포함하면 벌써 네 번째라는 이야긴데. 좀 심하긴 하다.”

“어떻게 할까요? 이 사람들 이야기 바로 언론에 뿌릴까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좋은 여론이 금방 잠잠해질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봐.”

윤종수의 말에 차지훈은 잠시 고민을 하다 전화를 걸었다.

Rrrr

- 네. 차 팀장님

“대표님. 지금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 무슨 일이죠? 제가 지금 이동 중이라 보고를 받을 수 없습니다. 통화는 가능하니 전화로 말씀해보시죠.

“네. 이번에 세계교육에서 언론플레이한 내용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차지훈은 건우에게 전화를 걸어 악플러 두 사람에 대한 이력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 그렇군요. 죄를 지었으면 반성을 해야지, 세계교육의 꾐에 넘어가 피해자인 척하고 있는 거였네요.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 저는 어떤 타협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언론을 이용한다면 같이 언론을 이용해주면 됩니다. 차 팀장님이 알아서 잘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조치를 하고 결과는 나중에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 네. 수고해주세요.

“뭐래요?”

전화를 끊자 옆에서 지켜보던 윤종수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진행하라신다.”

“그렇지! 내가 이래서 대표님을 좋아한다니까요. 평소에는 한없이 좋은 사람 같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니 얼마나 속 시원해요.”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었는데, 그래서 더 믿음직한 것 같긴 해. 이제 재가가 떨어졌으니 실행에 옮겨야겠지. 아까 네가 말한 내용 지금 바로 언론사에 뿌리도록 해.”

“옛썰.”

***

[유 모 씨. 알고 보니 여고생 스토커.]

[주부 악플러. 악성 댓글로 과거에도 여러 번 고소.]

초이스 에듀 정보팀의 대응은 신속 정확했다. 두 명의 악플러를 이용해 건우를 흠집 내려고 했던 시도는 하루도 지나지 못해 처참히 박살 나버렸다.

건우에 대한 안 좋은 기사는 세계교육이 기대했던 것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최근 들어 악플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었고,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건우였기 때문에 ‘당연히 받을 벌을 받는 건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의견이 우세했었다.

그런 와중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 피해자인 척했던 두 사람의 진짜 두 얼굴이 인터넷 기사를 통해 드러나자 대부분 네티즌은 ‘그러면 그렇지. 최 대표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 만큼 모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반박 기사가 나가고 반성의 모습이 없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악플러에 대해 성토하는 글들이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신공격성 댓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악플러가 악플에 시달리는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

세계교육 박유하 이사 사무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런 식으로 반격을 당한 겁니까. 이거 최건우의 인기가 더 높아지게 생겼잖습니까.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하다고 끝날 일입니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최건우의 말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단 말입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인데, 오히려 그 자식에게만 좋은 일이 되었어요. 심지어 무슨 말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최건우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어떻게 그런…. 우리나라 대통령 피선거권이 만 40세입니다. 지금 당장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아직은 무리다? 그럼 나이가 되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그 말씀입니까?”

정도식 실장의 어처구니없는 말이 박유하 이사의 화를 더욱 돋웠다.

“아닙니다. 이사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기에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로 언론플레이할 생각을 했습니까? 스토킹 이력이나 악성 댓글로 고소당한 이력은 조사 안 했습니까?”

“그게 고소가 전부 취하되는 바람에 조사해도 그런 사실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저희에게 해준 적이 없었고요.”

“그럼 ‘나 스토킹했어요’라고 고백이라도 해 줄 거로 생각하셨습니까? 제대로 조사를 했어야죠. 아니지. 이거… 뭔가 좀 이상하네요.”

화를 내던 박유하 이사는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꺼림칙한 느낌에 말을 멈췄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알기로 우리 조사팀이 그렇게 무능력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제가 기대했던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었죠.”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사님.”

“그런데 우리도 알아내지 못했던 정보를 다른 언론사가 먼저 알아내서 보도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씩이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걸리는군요. 제가 좀 서둘러서 조사기간이 좀 짧긴 했어도 허투루 조사할 린 없고. 도대체 뭘까요? 인터넷 기자들의 정보력이 언제부터 그렇게 뛰어났죠?”

“그건 정말 이상하네요. 보통 남의 기사를 긁어서 보도하는 게 인터넷 기자들인데. 그들 수준을 봤을 때 조사 내용이 너무 디테일 합니다.”

“그럼 뭐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제가 한 번 알아볼까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이럴 때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최고입니다. 처음 기사를 올렸던 기자를 족치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원시적인 방법이라…. 제가 그런 무식한 방법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일만큼은 정 실장님 의견대로 해야 할 것 같군요. 우리 학원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서둘러 주세요.”

평소의 박유하 이사라면 절대 서두르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여유를 부리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

퍽퍽!

“크윽.”

살갗이 터지는 파열음과 함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를 다그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말해 이 새끼야. 그 정보 어디서 얻었어?”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이 새끼가 끝까지 오리발이네. 더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야. 저 새끼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으니 제대로 밟아줘.”

“네. 실장님.”

“흑흑. 진짜 모릅니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퍽! 퍽!

“끄아아아악!”

정도식 실장의 지시에 몽둥이를 들고 서 있던 사내가 조금 전보다 더욱 과격하게 구타를 시작했다.

“그만.”

무작정 때리기를 10여 분.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던 남자도 지쳐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가 되어서야 구타를 중지시켰다.

“말해.”

“네. 네. 알고 있는 건 뭐든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때리지만 마세요.”

“이제 좀 정신을 차리나 보네. 이봐 기자 선생. 그러니까 말해. 그 자료 어디서 구했는지.”

“정말 모릅니다. 인터넷으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제 이메일이나 핸드폰을 전부 뒤져보셔도 됩니다.”

기자라고 불린 남자는 줄에 묶여 공중에 매달린 채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입안에 가득 고인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자신은 아무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알리려 노력했다.

“인터넷으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이 말이지. 그래서 그 제보를 근거로 사실관계를 조사해서 기사로 실었다?”

“맞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솔직히 사실관계를 조사한 건 아니고요. 내용이 워낙 그럴싸하길래 일단 기사부터 내보냈습니다. 익명의 제보가 저한테만 들어왔다고 장담하긴 어려우니 이럴 땐 최대한 기사부터 작성하는 게 우리 인터넷 신문사 기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지르고 봤다?”

“그렇습니다. 우리 같은 찌라시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를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흥미를 끌 수 있는 기사가 있으면 일단 내보내고 보는 겁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이 쓴 기사를 긁어오기 바쁠 때도 많습죠. 헤헤.”

상대가 관심을 보이자 기자는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니까 결국 네놈 말은 제대로 된 사실 확인도 없이, 단지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면요. 그 말씀이 맞습니다.”

“빌어먹을! 다시 말해 네놈처럼 기자 자격도 없는 새끼한테 우리가 엿을 먹었다는 이야기잖아. 이런 씨발. 갑자기 열이 확 올라오네. 야!”

“네. 실장님.”

“몽둥이 넘겨.”

“여기 있습니다. 실장님.”

“저기… 선생님. 아니 실장님. 저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렸는데요. 왜 갑자기 몽둥이를 드시는 건가요? 아니, 잠깐만요.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알고 있는 건 뭐든 알려드릴게요. 제발요. 으아아아악!”

퍽퍽!!

기자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정체 모를 누군가가 개입한 건 분명해졌다.

그들이 보인 행동의 은밀성을 생각하면 눈앞의 기자는 자신의 주장처럼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정도식 실장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허접한 녀석 때문에 자신이 공들인 계획이 어긋났다는 사실이 짜증이 났다.

특히 비굴하게 웃는 모습이 꼭 자신을 비웃는 모습처럼 보여 영문도 제대로 모르는 그에게 실컷 화풀이를 해버렸다.

“크윽…!”

과격한 몽둥이찜질에 기자는 초주검이 됐다. 그래도 병신을 만들 순 없어 적당히 사정을 봐줬다.

충분히 겁을 줬으니 뒤탈이 없을 건 분명했다.

“저 새끼 사람들이 다닐만한 곳 근처에 내다 버리고 와.”

“알겠습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는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기자를 들쳐 메고 허름한 창고에서 빠져나갔다.

Rrrr

창고에 아무도 없자 박유하 이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바로 전화를 걸었다.

- 네. 박유하입니다.

“이사님. 접니다. 정 실장.”

- 그래요. 정 실장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추궁해봤는데 누군가가 이메일로 제보했다고 합니다.”

- 뭐라고요? 제보요. 그럼 다른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쥐새끼인지 찾기만 하면 반드시 요절을 내겠습니다.”

- 흥분하지 마세요. 정 실장님. 지금 우리 일을 훼방 놓는 사람이 누군지 그것부터 알아내야지 않겠습니까.

“누군지는 뻔하지 않습니까?”

- 뻔해요? 저는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데, 정 실장님은 어떻게 누군지 그렇게 쉽게 알 수 있습니까?

“초이스 에듀 아니겠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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