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18화 (118/256)

제118화

- 기자 : 그럼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최 대표의 꿈은 무엇인가?

- 건우 :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원래 꿈은 의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막연하다.

- 기자 : 이미 사회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긴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22살 아닌가? 한참 꿈을 꿀 나이인데, 원래의 꿈과 거리가 있는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아쉬운 생각은 들지 않는가?

- 건우 : 아쉽다는 생각은 없다. 꿈이 의사였던 이유도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의사가 되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충분히 행복하다.

사설학원이라고 해도 어쨌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좀 더 멀리 본다면 아이들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최소한 없게 만들고 싶다.

- 기자 :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라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다. 그리고 굉장히 이루기 힘든 꿈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건우 : 내가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조금씩 변하리라 생각한다.

- 기자 : 혹시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나. 지금의 인기와 건강하고 바른 이미지라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것 같은데. 정치권에서 분명 러브콜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데?

- 건우 : 그런 일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 기자 : 직접 참여를 하지 않는다면 간접적으로는 참여할 생각이 있다는 뜻인가? 특정 정당지지 선언 같은 것도 어떻게 보면 간접적인 정치참여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건우 : 성실하게 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확대해석은 말아 달라.

- 기자 : 알겠다. 그럼 지금부터는 원래 인터뷰하려고 했던 급식 제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갑자기 급식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처음부터 식당을 만들지 않은 것을 보면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 건우 : 얼마 전 한 여학생이 강의실 이동 중에 쓰러진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미약하지만 영양실조였다. 5시 수업부터 9시 수업까지 쉼 없이 강의를 듣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도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 기자 : 충격이 컸겠다.

- 건우 : 그렇다.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받은 건 많은데 정작 그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한 것은 별로 없구나 하고 반성도 했다. 학원 급식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 기자 : 급식비 천 원은 참 애매한 금액이다. 진학상담소도 그렇더니, 이번에는 급식비가 천 원이다. 그런 조건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나? 3천 원짜리 동영상 강의를 본 학생. 급식비 천 원. 이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건가?

- 건우 : 대단한 의미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식당이나 진학상담소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동하도록 하고 싶었다. 공짜라고 하면 뭔가 얻어먹는 기분이 들고, 공급자의 눈치를 볼 수 있다. 밥 먹다가 체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웃음)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하지만 단돈 천 원이라도 돈을 내고 밥을 먹는다면 내 돈 내고 떳떳하게 먹는 밥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 기자 :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 건우 : 정원의 5%는 기초생활수급 가구의 학생들로 뽑는다. 학원비는 무료고 저녁 급식도 무료다.

- 기자 : 무료 식사를 하면 위화감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

- 건우 : 돈을 내고 학원증으로 충전하는 방식이다. 학원증만 있으면 누가 무료로 밥을 먹는지 전혀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 기자 : 혹시 기초생활수급 가구 학생들을 위한 다른 정책도 있는가?

- 건우 : 그 외 우리 초이스 에듀에서 만든 참고서를 무료로 지급한다. 그리고 양호실에서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생리대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 기자 : 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말인가?

- 건우 :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휴지 같은 걸 대신 사용한다는 기사를 봤다. 처음에는 기초생활수급 가구만 대상으로 하려고 했는데 학생들 사이에 미묘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체로 확대했다.

- 기자 : 학생들의 마음을 정말 잘 헤아리고 있는 것 같다.

- 건우 : 운이 좋게 사회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난 이제 22살이다. 고3 학생과 나는 고작 3살 차이가 난다. 비슷한 또래 아닌가? 게다가 내게는 아직 학생인 동생이 세 명이나 있다. 물론 100% 이해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대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다.

- 기자 : 22살인데 19살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최 대표를 보며 많이 반성하게 된다. 그런데 급식을 일반 학교 수준이 아니라 준 호텔급으로 제공한다고 들었다.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 건우 : 한창 먹고 자랄 나이다. 기왕 먹는 거 잘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호텔급 뷔페라고 해도 몇몇 가지 요리를 제외하면 원가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 기자 : 너무 저렴해서 음식의 질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 건우 : 우리는 식당을 운영해 수익을 얻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익을 위해 싸구려 재료를 이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동생들도 매일 이용할 생각이다.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이다. 당연히 음식재료 하나하나부터 전부 신경 써서 관리할 것이다. 이상한 재료를 사용하지는 않을까 걱정 같은 건 안 하셔도 된다.

- 기자 : 이번에 스카우트했다던 호텔 셰프 출신의 주방장은 어떻게 영입하게 된 건가? 고급 식당의 셰프가 학생 급식을 만드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 건우 : 정말 우연이었다. 동생들과 외식을 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일하던 윤 셰프님이 내 팬이라면서 인사를 하러 오셨다.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가 마침 학생들을 위한 식당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조언도 구할 겸 자연스럽게 식당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분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셨다.

- 기자 : 어떤 언질도 없었는데 호텔 셰프가 먼저 제안을 했단 말인가?

- 건우 : 나도 좀 어이가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제안을 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요리사를 꿈꾸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주셨다. 어릴 때 무척 가난했고, 밥을 거를 때가 많았다고 한다. 요리사가 되면 밥을 굶을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윤 셰프님의 진짜 특기는 비싸지 않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고, 호텔 주방장 일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하셨다. 즐겁게 일하고 싶다고 부탁을 하시는데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 아닌가?

- 기자 : 최 대표의 명성이 인재를 끌어들이는 모양이다.

- 건우 : 과분한 명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덕분에 좋은 분들이 많이 모이는 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기자 : 최 대표처럼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운이 따른다니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 건우 : 계획은 많다. 가장 가까운 계획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부에 대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도왔다고 하면, 이제는 스펙트럼을 넓혀서 체육이나 미술, 음악 같은 분야의 학생들도 지원할 생각이다.

- 기자 : 계획이 끝도 없이 나오는 것 같다. 비용이 점점 더 늘어날 텐데 진짜 감당할 수 있는가?

- 건우 :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계획하지도 않았다. 조만간 우리가 가진 교육 플랫폼 중 몇 가지는 외국에 수출 예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기자 : 교육 플랫폼을 외국에 수출까지 한단 말인가? 퓨처라는 교육용 앱을 수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영어로 만든 동영상 강의도 온라인 앱 스토어를 통해 굉장히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것 말고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뭔가가 초이스 에듀에 있는가?

- 건우 : 내가 만든 교습법들이다. 내 은사님이기도 한 미국의 하버드 생물학과 교수님에게 검토를 부탁드렸고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생물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 분야들과 수학과목 또한 해당 분야의 권위자들이 검토 중이다. 은사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아직 정확한 코멘트는 없어서 뭐라고 확신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생물은 확실히 미국 교과서에 실을 수 있을 것 같다.

- 기자 : 세상에! 최 대표가 만든 교습법이 미국 교과서에 실린단 말인가?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다. 모든 학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 아닌가.

- 건우 : 미국 전체가 아니고 10여 개 주만 먼저 실릴 예정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는 편이다. 은사님도 그렇다. 그분이 정말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계신다.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 기자 : 그런데 왜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최 대표의 교습법이 실리지 않는가?

- 건우 : 노코멘트 하겠다. 미국의 교과서에도 실리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는 해본다.

- 기자 : 아까는 꿈을 물었는데, 이번에는 목표를 묻고 싶다. 최 대표의 목표는 무엇인가? 인터뷰 도중 잠깐 언급했던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

- 건우 : 그건 너무 거창하다. 나의 최종목표는 공부하고 싶은데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학원 강사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기자 : 그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해 보인다. 꼭 최종목표를 이루길 바란다.

- ㅋㅋㅋ 교습법을 미국에 수출한단다. 이건 좀 개구라 아님?

└ 응. 개구라 아님. 네 말이 개구림.

└ 아재 쫌!!!

- 최건우 은사면 예전에 ‘최건우와 앨런 쇼어 초이, 그리고 하버드’에 나온 스트리 교수 아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는.

└ 맞을 겁니다. 생물학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사람이 교습법 수출을 돕는다면 거의 된다고 봐야죠.

└ 솔직히 최건우 수업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 교습법이라는 게 얼마나 획기적인지.

└ ㅇㅇ. 나는 내 동생이 가지고 있는 초이스 에듀 참고서 봤는데 배가 아프더라. 나만 너무 어렵게 공부한 거 같아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그 생각함.

- 미국에서는 확정이라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왜 아무 소식도 안 들리냐?

└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이단 취급 중. 교육부에서 일선 학교에 공문을 내렸는데, 최건우 교습법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고 함.

└ 헐!!! 진짜입니까?

└ 고등학교에서 수학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사입니다. 최건우 교습법 금지 사실입니다. 이따가 집에 가서 공문 내용 찍어 놓은 거 올리겠습니다.

└ 노벨상 받은 세계 최고 권위자도 인정한 교습법을 우리나라에서는 이단 취급한다고? ㅋㅋㅋㅋㅋㅋㅋ 사스가 헬조선.

└ 최건우 대표가 우리나라 교과서에 교습법 사용할 땐 사용료도 안 받겠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안 하는 중.

└ 재작년이랑 작년 수능 시험 적중 때문에 교육부랑 최건우랑 완전 원수 사이임. 채택할 리가 없지.

- 참고서는 전부 최건우 교습법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교육부만 나 몰라라 입니다. 이러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최건우 교습법 채택 안 할 수도 있음.

└ 노벨상 받은 권위자가 인정하든 말든 나는 인정 절대 못 함.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함. 교육학 학위도 없는 최건우는 꺼져. 이렇게 교육부 빼애애애애애애액 시전 중.

***

“수고하셨어요, 대표님.”

“손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 정말 수고한 거죠?”

“호호호. 왜요? 뭔가 불만이 있으세요?”

“인터뷰하는 내내 제가 너무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운 것 같았거든요.”

“인터뷰 대답들이 너무 오글거리긴 했죠?”

“그러니까 말이죠. 이것 보세요. 아직도 팔에 돋은 닭살이 안 사라졌어요.”

인터뷰를 마친 건우는 기자가 돌아가자 긴장한 모습을 풀고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런 모습을 대중들이 알아야 할 텐데. 아니다. 지금 대표님 정도의 인기라면 그런 모습은 그런 모습대로 소탈해서 좋다고 할지도 몰라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성실하고 진지한 열혈청년 컨셉이라.”

“열혈청년 컨셉이 대중들에게 신뢰를 주긴 좋죠. 특히 대표님은 나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소탈한 모습이 오히려 건방져 보일 수도 있어요. 방향을 잘 잡으셨어요. 그런데 정말 세계교육하고는 제대로 한 판 붙으실 생각인가 봐요?”

“네. 군대 면제부터 정신과 상담까지 저에 대해 안 좋은 언론플레이를 한 곳이 세계교육이 확실해졌으니까,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아줘야죠. 그래야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절 건드리고 싶어도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요?”

“저도 대표님 생각에 동의해요. 밟을 때는 확실히 밟아서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해야죠. 솔직히 지금의 대표님이라면 박유하 이사쯤은 걱정도 안 돼요. 제가 걱정하는 건 친구끼리 싸웠는데 친구 엄마가 나설까 봐 그러는 거죠.”

박유하 이사는 이제 건우의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세계그룹이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다정은 그걸 우려했다.

“세계그룹이면 아직 제가 상대하기에는 벅차긴 하죠. 다행히 사촌 형제들끼리 사이가 안 좋다고 하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요?”

“모를 일이죠. 왜 가족끼리 막 싸우고 그러다가도 다른 사람이 가족 욕하면 싫은 느낌. 대표님과 박유하 이사와의 대결을 순수하게 두 사람의 대결로 보느냐 아니면 세계그룹에 대한 도전으로 보느냐 거기에 달렸겠죠. 물론 후자라고 해도 대놓고 뭐라고 하긴 어려울 거예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죠. 한 대 맞았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을 착하게 보는 게 아니라 만만하게 보는 것이 세상이니까요. 혹시 세계그룹이 나선다고 해도 당장은 아니니 지금부터라도 대비책을 마련해두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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