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건우의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온라인은 또다시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가장 이슈가 된 것은 누가 뭐래도 고액 진학상담이었다.
상당수 국민은 고액 과외는 들어봐도 고액 진학상담은 들어본 적도 없다는 반응이었고, 인터뷰 내용과 같은 편법이 존재한다면 그건 사기나 다를 바 없다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이 고조될 때쯤 누군가가 ‘고액 진학상담의 가장 대표 학원이 세계교육이다’라는 댓글을 남겼고, 그때부터 사람들의 분노의 화살은 전부 세계교육으로 향했다.
엄청난 비난 여론에 당황한 세계교육은 ‘진학상담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생각만큼 고액을 받는 것도 아니고, 최 대표의 인터뷰처럼 편법을 이용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학생들이 혼란을 겪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니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입장을 발표했지만, 고액 진학 상담을 인정했다며 논란이 더욱 커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대중들의 부정적인 시선에 부담을 느낀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원을 그만두는 일까지 생겼다.
건우의 인터뷰로 세계교육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었다.
설상가상. 세계교육의 불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학원가의 두 강자가 서로 힘을 합치다.]
우리나라 최고의 강사로 손꼽히는 최건우 대표와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학원인 기가 싱크빅이 서로 손을 잡았다.
[방문학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이젠 방문학습지도 스마트하게 바뀌었다.
바로 어제 초이스 에듀의 퓨처 앱과 방문학습지의 강자 기가 싱크빅이 서로 협력해 온라인 방문학습이라는 신개념 교육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방문학습지. 이젠 가격 부담이 확 내려갔다.]
이런 제목들의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미취학 아동의 부모들은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 특히 건우가 함께 참여한 학습방법이라는 사실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온라인 방문학습을 신청하는 가정도 꽤 있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건우는 신뢰의 상징이었고, 그 이름값 덕분에 방문학습지 신청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흥이 있으면 망도 있는 법. 승승장구하는 기가 싱크빅과 달리 방문학습지 1위 업체였던 세계교육은 해지 신청자들의 문의 전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고액 진학상담에 이은 방문학습지 시장에서의 참패는 세계교육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고, 세계그룹에서는 지금 사태를 반드시 해결하라는 질책이 담긴 경고 서한까지 보냈다.
건우의 기습공격으로 완전히 벼랑 끝 위기에 몰린 박유하 이사. 그는 지금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굉장히 위험한 무리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
“하하하. 이것 참 속이 후련하구먼. 그렇지 않아도 세계교육이 눈엣가시처럼 굴어 껄끄러울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 제대로 한 방 먹였어요. 막혔던 속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최 대표.”
“별말씀을요. 대표님.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나요. 전부 하 선배의 아이디어였는데.”
원래는 건우의 아이디어였지만, 처음부터 하도훈의 아이디어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용선재 대표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다.
“아! 물론 우리 하 선생도 정말 수고했지요. 그렇지만 최 대표가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려줬기 때문에 일이 수월했어요. 냉정하게 따져서 경쟁학원 아닙니까? 하나하나 잇속을 따지다 보면 협력하기가 어려운데 라이벌 학원이 힘을 합치니 이렇게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군요. 이게 전부 두 사람의 우정 덕분입니다. 정말 보기 좋습니다. 하하하.”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 선생.”
“네. 대표님.”
“내가 처음에 하 선생을 스카우트할 때만 해도 이게 잘하는 건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 선생을 스카우트한 게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이스 에듀와 관계 개선이 된 것도 큰 이득이지만, 강의 평가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이에요. 학원 강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나중에는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가 큽니다.”
온라인 방문학습지가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자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용선재 대표와 건우, 하도훈이 한자리에 모였다.
용선재 대표는 상기된 얼굴로 너털웃음까지 터트리며 건우와 도훈을 칭찬하기 여념이 없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대표님. 제가 대표님에게 많이 도움을 받았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부모님도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계시고. 정말 뭐라고 고맙다고 해야 할지, 또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서로 잘 되었으니 거기에 대한 부담은 가지지 맙시다. 그래도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면 당분간 우리 학원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주시면 됩니다. 하 선생. 그렇게 해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대표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우 너도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아류라는 소리를 안 듣도록 정말 이를 악물고 노력할 거거든. 하하하.”
“그래 꼭 그렇게 해줘. 안 그래도 나 혼자 독점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데 형이 유명해져서 점유율 좀 올려주면 좋지. 독점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줄어들 거 아니야.”
세 사람은 가벼운 덕담을 나누며 술잔을 부딪쳤다.
“꼭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독점이다 뭐다 투덜거리는 겁니다. 최 대표. 너무 신경 쓰지는 마세요. 좁은 마음에 질투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용 대표님. 솔직히 기가 싱크빅도 온라인 시장에서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텐데, 너무 쿨하신 것 아닙니까?”
“상당한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타격이지요. 학원이 휘청거릴 정도예요.”
속 쓰린 이야기를 하는데도 용선재 대표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너무 평온하십니다.”
“저도 최 대표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한때 우리 기가 싱크빅의 시가 총액이 2조 원을 넘었었죠. 물론 코스닥 시장이 한참 열풍이 불 때라 거품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때 우리 기가 싱크빅은 정말 엄청났었죠.”
“저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기가 싱크빅은 우리 학원 강사들에게 하나의 신화 아닙니까. 대표님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시고요.”
“닮고 싶은 롤모델이라.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고맙군요. 지금 초이스 에듀를 예전 제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련해집디다. 그렇게 유명했던 종로나 대성도 결국 저 때문에 뒤로 밀려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땐 정말 어마어마하셨죠.”
“역시 하 선생은 기억해주시는군요. 그때 기억 때문인지 담담합니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저 또한 그렇게 밀려나는구나 생각하면 크게 질투가 나지 않아요. 솔직히 돈은 벌 만큼 벌어서 이제 큰 욕심도 없어요.”
“말씀하시는 게 꼭 세상사를 달관하신 도인 같습니다.”
건우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한편으론 신기했다.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았는데, 기가 싱크빅은 20년 후에도 여전히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커다란 학원으로 군림했다.
“하하하. 최 대표도 내 나이가 되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겁니다. 나이가 들면 매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최 대표처럼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사람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미친 듯이 질투하거나 아니면 그러려니 하며 달관하거나. 다행히 저는 후자 쪽 같습니다. 추한 사람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나이가 드시다니요. 아직 정정하십니다. 이번 일도 그렇습니다. 아이디어야 도훈이 형이 냈지만, 그걸 받아들인 사람은 대표님입니다. 솔직히 제가 거슬렸을 수도 있는데, 대표님은 우리와 협력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받아들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열린 사고를 하시는 것 아닙니까?”
“허허. 그렇게 보였습니까?”
“네. 대표님과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나이가 든다면 꼭 대표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말입니까? 세상에!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까지 받는 최 대표가 저를 닮고 싶다고 말하다니 이거 꿈 아니죠? 하 선생, 저 한 번 꼬집어 주겠습니까?”
건우의 말에 유쾌해진 용선재 대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대표님. 방금 제가 제 허벅지를 꼬집었는데 아프네요. 절대 꿈이 아닙니다.”
“정말 꿈이 아니란 말이죠. 제 친구이나 가족에게 최 대표 롤모델이 나였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 마누라는 ‘최 대표가 뭐가 아쉬워서 당신 같은 사람을 닮고 싶대요?’라고 타박할지도 모르겠군요. 허허허.”
성공했지만 거만하지 않은 건우와 나이가 많아도 권위적이지 않은 용선재 대표.
그 두 사람과 하도훈은 새롭게 다가오는 위험을 눈치채지 못한 채 술잔을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젠장. 도대체 일이 왜 이 지경이 된 거야. 최건우와 하도훈이 자주 만났던 게 친분 때문이 아니었어? 설마 내가 학원 원장들 선동하려고 했던 말이 진짜였단 말이야? 나는 대체 왜 그런 오판을 한 거지.’
‘그리고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은 왜 그렇게 은밀하게 움직인 거야? 기가 싱크빅의 보안팀 오대영 실장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그랬어. 일부러 배제했을 가능성이 높아. 이미 눈치를 챘다는 거야. 빌어먹을.’
박유하 이사는 지금의 상황을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며 재미를 보는 건 자신의 전매특허였다.
상대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을 때 비수 같은 공격으로 숨통을 끊어 놓는 일. 이런 일도 자꾸 하다 보니 중독성을 느낄 만큼 재미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방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심의 대가는 엄청났다.
알짜배기 사업이었던 진학상담소는 편법을 일삼는 고액 진학상담소로 낙인찍혀 폐업 직전까지 몰렸고, 어렵게 1위 자리를 되찾았던 방문학습지 사업의 매출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게 세계교육이 겪고 있는 고난의 전부가 아니다.
기가 싱크빅과 초이스 에듀 한강점에 밀려 대치동에서도 3위 자리를 겨우 차지하고 있던 오프라인 사업부문도 편법 고액 진학상담소로 인한 이미지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남에게 뒤통수를 칠 줄만 알았지 누군가에게 역으로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터라, 수습은커녕 허둥지둥하기도 바빴다.
원장이 따로 있지만 사실상 박유하 이사가 전권을 휘둘렀기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리더의 모습은 세계교육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똑똑똑.
“무슨 일이야?”
갑자기 닥친 난관 앞에 평정심을 잃은 박유하 이사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노크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사님. 접니다. 정 실장.”
“아. 정 실장님이셨군요. 그래. 알아봤습니까?”
“오대영 그 친구를 완전히 따돌리고 은밀히 일을 진행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와 그 친구 사이를 눈치채는 건 웬만한 정보력이 있지 않고서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긴 했어도 중간에 전학을 가서 졸업한 학교는 다릅니다. 전산 조회로는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오 실장의 알아냈다는 건….”
“정보력이 뛰어난 조직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초이스 에듀가 가장 의심이 간다던 정 실장님의 말씀이 맞았군요. 제가 잘못 짚은 거였어요. 정 실장. 내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지난번 대화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을 때 정 실장은 초이스 에듀를 가장 먼저 의심했었다.
박유하 이사는 그 이야길 듣고도 초이스 에듀는 절대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결정적인 오판이었다.
그때만 제대로 눈치를 챘다면 지금처럼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아닙니다. 이사님. 저 또한 이사님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그건 이사님의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망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측의 잘못이 아니라 초이스 에듀가 너무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인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건 완벽한 제 판단 미스입니다. 당연히 최건우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초이스 에듀의 가장 큰 투자자가 장만복 회장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그 양반이 도왔다면 아무리 햇병아리 초이스 에듀라도 괜찮은 정보팀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긴 한데 학원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정보팀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정보팀을 운영하는 것도 운영하는 거지만, 그걸 만들 필요성을 느낀 게 더 대단했다.
“제가 처음에 너무 성급하게 움직여서 그래요. 최건우 그 자식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군 면제와 정신과 상담 이력으로 무너뜨리려고 했는데, 그때 신중했어야 했어요. 일은 일대로 실패하고 상대방에게는 경계심만 심어줬으니, 그거야말로 전형적인 타초경사였어요. 순진한 줄 알았는데 눈치가 엄청나게 빠른 놈이었습니다.”
“그럼 그때 우리가 언론을 통해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조직적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 틀림없을 겁니다.”
“믿고 싶진 않은데 그래야 말이 되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최근 우리가 시도했던 언론플레이가 이상하게 자꾸 꼬이는 느낌이었는데, 그것도 분명 초이스 에듀 정보팀 작품일 겁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곳만 의심하고 있었으니 당해도 쌉니다. 당해도 싸.”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사님?”
“지금 제 처지를 정 실장도 잘 알지 않습니까? 본사에 도움을 청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되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량으로 초이스 에듀를 흔드는 건 당분간 힘듭니다. 상대 정보팀 조직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들과 정면 대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초이스 에듀는 일단 포기하고 지금부터 우리는 기가 싱크빅에 총역량을 집중할 겁니다. 제가 그동안 MIT 출신인지 뭔지 하는 자식에 대해 알아보라던 것 어떻게 됐습니까? 뭔가 좋은 거리라도 찾았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