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30화 (130/256)

제130화

“네? 우리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을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퓨처 앱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텐데요.”

대단한 기술력으로 만든 게 아니다. 지금 존재하는 기술을 조합해서 만든 아이디어 상품일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기술력이라면 퓨처 앱보다 훨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가능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에 특허출원을 해두셨더군요. 그리고 특허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가 퓨처 앱을 모방할 일은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특허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편입니다만, 미국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IT분야는 그러기 힘듭니다. 소송이라도 걸리면 괘씸죄까지 적용되어서 엄청난 징벌적 배상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음. 그건 그렇군요. 그래서 미국의 기업은 특허 기술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특허권을 가진 회사를 통째로 사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엄청난 징벌적 배상금에 기업이미지까지 나빠지는데 괜한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의 판단입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을 탐내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을 탐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퓨처라는 앱 자체에 욕심이 났고, 두 번째는 음성인식 기술 때문입니다.”

“음성인식 기술이 한국에서만큼은 독보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또 의문이 생기는군요. 음성인식 기술이 대단하긴 합니다만 미국은 우리 이상의 음성인식 기술을 가진 기업이 몇몇 군데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그중 한 곳은 이미 인수했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우리가 음성인식 기술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음성으로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를 작성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정확한 인식기술이 필요합니다.”

건우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눈치챘다마다. 미래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성장 원동력을 음성 인식 기술에서 찾아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사업인데, 그런 그들이 퓨처에까지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당연히 그래야죠.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를 개인 메모장으로 사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정확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겠네요.”

“문제는 미국과 한국의 발음구조 때문입니다. 영어의 경우는 받침이 들어가는 단어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세계에서도 받침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언어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기술이니까요.”

“저도 사용하고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두 회사의 기술을 잘 접목하면 세계의 웬만한 언어는 모두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입니다.”

“만약 말씀대로만 되면 정말 엄청난 일이 되겠군요. 각국의 음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사람이 아닌 기계의 힘으로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는 의미니까요.”

“역시 안목이 보통이 아니시군요. 우선은 MS오피스에 음성인식 기능을 장착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최종적으로는 거기까지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음성 인식 기술로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죠.”

기계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음성통역이 가능한 세상. 이건 엄청난 혁명이다.

송 지사장의 말처럼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세계의 언어 장벽은 무너질 테고, 학생들은 더 이상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고통 받지 않을 것이고, 기술만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그런 대단한 일에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연구원들이 동참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그것보다 큰 영광은 없으리라, 건우는 생각했다.

판단이 그렇게 서자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이스 에듀가 아무리 우리나라 최고의 학원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해도, 사설 학원을 모기업으로 둔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이 발전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끝까지 데리고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건 커다란 고래를 좁은 어장 속에 가둬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대단한 프로젝트에 우리 연구원이 필요하다면 제가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시죠.”

구체적인 이야기에는 ‘팔겠다. 그런데 공짜로 넘길 생각은 없다. 그러니 먼저 제시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결정은 했다. 그러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자선 사업가도 아닌데 사업체를 무조건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아! 다행입니다. 역시 시원시원하시군요. 그럼 저도 시원시원하게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5억 달러를 일시불로 드리겠습니다.”

5억 달러. 한국 돈으로 대략 5,000억 원. 엄청난 거금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건우는 말없이 송 지사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깜짝 놀랄 줄 알았던 건우가 별다른 동요 없이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송 지사장은 몸이 달아 열심히 추가설명을 시작했다.

“으흠. 5억 달러면 엄청나게 큰 금액입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5,000억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과하게 금액을 불렀습니다. 그만큼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이 가지고 있는 특허권이 탐이 난다는 뜻입니다.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실 경우, 최 대표님은 대한민국에서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람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는 겁니다.”

“압니다. 5,000억 원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 그런데 송 지사장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영어권 국가 제 동영상 강의 매출이 1년이면 2억 달러를 넘는다고요. 게다가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다고도 하셨죠. 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5억 달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초이스 에듀의 지난 3월 매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국내

- 동영상 강의

2,000만 건 * 3,000원

= 600억 원

- 이북 판매

100만 건 * 5,000원

= 50억 원

- 기타(오프라인 학원 등)

= 10억 원

합계 : 660억 원.

◎ 해외

- 동영상 강의

400만 건 * 5달러

= 2,000만 달러

- 이북 판매

50만 건 * 8달러

= 400만 달러

- 기타(퓨처 앱 수출 등)

= 500만 달러

합계 : 2,900만 달러(약 300억 원)

총 월매출 합계 : 960억 원.

1년 총매출 : 1조 1,520억 원.

지금 매출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만 해도 1년 매출이 무려 1조 1,520억 원이 된다. 더욱 대단한 것은 지금도 매달 20% 가까운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국내 동영상 판매의 경우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지만, 해외는 다르다.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일본과 중국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라서 그 매출은 더욱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중화권은 영어권 이상으로 노다지다.

물론 건우의 일본어나 중국어 능력이 강의를 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다. 그래서 미리 만들어놓은 커리큘럼대로 동영상을 제작해서 공급할 계획을 세웠다.

직접 만들어 공급하는 것보다야 매출이 많이 부족하겠지만, 동북아시아 자체가 교육열이 매우 높은 곳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은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계속해서 대리인만 내세우진 않을 생각이다.

건우가 강의할 때 내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특유의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동영상을 보는 학생들로 하여금 더욱더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이미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증명된 상태이며 그래서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에도 매진하고 있다.

회귀 이후 더욱 좋아진 머리 덕분에 건우의 외국어 능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으며, 지금 추세라면 빠르면 2년 안에 본인이 직접 만든 동영상 강의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매출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 2016년 총매출은 2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해외시장의 경우 애플과 구글이 판매대금의 30% 정도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구조이고 그 외 기타비용과 수익의 30%(기부)를 제외한다고 해도 국내외 포함 건우에게 돌아가는 순수익은 5,000억 원에 가깝다.

누적 재산이야 재벌들과 비교하면 부족할지 몰라도,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은 웬만한 재벌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그런 상황이니 5억 달러라는 거액 앞에서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며 허세(?)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혹시 5억 달러가 부족하십니까?”

“5억 달러가 부족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요?”

“일단 무조건적이라는 말이 걸립니다. 죄송합니다만 5억 달러가 아니라 10억 달러라고 해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퓨처 앱에 대한 사용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프로그램 자체만 놓고 봐도 훌륭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우리 학원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직접 결제 시스템입니다. 지사장님도 미리 조사를 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작년에는 포털사이트인 바나나를 통해 동영상과 참고서 이북을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수수료가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동영상 강의의 경우 무려 매출액의 50% 가까운 돈이 수수료로 빠져나갔습니다. 작년의 경우 매출이 5,000억 원 정도 되었는데 거기서 2,000억 원 이상의 돈을 고스란히 바나나에 가져다 바친 셈입니다.”

“수수료가 엄청났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코니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해서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든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수수료만 줄이면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지금까지 100억 원 이상을 연구비 등으로 투자했지만 효과는 열 배 이상 거뒀습니다. 1월부터 3월까지 내역만 살펴봐도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표현 정말 죄송하지만, 겨우 5,000억 원의 돈으로 그런 효과를 포기하라니요. 고려조차 할 필요가 없는 제안입니다.”

초이스 에듀가 벌어들이는 수익의 70% 이상을 퓨처 앱을 통해서 얻고 있는데, 그걸 고작(?) 5억 달러에 내놓으라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다.”

“아닙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단지 그게 끝이 아닙니다. 조만간 실시간 동영상 강의도 유료로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시범적으로 무료테스트를 해봤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습니다. 좁은 강의실이 아니라 드넓은 인터넷 공간을 강의실로 사용하게 됩니다.”

“오프라인 수강을 듣는 학생들도 끌어올 생각이십니까?”

“네. 서버만 충분하다면 무한대의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앞으론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학생들이 저의 수업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게 되는데 어떻게 그 권리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렇군요. 저도 퓨처 앱을 포기하라는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한 기능은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나 현금 결제 기능이 아닙니다. 그런 기술이야 우리 회사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 동영상 제작 툴과 음성인식 기술입니다. 그러니 퓨처 앱을 계속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

송 지사장도 건우가 5억 달러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단 찔러보는 가격이고, 추가적인 협상을 통해 적정선을 찾을 계획이었다.

“그냥 말로만 해서 믿기에는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지사장님을 못 믿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신뢰로 계약하자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당연합니다. 그 모든 건 계약서에 남겨서 오해의 소지가 없게 해야겠지요. 그전에 최 대표님이 원하시는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그걸 알아야 저도 가타부타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현금 대신 주식을 받고 싶습니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시가총액은 그 가치가 예전보다 하락해서 현재 4,000억 달러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의 95%의 지분 중 55%를 넘기는 대가로 0.5%의 주식을 원합니다.”

“네? 그럼 인수가격을 20억 달러로 하자는 말씀 아닙니까? 아무리 매력적인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너무 과도한 요구입니다.”

전부도 아니고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지분의 55%를 대가로 2조 원을 달라는 건 과해도 너무 과한 요구였다.

어느 정도 협상을 각오했던 송 지사장은 생각보다 훨씬 큰 금액에 놀라 입을 열지 못했다.

“초이스 에듀 지분 10% 그리고 인수가격은 10억 달러. 나머지 10억 달러는 제가 제 돈으로 구입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큰돈이 없으니 3년 상환으로 계약하고, 주가는 지금 가격인 주당 40달러로 고정하는 겁니다. 3년 안에 전액 상환하지 못할 시 10억 달러에 대한 권리는 포기하겠습니다.”

“모든 권리도 아닌데 10억 달러는 글쎄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동업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온라인 교육 사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블릿 같은 스마트기기와 윈도우를 연계하는 기술에도 적극적이고요. 하지만 생각보다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죠?”

송 지사장과 미팅이 잡힌 후 건우가 고심을 거듭하며 만든 떡밥(?)들이다.

계속해서 대기업들과 트러블이 생기자 건우도 고민이 많았다. 세계그룹까지는 괜찮았는데 설강그룹에 이어 와룡그룹까지 악연이 되었다.

아무리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기업 세 곳과 맞붙어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천하의 장만복 회장이 도와준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방법이 있다면 다른 대기업과 끈을 만들어 두고 싶지만, 대체 어떤 기업이 와룡그룹, 설강그룹, 세계그룹과 동시에 척을 질 각오로 초이스 에듀를 돕겠는가?

설사 그런 기업이 있다고 해도 순수하게 도와주려는 의도만 가지고 접근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칫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연락이 왔다.

그 순간 건우는 방패막이를 해줄 기업을 굳이 국내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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