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기업 간의 협력에는 여러 형태의 방법이 존재하며, 서로의 주식을 나눠 가지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 서로 협력하게 될까?
주식을 나눠 가진 이후 어떤 기업의 공격으로 초이스 에듀가 망했다고 가정해보자.
초이스 에듀가 망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져간 10%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그리고 건우가 없는 퓨처 앱 또한 지금 가치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 소유의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주식 55%도 폭락할 게 뻔하다.
과연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꼴을 보고만 있을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우를 도와줄 확률이 매우 높다.
“음.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저는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영미문화권에서도 실력 있는 강사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 안에 미국 교과서에 제가 만든 커리큘럼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물뿐만 아니라 지구과학, 물리, 화학 등의 과학 분야와 수학까지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가지고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스트리 교수님이 제가 하버드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제가 만든 커리큘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셨고, 하버드의 다른 과목 교수님에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생물 과목만 우선적으로 로비 중입니다. 여기서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나서준다면 일이 훨씬 쉽게 진행되겠죠.”
“그래서 우리 회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미국에서 제 커리큘럼을 채택했다는 것은 다른 국가들도 결국은 수용하게 될 거라는 의미입니다. 과학 분야에서 최고 선진국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니까요.”
“예. 계속 말씀하시죠.”
“5년 안에 전 세계 중·고등학교 수학, 과학 커리큘럼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저와 초이스 에듀가 있겠죠.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전 세계 중·고등학교 교육의 헤게모니를 초이스 에듀가 거머쥐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런 초이스 에듀의 주식 10%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걸로 부족합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세계 중·고등학교 교육의 헤게모니를 거머쥔다.’
어쩌면 굉장히 광오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송 지사장은 건우의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성과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본사에서도 초이스 에듀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온라인 교육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우리 마이크로소프트를 위해 초이스 에듀의 전폭적인 협조를 기대할 수도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제 조건을 받아들여진다면 그때부터 우린 파트너니까요.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제가 만든 커리큘럼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휴우. 이게 제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냥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하려고 왔을 뿐입니다. 그 이상의 권한은 없으니 본사와 연락을 하고 일주일 안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제 제안을 거절하면 애플과 구글에도 똑같은 제안을 할 생각입니다.”
“아…! 그렇군요. 참고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
“어떻게 되었어요? 뭐래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왜 갑자기 연락이 온 거래요?”
송 지사장이 돌아가자 손다정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하고 싶다고 하네요.”
“네? 그건 안 되죠. 퓨처 앱이 얼마나 큰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데요.”
“그래도 원한다면 넘겨야지 않겠습니까?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연구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일 텐데요.”
“그래도 대표님이 망하기 직전의 회사를 살려주신 거나 마찬가지인데. 홍민수 사장님은 의리가 있으셔서 안 가려고 하실 걸요?”
“그래도 보내드려야죠. 큰물에서 놀 기회인데. 솔직히 사설 학원 뒤치다꺼리를 하기에는 그분이 가진 능력이 너무 대단합니다. 기회가 없다면 모를까, 세계적으로 명성을 알릴 수 있는데 잡을 수는 없죠. 가기 싫다면 제가 설득해서라도 보낼 겁니다.”
“네? 그럼 퓨처 앱은요?”
바나나의 엄청난 수수료 폭리에 질렸던 손다정은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올까 봐 지레 겁부터 먹었다.
“하하하. 그거야 당연히 우리가 계속 사용해야죠.”
“어휴. 난 또 뭐라고. 엄청 놀랐잖아요.”
“그런데 일이 좀 커지게 되었습니다.”
“왜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니요. 잘하면 마이크로소프트와 동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네? 동업이요? 마이크로소프트와 동업을 한다고요? 우리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하는 것도 놀라운데 갑자기 웬 동업이요.”
“그게 사실은요….”
건우는 조금 전 송 지사장과 나누었던 대화를 그대로 손다정에게 이야기해줬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를 이용하겠다는 속에 숨겨뒀던 속내까지 전부.
그의 설명을 듣던 그녀의 얼굴은 놀라움을 넘어서서 황당함으로 가득 찼다.
“세상에!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우리 초이스 에듀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말씀이세요?”
“방패막이라니요. 파트너쉽이라니까요. 그리고 초이스 에듀의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마이크로소프트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만. 지금 당장 가치로만 따지면 교환 조건이 1/20이나 될까요? 거의 사기 수준이라고 봐요.”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지분 55%, 초이스 에듀 지분 10%에 건우가 만든 커리큘럼에 대한 미국·유럽시장 독점권까지 주기로 했다.
절대 작은 조건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0.5% 지분이 너무 비쌀 뿐.
“사기라기보다는 미래 가치까지 고려한 정당한 거래라고나 할까요?”
“그건 대표님 생각이시고요. 그래서 언제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건데요?”
“아직 확답을 받은 건 아닙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이건 손 팀장님만 알고 있기입니다.”
“네. 저도 어디 가서 말하기 싫어요. 다들 우리 대표님을 우러러보기 바쁜데 이런 사기꾼 기질이 있다고 말해봐야 나만 미친년 소리를 듣겠죠.”
“하하하. 그럼 송 지사장님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우리도 제대로 된 타당성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팀장급 이상 긴급소집해서 회의 준비해주세요.”
“그쪽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하시는 거예요?”
“당연하죠.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부터 이미 낚싯줄에 걸린 겁니다. 그리고 없는 이야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아마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들도 송 지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혹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악해. 이젠 국제적으로 사악함을 발휘하시네요. 쯧쯧.”
***
사이티 카푸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 이래 빌 게이츠와 시티브 발머 이후 세 번째로 임명된 최고 경영자였다.
회사에서 전면에 나서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선임 소식은 다소 뜻밖이라는 분위기가 많았다.
인도계 엔지니어 출신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만 22년간 업무를 맡아왔다. 이전에는 선마이크로시스템에서 일했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옮겨와서는 주로 기업용 비즈니스를 맡아 왔다.
내부에서는 꽤 유명했고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력은 서버와 클라우드 등 기업용 비즈니스가 우선 눈에 띄지만, 사실상 늘 마이크로소프트의 중심에서 다양한 분야를 거친 전문가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인사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겠지만 실리적인 인사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그는 ‘합리적’이고 ‘협상가 스타일’이라는 반응이 많다.
한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스티브 잡스 같은 카리스마보다는 제프 베조스 같은 합리적, 실리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했다.
고집을 내세워 안 되는 비즈니스를 붙들고 있기보다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고 지원해주는 매니저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빌 게이츠가 기술 고문으로 복귀하고 그 밖에도 이사회로 자리를 옮기는 스티브 발머, 총 의장을 맡은 존 톰슨, 케빈 터너 최고운영책임자와 스티븐 엘롭까지. 최고경영자라도 함부로 하기 힘든 사람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적으로 이들과 협의하며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이티 카푸르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지금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해있다. 그가 처음 취임했을 때 주당 25달러 정도에 이르던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2016년 4월 현재 주당 20달러까지 떨어졌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무려 500억 달러의 손실을 끼친 셈이 된다.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50조 원. 한국의 1년 예산이 400조 원이 조금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을 손해 본 상황이 된다.
한때 6,000억 달러까지 올랐던 시가총액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때의 2/3밖에 되지 않는 참담한 상황이고, 대부분 전문가들은 너무 안정적으로만 사업을 진행하는 사이티 카푸르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 지사장인 데이빗 송으로부터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그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사이티 카푸르는 곧바로 비서실에 연락해 건우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하도록 지시했으며, 특히 미국 교과서 진행사항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히 파악하도록 했다.
***
워싱턴 주 레드먼드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대회의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인 사이티 카푸르와 이사진들이 모여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각국의 지사장 중 한국 지사장인 데이빗 송만이 영상으로나마 유일하게 참여했다.
“오늘은 얼마 전 데이빗 송 한국지사장이 상정한 한국의 초이스 에듀라는 기업과 사업적 협력을 위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것 보시오, 지사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조그마한 회사를 인수하라고 지시한 걸로 아는데 난데없이 동업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내 알아보니 IT기업도 아니고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허접하기 그지없는 회사라고 합디다. 우리 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요즘 들어 아무리 힘들어졌다고 해도 그런 콩만 한 회사와 동업이라니요.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마이클 이사님. 하지만 방금 이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콩만 한 회사는 절대 아닙니다. 이미 애플과 구글의 앱 스토어에서 전체 판매 1위에 오른 적도 있는 곳이고, 지난달 매출이 3억 5,000만 달러에 이르는 견실한 기업입니다.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이뤄낸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나는 데이빗 의견에 찬성하오. 이봐요, 마이클. 맨날 그렇게 자존심만 내세우니까 우리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오. 예전의 영광은 잊어야 할 때란 말이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여야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이제 과거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잊으시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아니오. 쯧쯧.”
“뭐요. 윌리엄. 지금 나보고 고리타분하다고 했소?”
“그럼 본인이 혁신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겁니까? 지금도 보시오. 초이에 대한 정보를 봤으면 그 어린 나이에 이뤄낸 업적에 놀라워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고 무시하기 바쁘잖소.”
항상 시니컬한 모습을 보이는 마이클 이사와 달리 윌리엄 이사는 건우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건우를 ‘초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만 해도 그가 가지고 있는 호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콩만 한 회사를 보고 콩만 한 회사라고 하는 게 잘못된 거란 말이오. 게다가 미국에 있는 회사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있는 회사잖소.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모를까. 아니면 삼성 정도의 큰 회사라면 우리와 동업한다는 게 이해가 가오. 하지만 그게 아니잖소.”
“결국 작은 나라에 있는 기업이라서 무시하는 것이었구려. 그런데 초이가 마이클 당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하버드대학 출신이라는 건 아시오? 생물학과 수석 졸업에 최우수 논문상까지 받았고, 하버드대 의대에 다니다가 집안 형편 때문에 자퇴했다고 하던데.”
“응? 그가 하버드대를 나왔소?”
학연이나 지연을 많이 따지지 않는다는 미국이라고 해도 명문대 출신이 가지는 자부심은 보통이 아니다.
특히 하버드대학 출신들이 가지는 유대감은 다른 어떤 곳보다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쯧쯧. 그냥 한국 출신이라는 말에 나머지는 제대로 관심도 가지지 않은 모양이오?”
“크흠. 그래서 그나마 나이에 비해 괜찮은 성과를 거뒀던 모양이오.”
“비서실에서 조사했다는 내용을 보니 하버드대학 출신 여부를 떠나 보통 천재가 아닌 것 같소. 어쩌면 페이스북 창시자인 마크 주커버그 이상 가는 젊은 실업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오.”
“그러고 보니 초이라는 친구, 주커버그나 우리 빌(빌 게이츠)과 굉장히 닮은 구석이 있구려.”
“그게 뭐요?”
“하버드대 중퇴자 출신 아니오. 시작부터 심상치 않구려.”
“저런저런.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말에 저렇게 태도가 돌변하다니. 하여간. 쯧쯧.”
마이클 이사는 심각할 정도의 하버드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흠흠.”
“두 분 이야기 다 나누셨습니까? 이제 회의를 진행해도 되겠죠?”
마이클과 윌리엄 이사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 끼어들었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나 단점이었다. 신중하고 유연성 있는 태도는 모든 이에게 호감을 주지만, 그런 모습 때문에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서 회의를 진행합시다.”
“감사합니다. 방금 두 분 이사님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앨런 초이의 잠재력은 진짜였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하버드에 재직하고 있는 스트리 교수께서 직접 앨런 초이가 만든 생물과목 커리큘럼을 감수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교과서 업체와 협상 중이며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채택될 것 같습니다.”
놀라운 성과에 회의실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