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35화 (135/256)

제135화

“하-암. 에구구, 졸리다.”

건우는 진학상담센터의 오픈식과 미국 출장일이 겹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오픈식이 무사히 마치는 것만 확인하고 동생들과 함께 재빨리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한 전용기에 올랐다.

몸이 피곤하니 난생처음 타보는 전용기에도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그의 동생들은 달랐다.

“우와. 이게 정말 말로만 듣던 전용기구나. 우리가 그동안 타봤던 여객기 내부랑은 차원이 달라. 진짜 좋다.”

“작은형. 여기 와봐. 침대도 따로 있어. 헉. 영화 감상실도 옆에 있네. 진짜 신기하다.”

동우의 호들갑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평소 점잖게 행동하기로 소문난 정우마저도 오늘은 여느 중학교 학생처럼 들떠 보였다.

“작은오빠. 막내오빠. 여긴 샤워실도 있어. 하늘을 날면서 샤워하는 기분은 어떨까?”

“어떻긴. 하늘을 날면서 똥을 누는 기분이랑 비슷하지 않겠어?”

“윽. 드러. 작은오빠는 이렇게 기분 좋은 날 그런 이야길 꺼내서 분위기를 꼭 망쳐야겠어? 작가가 꿈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표현이 저래.”

“분위기를 망치긴. 하늘을 날면서 샤워하는 기분이 궁금하다고 해서 알려준 거잖아.”

“아하. 그러셔. 그런데 어떡해? 오빠는 변비 때문에 하늘에서 똥 누는 기분도 못 느끼잖아.”

“무…뭐야?”

동생들이 비행기 구석구석을 구경하느라 소란을 피웠지만, 건우는 빙그레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여객기라면 모를까, 지금 타고 있는 비행기는 오직 건우만을 위해 하늘을 날고 있다. 그러니 동생들이 떠들든 말든 제지할 필요가 없었다.

‘녀석들. 그렇게 좋을까. 그래도 전용기가 좋긴 좋네.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소란을 피울 수 있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도 체결해야 하고, 각 과목 커리큘럼에 대한 교수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정과정을 거치려면 1주일로 될까 모르겠네. 아! 지금 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괜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몰라. 그냥 하지 말아버릴까? 미국 방문해서 계약 체결 안 하고 돌아오면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은 집단 멘붕에 빠지려나. 크크크’

건우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관계자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상상하며 서서히 잠이 들었다.

점점 더 경영이 악화되어가던 거대 공룡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구세주가 될 남자를 태운 비행기는 그렇게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이 비행기는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승무원이 한국어로 착륙을 알렸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여성은 한국계 혼혈로, 건우의 동생들이 함께 동행한다는 이야기에 특별히 고용한 사람이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경 쓸 만큼 마이크로소프트는 건우에게 극진했다.

“응? 오빠. 왜 벌써 착륙이야?”

“벌써 착륙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 도착한다고 하잖아. 이상해서.”

“이런이런. 우리 막둥이가 이런 건 전혀 모르는구나. 초딩이니 그럴 만도 하지. 우리 꼬맹이, 비행기는 뭐로 움직이는 줄 알아?”

“작은오빠는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당연히 기름이지.”

“그래 맞아. 비행기도 자동차처럼 기름으로 움직여. 그런데 기름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어? 큰일 나겠지? 미국은 서부에서 동부까지 거리가 엄청나게 멀거든. 잘못하면 비행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 추락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는 것처럼 시애틀 국제공항에 들러서 중간급유를 하는 거지.”

“동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동우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이 건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소리긴. 은우가 왜 지금 착륙하냐고 물어서 설명해준 거잖아.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동부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시애틀에 잠깐 들러 중간급유를 하는 거 아니겠어?”

“풉.”

예상하지 못한 동우의 대답에 한국계 승무원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 아이고, 머리야. 야! 최동우. 은우야 아직 초등학생이니 그렇다고 치고, 넌 고3이라는 녀석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수가 있어?”

“응? 중간급유가 아니었어? 그럼 왜 시애틀에 착륙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어디 있는데?”

“포털사이트에 물어보니까 워싱턴주 레드먼드에 있다고 하던데.”

“워싱턴주니까 워싱턴 D.C. 가 있는 동부에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어휴. 동우야. 워싱턴주는 동부가 아니라 서부에 있어. 시애틀도 워싱턴주에 있고. 그러니 중간급유가 아니라 목적지에 도착한 거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시애틀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레드먼드에 있거든.”

“으엑! 그…그런 거였어? 아니, 뭐… 모를 수도 있지. 우리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행정구역까지 굳이 알 필요가 있나. 하.하.하. 안 그래, 우리 동생들?”

“안 그래. 난 이제 결심했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형 말은 일단 의심하고 볼 거야.”

정우의 확인사살이었다.

***

시애틀 공항에 도착한 건우와 동생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준비한 헬기를 타고 바로 본사가 있는 레드먼드로 넘어갔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잡았지만 동부에 있는 하버드대학까지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넉넉하지만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위용에 입이 딱 벌어진 동생들은 가이드에게 맡기고, 건우는 경영진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어서 오세요. 최 대표님. 환영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사이티 카푸르 회장님. 회장님이 직접 맞이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영광입니다.”

리셉션룸에 도착한 건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자 깜짝 놀랐다.

그가 아무리 한국에서 유명세를 떨친다고 해도 아직은 조그마한 나라의 사설 학원 오너일 뿐.

그런데도 계약서 사인할 때나 나타날 줄 알았던 세계적인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환영인사까지 건네자 당황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전용기를 보내고, 동생들을 위해 한국어가 가능한 승무원을 고용하고, 빠듯한 미국 체류시간을 고려해 헬기까지 동원해준 것만 해도 넘치는 대접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 손수 건우를 맞아주니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왠지 자꾸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 여학생의 거짓말로 좌절과 절망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기구했던 예전 삶이 떠올랐다. 언론과 대중들은 자신을 죽일 놈으로 몰아붙였고 가족마저 등을 돌려 외로이 죽어가던 처량하고 불쌍했던 모습이 완전히 180도로 바뀌었다.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고, 동생들은 과거 삶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밝게 변했다.

그것만 해도 억울했던 과거의 삶이 충분히 치유되는 것 같았는데, 이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세계적인 회사가 건우와 계약하기 위해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정성스레 대접하고 있다.

격세지감의 이 감동은 달리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 먹먹하면서 짜릿했다.

“하하하. 그냥 편하게 ‘사이티’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 대표님이 오셨는데 당연히 제가 직접 나와 봐야죠. 과거에는 빌 게이츠 전 회장님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혁신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최 대표님 같은 젊은 피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압니까. 오늘이 세대교체의 첫걸음이 될지.”

마이크로소프트가 건우를 이렇게까지 환대한 이유는 사이티 카푸르 회장의 말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 고등학교 교과 수준이라고 해도 수십 년간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었던 커리큘럼이 박사학위조차 없는 22살의 젊은 청년의 손에 의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도 특정 과목이 아니라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총 다섯 과목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천재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성과였다.

의외인 것은 건우가 이토록 대단한 일을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룩한 업적에 대해 한국사회는 너무나도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학원가를 중심으로 건우의 교습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학원가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일 뿐 공교육 기관에서는 오히려 터부시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돕든 안 돕든 건우의 커리큘럼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만큼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까지 평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학원 강사에 의해 만들어진 교습법이라며 알게 모르게 평가절하하는 한국사회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한국에 대한 반발로 건우에게 더욱 극진히 대했다.

이럴수록 미국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호감은 더 높아질 거라는 걸 사이티 카푸르 회장은 꿰고 있었다.

“어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그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디 감히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분들과 댈 수 있겠습니까. 그분들의 발끝만 따라가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나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이 눈뜬장님은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은 가지고 있다고 장담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신 빌 게이츠 전 회장님을 곁에서 지켜봤으니까요.”

“혁신은 어떻게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으면 그게 혁신이죠. 최 대표님의 커리큘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쉽고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게 만드셨지 않습니까. 최 대표님의 손에 의해 교육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혁신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감당하지 못할 말씀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든 커리큘럼이라 괜히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하하. 솔직하시군요. 하지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들도 처음부터 거창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건 빌 게이츠 전 회장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대는 적성에 안 맞고, 대신 컴퓨터가 재미있으니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살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었습니다.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과거보다 미래라….”

건우는 사이티 카푸르 회장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 국민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교육자로서가 아니라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좋은 일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성실한 청년으로서다.

예전 삶에서도 지금도 학원 강사로서 존경이나 인정은 거의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아무리 혁신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도 한국에서 학원 강사는 그냥 학원 강사일 뿐 교육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세상을 바꾸는 천재 혁신가로 인정해주고 있다.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만큼은 신화적 존재인 빌 게이츠와 비교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천재를 만든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세상을 망하게 만들라고 그런 능력을 주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라고 주신 재능이 아닐까요? 자꾸 빌 게이츠 전 회장님을 예를 들어 죄송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분이야말로 최 대표님의 훌륭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1/100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네요.”

“아닙니다. 분명 닮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천재성도 그렇고 남을 위해 기부하는 모습도 그렇고요. 그분 또한 최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하니, 시간을 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빌 게이츠 전 회장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계약서에는 꼭 사인을 해야겠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만남을 거절할 것 같진 않습니다. 최 대표님의 행보가 워낙 인상적이라서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건우는 사이티 카푸르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부다 뭐다 하며 남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솔직히 그런 행위들은 전부 이미지 관리를 위한 마케팅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들어 기부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있긴 해도 기부 행위에 만족했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기 위해 행동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딱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라고 주신 재능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회귀를 경험한 그로서는 신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면 그의 신비한 경험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건우는 사이티 카푸르 회장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재능, 좋은 머리와 미래에 대한 지식을 더욱 좋은 일에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데이빗 송 한국지사장과 사전에 나누었던 내용 그대로 계약을 완료했다. 이름은 처음 이야기했던 그대로 MS Choice로 결정했다.

계약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건너간 건우는, 커리큘럼 검토를 부탁한 각 교과 담당 교수와 다방면에 걸쳐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들과의 대화는 그가 만든 커리큘럼을 한 단계 더 알차게 만들었다.

하버드 교수들의 명성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사격은 정말 막강했다.

처음에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건우가 체류하고 있는 단 1주일 사이에 그의 커리큘럼을 채택하기로 한 출판사가 나왔다.

아직은 생물 한 과목만 계약했지만, 다른 과목의 계약문제도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라서 이르면 올 9월부터 수정된 교과서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욱 많은 학생이 새로운 내용의 교과서로 공부할 수 있도록 미국 교육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Education)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준비 중이었다.

각 교과서 업체에 개별적으로 로비하는 것보다는 교육부에 압력을 넣어서 SAT(Scholastic Aptitude Test) 과목 시험에 건우의 새로운 교습법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짧은 체류기간이었지만 건우에게는 정말 알차고 좋은 시간이었고,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빌 게이츠와의 만남과 하버드 대학 교수들과의 토론은 그를 한층 더 성장시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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