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안녕하십니까. 최건우 대표님.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브래드 체이스 사장님께서 직접 저를 찾아오셨는데 당연히 시간을 내야죠.”
브래드 체이스 사장은 현 버거퀸 사장이다.
그는 건우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레드먼드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에 데니 이사만 대동하고 재빨리 시애틀로 날아왔다.
“제 연락이 뜬금없으셨죠?”
“네. 조금은요. 버거퀸은 세계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 회사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긴 합니다.”
사실 조금 뜬금없는 게 아니라 아주 황당할 지경이었다.
“당황하셨을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최 대표님이 개발하신 ASC버거 조리법을 우리 회사에 파셨으면 합니다.”
“네? ASC버거 조리법을요?”
건우는 가만히 브래드 체이스 사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버거퀸 사장이 맞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은 희박했다. 둘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이 다름 아닌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믿기지 않는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는 최 대표님과 스트리 교수님이 생물학 전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최 대표님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방송된 TV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설마 그걸 보고 바틀리 버거를 찾아가신 겁니까?”
“왜 아니겠습니까? 저야 맛있는 햄버거가 있다면 세상 어디라도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ASC버거를 먹는 순간 이거다 싶은 확신이 들더군요. 이거라면 맥도널드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
“아니, 그게…. 아무리 그래도 ASC버거로 맥도널드의 아성에 도전한다는 말씀은 좀….”
황당한 발언이 연이어 원투 펀치처럼 날아오자 건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닙니다. 통합니다. 수제 버거가 일반 버거보다 분명 맛있지만 프랜차이즈가 되기 어려운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가격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요? 조리 시간이 일반 버거에 비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일 테고요.”
“그렇습니다. 바틀리 버거에서 2년간 일하셨다더니 역시 잘 아시네요. 그런데 ASC버거는 다릅니다. 맛은 그대로이면서 고기를 갈아서 미리 패티를 만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군요. 그런데 세계 시장에서 그 맛이 통할까요? 고추장 불고기 맛이라는 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요.”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고추장에 어울리는 몇 가지 재료를 추가해 미국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패티를 만들긴 했지만 세계 시장은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최악의 경우 버틀리 버거 손님들의 취향이 독특할 수도 있다.
“제 자랑 같지만 제 혀는 정확합니다. 분명 통합니다.”
“그렇게 확신을 하신다면 저 말고 바틀리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보시죠. 바틀리 버거 메뉴이니 ASC버거 또한 바틀리 사장님에게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건우는 이 미팅이 조금 귀찮았다.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는 ASC버거에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초이스 에듀와 MS Choice에 신경 쓸 시간도 부족했다.
“저도 혹시나 해서 바틀리 사장님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조리법에 대한 권한은 분명 최 대표님이 가지고 있으며 바틀리 버거는 예전의 인연으로 그 조리법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국으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최 대표님이 이렇게 미국에 오신 겁니다.”
귀찮은 생각에 바틀리 사장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버리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됐다.
억지로 넘기고 싶어도 바틀리 사장 성격이라면 절대 받아주지 않을 게 뻔했다.
“사장님도 참. 분명히 괜찮다고 했는데.”
“최 대표님. 귀찮으시더라도 잠시만 더 제 설명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귀찮다니요. 아닙니다.”
건우는 귀찮아하는 기색을 겉으로 드러냈나 싶어서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브래드 체이스 사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혹시 우리 버거퀸에서 판매하는 와퍼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와퍼를 좋아하거든요.(Love Whopper.)”
“다행이네요.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세계에서 1년에 와퍼가 총 몇 개나 팔리는지 아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약 20억 개 정도가 팔립니다.”
“그런데 와퍼도 종류가 여러 개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정말 와퍼를 좋아하는 게 사실인가 보군요. 맞습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일반 와퍼와 치즈 와퍼는 각각 연간 5억 개 정도 팔립니다. 저희는 ASC버거 또한 그 비슷한 수치로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버거가 5억 개나 팔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브래드 체이스 사장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믿기지 않는 수치네요.”
“우리 예측이 빗나가서 망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고요. 물론 초반에는 대대적인 마케팅을 할 생각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ASC버거를 판매하겠다는 게 정말 진심이신가 보군요.”
“농담을 하러 멀리 시애틀까지 날아왔겠습니까?”
시애틀과 버거퀸 본사가 있는 마이애미는 미국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완전 극과 극 지점에 있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서요.”
“이해합니다. 저라도 갑자기 이런 제안을 들었다면 황당했을 겁니다. 그럼 아까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ASC버거 개당 가격은 약 5달러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리법에 대한 로열티는 5달러의 0.5%인 0.25달러 선에서 결정될 겁니다.”
5억 개에 0.25달러면 1억 2,5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1,300억 원이다.
건우는 그제야 황당함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예상만큼만 팔린다면 제가 받는 로열티도 1년에 1억 달러가 넘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드린 제안에 관심이 가십니까?”
“이것 참. 고작 햄버거 조리법 하나를 넘기는 대가치고는 너무 과하네요.”
마이크로소프트는 계약금으로 10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내놓더니, 이젠 버거퀸이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1년에 1억 달러를 이상을 주겠다고 한다.
연이어지는 갑작스러운 행운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거기에는 최 대표님을 이용할 수 있는 마케팅 비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최 대표님이 지금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 유명세도 우리 버거퀸에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ASC버거의 정식 명칭도 ‘초이 와퍼’로 정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와퍼에 제 이름이 붙는다고요? 하하하.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네요. 어쨌든 조리법만 넘기면 그런 거액을 받을 수 있다는데 거절하는 게 더 이상하겠죠?”
“그럼 제안을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그렇긴 한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건우가 무안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네. 말씀하십시오.”
“앞으로 제 몫의 로열티는 제가 지정하는 곳에 전액 기부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저…전액이요? 1억 달러 전부를요?”
브래드 체이스 사장은 믿기지 않는지 재차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1억 달러가 물론 거액이긴 하지만 건우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제 노력이 아니라 요행으로 얻은 불로소득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 행운이라면 제가 거머쥐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하! 역시 보통 분이 아니셨습니다. 제가 보는 눈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확인하겠습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는 거죠?”
“네.”
건우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최 대표님이 기부하는 만큼 같은 액수를 버거퀸에서도 지원하겠습니다. 물론 최 대표님 이름으로 같이 기부하겠습니다.”
***
모든 일정을 마친 건우는 조용히 한국으로 귀국했다.
전용기까지 보낸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에 언론들은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언론에 밝힐만한 대단한 내용은 없었다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자신의 교습법이 미국 시장에 진출을 확정한 소식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자를 통해 MS Choice라는 업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한동안 인터넷이 들썩이겠지만, 굳이 그 내용을 밝히지는 않기로 했다.
새로운 교과서가 확실하게 출시되는 9월이 되면 어차피 알려질 일이었다.
건우는 언론에 자신의 업적(?)을 알리기보다는, 미국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연관이 없지만 경제면에 기사가 하나 뜨긴 했다.
[최건우 대표가 만든 ASC버거, 버거퀸과 손을 잡다. 초이 와퍼 올해 안에 출시 예정!]
***
건우가 승승장구하자 가장 곤란한 곳 중 하나가 바로 교육부다.
과거 기가 싱크빅의 시가총액이 2조 원을 돌파했을 때가 있었다.
코스닥 열풍으로 인한 거품도 큰 영향이 있었지만, 그 당시 학원 사업이 엄청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다.
하지만 사교육 돌풍은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공교육은 점점 더 소외된다. 오직 수능시험만 분석하고 연구하면 되는 학원 강사를 학생들의 학교생활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교사가 이기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교육이 과열되면 누군가는 수백만 원이 넘는 비싼 학원에 다니지만 누군가는 돈이 없어 그럴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점이다.
교육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다.
교육이 빈부에 의해 차별을 받게 되면 당연히 불만이 생기고 나라는 흔들린다. 그래서 정부는 예전부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이 교육의 빈부격차를 완벽하게 해소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백만 원씩 하는 강의료를 받는 고액 학원들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시가총액이 2조 원을 넘던 기가 싱크빅도 이러한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 정책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었다.
정부는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법률을 2014년 02월 20일 국회의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2014년 09월 12일 시행)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초·중·고교 및 대학의 정규교육과정과 방과 후 학교 과정에서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학원·교습소 등 사교육 기관이 선행교육 광고 등의 선전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히 초·중·고교와 대학의 입학 전형은 각 급 학교 입학 단계 이전 교육 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명시했으며, 국립학교 및 대학의 선행학습 유발 행위 여부에 대한 심사·의결을 위해 교육부장관 소속으로 ‘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게 했다.
이 밖에 각급 학교장에게는 선행 교육을 지도감독하고 선행학습 예방교육도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했으며 이 같은 규정을 어기는 학교와 교사는 인사 징계, 재정 지원 중단 또는 삭감, 학생 정원과 학과 감축 및 폐지, 학생 모집 정지 등의 중징계를 받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EBS 수능시험교재 및 강의에서 70% 이상을 연계돼 출제하게 하면서 어떻게든 서민들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만든 존재가 바로 건우였다.
그의 등장은 한동안 잠잠했던 사교육 시장을 다시 한 번 요동치게 만들었다.
특히 놀라울 정도의 수능시험 족집게 실력은 교육부와 출제위원들의 자존심을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어버렸다.
엄청난 액수의 기부를 하고 가난한 학생들을 물심양면 돕고 있고, 그로 인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도 사교육은 사교육.
정부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였다.
더군다나 건우를 견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수능시험난이도를 높였다가 오히려 개망신만 당한 전력도 있었다.
수능시험 난이도 조절의 실패는 단순히 개망신으로 끝나지 않았다.
역사상 난이도가 가장 높은 수능시험 중 하나였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어려웠던 시험은 교육부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이런 현상은 더욱더 사교육을 요동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 EBS의 시청률 및 교재 판매의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EBS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원.”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게 전부 천둥벌거숭이 같은 최건우 때문 아닙니까.”
“맞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라이브 스트리밍이다 뭐다 하면서 인터넷 방송까지 하더군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자기가 무슨 방송국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미국에서도 했다는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했는데도 딜레이 하나 없었다며 온라인에서 극찬이 대단합니다. 역시 최건우 대표가 하는 일은 뭐든 확실하고 믿을 수 있다나?”
“그래요? 그런 말이 오갑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인터넷보다는 우리 EBS 방송이 훨씬 더 안정적일 텐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 평가가 다 있습니까.”
“그냥 그렇게 평가절하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심각합니다. 최건우 그 작자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강의하는 시간대에는 우리 EBS 방송 시청률이 바닥을 깁니다. 아주 바닥을 박박 기고 있어요. 어디 그뿐입니까? 평소 시청률도 예년에 비하면 반의 반 수준도 안 됩니다. 보는 사람이 줄어드니 교재 판매도 당연히 줄어들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건우라는 천재 강사의 출현으로 EBS의 아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시작한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는 EBS의 필요성마저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에 자존심이 상한 교육부 관계자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임원들은 어떻게든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회의를 반복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