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38화 (138/256)

제138화

“그게 뭔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제안한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삼인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려면 결국에는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솔직히 기가 싱크빅은 와룡그룹의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추월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초이스 에듀입니다. 그리고 초이스 에듀를 끌어내려야 크레이듀가 비로소 학원가를 제패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건 당연한 소리 아닌가. S그룹을 끌어내리면 우리 와룡그룹이 1위가 될 수 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어. 방안이 문제 아닌가? 방안을 이야기해보게.”

와룡그룹 마케팅 실장으로 있을 때도 항상 맹수 같은 모습을 보이는 카리스마 넘치던 사람이 나성천 대표였다.

게다가 질질 늘어지는 설명보다 명확하고 깔끔한 설명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생각해둔 방안을 말하기 전 약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려고 했던 박유하 이사는 나성천 대표의 차가운 말에 놀라 곧바로 설명을 이었다.

“예전에 기가 싱크빅이 최고 전성기일 때는 시가총액이 2조 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엄청난 성과였지만, 전성기가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정부의 강력한 규제 대상이 되어 많은 손해를 입었죠. 냉정하게 분석해본 결과 초이스 에듀의 상승세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설마 포기하겠다는 말은 아니지?”

“당연히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정부가 개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미 기가 싱크빅이라는 전례가 있으니까요.”

“정부의 개입? 어떻게 말인가?”

“최건우나 초이스 에듀가 잘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수능 족집게 실력이었습니다. 재작년 말도 안 되는 수능 적중률로 명성을 높였고, 그건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작년에 비하면 적중률은 떨어졌지만 난이도 높은 문제의 상당수를 예측하면서 명성은 오히려 더욱 높아졌습니다.”

“나도 그건 들었어. 교육부 그 멍청이들이 너무 최건우에게만 신경을 써서 수능 난이도 조절까지 실패했다고 하더군. 처음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실력이라는 인식 덕분에 그때부터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했다지?”

그것 때문에 교육부와 건우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다. 여러 기부 활동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을 뿐 계속해서 압박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건 학원 계통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칼로 흥했으면 칼로 망하게 만들어야죠. 수능 적중률로 높아진 인기라면, 수능 적중률에 대한 학부모나 학생들의 신뢰를 흔들리게 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철저한 보안으로 수능 적중률을 낮추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네. 믿기지 않지만 진짜 실력일 수도 있어.”

“진짜 실력이라도 적중률을 낮추지 못하면 초이스 에듀의 독주는 절대 막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수능 적중률이 문제라면 다른 누군가의 수능 적중률을 높여서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자. 이렇게 말입니다.”

“응? 초이스 에듀를 견제할 만큼 수능 적중률을 높일 수 있는 곳이 있단 말인가? 그럼 우리가 스카우트하면 되지 않는가?”

“그건 좀 힘듭니다. 제가 말한 곳이 EBS입니다.”

“아, 그렇군! EBS가 있었어. EBS라면 지금 현실에서는 초이스 에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래.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서 초이스 에듀를 견제하게 만든다, 그 이야기군.”

나성천 대표는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정부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최건우가 아무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도,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초이스 에듀가 등장하면서 국민들의 사교육비 지출이 1.5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최건우 때문에 사교육시장의 규모가 커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EBS의 시청률이나 교재 매출은 수직 하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EBS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방안이 뭔가?”

“사실 그동안 수능의 EBS 연계율은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80% 수준이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연계율이 낮아도 70% 이상은 지켜졌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EBS 교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학습지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수능 시험 난이도 실패가 EBS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직접 고개 숙여 사과까지 했는데 오죽할까.”

“원인을 알고 있으니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올 6월 중순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대 수학능력 모의평가를 시행합니다. 거기서 EBS의 연계율을 확실하게 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연계율의 퍼센티지만 높이는 게 아니라 유사한 문제를 많이 수록하도록 해서 질도 같이 높여야 합니다.”

정부에 압력을 넣어 모의평가 출제 방향을 바꾼다는 건 세계교육 시절이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다.

“모의평가 대부분이 EBS의 교재에서 나오도록 만든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올해 수능은 이번 모의평가처럼 EBS 교재에 대한 연계율을 높이겠다고 발표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최건우라고 타격을 입겠지. 하지만 그랬다간 학원 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게 돼. 위축된 시장에서 1등을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어.”

3등이 100억을 벌던 시장이 위축되어 1등이 50억을 버는 시장으로 줄어들게 만들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

그러나 박유하 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어느 정도 타격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가 싱크빅이 그랬던 것처럼 초이스 에듀를 타깃으로 한 다양한 규제방안을 만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비난 여론이 있다고 해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면 결국은 다들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다음은?”

“최건우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높은 수능 적중률에 있습니다. 그런데 EBS 연계율이 높아지면서 수능 적중률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기에 온갖 규제로 팔다리를 묶어 꼼짝달싹 못 하게 해버리면 초이스 에듀는 순식간에 추락하게 될 겁니다.”

“고작 그 정도로 명성이 떨어질까?”

“초이스 에듀는 약점이 많습니다. 첫째 최건우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최건우만 없으면 유명무실해지죠. 둘째 역사가 너무 짧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원이라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버틸 수 있겠지만 1년도 안 된 초이스 에듀는 외부의 힘을 견딜 힘이 부족합니다.”

“그럴싸하군. 셋째도 있나?”

“셋째. 역사가 짧으면 든든한 뒷배라도 있어야 하는데, 저 잘난 맛에 사는 초이스 에듀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사방에 온통 적이죠. 와룡그룹, 세계그룹, 설강그룹은 물론이고 교육부하고도 사이가 안 좋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기가 싱크빅은 역사로, 크레이듀는 와룡그룹이라는 강력한 방패가 있어서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이스 에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쓰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시간이 걸리는 인내심이 필요한 방안이다. 하지만 ‘최건우’라는 이름의 태풍을 막으려면 그 정도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박유하 이사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정부의 공세가 시작되면 우리는 초이스 에듀가 당하는 동안 내실을 다진다는 건가?”

“네. 그렇게 되면 크레이듀, 기가 싱크빅, 초이스 에듀 모두 출발선이 같아집니다. 그리고 정부의 규제가 약해질 때쯤 와룡그룹의 지원을 받아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면 분명 1위 자리에 오르게 될 겁니다.”

“당장은 어렵고 시간이 필요하다 이 말이군.”

“지금 당장 최건우를 끌어내리길 원하신다면 저로서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혹시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성천 대표의 표정의 의외로 담담했다.

“좋아. 비책 어쩌고 하면서 한 번에 최건우를 끌어내릴 수 있었다고 했으면 박 이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고 했어. 이 바닥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지금 최건우는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지.”

“쉽게 봤다가 큰 낭패를 당했던 접니다.”

“주제 파악을 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드는군. 좋아. 계획을 세워놨으니 이제 내가 움직여야겠지. 그렇지 않아도 이번 주말에 교육부 장관과 라운딩 약속이 있으니 그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수고했네, 박 이사.”

***

“그래, 어떻게 되었습니까?”

“괜찮은 단체를 섭외했습니다.”

“그래요? 어떤 단체입니까?”

박유하 이사는 나성천 대표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지 않았다.

나성천 대표가 교육부 관계자들을 만나 압박을 넣는 사이 다양한 경로로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구국 학부모연합입니다.”

“오호. 구국 학부모연합이요?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는 학부모 모임이라…. 이름부터 뭔가 심상치 않군요. 맹목적인 냄새도 나고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회원들 대부분이 굉장히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조금 과격해서 광신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문제지만, 이사님께서 이런 성격의 단체를 원하셔서 신경 써서 골랐습니다. 다행히 회원들은 구국 학부모연합 회장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회장인 왕기백은 돈을 무척 좋아하는 인간입니다.”

구국 학부모연합.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전문 시위 단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신념은 다름 아니라 돈이다.

“그거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돈만 주면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군요.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어떤 일을 지시할 생각이십니까?”

“시위 전문 단체 아닙니까? 당연히 시위가 목적입니다. 장소는 국회의사당과 광화문을 번갈아가며 이용하게 하십시오.”

“어떤 종류의 시위를 하도록 하면 됩니까?”

“성 실장님도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되었으니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잘 아실 겁니다.”

“학원사업이니 당연히 대한민국 학원가를 석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금은 막연한 말이지만, 맞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대한민국 학원가를 장악해야겠죠. 아이들이 공부, 수능, 입시라고 하면 제일 먼저 크레이듀가 떠오르도록 말이죠.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강하게 만들거나, 상대를 약하게 만들거나.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방법이 되겠죠.”

크레이듀의 정보팀을 맡은 성윤기 실장은 아직 학원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걸 알고 있는 박유하 이사도 정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단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현시점 학원가 최강자가 초이스 에듀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크레이듀를 강하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초이스 에듀를 약하게 만들어야죠.”

“그럼 구국 학부모연합을 초이스 에듀를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려는 겁니까?”

“초이스 에듀를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는 건 맞지만, 절대 초이스 에듀를 타깃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세계교육을 운영할 때 최건우를 직접 타깃으로 삼고 공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였죠. 최건우는 정말 냉정한 인간입니다. 대중들에게 알려진 그런 인간적인 모습만 생각하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자니까 누구보다 압니다.”

건우의 무서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박유하 이사다. 예전과 달리 매사 조심스러워졌다.

“그럼 구국 학부모연합은 어떻게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중들에게 다짜고짜 ‘초이스 에듀 나쁜 학원’, ‘최건우 나쁜 놈’이라고 해봤자 반발심만 가집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시위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최근 들어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최건우입니다. 사교육비 부담 증가를 비판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통해 천천히 여론을 형성해서,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초이스 에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생기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교육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크레이듀 또한 비난의 화살을 피하긴 힘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여론을 잘 조성 해야죠. 마라톤이나 중장거리 달리기를 보면 처음부터 1위로 달리던 선수가 계속 1등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전거 레이스도 마찬가지죠. 선두가 날아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동안 진짜 실력자들은 그의 뒤를 바짝 따르며 체력을 비축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사용할 전략이기도 합니다.”

“초이스 에듀 뒤에 숨으실 생각이군요.”

“네. 초이스 에듀는 무서운 기세로 1위에 올랐지만, 만들어진 지 이제 겨우 2년째인 초보 학원입니다. 1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1위를 수성하는 게 훨씬 힘들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겠죠. 그동안은 기가 싱크빅이라는 거대한 우산이 선두에서 서서 비바람을 막아줬다면, 지금부터 그 역할은 초이스 에듀의 몫이 되었습니다. 1위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절실히 깨닫게 해줄 생각입니다.”

왕관의 무게.

이걸 이겨낸다면 초이스 에듀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테지만, 이겨내지 못한다면 건우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에게 갈가리 찢겨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부모연합이 필요한 것이었군요.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사교육비 때문에 못 살겠다고 시위를 해야 정부도 부담을 가지게 될 테니 말입니다.”

“진정성이 필요하니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진정성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시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성 실장님은 왕기백 구국 학부모연합 회장이 잘 알아듣도록 설명을 하세요. 시위 도중에 절대로 ‘최건우’나 ‘초이스 에듀’라는 이름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사교육 득세로 인해 무너져가는 공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구국 충정의 의식 있는 시위대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돈은 밝히지만 머리는 좋은 사람이니 일은 제대로 할 겁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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