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42화 (142/256)

제142화

“솔직히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그리 부담스러운 돈도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생각한 도시를 완성하려면 1조 원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에요. 2014년 H그룹 기억 안 나세요? 아무리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라고 해도 고작 8만 제곱미터밖에 안 되는 땅을 사는데 1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어요. 그런 회사보다 몇십 배는 더 큰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인데, 3조 원이 부담스러울까 봐요? 그리고 중요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게 투자했잖아요.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건우는 조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호언장담했다.

“암요. 그렇겠죠. 누가 하는 일인데 실패할 리가 없겠죠. 그렇게 확실한 일이니 저도 이참에 투자 좀 할까요? 대표님 덕분에 저도 돈 좀 벌었잖아요. 호호호.”

“크흠. 원래 아무나 투자받고 그럴 생각은 없지만, 손 팀장님이라면 특별히 받아 줄게요. 혹시 알아요? 엄청난 대박이 터질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알리바바에 200억 원을 투자했는데, 14년 만에 거의 3,000배인 59조 원이 되어 돌아왔다고 하잖아요.”

“하여간 못 말려. 우리 대표님 어떡하냐. 미국 다녀오시더니 없던 왕자병도 생기셨어. 알았어요. 부지는 알아볼게요. 작은 도시라면 적어도 여의도 정도 면적은 되어야 하는데. 여의도가 제가 알기로 대략 250만 평이거든요. 평당 100만 원만 잡아도 2조 5,000억 원. 어마어마한 돈이긴 한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약속처럼 투자만 한다면 부담스럽진 않겠네요. 문제는 그만한 부지를 한 번에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죠. 땅을 구한다고 하면 금방 소문이 나서 작전 세력이 끼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생각해봤는데, 장만복 회장님이라면 해결해주실 것 같은데. 어떨까요? 그동안 제가 벌어다 드린 돈만 해도 투자한 돈의 몇 배는 될 테니, 새로운 투자 건수가 있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주시지 않을까요?”

“장만복 회장님이라면 가능할 거예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회장님이 한 번 정을 주면 끝까지 가시는 분이라서요. 한강 에듀케이션에 잘못 투자했다가 크게 망신당한 걸, 대표님 덕분에 완전히 회복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럼 일단 부지 문제는 장만복 회장님과 의논하는 걸로 하고. 그다음은 인재를 뽑아야 해요. 이건 정말 중요해요. 초이스 이노베이션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사람이니까요. 뜬구름 잡기 식 발명가는 필요 없습니다. 유아독존식의 독선적인 사람도 곤란해요. 우선은 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응용력과 이해력 그리고 기술력이 좋은 인재가 필요해요.”

“그것부터가 조금 뜬구름 잡기 같은 설명이지만, 한번 해볼게요.”

초이스 이노베이션의 핵심은 건우가 가지고 있는 미래 지식들이다.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무선 충전기가 있다. 지금도 무선 충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기 낭비가 심하고 범위가 매우 좁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2023년 한 발명가에 의해 기존의 무선 충전기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무선 충전 기술이 개발된다.

기존의 방식이 전자기를 주로 이용했다면, 새로운 기술은 주파수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었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특정 조건의 고주파 영역에서는 전기가 전송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이 일으킨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주파수를 이용해 전기를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은, 전파를 수신하는 라디오처럼 언제 어디서나 전기를 충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나중에 가서는 전봇대나 송전탑도 필요 없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가정용 전자기기 충전 정도는 지금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선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혁명과도 같은 기술.

건우가 가지고 있는 미래지식들은 바로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핵심기술은 몰라도 과학 잡지를 통해 최소한의 원리는 이해하고 있었고, 그는 그런 지식을 초이스 이노베이션이라는 발명회사를 통해 완성할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명성에 흠집이라도 내 보려고 안달복달하는 사이 건우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장만복 회장은 대한민국 지하경제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큰손으로 꼽힌다.

사채놀이를 통해 큰돈을 벌어들였던 일반적인 큰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지만, 부동산 투기나 골동품 투자 등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을 동원한 건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1947년 5월 21일 일본 남단 규슈의 사가현 도수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무허가 판자촌지역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장일춘은 1900년대 초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광산노동자로 일했고, 식민지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서 생활하였다.

아버지 장천수는 봇짐행상 등으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파칭코와 부동산 사업으로 서서히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 회장은 어린 시절 ‘조센진’이라 불리며 차별과 멸시를 받았으나 아버지의 격려와 지원을 받으며 후쿠오카 지역 명문고등학교에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에 영어연수를 다녀온 후 자퇴서를 내고 196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과정을 마치고 1965년 홀리네임즈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어린 시절 한국인이라는 차별을 견디다 못해 창씨개명 했던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장만복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1967년 명문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 분교의 경제학부로 편입한 그는 그때부터 탁월한 상재를 발휘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도전했다.

1970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밀리언 럭키 월드를 설립하여 적지 않은 돈을 벌었으나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도 돈을 버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동산 사업의 활황과 인재의 잠재력을 미리 알아보고 투자하는 탁월한 안목 덕분에 사업부문에서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와중 부모님이 일본인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차별을 받으며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장 유력했던 용의자는 별다른 조사도 받지 않고 유유히 풀려난다.

졸지에 부모님을 잃고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차별까지 겪자 일본이라는 나라에 진저리가 난 장만복 회장은,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1975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국 생활이 그의 생각처럼 행복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어가 어색했고, 그런 이유로 같은 한국인에게 ‘쪽바리’라며 조롱당하기 일쑤였다.

일본에서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들은, 그의 돈을 강탈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국에서의 생활마저 힘들다고 도망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장만복 회장은 그때부터 굉장히 독해졌으며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일본통인 관계로 일본의 여러 제품을 몰래 들여와 팔면서 돈을 모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한참 경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돈은 누구 못지않게 많이 벌었으나 마음속에는 항상 공허함이 가득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성분 때문에 두 곳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할 수 없는 현실과, 이유야 어찌 되었든 떳떳하게 돈을 번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자괴감으로 변해 그를 괴롭혔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최건우’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남자를 알게 되며 그를 괴롭히던 자괴감은 많이 희석되었고 처음으로 돈 벌기 잘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오기에 가깝게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장만복 회장의 예상을 거뜬히 뛰어넘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금전적 이득도 이득이지만 건우의 후견인이라고 불리며 처음으로 사회적 명성도 얻고 있었다.

사실 돈은 이미 충분히 넘쳐나는 그에게 금전적 이득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구겨졌던 자존심을 회복한 것은 물론 만족스러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뿌듯했던 것은 건우의 후원자 또는 후견인이라며 사람들이 존경 어린 시선으로 봐준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은 지하경제에서만 노는 돈 많은 늙은이 취급이었다면, 이제는 여러 경제단체에서 앞다투어 초대장을 보내며 귀빈 대접을 할 정도로 상황이 급격히 변했다.

수십 년간 그렇게 얻으려고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던 명성이, 그리 큰돈 들이지 않은 투자 하나로 너무나도 쉽게 이뤄진 것이다.

돈놀이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학원사업에 투자한 그를 비웃던 다른 큰손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10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며칠 전 손다정으로부터 새로운 투자 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장만복 회장은 건우의 엄청난 포부에 놀랐다. 그리고 이번 일에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

“대체 무슨 일이길래 여주까지 오라고 합니까?”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별말씀 없이 그냥 와보면 안다고만 하셨어요. 며칠 전 대표님이 지시하신 대로 교육타운 부지 확보를 위해 연락을 드렸는데 아마도 그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빈말 하실 분은 아니니 가보면 알게 되겠죠.”

장만복 회장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건우와 손다정은 일정을 모두 미루고 경기도 여주로 향했다.

“경기도 여주란 말이죠. 만약 교육타운 부지 건이라면 위치적으로는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경치도 좋고, 남한강을 끼고 있어서 위치도 나쁘지 않고.”

“그런데 여주면 너무 외지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서울에서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곳. 멋진 자연 풍광도 많고 겨울이면 강원도가 가까워 스키를 비롯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아직 가봐야 알겠지만 왠지 기대되는군요.”

“그래도 좀 더 가까우면 좋지 않을까요?”

“솔직히 땅값도 생각해야죠. 서울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땅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잖아요. 저는 H그룹처럼 고작 8만 평을 구입하는데, 10조 원 넘는 돈을 쓰고 싶진 않아요. 물론 그럴 돈도 없지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이 탄 자동차는 장만복 회장이 기다리고 있는 ‘새터’라는 곳에 도착했다.

새터는 남한강과 연양천 사이에 있는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어서 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그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장만복 회장이 직접 건우와 손다정을 반겨주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회장님께서 직접 호출을 하셨는데 당연히 만사를 제쳐놓고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최 대표 말하는 걸 보니 사업가가 다 되었어. 상대방 기분 좋아지게 하는 말도 할 줄 알고.”

“빈말이 아닙니다. 지난번 초이스 에듀 본점 부지도 회장님께서 직접 호출하셨지 않습니까. 혹시나 하며 갔는데 제가 머릿속에서 그리던 딱 그곳이었습니다. 솔직히 오늘도 그런 기대를 하고 왔습니다.”

“저런. 그렇다면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되겠군.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용건만 간단하게 말하겠네. 우선 이 지역 위성사진을 보게나.”

장만복 회장이 눈짓을 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태블릿을 열어 해당 지역 위성사진을 펼쳤다.

“사진상으론 농지와 낮은 언덕으로 이뤄진 곳이네요.”

“그래. 저기 멀리 남한강교 보이지?”

“네. 회장님.”

“저기서 아래로 쭉 내려가다가 지도에서 보이는 작은 언덕까지가 약 3㎢ 정도 되는 면적이야. 어떤가?”

“엄청난 너비군요. 행정구역상 여의도 총면적이 8.4㎢지만, 그건 한강까지 포함한 너비고 제방 안쪽만 따지면 2.9㎢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인데 설마 이 넓은 땅을 회장님이 다 가지고 계신 겁니까?”

“몇 년 전에 여길 개발하려던 회사가 망하면서 땅값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진 적이 있었어. 하필 경기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평당 50만 원이 넘던 땅값이 순식간에 20만 원 이하로 떨어졌거든. 이건 사두면 무조건 이득이다 싶어 좀 무리해서 땅을 사들였었지.”

“3㎢면 약 90만 평이니까 평당 20만 원으로 잡으면 1,800억이군요. 거액이 분명하긴 한데 이런 위치의 땅 90만 평이 1,800억이라고 하니 굉장히 저렴해 보입니다.”

아직 몇 가지 더 알아봐야겠지만 남한강 주변 땅값은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강이 있는 건 교육 타운을 건설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이런 조건의 땅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 이런 규모의 땅을 구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건우가 이 지역 땅에 관심 있다는 소문만 나도 투기꾼들이 몰려 땅값일 몇십 배씩 올려놓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당 80만 원으로 올랐어.”

“20만 원 이하로 떨어졌던 걸 생각하면 많이 올랐네요. 그런데 이 정도 위치라면 평당 80만 원도 그렇게 비싸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내가 손 팀장으로부터 교육 타운 계획을 처음 듣는 순간, 이 땅을 곧바로 떠올렸거든. 사실 굳이 서울 인근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서울 외곽이라고 해도 어디 산골짜기가 아닌 이상 90만 평이면 4~5조는 쥐고 있어야 해. 사실 그 돈으로라도 살 수 있으면 다행이려나.”

“그리고 땅 매입 소문은 금방 퍼져. 누가 땅을 산다고 소문이 나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너도나도 끼어들지. 그러다 보면 땅 사다가 볼일 다 보는 경우가 생겨. 원하는 땅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수백억 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포기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고.”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굳이 서울 인근 지역에 집착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이 지역에 대해 대충 알아봤는데, 주변 땅이 전부 농지라 개발이 힘들 것 같던데요.”

“그건 내게 방법이 있어. 듣기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동업을 하기로 했다면서? 그렇다면 마이크로소프트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야. 외국의 거대 기업이 국내에 투자한다는 사실만 있어도 여주시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물론 그전에 필요한 땅은 미리 사두는 게 좋겠지.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주변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테니.”

“그럼 얼른 본론에 들어가야겠네요. 여길 보여주신 건 이 땅을 제게 팔려는 거 맞으시죠?”

건우는 이 지역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 넓은 땅을 시간 낭비도 없이 한 번에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평당 20만 원도 안 되는 돈에 샀다고 그 가격에 팔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솔직한 마음으로는 지금 시세인 80만 원에만 팔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네.”

“그럼 얼마에 파실 건지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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