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건우가 눈치를 채고 사람들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저도 막막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했어야지. 일을 어설프게 하니까 일이 이지경이 된 거 아니야.”
“입구를 지키고 있던 불곰파 행동대 애들 세 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애초에 깡패 새끼들을 동원하긴 왜 동원해. 자신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자신 없다고 이야기했으면 됐을 것을. 그랬으면 우리가 도와줬을 거 아니야.”
“저도 그년들이 그렇게 재빠르게 행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X년들 같으니.”
거액의 돈은 받았지만 옐로우 레이디에 대한 감정만큼은 좋지 않은 위상백이 분노를 드러냈다.
“이봐. 위 사장. 난 당신이 옐로우 레이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중요한 건 당신이 내가 시킨 일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거야. 위 사장이 내 입장이라고 생각해봐. 돈까지 줘가며 일을 시켰는데 막상 시킨 일은 엉망으로 만들었어. 그런데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
복면 남자가 위상백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툭툭 쳤지만 반항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답해봐. 응? 뭐가 더 웃길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새끼가 반성은커녕 룸살롱에 와서 아가씨를 두 명이나 끼고 고작 가슴 주물럭거리는 대가로 내가 준 돈을 쓰고 있는 거야.”
“그 돈이 아닙니다. 제 회사를 팔면서 받은 돈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X발! 그게 내가 준 돈인지 회사를 팔아서 생긴 돈인지 어떻게 알아? 돈에 이름이라도 적어 놨어? 이건 호구 같은 복면 남자가 준 거, 저건 늪 매니지먼트인지 뭔지 하는 거지 같은 회사를 팔아서 받은 거 이렇게 적어 놨냐고!”
“그건 아니지만 전에 주신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잘 가지고 있습니다.”
“시킨 일을 제대로 못 했으면 만회할 생각을 하던가 아니면 받아간 돈부터 토해낼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니야? 어떻게 룸살롱부터 갈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네놈 뇌 구조가 궁금하다.”
복면 남자의 말은 진심이었다.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성폭행, 성접대, 탈세 등으로 감방에 처넣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랑 헤벌레 하며 술 마실 생각부터 한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속상한 마음에 기분을 풀려고 그런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받은 10억은 내일 당장 돌려드리겠습니다.”
“10억? 누가 10억이래?”
“네? 그때 주신 돈은 분명 10억 원이 맞는데요?”
“돈 10억을 가져가서 일주일 넘게 가지고 있었으면 돌려줄 때 이자도 함께 주는 게 상식 아닌가?”
“이자요? 아! 그, 그렇군요.”
이자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줄 수 없다고 뻗댈 순 없었다. 지금 칼자루를 쥔 사람은 복면 남자였다.
‘대체 이자로 얼마나 원하는 걸까?’
위상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다행히도 지금 그에게는 이자를 주고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액의 돈이 있었다.
“왜? 이자 주기 싫어?”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얼마나 드려야 하나 해서요. 이자로 1…억을 드리면 될까요?”
고민 끝에 과감하게 1억을 질렀다.
돈이 아까웠지만 흥정을 하느니 깔끔하게 11억을 주고 관계를 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오호. 위 사장. 회사 팔아 50억이 생기더니 1억은 돈도 아닌가 봐? 이봐.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돈을 받아 뭐하게? 그딴 돈은 없어도 그만이야.”
돈을 더 달라는 건가 싶었지만 뉘앙스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제게 따로 원하는 게 있으신가요? 최건우를 스칼라 성폭행범으로 몰아가는 건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젠 걔들 사장도 아니라서….”
“내가 방법까지 알려줘야 하나? 그건 위 사장이 찾아내. 성폭행이 아니라도 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방법이면 뭐든지 돼. 그럼 원금만 받도록 하지. 물론 감방에 안 가는 건 보너스야. 싫으면 지금 당장 경찰에 증거 자료를 보내줄 수도 있어. 그걸 원해?”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래? 그렇다면 한 번 더 믿어보지. 이번에도 일을 엉터리로 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복면 남자가 사라지고 위상백은 룸살롱에서 나왔다. 이미 술맛이 떨어져 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미치겠네.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일단 약속은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대로 키워볼 마음에 옐로우 레이디를 너무 애지중지 아낀 게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점일 될 만한 걸 만들어 놓는 거였는데, 어차피 자기 손아귀에 있는 이상 천천히 해도 된다고 여유를 부린 게 실수였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어쩌나. 이제 어쩌지. 그 복면 새끼, 성질이 보통 아닌 것 같던데. X발. 내 팔자가 왜 이따위야. 50억이 생겼으면 뭐해 쓸 수가 없는데. 젠장! 빌어먹을. 그냥 돈 들고 해외로 튀어버려? 아니지, 아니야. 복면 그 새끼가 진짜 와룡 그룹 놈이면 내가 해외 나가는 걸 절대 모를 리 없다. 나가기 전에 출국 금지를 때리고도 남을 놈이야.”
장담은 했는데 방법이 없었다.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 생갈 때마다 자주 하는 버릇이었다.
“헐! 이게 뭐야. 이청수가 골드 스타랑 계약했다고? 천하의 이청수가? 이게 말이 돼?”
이청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영화배우 중 한 명이다. 재작년과 작년에 찍은 영화가 두 편 모두 천만을 돌파하면서 진정한 톱스타 반열에 올렸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연기력만큼이나 잘생긴 외모 덕분에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몰이 중이었다.
작년에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온갖 대형 기획사들이 수십억 돈 보따리를 들고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하고 1인 기획사를 차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모 기획사의 경우 100억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였는데, 그런 이청수가 옐로우 레이디 말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볼 게 없는 골드 스타와 계약했다는 소식에 위상백은 어이가 없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도 자신이 만든 연예 기획사였다. 그랬던 곳이 30대 초반 남자 배우 중 가장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청수와 계약했다는 소식에 갑자기 배가 아팠다.
“장만복 회장이 돈이 많긴 많은가 보네 100억도 마다한 이청수를 데려온 걸 보면. 헐! 이건 뭐야. 골드 스타를 이청수랑 옐로우 레이디가 쌍끌이한다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어디 옐로우 레이디 따위를 이청수에 가져다 붙여. 미친 기자 새끼들.”
이청수와 계약 소식도 배 아픈데 거기에 옐로우 레이디 소식까지 더해지자 위생백의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옐로우 레이디는 꼭 망하길 바랐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온갖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자신이 데리고 있을 때보다 인지도가 더 높아지는 분위기였다.
이대로 간다면 단순히 반짝스타로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위상백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스캔들을 만들어 사진 속에서 환하고 웃고 있는 얼굴에 생채기를 내고 싶어졌다.
“스캔들이라, 스캔들. 아! 복면 새끼가 준 사진. 그게 있었지. 어디 놔뒀더라. 그래, 여기 있네. 이 정도면 성폭행으로 몰아가긴 힘들어도 스캔들로는 딱이지. 크크크.”
서랍 속에 둔 사진 몇 장을 찾아낸 위상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건우와 스칼라가 함께 술을 마시는 모습,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린다든지 손을 살짝 잡는다든지 하는 스칼라의 사소한 스킨십. 거기에 스칼라를 업고 나가는 건우의 뒷모습은 화룡점정이었다.
Rrrr
“어! 안 기자.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응?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전화했었다고? 미안미안. 늪 매니지먼트를 넘기고 내가 좀 정신이 없었어. 내가 사과하는 의미로 좋은 기사 하나 넘길게. 뭐? 돈 좀 벌었을 테니 술도 사라고? 어허. 이거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이거 이야기 들으려면 안 기자가 나한테 술을 사야 할걸? 그럼. 당연하지.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내가 벌주를 사면 되지. 그럼그럼. 하하하. 알았어. 그럼 내일 8시 항상 만나던 거기서 보자고.”
***
이청수가 골드 스타와 계약 소식은 연예계를 크게 강타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서호영 사장이 분명 장담하긴 했지만 첫 번째 주자가 이청수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S급 연예인에도 급이 있다면 이청수는 톱스타 중에서도 톱스타였다. 게다가 이청수는 서호영 사장이 키운 톱스타 5인방도 아니었다.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적은 있지만 서호영 사장이 다른 연예 기획사로 옮기고 몇 년이 지나서 톱스타 반열에 오른 케이스다.
둘 사이에 친분은 있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청수의 성공에 서호영 사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이청수와 계약에 성공했다면 걸음마부터 가르친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머지 5명도 그렇게 어렵지 않으리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었다.
물론 지금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아서 당장 회사를 옮기긴 어려울지 몰라도, 그것도 결국은 시간문제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런 만큼 골드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기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때, 뜻밖에 스캔들이 터지고 말았다.
[속보! 옐로우 레이디 리더 스칼라 최건우 대표와 열애.]
[핑크빛 만남. 최건우 대표와 스칼라. 어떻게 눈 맞았나?]
[늦은 밤 술집 데이트. 핑크빛 기류?]
[스칼라는 왜 밤늦은 시간에 최건우 대표를 만났나?]
[스칼라를 업고 나간 최건우 대표, 그날 밤 두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최건우, 스칼라 열애설. 소속사 측 “사실 확인 중”]
[최건우 대표와 스칼라의 만남. 누가 더 아깝나?]
[세기의 로맨스. 최고의 커플 탄생!!!]
[역시 천재는 미녀를 사랑한다.]
갑자기 터진 건우와 스칼라의 열애설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를 모두 도배할 정도로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다.
국민들의 절대적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 실업가와 최근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여성 아이돌의 만남이니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은 어쩌면 당연했다.
건우는 스캔들 기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며 어릴 적 알고 지낸 소꿉친구라고 밝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항상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분명 평등을 표방하는 사회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평등하진 않다.
과거에는 신분으로 계급을 나눴다면 지금은 외모, 경제력, 직업 등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곤 한다.
잘 생긴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사귀면 잘 생긴 사람이 아깝다고 하는 건 비일비재하며, 똑같이 외모가 뛰어나도 S급 연예인과 A급 연예인이 만나면 S급 연예인이 아깝다고 평한다.
그런 기준에서 건우는 ‘급’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에 속하며, 스칼라는 B급에서 A급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건우와 비교하면 한참이나 급이 떨어지는 연예인이 불과했다.
더군다나 건우는 전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인기인이며, 스칼라는 춤과 노래를 파는 딴따라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놓인 커다란 갭이 생각보다 훨씬 큰 문제가 되고 말았다.
***
닥건(DarkGun).
닥건은 건우의 팬클럽 중 하나다.
크기는 건우의 여러 팬클럽 중에서 10위 권 안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작은 규모다. 그렇지만 팬심으로만 순위를 매긴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극성스럽고 극악하다.
일명 ‘최건우 광신도 모임’이라 자처하는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믿는(?) 건우 말조차 무시할 정도로 과격하고 편협한 팬심을 보인다.
사실 정말 팬심이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혹자들은 닥건은 팬클럽의 가면을 쓴 건우의 안티 팬클럽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닥건(DarkGun) 운영진 방
-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기사가 떠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최건우 님 열애기사를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저도 봤습니다. 정말 참담합니다. 하필이면 딴따라라니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 동감합니다. 최건우 님은 혼자만의 몸이 아닙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재능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한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만날 때도 함부로 아무나 만나서는 안 됩니다. 한국으로부터 그런 놀라운 재능을 물려받았다면 똑똑하고 건강한 여자와 이어져 자신을 능가하는, 그래서 한국을 부국강병의 나라로 만들어 줄 진정한 천재 아이를 생산해야 합니다.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여러분들도 저의 의견에 동감하는 걸로 알고 이번 두 사람의 스캔들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