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60화 (160/256)

제160화

“아무리 교육열이 세계적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교육시장은 누군가와 나눠 먹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물론 보통 사람에게는 웬만한 입시학원도 대단하다 느껴질지 모르지만, 대표님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곳도 아니고 대(大) 와룡그룹의 계열사인 크레이듀 아닙니까? 세계그룹조차 구멍가게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대단한 그룹이 교육시장을 나눠 먹기 위해 초이스 에듀와 손을 잡는다? 그건 호랑이보고 풀만 뜯어 먹고 살라는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긴 아네. 애들 코 묻은 돈이나 갈취한다고 욕먹으면서도 참고 견디며 크레이듀를 운영해온 이유가 바로 입시시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교육시장을 완전히 먹어버리기 위해서야. 그러니 최근 들어 인기 좀 끈다고 동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동업 이야기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사실 나성천 대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동업은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주는 것이 좋습니다. 인정하겠습니다. 대표님 말씀 전부 맞습니다. 솔직히 제가 최건우를 얕잡아 본 것, 사실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비상해도 경험이 일천해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최건우를 보면 과연 20대 초반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노련합니다. 누군가 조언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하는 법. 지금까지 써 내려온 성공 신화만 봐도 그가 갖춘 능력은 진짜배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최 대표를 얕잡아 봤다고는 해도, 저만큼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학원 사업에 대해서 저 이상으로 통달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표님 말씀처럼 저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학원의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립니다. 고작 몇 달일 수 있겠지만, 그 기간이면 초이스 에듀는 더욱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까마득히 멀리 달아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겐 최건우 대표를 끌어내릴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더 남아있습니다.”

“흐음.”

이런 식의 설득은 박유하 이사가 예전에 이미 써먹었던 방법이다. 분명히 알고 있지만 나성천 대표도 마땅한 대책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건우는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목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지금 나성천 대표는 시간이 모자랐다.

“대표님. 처음에 대표님과 제가 대화를 할 때, 최건우 대표를 무너뜨리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내기 힘들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고작 몇 달 만에 이렇듯 조급하게 변하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진정한 호랑이라면 참고 견딜 줄도 알아야 합니다.”

”좋아. 내가 조급하게 군 것 인정해. 그렇다고 해도 가시적 성과도 없이 오랜 시간을 줄 수는 없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네. 알겠습니다. 조만간 대표님이 본사에 자랑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초이스 에듀의 퓨처 앱을 대체할 수 있는 교육용 앱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개발 즉시 모든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이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국민들은 퓨처 앱보다 국가에서 인정한 앱을 사용하게 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나성천 대표는 박유하 이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희생양이 필요해서였다.

***

“큰일 났습니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차 팀장님.”

“크레이듀에서 만들고 있는 교육용 앱을 정부가 공식 교육용 앱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퓨처 앱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조치해야 합니다.”

사실이라면 초이스 에듀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소식이었다.

“아닙니다. 그냥 놔두세요.”

“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입니다. 예전에 크레이듀가 지금의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전신인 코니 애플리케이션 기술자들을 빼갔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각오를 했었습니다.”

“그러니 당장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당장은 조치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크레이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허 기술을 교묘하게 틀어서 이용할 게 뻔합니다. 제가 초이스 에듀의 이름으로 소송을 걸어봤자 이기기 힘들 겁니다.”

크레이듀 측에서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뒀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공식 앱으로 추진할 리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초이스 에듀의 이름으로는 힘들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으로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대부분 권리는 그쪽에 넘겼으니 일단은 두고 봅시다. 크레이듀가 자기들 앱을 보급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그들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것만 차질없이 보고해주세요.”

“아,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라….”

건우는 장만복 회장이 해줬던 조언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대단한 학벌도,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 대단한 수학능력시험 적중률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이나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크게 신경 쓸 거리가 아니다.

세상을 진동시킬 천재라고 해도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대중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연예인이나 정치인도 그 인기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완전히 불가능했던 건 아니었어. 마호메트처럼 신의 사자가 되거나, 북한의 김일성 같은 미친 독재자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임스 딘처럼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 물론 셋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는 게 문제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중들의 호감과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대중들의 호감과 신뢰를 유지하는 방법. 최근 들어 건우의 머리를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화두였다.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지만, 이젠 그의 기부행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크레이듀가 펼치는 네거티브 전략은 조금씩이지만 건우의 인기를 잠식하고 있었다. 뭔가 확실한 타개책이 필요했다.

한참을 심사숙고하던 건우는 생각 정리를 모두 마쳤는지 밝은 표정으로 직원들을 호출했다.

“대표님. 팀장급 이상 직원들 모두 모였습니다.”

잠시 비서가 들어와 회의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손다정을 비롯해 현재 초이스 에듀를 움직이고 있는 각 부서의 관리자급 직원들은 회의실에 모여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건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실 텐데 갑자기 호출해서 놀라셨죠. 다름 아니라 한 가지 논의할 사항이 생겨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어휴. 대표님께서 갑자기 논의할 사항이 있다고 하니 겁부터 나는데요. 그동안 워낙 여러 번 사고를 치셔서 말이죠.”

“하하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우리 초이스 에듀의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이번 사안은 더 큰 사고일 수도 있는데요.”

“네? 으… 맙소사! 대표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이군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작부터 겁을 주시는 겁니까?”

건우의 말에 최근 들어 다른 어떤 부서보다 할 일이 많아지고 있는 마케팅의 김완태 팀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본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 초이스 에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기가 싱크빅과 크레이듀 아닙니까. 특히 세계교육을 인수한 크레이듀는 지금 당장은 기가 싱크빅에 밀린다고 해도, 와룡그룹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차후 우리 초이스 에듀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할 것이 분명합니다.”

“역시 질문이 너무 쉬웠죠. 맞습니다. 이미 외국어 영역에서는 최고였던 크레이듀가 세계교육을 인수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크레이듀의 뒤에는 거대한 와룡그룹이 있죠. 솔직한 이야기로 그런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우리 같은 규모의 학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 같은 존재일 겁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죠.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가 눈엣가시처럼 구는데 와룡그룹은 왜 우리를 가만히 두는 걸까요?”

“아무래도 대표님의 존재감 때문이겠죠.”

“저요? 천하의 와룡그룹이 눈치를 볼 만큼 제가 대단한 존재였나요?”

“물론입니다. 그동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손을 내민 선량함, 명석한 머리, 동생들을 위하는 가족적인 모습. 국민들은 대표님의 이런 모습에 반해 무한한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와룡그룹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긴 어려울 겁니다.”

직원들의 대답도 역시 장만복 회장과 비슷했다.

“절대적 지지라고 하시니 민망하네요. 요즘 말로 오글오글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냥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두죠. 어쨌든 그 덕분에 와룡그룹이나 또 다른 외압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만약 초이스 에듀의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들의 지지가 약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와룡그룹이라는 맹수에 잡아먹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일어나면 안 될 일에 대해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하지만 대중들은 대표님에 대해 여전히 호의적입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지금부터 미래를 대비한다는 건 과한 기우(杞憂)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손 팀장님. 추가 설명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실 대표님이 정치인도 아닌데 지지율 조사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조금 웃기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 초이스 에듀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 특별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건우의 말에 손다정은 들고 있는 태블릿을 꺼내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손다정의 화면을 터치하자 회의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커다란 그래프가 등장했다.

“그럼 설마 선거 여론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조사하는 건가요?”

“호호호. 그럴 리가요. 우리 정보팀에서 얼마 전 빅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지지율은 그 빅데이터 전문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했습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해서요? 오호. 그건 괜찮은 방법이군요.”

빅데이터란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로 그 규모가 방대하고, 생성 주기도 짧고, 형태도 수치 데이터뿐 아니라 문자와 영상 데이터를 포함하는 대규모 데이터를 말한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딸이 출산용품 광고 메일을 받자 매장을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한 일이 있었다. 점장도 마케팅팀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동안 딸이 임신을 숨겨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부모도 몰랐던 임신 사실을 딸의 온라인 행동패턴을 통해 알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빅데이터’의 위력이다.

이미 세계의 많은 선진기업들은 미래경영의 해법으로서 빅데이터의 분석과 기술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건우와 정보팀 또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재빨리 캐치하고, 빅데이터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솔직히 저는 빅데이터에 대한 확신이 없었지만 이번에 정보팀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니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회의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설명은 간단히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각자 태블릿으로 자료를 발송했으니 열어보시면 됩니다. 대표님이 왜 우려를 하는지 자료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올 초만 해도 대표님의 기사에 달린 선플과 악플의 비율이 9.5 : 0.5 수준이었습니다.”

“와! 익명성 때문에 막말하는 사람이 많은 인터넷 공간을 감안하면 대단한 비율이군요.”

팀 앨버트로스 안우현 팀장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네. 그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8:2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번 달에는 더욱 나빠져 평균 7.5:2.5를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부정적인 기사에는 30% 이상이 부정적인 댓글입니다.”

예전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늘어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명확한 수치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예상보다 더 안 좋은 결과에 회의실 분위기가 가라앉아 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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