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62화 (162/256)

제162화

“EBS처럼 교재를 팔아 수익을 충당할 예정입니다.”

“그것만으로 서버 유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대표님은 이미 교재를 프린트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놨습니다. e북으로 보는 학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만든 조치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교재를 복사해서 사용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한국은 아직도 지적 재산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믿고 맡기는 방법밖에 없겠네요.”

“그럼 안 됩니다. 회사는 이득을 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대표님의 선택으로 회사에 적자가 발생한다면 다른 주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장만복 회장은 몰라도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설마 불법 복제 하는 학생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죠?”

분명 잘못은 학생에게 있지만 그 문제로 학생들을 처벌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더군다나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재정적 이익을 위해 학생을 고소하는 건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랬다간 큰일 나죠. 아무리 대표님이라도 애들을 고소했다간 돈독이 올랐다고 역풍 맞기 딱 좋습니다.”

“그러면요?”

“자극적이지 않은 수준에서 광고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품 구매를 강요하는 광고는 안 되겠지만 기업의 이미지를 재고하는, 공익 광고 느낌의 잔잔한 광고는 괜찮을 겁니다. 무료 라이브 스트리밍을 위한 비용 충당을 위해 광고를 내보낸다고 대중들도 이해해줄 겁니다.”

“광고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자극적이지만 않다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과연 우리 방송에 광고를 넣으려는 기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서 기다릴 테니까요.”

안우현은 굉장히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대부분은 상임위에서 이뤄진다. 상임위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 당장 당내에서 ‘능력 있는 의원’으로 인정받는다.

지역 주민에게 자신을 알리는 데 지역구 예산 확보와 상임위 활동만큼 유용한 것은 없다.

상임위의 힘은 특히 국정감사와 예산심의 기간에 극대화된다. 행정부처의 장, 차관은 물론 재벌 총수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정부기관의 로비는 상임위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에서 학과별 인기가 뚜렷하게 갈리듯 상임위 선택에서도 의원들의 선호가 엇갈리곤 한다. 힘 있고 지역구 사업에 도움이 되는 상임위에 의윈들의 지원이 몰리기 일쑤다.

‘알짜’ 상임위를 차지하려는 의원들과 균형 있게 상임위를 배분해야 하는 원내지도부 사이에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국토위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산하기관이 많은 교문위가 지금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의원 중에서도 갑 중의 갑이라고 불린다.

국회법 제49조에 규정된 상임위원장의 역할은 1. 위원회 질서를 유지하고 2. 의사일정을 여야 간사들과 협의해 결정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상임위원장이 갖는 권한은 이보다 막강하다. 각 정부 부처들이 추진하는 핵심사업의 운명도 사실상 상임위원장에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 상임위원장이 법 개정을 위한 회의를 열지 않으면 사업은 그대로 무산된다.

그러다 보니 각 부처 장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임위원장실을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닌다.

조우철 의원은 가장 인기가 많은 교문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의 위원장이다. 갑 중의 갑에서도 슈퍼 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의 교문위 위원장 자리가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국회 본청 내에 별도의 사무실이 주어지고, 전문위원 등 국회 공무원도 배정된다.

수당으로 월 800만 원 정도 돈이 지급되는 등 부수입도 짭짤하다. 무엇보다 예산 배정에 있어 이점이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상임위원장의 지역구 사업을 특별히 배려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덕분에 조우철 의원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는 막강 권력자로 불린다.

그런데 얼마 전 재미난 부탁이 하나 들어왔다. 초이스 에듀의 최건우 대표를 압박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조우철 의원도 잘 알고 있었다.

몇몇 국회의원 사이에서는 건우를 사위로 삼는 사람이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고, 실제로 그를 사위로 만들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는 사람이 꽤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아들밖에 없는 조 의원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였다.

좀 더 솔직한 심정으로 대권을 꿈꾸고 있는 그에게 사위로 삼는 것만으로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건우는 아니꼬움 그 자체였다.

이제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를 가진 어린 남자가 수십 년 동안 정치경력을 쌓아온 자신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굉장히 불쾌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눈에 거슬리는 불쾌한 존재였을 뿐, 국민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는 건우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와룡그룹이 직접 부탁해온 것이다.

그룹의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최근 열애설이다 뭐다 하며 그의 이름이 시끄럽게 오르내리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와룡그룹까지 나섰다면 조우철 의원도 굳이 국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언론 등을 동원해 건우를 압박하는 동안 자신은 그냥 교문위 위원장이라는 간판으로 초이스 에듀에 불이익을 주도록 정부에 압력만 넣으면, 나머지는 교육부 관계자들이 알아서 잘 움직여줄 것이다.

최상류층만 드나들 수 있다는 강남의 최고급 살롱.

크레이듀의 나성천 대표가 조우철 의원과 술잔을 나누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의원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허허. 나 대표. 고생이랄 게 뭐가 있나. 나야 그냥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 관계자들을 불러 공교육을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라며 가볍게 나무랐을 뿐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의원님 아닙니까? 의원님이야 나무랐을 뿐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호랑이의 호통처럼 무서웠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희가 그동안 아무리 압력을 넣어도 들은 척도 안 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초이스 에듀를 압박하는 데 앞장섰겠습니까? 이게 전부 의원님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뭐, 나 대표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사실 의원님이 보통 분이십니까? 차기 대권의 선두주자 아니십니까? 정부 관계자들도 그걸 알고 있는데 어찌 감히 의원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겠습니까? 알아서 슬슬 길 수밖에 없습니다.”

“대권 선두주자? 어허. 내가 그럴 깜냥이 되나?”

대권이라는 말에 흥겹게 웃고만 있던 조우철 의원의 눈빛이 반짝였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내 대표 최고위원이다, 원내대표다, 정책위의장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솔직한 말로 실속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의원님은 대통령님이 가장 아끼는 측근이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할 때 의원님이야말로 장차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대통령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사람 참. 전직이라고는 해도 와룡그룹 마케팅부 총책임자의 말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믿고 싶어지는군, 그래.”

“믿으십시오. 이번 일만 잘되면 제가 앞장서서 의원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초이스 에듀를 꺾고 우리나라 학원가를 완전히 평정하면 회장님께서도 다시 저를 불러주시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때는 더욱 확실하게 의원님을 밀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자네의 도움이라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

똑똑똑.

“무슨 일이야. 방해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대표님. 급한 일이라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나성천 대표의 비서가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급한 일? 무슨 일인데 그래?”

“초이스 에듀가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완전 무료로 서비스한답니다.”

“아니 뭐? 다시 한 번 말해봐?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어떻게 하기로 했다고?”

“전면 무료서비스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쾅.

나성천 대표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조우철 의원이라는 거물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이런 식의 행동은 굉장한 실례였지만, 워낙 충격적인 소식이라 누구를 신경 쓰고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게 말이 돼? 유료 서비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매출이 벌써 100억 원을 돌파했다면서. 접속자가 늘어나면 1,000억 원도 금방 돌파할 거라고 그러던데, 그걸 전부 포기했다 이 말이야? 어떻게 포기할 수 있지? 최건우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니, 나 대표.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건가?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아! 죄송합니다. 의원님. 제가 너무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들어 잠시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놀랄만한 소식이라면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인가 뭔가 하는 게 자네가 그렇게 흥분하게 할 만큼 대단한 건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 대책 마련을 하고 싶었지만, 눈앞에 있는 조우철 의원은 나성천 대표가 절대로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는 말 그대로 실시간 강의를 하는 겁니다.”

“실시간 강의? 그러니까 가수가 라이브를 하듯 실시간으로 강의한단 말인가?”

“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음. 이해가 가지 않는군. 어차피 오프라인 강의가 아니라면 실시간 강의든 녹화 강의든 그게 그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위해서 별도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는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강의실에 앉아 직접 강의를 듣는 느낌이라면서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똑같이 모니터 앞에서 보는 건데 그런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것참 의외군. 아니지. 가만. 강의실에 앉아 직접 강의를 듣는 느낌이 난다고? 안 그래도 최고라고 평가를 받는 최건우 대표의 강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면 학생들이 엄청나게 몰리겠군.”

“그렇습니다, 의원님.”

“오프라인 강의가 아니니 잠재 고객은 중, 고등학생 전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완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는 사업을 무료로 전환한다 이 말인가? 허허. 이해할 수 없군, 그래.”

“그러니 말입니다. 최건우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부를 통해 심하게 압박을 했더니, 홧김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젊은 사람들 보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그러면 좋겠는데, 그러기에는 그동안 최건우 대표가 보여준 행보가 너무나도 노련했습니다. 만약, 만약에.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에….”

“그래. 만약에.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건가?”

조우철 의원은 계속 망설이는 나성천 대표의 모습이 답답해서 먼저 물었다.

“저희 크레이듀가 진행하고 있는 네거티브 전략을 전면 봉쇄하기 위해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전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뭐? 그게 말이 되나? 아무리 압박이 심하다고 해도 적게는 수천억 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을, 자네들이 펼치는 네거티브 전략을 막기 위해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그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최 대표의 선택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게 저의 솔직한 지금 심정입니다.”

“그런데 그걸 무료화하면 자네들에게 타격이 큰가?”

“물론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원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온라인이라고는 해도 최고 수준의 강사가 무료로 강의한다는데, 굳이 힘들게 학원에 가서 실력 떨어지는 강사의 수업을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으흠. 그렇다면 최건우 대표의 이번 결정으로 상당수 학원이 문을 닫을 수도 있겠군. 정부에서도 달리 할 말이 없겠어. 그동안은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난다며 초이스 에듀를 압박했는데, 무료로 전환해버리면 사교육비 부담이 완전히 줄어드는 셈 아닌가? 이것 참. 잘한다고 칭찬하기도 그렇고, 이거 원. 쯧쯧.”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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