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66화 (166/256)

제166화

“동지그룹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신화적인 인물이잖아요. 그런 실력자라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도 있었을지도 몰라요. KGT도 눈치챈 마당에 다른 기업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죠. 이번 요청 건은 어떻게 할까요?”

“어떤 광고를 내보내고 싶다고 하십니까?”

마동수 이사에게 호감이 있다고 해도 아무 광고나 무조건 내보낼 순 없다.

“노골적이지 않은 기업 이미지 광고라고 합니다.”

“역시 잘 캐치하셨네요. 그렇다면 받아들여도 됩니다. 일면식은 없지만, 그동안 그분 책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업무 제휴는 무슨 말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업무 제휴는 아닙니다. 학생들 장학사업에 동지그룹 이름으로 기부를 하겠다는 뜻이니까요.”

“동지그룹 자체적으로 장학사업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 장학사업에 도움을 주겠다? 그렇다면 조건이 있겠군요.”

책으로밖에 파악하지 못했지만 건우가 생각하는 마동수 이사는 절대 공짜로 무언가를 퍼줄 사람이 아니었다.

“네. ‘동지그룹이 초이스 에듀와 함께 무상교육에 앞장섭니다’라는 문구를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요? 단지 그 문구면 충분하답니까?”

“공중파 CF나 일간지 광고에 그 문구를 사용할 생각인가 보더라고요.”

“그것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군요. 중요한 건 돈이겠죠. 얼마나 준다고 합니까?”

“리치 미디어광고, 라이브 스트리밍 광고 삽입, 문구 사용으로 매달 50억 원씩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네? 얼마요?”

나중에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완전히 장착된다면 모를까, 아직 서비스 시작도 하지 않은 초기 단계에 받기에 매달 50억은 너무나도 큰 금액이라 깜짝 놀랐다.

“매달 50억 원입니다. 대신 광고는 매 쉬는 시간 10분 중 3분을 할당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퓨처 플레이어에 리치미디어광고를 넣어달라고 하더군요.”

리치 미디어광고 (Rich Media Advertisement)는 인터넷 광고 용어로, JPEG, DHTML, Javascript, Hockwave, Java 프로그래밍과 같은 신기술 및 고급 기술들을 배너 광고에 적용시켜 배너광고를 보다 풍부(Rich)하게 만든 멀티미디어 광고를 말한다.

“음.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지상파 방송도 아니고 매달 50억 원이면 1년에 600억 원인데, 대기업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엄청나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하셨는데 그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뭔가요?”

“와룡그룹을 엿 먹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돈도 투자할 의향이 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 바란다. 라고 했습니다.”

“하하하. 적의 적은 아군이라더니 생각지도 못한 우군이 생긴 거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마다할 이유가 없겠죠. 손 팀장님이 동지그룹 관계자와 협의해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아 참. 그리고 무료와이파이 신청학교 현황은 어떻습니까?”

“지금 현재 3,000여 개 중학교 중 223곳이 신청했고, 2,000여 개 고등학교 중에는 314곳이 신청했습니다. 아무래도 대학 입시와 직결되다 보니 고등학교가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 명문사립학교의 경우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대표님의 실시간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특별반을 운영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고 합니다.”

건우의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는 사립학교, 특히 서울보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지방의 명문 사립고등학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서울보다 정보가 늦다는 약점 때문인가요?”

“그것도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겠죠. 교육열로만 따지면 강남구보다 더 뜨거운 곳이 지방의 명문 고등학교들이에요. 보수적인 지방 성향과 달리 이런 고등학교는 재학생들을 서울대로 보내기 위해 굉장히 유연한 모습을 취하곤 합니다.”

“유연한 모습이요?”

“호호호. 좋게 말하면 유연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솔직히 고등학교에서 대표님 강의를 틀어준다는 건 어떻게 보면 직무유기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무서운 점일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학생들을 위해 자존심을 굽힐 줄 아는 거니까요.”

“저도 그 점은 인정해요. 하지만 비인기 학과라도 무조건 서울대를 보내려는 경향이 남아있는 건 아쉬워요. 과거에 유행했던 서울대 지상주의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할 수 있죠. 학생들의 의사가 먼저인데, 학교의 유명세를 우선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건 그렇군요. 그런데 어째 사립학교 이야기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손다정이 건넨 명단에는 대부분 사립학교 이름만 적혀 있었다.

“그럴 수밖에요. 국·공립학교는 교육부 눈치를 보는 건지 무료 와이파이존 신청을 하는 학교가 거의 없거든요. 도서지역 중·고등학교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신청하는 학교가 그래도 조금 있는데, 내륙지역은 전무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럼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세요.”

“어떻게요?”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 교육부 때문에 좌초위기?”

“호호호. 설마 교육부랑 정면으로 붙을 생각인 거예요?”

“못할 것도 없죠.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었으니까요. 먼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면 평생 호구 짓만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최근 들어 더욱 강력해진 압박 때문에 건우 또한 교육부에 대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그러니 말이 좋게 나올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타협을 바라는 손다정과 달리 건우는 강경대응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대표님. 예전에는 분명 EBS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지 라이브 스트리밍을 무료로 서비스한다는 건 EBS를 고사시켜버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을 바꾸신 이유가 뭐예요?”

“처음에는 그냥 교육부와 EBS를 믿고 놔두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에게 신뢰가 가지 않아요. 교육정책에 일관성 없이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잖아요. 고위직 공무원 한마디에 흔들, 재벌 입김에 흔들. 이래서는 100년이 지나도 제대로 된 교육정책이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그래도 우린 사교육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겠어요. 그냥 정부가 하는 대로 지켜봐야지. 설마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한다는 게 결국에는 교육정책까지 개입하려는 목적이었어요?”

“에이 설마요. 제가 어떻게 교육정책에까지 개입하겠어요. 그냥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도?”

“그냥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도가 아니잖아요. 궁극적으로는 EBS를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대체하려는 거잖아요. 대표님 강의가 EBS보다 더 많이 시청하는 교육방송이 되면 교육부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되겠죠. 여론의 힘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니까요.”

손다정의 예리한 지적에 건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손 팀장님은 역시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저도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여론을 제 편으로 만드는 것이더군요. 단순히 무료 서비스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대한민국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방송을 제가 한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정부를 비판한다면? 잡담처럼 잘못된 정책을 지적한다면?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건우다. 그런 사람이 강의 도중 무심결에 사견을 내뱉는다?

그 순간 건우의 말은 대다수 학생들에게 진리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권력이 되겠죠.”

“그동안 괜한 고민을 했더라고요. 굳이 제가 만든 커리큘럼을 교과서에 넣어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었어요. 저는 그동안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어요. 조만간 미국에서 제 커리큘럼을 교과서에 추가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면 아무리 목이 빳빳한 교육부라도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못 이기는 척 대표님의 커리큘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줄 건가요?”

“어림없죠. 교육부에서 제 커리큘럼을 이용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호호호. 생각만 해도 통쾌한 일이네요.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게 만들어야죠. 그러니 손 팀장님은 제가 아까 말한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 교육부 때문에 좌초위기?’와 같이 조금 자극적인 제목으로 교육부와 공립학교를 비판할 수 있는 기사를 내보내세요. 슬슬 압박을 시작해야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

교육부 장관실.

“장관님 혹시 조금 전에 올라온 뉴스 보셨습니까?”

“아니. 무슨 나쁜 소식이라도 올라왔어? 어떤 뉴스이길래 얼굴이 그 모양이야?”

교육부 곽용선 장관은 창백하게 질린 수행비서의 얼굴을 보며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그게, 초이스 에듀와 관련된 뉴스입니다.”

“그놈의 초이스 에듀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구먼. 누가 지들보고 사교육비 절감 신경 써달라고 했나? 괜한 뻘짓을 해서 나까지 귀찮게 만들어. 이번엔 대체 또 무슨 기사인데?”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심한 교육부, 초이스 에듀의 사교육비 절감 의지에 찬물.]

일주일 전 초이스 에듀의 최건우 대표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전면 무료화를 선언했다. 이 발표에 대해 한 경제 연구소는 최소 수조 원의 수익을 포기한 것이라는 평을 내기도 했는데, 그 말을 1/5만 사실이라도 가정해도 사교육비 절감에 대한 최 대표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KG텔레콤과 업무 제휴를 맺어 학생들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강의를 들을 때 통신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또한, 저소득계층 학생들을 위해 자비를 털어 태블릿 1만 대(시가 10억 원 상당)를 무상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조차 그동안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건우 대표의 이런 발표는 국민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대승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의지가, 사교육비 절감에 앞장서야 할 교육부의 시큰둥한 대응으로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선 아래 표를 보자.

무료와이파이 신청 현황

신청 중학교 223곳 중 국·공립학교 16. 신청 고등학교 314곳 중 국·공립학교 20.

위에서 보듯 무료와이파이를 신청한 학교 대부분은 사립학교이며, 국·공립학교의 비율은 1/10도 안 되는 상황이다.

고등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무료와이파이 신청 안 해도 최건우 대표의 강의를 들을 학생들은 다 듣는다. 문제는 통신비이다. 매일 몇 시간씩 유료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

최건우 대표가 KG텔레콤과 제휴를 맺은 것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학교에서 무료와이파이를 신청하지 않아, 통신비를 그대로 물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고등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도 무료와이파이 신청, 하고 싶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와 초이스 에듀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육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실제로 교육부에 무료와이파이 신청을 해도 되는지 문의를 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회신이 없었다’며 ‘별말이 없다는 것은 안 된다는 이야기 아니겠느냐’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국, 국·공립학교가 사립학교에 비해 턱없이 낮은 비율로 무료와이파이를 신청하는 가장 큰 원인은 교육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교육비 절감에 가장 앞장서야 할 곳이 오히려 반대만 하는 꼴이다. 교육부의 각성이 필요할 때다.

미래를 생각하는 빠른 신문

– 우리신문 홍기동 기자

“빌어먹을 우리신문. 나랑 무슨 원한을 졌다고 이따위 기사를 내보는 거야. 우리신문에 전화 넣어서 당장 기사 내리라고 해. 우리가 언제 반대를 했다고. 허위사실 유포로 처넣어 버린다고 협박이라도 하란 말이야.”

수행비서가 건네준 태블릿으로 기사를 읽은 곽용선 장관은 노발대발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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