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이미 항의 전화를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교육부에서 국·공립학교에 압력을 넣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확보했다고 합니다.”
“뭐야? 무슨 증거? 그게 대체 어디 있다고?”
“그저께 각 학교에 발송한 공문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게 왜?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전부였잖아. 그게 무슨 압력을 넣은 결정적인 증거가 돼?”
“그것도 충분히 압력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 사립학원의 분탕질’이라는 표현이 더 큰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게 꼭 초이스 에듀라고 누가 그래?”
모 정치인이 말처럼 ‘초이스 에듀’라는 주어는 없다.
“우리신문사에서는 ‘그게 초이스 에듀를 뜻한다는 것은 초딩들도 알 수 있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밤까지 그 공문에 대한 제대로 된 입장표명을 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그 공문을 근거로 새로운 기사를 내보내겠다고 합니다.”
“뭐? 젠장! 거진 협박이구먼. 대체 어떤 자식이 공문을 신문사에 알린 거야?”
“5,000여 개 중·고등학교 중 국·공립학교가 4,000여 곳 정도 됩니다. 그 많은 학교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장관님.”
곽용선 장관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답답해지자 괜히 수행비서에게 투정을 부린 것이다.
“이 일을 어떡하나? 만약 그 공문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오늘 나간 기사로도 이미 교육부 업무가 마비되었습니다. 수천 통 이상의 항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일 새로운 기사가 나가면 장관님의 책임론과 퇴진론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평교사뿐만 아니라 교장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았다.
“어허. 이것 참. 최건우 대표는 대체 전생에 나랑 무슨 원한을 졌길래 상황이 이리도 꼬일까? 이대로 무료와이파이를 허용하면 와룡그룹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다행히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엉뚱하게도 동지그룹이 끼어들었습니다.”
“동지그룹이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끼어들어? 거기도 교육 사업에 관심이 있대?”
“그건 아니고. 초이스 에듀와 뭔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장관님은 와룡그룹에게 동지그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유감만 표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심에 잠겼던 곽용선 장관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동지그룹이라면 와룡그룹도 별말 못하겠지. 공문 다시 돌려. 아무리 그래도 모양 빠지게 적극 추천, 이럴 수는 없으니 라이브 스트리밍이든 무료와이파이든 학교장 재량에 맡기겠다고 해. 책임이 내게 오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장관님.”
***
서울지역 고등학생들은 수업을 마치면 득달같이 인근 학원으로 달려가고, 지방의 학생들은 보충 수업을 듣고 저녁 식사 후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서로 다른 듯하지만 정신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처지는 비슷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 먹고 학교 가서 공부, 점심 먹고 공부, 저녁 먹고 학원 가서 공부, 집에 와서 자기 전에 공부.
쳇바퀴 돌 듯 매일같이 공부와 씨름하는 게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일상이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만 하도록 하는 교육 시스템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사회제도 중 그나마 덜 불공평한 것이 시험이기에 아이들은 지금도 머리를 싸매며 공부와 전쟁 중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쳇바퀴 같던 학생들의 생활모습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양이 줄어든다든가 하는 그런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학원을 가거나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모습이, 이제는 교실에 앉아 스마트기기를 보며 공부하는 풍속으로 바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며 스마트기기 발전이 불고 온 새로운 풍속도라고 평하기도 했다.
예년에 비하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학원에 다닐 사람은 다니고, 과외를 받을 사람은 받는다. 그렇지만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초이스 에듀의 실시간 강의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으로 변했다.
이런 변화는 방과 후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강제자습시간이 없어진 서울 지역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건우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반을 만드는 곳이 늘었다.
그냥 집에서 강의를 들으리라 생각했던 학교 측은 집에서는 공부가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학부모들이 학교를 개방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자, 뒤늦게 특별반을 구성하고 교사들로 하여금 돌아가며 그곳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교사들은 이제 학생들이 자율학습 시간에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를 관리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제대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아무리 건우의 강의가 훌륭하다고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 실시간 강의를 듣는다고 해놓고 스마트 기기로 엉뚱한 짓을 하는 학생들도 또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화면으로 강의를 듣는지 딴짓을 하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자 결국에는 KG텔레콤에 초이스 에듀의 퓨처 홈페이지만 접속할 수 있도록 제한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일어났다.
굳이 와이파이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스마트 기기로 딴짓할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와이파이를 끊겠다는 강력한 입장표명에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그로 인해 다른 학원 동영상 강의를 보려면 자신의 데이터를 소진해야 하는 일이 벌어져 형평성 논란이 일어났다.
다른 학원과 소수의 학생들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항의했지만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학원의 동영상 강의를 고집하던 학생 중 상당수가 초이스 에듀로 넘어가는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학교생활의 신풍속도라 불릴 만큼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가 학생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그동안은 집안 형편 때문에 건우의 강의를 들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아이들은, 3개의 무료 콤보(무료 라이브 강의, 무료 와이파이, 무료 태블릿)로 신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건우와 초이스 에듀 덕분에 교육 기회의 평등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셈이었다.
“야! 최건우 선생님 강의 어땠어?”
처음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를 하던 날 준석이가 소한이에게 물었다. 소한이는 얼마 전 초이스 에듀의 1기 근로 장학생인 경준에게 태블릿을 선물 받았던 그 학생이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람들이 그토록 건우의 강의에 열광하는 걸까 하는 기대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시작했던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 시청.
그런데 강의를 모두 들은 소한이의 얼굴은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씨X.”
“갑자기 뭔 욕이야? 왜 별로였어?”
“아니. 대박. 진짜 졸X 대박.”
“헐! 근데 왜 씨X이야?”
“몰라. 그냥 욕이 저절로 나오네.”
“미친. 그냥이 어디 있어?”
“그런가? 그럼, 정말 대단한 사람이긴 하구나 하는 감탄과 내가 그동안 이 선생님의 강의를 못 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
“크크크. 감탄과 한탄이 섞이면 욕이 나오냐? 너도 참. 특이한 놈이라니까.”
준석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는 너는 안 놀라워?”
“나? 놀랍지. 그렇지만 나는 그동안 라이브는 아니라도 동영상 강의는 계속 들었잖아. 그래서 너보다는 덜 놀라워.”
“그래? 동영상 강의랑 라이브 강의랑 비교하니 어때? 어떤 게 더 나은 것 같아?”
“당연히 라이브지. 너도 느껴지지 않았어? 마치 내가 최건우 선생님이 강의하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듯한 생동감. 원래도 카리스마가 끝장이었지만, 라이브 강의는 확실히 다르더라. 왜, 음악 프로그램도 그렇잖아. 실력 없는 애들은 라이브를 보는 게 더 고역이지만 진짜 실력 있는 가수는 라이브로 부를 때 더 감동을 주는 거. 마치 그런 느낌을 받았어.”
“나도, 나도 그래. 소름이 돋았어. 오늘 수학강의 수열이었잖아. 내가 그동안 학교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무슨 말인지 이해를 안 가던 부분이었는데, 그걸 도형 몇 개로 손쉽게 설명해버리더라. 그 순간 양팔에 소름이 쫙 돋더라니까. 공부하면서 이런 기분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첫 수업부터 이러네.”
소한이는 아직도 꿈을 꾸듯 자신의 양팔을 감싸 안았다.
“어쭈. 그동안 내가 최건우 선생님 강의 대박이라고 그렇게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강의 한 번 듣고 완전히 광팬이 되었네?”
“그거야. 너도 우리 집 형편 알잖아. 내가 선생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조금 냉소적으로 대답한 거지. 그리고 선생님들 강의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 이렇게 대단할 줄 알았나? 솔직히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실력차이가 너무 심해. 앞으로 학교 수업 어떻게 들을지 그것부터 걱정된다.”
“우리 학교 선생님 강의가 그냥 커피라면, 최건우 선생님 강의는 티오피?”
“아니. 그냥 커피가 아니라 싸구려 커피? 아니다. 그것도 과분하다. 쓰레기 커피?”
“헐. 야! 그래도 선생님들이 너 많이 배려해주고 좋아해 주셨는데, 쓰레기는 너무하지 않아?”
“그런가? 그럼 뭐. 싸구려 커피 정도로 해두자. 어쨌든, 솔직하게 말해서 강의 수준이 하늘과 땅 정도로 차이 나는 건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네가 다른 학원 선생님들 강의를 안 들어봐서 그래. 최건우 선생님이 대단한 거지 우리 학교 선생님들 수준이 그리 떨어지는 건 아니야. 솔직히 젊은 선생님들은 실력도 좋은 편이고.”
과거와 달리 지금 교사가 되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인기 강사를 제외하면 임용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학원 강사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단순히 시험 실력으로만 따지면 현직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낫다고도 할 수 있다.
단지 학원 강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만 전념할 수 있지만, 교사는 생활지도부터 행정업무까지 업무가 너무 많아 수업 준비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런 거야?”
“그럼. 그래서 최건우 선생님이 대단한 거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유료로 한다고 해도 들을 사람들은 넘쳐나거든. 지방 학생들은 물론이고, 본점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을 수 없는 서울 학생들도 얼마나 듣고 싶었겠어? 강남 애들 중에 선생님 강의를 듣고 싶어서 애오개 쪽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하더라.”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 대치동에도 대단한 강사들이 많이 있을 텐데, 최건우 선생님 강의를 들으려고 일부러 이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되게 어이가 없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가. 한 번 들으면 다른 선생님 수업을 못 들을 것 같아.”
“솔직히 그건 나도 그래. 진짜 이 선생님 때문에 괜히 눈높이가 높아져서 다른 수업 귀에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수업시간에는 자습하고, 자율학습 시간에는 수업 들어야지.”
“헉. 그건 좀 너무했다.”
“그런가? 그렇지만 어떡해. 학교 선생님 수업이 지루할 것 같은데.”
실제로 이런 비슷한 대화가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생 사이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강의는 지루해서 못 듣겠다며 대놓고 자습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웃지 못할 촌극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일부 교사는 이런 현상에 자존심 상해하며 건우와 초이스 에듀를 무작정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교사들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건우를 비롯한 초이스 에듀 강사의 강의를 벤치마킹하는 등 강의 실력을 키우는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게 건우의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 결정 이후 일어난 변화의 바람이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 평가단에 선정된 공소한이라고 합니다. 우선 평가단에 들어 무료로 태블릿PC를 나눠 주신 최건우 선생님과 경준 선배님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실 작년부터 선생님에 대한 명성은 예전부터 많이 알고 있었지만, 집안 형편상 지금껏 한 번도 강의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광을 하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들은 최건우 선생님의 강의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수학뿐만 아니라 지구과학, 생물, 물리, 화학, 영어 가르치는 모든 강의가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특히 구글 글라스를 접목한 덕분에 다른 어떤 강의보다 시청각적으로도 완벽해서,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동안 최건우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라도 얼마 전 저처럼 선생님의 수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그동안 들었던 모든 수업이 허망하게 느껴질 만큼 대단한 강의라고 장담합니다.
저처럼 너무 늦게 보게 된 걸 안타까워하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휴. 경준이 형과 약속한 첫 번째 평가서 작성 끝. 내가 받은 느낌보다 너무 약하게 적은 건 아닌지 몰라. 아니야. 너무 솔직하게 적으면 사람들이 뻥이라고 생각할지 몰라. 이 정도 표현이 적당한 것 같아. 아! 벌써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은 또 최건우 선생님이 어떤 멋진 강의를 해주실까?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하네. 흐흐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