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71화 (171/256)

제171화

“대치동 XX학원의 김 원장. 타워팰리스 1차 100평형에 살고 있습니다. 시세는 대략 40억 원. 그밖에 부동산은, 어이쿠. 학원 건물이 원장 소유네요. 건물포함 재산이 380억 원 정도 됩니다. 자동차는 본인은 벤츠, 부인은 BMW. 두 대 합쳐 5억 원 정도 됩니다. 아들놈은 아이고, 페라리네요. 구입 가격이 5억 원이 넘어요. 이제 겨우 대학교 1학년 새끼가 하는 짓은 재벌가 자식들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그렇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재산을 모아놓고는 학원 좀 어렵다고 죽겠다니.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다른 사람은 어때?”

“서초구 OO학원 이 원장. 반포자이 69평형에 살고 있고, 시세는 대략 21억 원. 이 양반도 김 원장보다는 작지만 학원 건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대신 땅이 많이 있네요. 재산이 대략 200억 원. 자동차는 그래도 김 원장보다는 소박합니다. 아우디 자동차인데, 시가가 2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건우를 성토하는 학원 원장들에 대한 윤종수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100억 원이 넘는 자산가들이 상당했다.

정말 예외적으로 상황이 어려운 학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10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못해도 1억 원이 넘는 풀옵션형 에쿠스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뭐야. 초이스 에듀 때문에 힘들다고 만든 모임인데 잠실의 A학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잘 사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어떻게 자동차가 최소 에쿠스야. 자성아. 우리 대표님 자동차가 뭔 줄 알아?”

“출퇴근 할 때는 예전 대표님 아버님이 몰고 다니던 구형 소렌토를 아직도 운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과 놀러 갈 때 타고 다니려고 폭스바겐에서 나온 패밀리카를 작년에 구입하셨습니다.”

“그래. 그 패밀리카도 고작 6,000만 원짜리야. 그것도 동생들 아니었으면 살 일도 없었을걸? 수천억 원의 재산이 있는 우리 대표님도 아직 구형 소렌토를 몰고 다니시는데, 망할 학원장 놈들의 자동차는 최소 1억 원이 넘어. 그래놓고 살기 힘들대. 나 참 어이가 없다. 종수야.”

“네. 팀장님.”

“그 정보 잘 보관하고 있다가 분위기가 안 좋다 싶으면 언론에 뿌려버려.”

“그럴까요? ‘최건우 대표 때문에 못 살겠다 아우성치던 학원장 알고 보니 벤츠?’ 이런 식으로 하라는 말씀이죠?”

“그렇지. 그런 와중에 대표님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도 은근슬쩍 공개해주고. 평범한 사람들은 모으기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대표님의 자동차가 소렌토, 그것도 구형 소렌토라면 대중들의 반응이 어떨까?”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멍한 표정의 고자성 과장을 가운데 두고 차지훈과 윤종수가 주거니 받거니 정겹게 이야기를 나눴다.

“놀라면서도 좋게 보겠죠? 그리고 왜 아직도 소렌토를 몰고 다니는 사연이 알려지면 분위기는 더욱 훈훈해질 겁니다.”

“돌아가신 대표님 아버님이 아끼셨던 자동차니까 사람들이 꽤 감동받겠네. 그런데 아버님 이야기가 나오면 대표님이 싫어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개인사니까.”

“그래도 모르니 슬쩍 한 번 물어보세요. 대표님, 나이는 어려도 노련하시니 취지만 잘 설명하면 반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잠실 A학원 이야기도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게 낫겠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코멘트 없이 보고서만 올릴 생각이야. 어쨌거나 판단은 대표님이 하셔야 하니까.”

비단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 때문만이 아니라 건우의 출현 자체가 다른 학원들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그동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원 운영을 이미 그만둔 곳도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런 사정을 생각해 건우가 학원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보팀이 하는 역할은 그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판단도 그에 따른 책임도 모두 건우의 몫이다.

“참 어려운 문제네요.”

“대표님이 알아서 잘 판단하시겠지. 종수 너는 학원 원장들 움직임이 어떤지 계속 주시하고. 자성이 넌, 음… 에잇 몰라. 포기다. 넌 그냥 안 어울리는 양복은 벗어버리고 얼른 현장복귀 해.”

“네? 정말이세요?”

고자성 과장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그럼 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감사합니다. 팀장님. 현장 복귀 기념으로 크레이듀 나성천 대표 집에 잠입해서 싸대기나 한 대 때리고 올까요?”

“야, 이! 자성이 너 정말!”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제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설마 그런 짓까지 벌이겠습니까?”

“어! 넌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그러니 항상 행동에 조심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몸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네. 명심할게요. 팀장님.”

구박하는 듯 보였지만, 부하 직원을 염려하는 차지훈 팀장이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대답을 하는 고자성 과장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피어났다.

***

“입맛에 맞으세요?”

“기가 막힙니다. 어디서 이런 집을 찾으셨습니까?”

차지훈이 윤종수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보고하려고 연락을 하자 건우는 대뜸 식사부터 하자며 간판도 없는 낡은 식당으로 그를 끌고 갔다.

메뉴는 곰탕 단 하나. 그러나 낡아빠진 외양과는 달리 맛은 일품이었는지 식사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차 팀장님이 곰탕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둔 곳입니다. 입맛에 맞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저 때문에요? 어휴. 제가 뭐 한 게 있다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한 게 없다니요? 요즘 들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다른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그렇지 않아도 손 팀장님이 차 팀장님 너무 부려먹는 것 아니냐고 정색하고 따지기까지 하더라니까요.”

“네? 다정 씨가요?”

“그렇다니까요. 저도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팀장님 부려먹는 걸 왜 손 팀장님이 따지는지 혹시 이유를 아십니까?”

“그, 글쎄요.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건우의 짓궂은 질문에 시치미를 떼는 차지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모른다고 하시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네? 제가요? 으, 음식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진 겁니다. 정말 이렇게 맛있는 곰탕집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예전에 전주에서 1년 정도 근무할 때 자주 갔던 그 곰탕집만큼이나 맛있군요.”

“하하하. 말 돌리는 솜씨가 일품이십니다. 여길 알려준 분이 그러시더군요. 곰탕 맛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거라고요.”

“네.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곰탕 맛은 좀 볼 줄 안다고 자부하는데, 여기 국물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져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진즉 같이 올 걸 그랬습니다.”

“대표님처럼 바쁜 분이 저를 위해 손수 맛집까지 알아봐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영광입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 겪으면서 지금은 누구보다 믿음직한 동지가 되었다.

“영광으로 생각해주셔서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럼 식사는 대강 끝난 것 같으니 업무 이야기로 돌아가셔야죠.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타격을 입은 학원 원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흐음. 역시 그렇군요.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팀장님은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이번에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학원 원장들의 재산을 조사해보니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대부분 10억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했고, 그중에는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상당한 재력가도 몇몇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좀 더 파고들어서 언론에 뿌릴 생각입니다.”

“어떻게요?”

“방금 보고드린 내용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내용입니다. 이들 중 재산이 제일 많은 것으로 알려진 김 원장의 경우는 대학교 1학년인 아들이 5억 원이 넘는 페라리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더군요.”

“5억 원이요? 어휴. 저도 그런 차 한번 몰아보고 싶은데요. 하하하.”

대학교 1학년이면 건우와 고작 1살 차이다.

“대표님은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셔서 그런 고가 스포츠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성실하고 바르다는 이미지는 건우가 학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지만, 가끔은 자유로움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몰아보고 싶은 고가의 스포츠카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중들의 눈치를 보느라 살 수 없는 게 그의 현실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제가 스포츠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데 재산이 얼마나 많길래 5억 원이 넘는 스포츠카를 아들내미에게 사준답니까?”

“조사한 바로는 부동산 포함 대략 380억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많군요. 그 많은 돈을 학원을 운영하면서 벌었답니까?”

“그걸 조사해보려는 겁니다. 상세한 데이터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안 봐도 편법 탈세, 위장전입, 투기 같은 불법행위는 여반장으로 했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괜찮은 대처방안이군요. 그런 내용이 밝혀지면 혹시나 우리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진 학원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만약 시위를 해도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고 오히려 비난만 받는다면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 끝나고 말 겁니다. 그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모인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모인 사람들이니까요. 결속력이 없는 모임은 모래알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에게도 부탁이 있습니다.”

“제게요? 어떤 부탁이죠?”

“조사해보니 이번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학원장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가 대부분 고가의 외제차였습니다. 그들보다 최소 몇십 배는 재산이 많은 대표님도 아직 구형 소렌토를 몰고 다니는데 말입니다.”

“돈이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건우는 남들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든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형편만 된다면 뭘 몰고 다니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마는, 그럼 최소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주장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부분을 부각시켜 그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 인간인지 만천하에 까발려버릴 생각입니다.”

“그 부분을 부각시킨다면 제 차가 소렌토라는 걸 언론에 알리겠다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그 자동차를 아직까지 몰고 다니는 이유도 자연스럽게 밝혀지겠고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기자 중에도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으니 제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다들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단순히 낡은 차를 몬다고 알려지는 것과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품이라서 각별히 아낀다고 알려지는 건 효과 자체가 다릅니다.”

“흠….”

설명을 들은 건우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차지훈은 말없이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명석한 건우라면 이미 모두 알아들었으리라.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우리 집안에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모르는 사람도 없거니와, 차 팀장님 말씀처럼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진 청년 실업가가 아버지의 유산인 낡아빠진 SUV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훈훈한 미담 정도는 되겠군요. 나쁜 일도 아닌데 굳이 숨길 필요는 없겠죠.”

고민은 길지 않았다.

“훈훈한 미담뿐이겠습니까?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을 칭송할 겁니다.”

“끄응. 칭송은 이제 그만 받고 싶어요. 팀장님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 아직 꿈 많고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남자입니다. 괜히 반듯한 이미지로 컨셉을 잡는 바람에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하고 대중들 눈치만 보고 사는 불쌍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칭송을 받아서 어디다 쓰게요.”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두시면 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모은 재산만으로도 죽을 까지 다 쓰기 어렵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동안 벌여 놓은 사회사업이 있는데, 제가 그만두면 그 사업들은 다 어쩝니까? 그것 때문에라도 그만둘 순 없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요.”

“그게 뭡니까?”

“라이벌은 다 날려버리고 아무 눈치도 안 보는 절대적 자리에 오르는 방법.”

“하하하. 꿈같은 소리군요. 과연 그날이 올까요?”

“와야죠. 오도록 만들어야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대표님은 그냥 지금처럼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마음껏 펼치며 지내시면 됩니다. 험한 일, 궂은일은 저와 우리 팀원들에게 맡기세요. 초이스 시큐리티까지 설립했으니 이제 쭉쭉 뻗어 나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나이를 떠나 차지훈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건우다. 그래서 건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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