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10억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억대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학원 원장들의 부유한 삶은 온라인에서 온통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로 인해 먹고 살기 막막해진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고충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강사가 학원생을 임신시킨 사실이 문제가 되어 운영이 어려워진 학원을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의 피해자인 것처럼 위장한 사실이 탄로 났으니 어디 가서 실제로 피해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쉽게 말해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으면 모를까 괜히 건우를 상대로 뒷공작을 펼치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려 사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처지가 됐다.
학원 형편이 어렵다며 강사와 직원들 월급을 반강제로 삭감했던 일부 학원은 학원장의 부유한 삶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모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들에 대해 당장에라도 세무조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서명운동은 어때?”
“잠시만요. 음. 조금 전에 1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초이스 에듀 정보팀.
밖에 나갔다 들어온 차지훈 팀장은 들어오자마자 서명운동 스코어부터 확인했다.
“그래? 빠른 건가?”
“그럼요.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10만 명이면 엄청 빠른 거죠.”
“대표님 팬클럽에는 글 올렸고?”
“네. 아까 확인해보니 조회 수가 빠르게 늘고 있어요. 팬클럽 회원들의 충성도는 아이들 팬 못지않으니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럼 여기서 멋모르고 기어오르는 저놈들에게 한 방 더 먹여야겠지?”
“그 기사 지금 올려요?”
“지금이 딱 적기인 것 같아. 피학모라고 했나?”
“네. 피해 학원 모임이라고 해서 피학모라고 부르더군요.”
“병X들. 하여간 염병을 떨어요. 피해 학원 모임? 웃기시네. 차라리 ‘피해망상 학원 모지리들’이라고 부리는 게 낫겠다.”
“크크크. 모지리들. 정말 적절한 표현이네요. 지금쯤이면 네티즌들의 어마무시한 공격에 멘붕상태에 빠져있을 걸요.”
윤종수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그러라고 하는 건데. 당연히 그래야지. 부나방 같은 놈들. 대표님에게 기어오른 인간들은 매번 안 좋은 꼴을 당하는데도 학습효과라는 게 없나 봐. 진짜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재산이 400억 원 가까이 있는 새끼가 학원 운영 힘들다고 직원들 월급을 일방적으로 삭감하는 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이번에 조사해보니까 비정규직 직원 중에는 아직 월급을 못 받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말이야. 쪼잔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니까. 기사 내보낼 때 그 이야기도 같이 이슈화시켜. 아주 그냥 한국에서 대가리 쳐들고 돌아다닐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려야겠어.”
“옛설.”
***
[최건우 대표의 자동차는 낡아빠진 구형 SUV]
얼마 전 신문을 통해 피학모(피해 학원 모임) 원장들의 자동차가 대부분 고가의 외제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소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초이스 에듀 최건우 대표가 아직도 구형 소렌토로 출퇴근한다는 소식이다.
앞서도 밝힌 것처럼 최소 수천억 원, 경제 전문가에 따라서는 1조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최 대표가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알고 보면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속 깊은 청년인지 알 수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최 대표는 뺑소니 사고(나중에 경찰의 재조사로 뺑소니가 아닌 살인사건으로 밝혀짐)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세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 의대를 그만두고 학원 강사로 뛰어든 것도 그 사고 때문이었다.
최 대표가 지금까지 몰고 다니는 구형 소렌토는 그때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예전에 기자가 최 대표에게 돈도 많이 벌었는데 좋은 차 타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타고 싶죠. 저라고 왜 멋진 세단이나 날렵한 스포츠카를 안 타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계속 소렌토만 몰아서 그런지 이젠 친구 같아요. 바꾸기 귀찮기도 하고, 그 차를 운전하고 있으면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 했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바꾸고 싶은 마음 전혀 없어요’라는 뻔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에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얼버무리며 했던 마지막 그 말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답변을 듣고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최건우 대표는 여전히 낡아빠진 구형 소렌토를 몰고 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항상 블랙 터틀넥과 라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착용했다. 20대 시절부터 변함없는 스타일을 고수했으며 애플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고도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패션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그는 ‘착용감도 편하고 입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이런 모습은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마크 주커버그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블랙 후드 재킷이나 회색 티셔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는다. 지나치게 편해 보일 수 있는 후드 재킷 차림이 예의 없다는 지적을 받는 일 역시 적지 않았다.
심지어 투자자와의 미팅에서도 후드 티셔츠와 슬리퍼 차림을 선보여 ‘그의 후드 티셔츠는 투자자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성숙함의 표식이다’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에스콰이어 선정 2011년 ‘최악의 드레서’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직원들은 그를 ‘미스터 주커버그’라고 하기보다는 친구처럼 ‘마크’라고 부른다. 그만큼 열린 마음으로 기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며, 패션계에서 지탄받는 그의 패션 또한 직원들과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최건우 대표가 마크 주커버그를 벤치마킹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을 이끌면서도 잡음이 들리기는커녕 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초이스 에듀에서 그의 낡은 자동차는 사용자와 고용인 사이의 높은 벽을 허물고 서로 웃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상징이 되고 있다.
조금만 돈을 벌어도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비싼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지금의 세태와는 완전히 다른,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교육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초심을 잃지 않는 이런 성실한 모습이 원동력이 되지는 않았을까?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의 패션을 보며 시그니처 룩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패션으로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건우 대표의 낡은 SUV 또한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그니처 룩으로 불리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행복일보 나조아 기자
[400억 원 재산을 가진 피학모 학원장 비정규직 직원 임금 미지급]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는 대기업의 횡포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던 피학모의 김 모 학원장이, 그동안 학원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일부 직원과 강사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고 비정규직 직원의 월급을 몇 달씩이나 체불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고통분담을 주장했던 김 모 학원장의 재산이 4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몰지각한 행동에 대해 현대판 ‘스크루지’ 또는 ‘놀부’의 탄생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중략….
같은 날 상반된 내용을 가진 두 개의 기사가 나갔고, 대중들의 반응 또한 극명하게 갈렸다.
건우의 낡은 SUV 이야기는 조금은 뜬금없지만, 중고시장의 구형 소렌토 품귀 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특히 안타까운 가족사와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가슴 절절한 사연은 ‘부자(富者)’라는 단어가 주는 무조건적인 반감마저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문에 등장한 김 모 학원장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대치동의 XX빌딩 앞은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차별에 분노한 OO노총과 시민사회 단체 회원 등 수백 명의 인파가 시위를 벌이면서 정상적인 학원 수업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서울 외곽에 자리 잡은 양평의 조용한 식당. 피학모 학원장들은 갑작스러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모임 장소를 정했다.
“어허. 약속 시각이 30분이나 지났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적게 모였습니까?”
약속 시각은 12시 30분. 그러나 30분을 넘어 오후 1시 30분이 다 되어가도 약속 장소에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최소 50명 이상은 모일 것이라고 생각해 전세 냈던 식당 안은 10명밖에 안 되는 초라한 인원으로 인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 오는지 연락은 넣어봤습니까?”
“대부분 사정이 있어서 못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화도 하고 문자도 넣어봤는데 답변이 오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고요.”
“쯧. 그러게 괜히 언론 플레이다 뭐다 하며 나서서 일이 이 모양이 되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되지도 않게 나서더라니까.”
“뭐요? 지금 그 말 저 들으라고 한 말입니까?”
“그럼 여기 남 원장님 말고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또 있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학원 망할 때까지 그냥 있어야 했다는 겁니까? 그렇게 잘났으면 박 원장님이 나서지 그랬습니까! 운동권 출신이라더니 허구한 날 불평불만 하는 법만 배웠나 봅니다?”
“지금 운동권 출신을 폄하하는 겁니까? 남 원장님이 대학에서 술 마시며 띵까띵까 놀러 다닐 때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사람이 접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죠. 운동권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남 원장님을 폄하하는 겁니다. 듣자하니 남 원장님은 운동권 출신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다면서요.”
“배, 배신자요? 누…가 그딴 소리를 합니까?”
박 원장의 지적에 남 원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누구긴요. 운동권에서는 알 만한 사람 다 안다던데요.”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어허. 이거 왜 이러십니까? 김 원장님도 계신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흠흠.”
갑작스레 시작된 남 원장과 박 원장의 말싸움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보다 못한 조 원장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그들도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잘 아는지라, 김 원장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말문을 닫았다.
“그런데 김 원장님.”
“네. 말씀하세요. 정 원장님.”
“정말 재산이 400억 원 가까이 됩니까?”
“허, 참.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합니까?”
진정된 분위기도 잠시. 이번에는 눈치 없는 정 원장이 나서서 김 원장의 속을 긁었다.
“400억 원이라고 하니 실감이 안 나서 그럽니다. 제가 그 정도 돈이 있으면 골치 아프게 학원 운영 안 하고 평생 이자로 먹고 살 것 같거든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거지꼴로 사는 겁니다.”
“네?”
“열심히 벌 생각은 안 하고 놀 생각부터 하니까 거지처럼 사는 것 아닙니까.”
“지금 거지라고 하셨습니까?”
“어휴. 됐습니다. 내가 무슨 기대를 하고 이딴 모임에 나왔는지. 조 원장님. 전 그냥 가렵니다. 앞으로 이딴 모임 때문에 연락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원장은 짜증이 잔뜩 났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기서 이 자식아! 돈 좀 있다고 감히 사람을 거지 취급해?”
“어이쿠!”
그때 ‘거지’라는 단어에 상처 입은 정 원장이 밖으로 나가려는 김 원장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김 원장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고, 정 원장은 그 정도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쓰러져 있는 그의 몸 위로 올라가 주먹질을 시작했다.
퍽퍽퍽!
“거지라고? 그래 이 새끼야. 돈 많아 좋겠다. 난 이미 거지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어디 거지새끼한테 죽도록 맞아봐라.”
사람들이 미쳐 말릴 겨를도 없이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찰칵찰칵.
그 순간 식당 구석에서 카메라 셔터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원장들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진을 찍던 사람은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재빨리 식당 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잡아!”
도망가는 남자의 카메라에 담긴 사진이 유출되면 지금보다 더 큰 곤욕을 치를 것 같은 예감이 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식당 문을 나서자마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추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어디선가 제보를 들은 기자들이 식당 앞에서 학원장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나타나자 수십 대의 카메라 렌즈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