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80화 (180/256)

제180화

띠링.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법무팀의 변호사인 조지는 자신의 스마트폰 알림음을 듣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어라. 한국에서 온 건 맞는데 한국지사에서 온 이메일이 아니네. 초이스 에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뭐 하는 곳이지? 흠. 한국 정부와 크레이듀라는 곳이 우리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으니 빠른 조사와 함께 적절한 대책 마련을 부탁한다. 이게 뭐야? 한국 정부가 우리 회사 지적 재산권을 침해해? 미친. 음모론에 빠진 할 일 없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보낸 건가? 넌 그냥 휴지통이다.”

조지는 초이스 에듀 법무팀에서 보낸 이메일을 신경질적으로 휴지통에 처박아버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조지는 재빨리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마이크로소프트 법무 담당 책임자인 데이비드 하워드 부사장과 식사 겸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백악관 법률고문 변호사를 거쳐 디처트 로펌 공동의장을 역임하다가 2010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법률부문 부사장에 오른 데이비드 부사장은 조지 같은 신참에게는 그야말로 워너비나 마찬가지였다.

“이봐. 조지. 일은 할 만해?”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가벼운 대화가 시작되자 데이비드 부사장이 조지의 직장생활에 관해서 물었다.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IT 회사라서 처음에는 특허와 같은 지적 재산권 관련 업무만 담당하게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지. 회사가 크고 직원이 많으니 지적 재산권 말고도 처리해야 할 법적 문제가 많아. 그런 걸 하나하나 경험하다 보면 나중에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업무 환경도 만족스럽습니다. 로펌과 달리 분위기도 편안하고 직장동료와의 관계도 좋아서 일할 맛이 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게 변호사 경력에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일하다가 겪은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해보게. 힘들었던 일도 좋고, 재미있었던 일도 좋고.”

“인상적인 에피소드라…. 글쎄요. 아! 아까 오전에 어이없는 일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메일이 하나 왔는데 내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거든요. 음모론에 빠진 사람이 보낸 장난 메일 같은데 제가 마이크로소프트 법무 담당자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했습니다.”

“한국? 무슨 내용이었는데 그러나?”

별생각 없이 이야기를 듣던 데이비드 부사장은 ‘한국’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수뇌부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진짜 별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한국정부와 와룡그룹의 자회사인 크레이듀인가 뭔가 하는 회사가 자기들과 우리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으니 빨리 조처해달라고 내용이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잠깐 알아봤는데 크레이듀라는 곳은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사설 교육 기관이라고 하더군요.”

“음….”

조지는 데이비드 부사장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도 모른 채, 관심받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돼 신 나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나갔다.

“생각해보십시오.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곳에서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거기다 대한민국 정부까지 껴 있다고 하니 더더욱 어이가 없는 일 아닙니까? 실제로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해도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일 텐데, 그런 일까지 우리 법무팀이 나설 수는 없죠. 그건 한국지사에서 대응하면 됩니다. 아마도 과대망상병 환자가 장난으로 보낸 이메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

“흠.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런데 그 이메일을 누가 보냈던가?”

“보낸 사람이요? 글쎄요. 어디였더라. 이름이 좀 특이했는데. 아, 맞다! 초이스 에듀. 초이스 에듀라는 곳에서 보냈습니다.”

“뭐? 이봐! 조지. 그 이메일 어떻게 했나?”

‘초이스 에듀’라는 말에 데이비드 부사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 갑자기 그건 왜?”

“잔말 말고 그 이메일 어떻게 했는지 그거나 말하게.”

데이비드 부사장의 갑작스러운 정색에 화기애애했던 간담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눈치 없이 신 나게 떠들던 조지도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그, 그러니까 이메일은 그냥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휴지통을 비우진 않았고?”

“네. 아직 그대로 있을 겁니다.”

“그럼 지금 당장 내 메일로 전송해. 직접 검토하겠네.”

“아…알겠습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좋은 인상을 남겼어야 할 자리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지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해 휴지통에 버린 이메일을 전달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자네들도 똑똑히 잘 듣게. 지난번 연설에서 사이티 카푸르 회장님이 새로운 성장 원동력을 찾았다고 말씀하셨던 걸 분명히 기억할 걸세. 그 성장 원동력의 핵심이 바로 초이스 에듀의 최건우 대표야. 그런데 초이스 에듀에서 온 이메일을 휴지통에 처박아? 이건 사이티 회장님을 휴지통에 처박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

“아!”

데이비드 부사장의 입에서 초이스 에듀가 어떤 곳인지 듣는 순간 간담회에 참석했던 법무팀 직원들은 나직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몇몇 직원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조지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법무팀 담당자의 이메일로 지적 재산권 문제를 문의했다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어야지. 자네들의 이메일이 공개된 주소도 아니지 않은가? 머리가 조금만 있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야. 설령 몰랐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맞지 않으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윗사람에게 물어봐야지. 특히 조지.”

“네. 부사장님.”

“완벽한 스팸 메일이 아닌 이상 모르는 주소로 메일이 날아온다고 해도 절대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모르면 무조건 물어. 스스로 판단하지 마. 아직 자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는 것은 무리일 것 같군. 괜찮다고 판단이 될 때까지 자네에게 주어진 권한을 줄이겠네. 일단 한 달이야. 그때까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군.”

“며…명심하겠습니다.”

***

“어서 와요. 데이비드.”

“제가 보내드린 이메일은 읽으셨죠?”

데이비드 부사장은 조지가 전달한 이메일을 꼼꼼히 읽어봤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초이스 에듀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초이스 에듀’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이사 이상의 간부들만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초이스 에듀에서 이메일이 왔는데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힘듦.’이라고 코멘트와 함께 이메일 내용을 첨부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었다.

그걸 보고 데이비드 부사장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느꼈다.

“네.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데이비드 입장에서는 조금 뜬금없이 느껴질 만한 내용이죠. 하하. 제가 미리 전달을 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아, 사전에 최건우 대표와 교감이 있으셨나 보군요.”

“네.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건우 대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번 건은 최선을 다해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장님. 아무리 힘들어졌어도 우리 마이크로소프트가 교육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무리수 아닙니까? 물론 회장님이나 빌 게이츠 전 회장님이 충분히 고심하셔서 결정하셨겠지만요.”

마이크로소프트와 초이스 에듀의 합작은 사이티 회장과 빌 게이츠 전 회장을 비롯한 기술 위원회의 이사진만 참여한 가운데 조용히 이루어졌다.

법무 담당 책임자인 데이비드 부사장 같은 경우는 대략적인 소식만 전해 들어, 건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기밀을 요하는 부분이 있지만, 데이비드는 알아도 상관없는 일이죠. 이건 단순히 교육 시장으로의 진출이 아닙니다. 그랬으면 제가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성장 원동력이라고 공언하지도 않았겠죠.”

“그렇다면요?”

“우리 미국의 가장 위대한 점이 뭔지 아십니까? 정치? 경제? 군사력? 기술력? 저는 전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교육입니다. 전 세계의 유수한 인재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이곳에 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몇은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지만, 대부분은 이곳에 남아 미국을 발전시키고 있어요. 우리가 자랑하는 정치, 경제, 군사, 기술도 결국은 전 세계에서 모인 인재들에 의해 이뤄진 것들입니다. 그런 인재들이 왜 미국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바로 교육 때문입니다.”

“저도 그 말씀에는 동감합니다. 지금 미국을 이끌어가는 과학자들만 봐도 외국인 출신들이 많이 있죠. 회장님 또한 인도 출신 아닙니까? 저는 절대 교육시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00년 넘게 이어온 미국의 교육 과정을 바꿀 엄청난 천재가 나타났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그것도 한 과목이 아니라 다섯 과목씩이나요.”

“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일이… 설마 최건우 대표라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말씀입니까?”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 아니었다면 데이비드 부사장은 방금 그 말을 농담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황당한 이야기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가 만든 커리큘럼이 포함된 완전 새로운 형태의 다섯 과목 교과서가 이번 9월에 처음 출시됩니다. 전 세계 교육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교과서를 바꾼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까?”

“시기의 차이일 뿐 결국에는 지구의 모든 학생이 최건우 대표가 만든 커리큘럼을 배우게 되겠군요.”

“그리고 우리는 그 커리큘럼에 대한 온라인 독점권을 가지게 됩니다. 자, 어떻습니까? 이래도 새로운 성장 원동력을 찾았다는 제 말이 무리수처럼 보입니까?”

데이비드 부사장은 사이티 회장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건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건우가 요구한 내용은 데이비드 부사장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끌어 모아 들어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전 세계 퍼져있는 상황이라면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겠군요. 만약 그 커리큘럼을 이용한 앱을 우리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윈도우 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면. 맙소사! 애플이나 구글에게는 끔찍한 재앙과도 같은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우리 윈도우 폰을 사용하겠죠.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버린 윈도우 폰을 성인이 되었다고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퀄리티에서 큰 차이만 없다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스마트폰 사업에 집중투자하고 있는 겁니다. 퀄리티 면에서도 애플이나 구글에 뒤지지 않게 만들려고요. 그렇게 되면 우린 빌 게이츠 회장님이 이룩했던 마이크로소프트 최전성기 이상의 호황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 데이비드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겠죠?”

그동안 성과도 없는 스마트폰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한다고 비난의 목소리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오히려 투자규모를 늘리는 이유를 데이비드 부사장은 이제야 깨달았다.

“초이스 에듀가 원하는 일은 무조건 들어줘야겠군요.”

“법률자문이 필요하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법무 담당 직원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최고 로펌들을 전부 끌고라도 한국으로 가세요. 제 전용기를 가져가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최건우 대표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최건우 대표를 건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단단히 보여주세요. 아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최건우 대표를 적으로 돌리려면 미국을 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겠습니다.”

“오호. 그거 만족스러운 대답이네요. 최건우 대표가 기뻐하겠습니다. 그럼 고생해줘요, 데이비드.”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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