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81화 (181/256)

제181화

Rrrr

“네. 여보세요.”

- 헬로우. 최건우 대표님이십니까? 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법무 담당 책임자인 데이비드 하워드 부사장입니다.

“아, 네. 전화가 올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애틀은 밤 아닙니까? 이미 퇴근하셨을 시간인데요.”

- 맞습니다. 지금이 대표님이 편할 것 같은 시간이라 일부러 전화 드린 겁니다.

데이비드 부사장에게 연락이 올 거라고 먼저 알려준 사람이 사이티 카푸르 회장이다.

그냥 초이스 에듀 법무팀에다가 ‘크레이듀에서 만든 크리에이터라는 앱이 퓨처 앱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 퓨처에 대한 권리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있으니 잘 상의해서 대책 마련을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언질만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법무팀끼리 잘 알아서 진행하라고 했던 일이 중간에 뭐가 어떻게 꼬였는지, 회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법무 담당 책임자가 곧 연락할 거라고 알려주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황당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꼭 그러실 필요까지야. 그냥 오전에 전화를 주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기가 뉴욕이 아닌 게 어딥니까? 하하하.

지금이 한국시각으로 오후 3시. 시애틀은 오후 9시지만 뉴욕은 새벽 1시다.

“그도 그렇군요. 사이티 회장님께서 몇 시가 편하냐고 하셔서 별 뜻 없이 오후 3시라고 한 겁니다. 앞으로는 오전 9시 이후에는 언제든 괜찮으니 될 수 있으면 업무 시간에 전화를 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보내주신 이메일은 잘 읽었는데, 대표님이 정확하게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원하신다면 백악관을 움직여서라도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대한민국 정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우선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두고 볼 생각입니다.”

- 혹시라도 정부의 후환이 걱정되는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한민국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한민국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뭔가 싫으면서도 좋고, 좋으면서도 싫은 말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로 생각해준다는 뜻에서는 좋지만, 대한민국이 일개 기업에 무시당하는 느낌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후환이 걱정되기보다는 귀찮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선거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거든요.”

-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건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지금 저와 초이스 에듀를 적대하는 세력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닙니다. 일단은 그곳부터 정리하고 싶습니다.”

- 적대한다는 세력이 바로 크레이듀라는 곳입니까?

“네. 크레이듀 하나라면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와룡그룹이라는 대기업이 버티고 있습니다.”

- 그것도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알아보니 와룡그룹은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당히 큰 기업이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대기업이 버티고 있어도, 다른 기업이 가지고 있는 지적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건우는 갑자기 밀려오는 피곤함에 미간을 손으로 문질렀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직 한국은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큰 대기업이 봤을 때 우리처럼 작은 곳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쉽게 누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우리 특허권을 너무 노골적으로 침해했습니다. 퓨처 특허권의 상당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저지른 실수겠죠.”

크레이듀가 개발한 교육용 앱인 크리에이터에 대해 건우가 그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 그 실수가 얼마나 뼈아픈 손실인지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헤이. 데이비드. 돈은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 미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로펌은 전부 끌어모아서 완전히 박살 내버려’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사이티 회장님의 성정을 제가 잘 아는데 그런 과격한 표현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개그다. 건우는 데이비드 부사장이 어떤 사람일지 상상이 갔다.

중산층 이상의 집안, 지금은 어느 정도 배가 나온 명문대 출신의 중년 백인 변호사.

- 말투는 좀 더 부드러웠지만, 눈빛으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군요.”

- 당연한 일입니다. 대표님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은 비록 애플이나 구글에 비해 시가총액에서 뒤지고 있지만, 그동안 미국의 정치, 경제 분야에서 다져놓은 기반은 그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위에 있다고 자부합니다. 자존심 강하고 다소 괴팍한 성격이었던 잡스의 애플이나 풋내기 래리 페이지가 있는 구글은 그런 쪽으로는 융통성이 부족하거든요.

객관적인 사실이었고, 건우가 여러 기업 중에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선택한 이유였다.

“저도 동감합니다. 빌 게이츠 전 회장님이나 부인께서 워낙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을 꼽으라면 항상 수위에 있는 빌 게이츠. 하루에 10억씩 쓴다고 해도 218년이 지나야 다 쓸 수 있을 정도라고 알려진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바로 어마어마한 기부액수이다.

빌 게이츠와 그와 와이프인 멜린다 게이츠가 세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선단체 중 하나다.

1998년 재단 설립 이후 지금까지 300억 달러(약 30조 원)에 가까운 돈을 기부했으며, 매해 30억 달러 이상의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부분 재산을 사후 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한,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는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2013년과 2014년 연달아 선정됐다. 그녀는 재단을 통해 전 세계 여성과 소녀의 양성평등, 세력화, 건강, 교육, 위생, 모성건강,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 부호들의 기부금 10% 미만이 소녀와 여성을 위해 쓰이고 있는 데 비해 멜린다 게이츠는 여성과 소녀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최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부부가 모두 사회적으로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두 사람의 선행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시가총액은 두 기업에 뒤질지 몰라도 창업주와 그의 부인이 다져놓은 사회적 인맥은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하다.

데이비드 부사장의 자신감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 그러니 최 대표님은 세계 최고의 백그라운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시면 됩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도, 저 싫다고 해코지하는 인간들에게까지 인정을 베푸는 바보는 아닙니다. 단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적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때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데이비드 부사장님께서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소송을 걸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주십시오. 그리고 조금 전 호언장담 하셨듯 백악관을 움직이든 유명 로펌을 총동원하든 다시는 저를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 하하하. 그 말씀만 기다렸습니다. 요구사항 접수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회사인지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

“고객님. 이 스마트폰을 고치려면 비용이 40만 원 정도 듭니다. 그래도 수리하시겠습니까?”

서비스센터 직원의 말에 정규가 엄마의 눈치를 봤다.

“40만 원이요? 액정만 깨진 게 아니었어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열어봤는데 스마트폰이 떨어지면서 충격이 컸는지 안에 있는 메인보드까지 깨져 있었습니다. 액정에 메인보드까지 갈면 거의 새 스마트폰을 조립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어서 비용이 많이 책정됐습니다.”

“너 이 자식! 똑바로 이야기 안 해? 그냥 떨어뜨렸다며! 어떻게 그냥 떨어뜨렸는데 안에 있는 부품까지 깨져?”

정규 엄마의 잔뜩 화가 난 목소리에 정규뿐만 아니라 서비스센터 직원까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정말 그냥 떨어뜨렸어. 진짜야. 이거 쓴지 벌써 4년인데 낡아서 그럴 수도 있잖아. 아저씨, 안 그래요?”

“하하하. 그, 글쎄요. 저희 회사는 수만 번 이상의 안전성 검사를 마친 이후 제품을 출시해서 쉽게 기계가 망가지진 않습니다.”

딱 봐도 손때가 잔뜩 묻은 오래된 스마트폰이었다. 딱히 충격을 받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멈출 수 있는 상태.

서비스센터 직원도 마음 같아서는 정규의 말에 동조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회사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그것 봐. 네가 함부로 써서 그런 거잖아. 수리하는데 40만 원이라는데 이제 어쩔 거야? 응?”

“그냥 새로 하나 사주면 안 돼?”

“뭐? 얘가 얘가, 말하는 것 좀 봐. 너 이 녀석아, 스마트폰이 어디 동네 개 이름인 줄 알아? 이름만 부르면 나오게.”

“엄마. 요즘은 그렇게 안 비싸. 2년 약정 걸면 공짜인 경우도 많아.”

“그런 건 요금제를 비싼 걸 써야 하잖아. 인석이, 엄마를 바보로 알아.”

‘100만 원 상당의 스마트폰이 공짜!’라는 말에 혹해서 알아보면 10만 원이 넘는 요금제가 필수로 들어간다. 2년 약정이면 거의 300만 원 돈인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현금으로 스마트폰을 사고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게 낫다.

정규 엄마도 한두 번 당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야. 요즘 KGT에서 나온 학생 전용 요금제는 정말 싸.”

“KGT? 초이스 에듀랑 손잡고 와이파이를 무료로 서비스한다는 거기?”

“응, 맞아. 거기야. 거기 학생 전용 요금제가 있는데 2만 원이야.”

KGT가 최근에 발표한 요금제다. 퓨처 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1만 5천 원짜리 데이터 요금제와 5천 원짜리 통화 요금제가 결합된 상품이다.

태블릿으로 데이터 요금제만 사용할 경우 1만 5천 원에 이용할 수 있다. 단, 퓨처 앱 이외에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요금제를 추가해야 한다.

아무리 퓨처 앱에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해도 고작 1만 5천 원에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결단이었다.

혹자는 KGT가 이번에 정말 칼을 갈고 요금제를 발표했다고 평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최후의 발악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모두에게 충격적인 발표임은 분명했다.

KGT의 과감한 결정에 놀란 양대 통신사는 뒤늦게 비슷한 요금제를 만들어 발표하려고 했지만 초이스 에듀의 단호한 거절로 무산되었다.

“2만 원? 학생 요금제가 2만 원이면 싼 건 아니잖아.”

“대신 퓨처 앱을 데이터 용량에 상관없이 무제한 이용할 수 있어.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에서도 데이터 걱정 없이 최건우 선생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정말 무제한으로?”

“그럼. 그래놓고 데이터로 딴짓 하려는 거 아니고?”

“에이, 엄마는 정말 아들을 그렇게 못 믿어? 저 요금제 쓰면 퓨처 앱 말고는 데이터 사용을 못 해.”

“뭐? 그럼 네가 맨날 달고 사는 바나나톡은 어떡하려고? 데이터 없으면 자주 못하잖아.”

엄마의 예리한 지적에 정규가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

“그게 있지. 5천 원 추가하면 1기가 제공한다는데 그건 어렵겠지?”

“얼씨구. 스마트폰 없이 살아볼래?”

“아니, 그게 아니라. 하하하. 천 원 추가하면 100메가 주거든. 그걸로 알뜰살뜰 살아볼게.”

“그럼 2만 1천 원에 2년 약정하면 스마트폰이 공짜라는 거네?”

“그렇지. 기종이 좋은 건 아니지만 동영상 강의 듣기에는 괜찮은가 봐.”

수십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공짜 폰을 쓰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요금제도 퓨처 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절대 비싼 게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싸도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건우’가 학생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름 석 자가 주는 힘이었다.

“아들, 더 좋은 거 안 사줘도 괜찮아?”

“그럼, 당연하지. 지금 좋은 거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어. 동영상만 잘 볼 수 있으면 됐지 거기서 좋아 봐야 게임밖에 더하겠어?

“아이고, 우리 아들 다 컸네. 그럼 저건 버리고 스마트폰 새로 사러 가자.”

“아싸! 고마워 엄마. 흐흐흐.”

“그렇게 웃지 마, 인석아. 징그러.”

“그래도 엄만데 아들보고 징그럽다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나 상처받아.”

“됐고. 저기 죄송하지만….”

“아, 근처에 KGT 대리점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시려는 거죠?”

정규 엄마가 머뭇거리며 물으려는데 서비스센터 직원이 웃으며 먼저 나섰다.

“네? 그걸 어떻게…?”

“하하하. 요즘에 굉장히 자주 있는 일이라서요.”

“죄송해요. 여기서 다른 회사 대리점을 물어봐서.”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KGT 대리점에 가면 학생 요금제만 사용해도 공짜로 쓸 수 있는 저희 회사 스마트폰도 있습니다. 타사 제품과 비교해보시고 별 차이 없으면 저희 제품을 사용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호호호. 미안해서라도 그래야겠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아들, 가자.”

“응, 엄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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